두나 없는 두나- 창비시선 542

두나 없는 두나- 창비시선 542

$13.00
저자

김상희

저자:김상희
2001년충남부여에서태어나2022년창비신인시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사라진흰천대신에

루꼴라재배일기
아기돌보기
내가사랑하는얼룩말
사랑과희망이넘치는
지구적인면모
빈잔
무심코발견되는
마음오르기
가장먼곳
말하는희망
우리에게는천사가필요하다

제2부나여기있어!

동생을줍는다
비밀친구
무엇이든졸업하고싶어하는여학생
목마
나의과외선생님
친구의애인의애인의애인의……
저녁식사모임
잡을수없는것
메이드김양
단지1인실만큼의엔딩
어딘가익숙하고아무것도아닌
반복적아웃
멀쩡히서있는것이없도록한다

제3부내친구가묻힌곳을알고있다

두나
모르는나라
늙은이로보내는밤
정오의구분
이여름의설계도
고양이왈츠의초월성
개들이있는호수
저녁이없는식탁
날씨는기운다
눈감기
티백위의남자
곧도착한대
서커스

제4부지구의중심은조용하다

천사와의드라이브
홀로그램되기
사막의투어가이드
사람같지않은슬픔
찾을수없는것
전혀알지못하는사람의소식
어떻게생겼나요?
자꾸만불이붙는다
해부시간
잘모르는친구
재탄생

해설|최다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마음에도뼈가있다는것이믿어지니?”
상처마저끌어안고성장케하는목소리

김상희의시에서눈에띄는것은바로마음의상처가자라는풍경이다.“마음에도뼈가있다는것이믿어지니?”(「마음오르기」)라는물음은시집전체를관통하는질문처럼읽힌다.시인에게마음은추상적인관념이아니라늙고병들고상처입으며자라는존재이다.

부드러운털을가진짐승이발목을스치며지나간다어느날은참지못하고안아버렸지집으로데려와따뜻한물을건넸다짐승은빠르게자랐다이빨이쑥쑥나고다리가길어지고맘마맘마엄마엄마발음할줄알게되고웃기도하고울기도하고화를내고이내슬픔을가지게되고(…)나는아주먼곳까지걸었다부드러운털을가진짐승이발목을스치며지나간다나의사랑스러운짐승인가내가도려낸바로그짐승인가
―「가장먼곳」부분

내가키우고“내가도려낸바로그짐승”은상처받은마음자체를나타낸다.그마음이자라는시간을함께한자리에서그것이사랑인지상실인지는끝내판가름나지않지만,시인에게있어그것은성장과다름이없다.그러니성장이란상처를극복하거나외면하는것이아니라,그미해결의무게를지닌채로도계속나아가는일인셈이다.“사람을사랑하게되었어”(「마음오르기」)라는고백과“의미를잃어버린채로도의미가있을때”(「재탄생」)라는구절은각각사랑과상실이라는상반된얼굴을하고있지만,그둘다정해지지않은채로끌어안고걸어가는시간이라는점에서다르지않다.시인이말하는성장이란바로그렇게,사랑인지상실인지끝내알수없는채로도계속되는시간의다른이름일것이다.

“두나는거기서부터시작된다”
이름을놓치는자리에서태어나는이름

김상희의시선은늘세상의중심보다는“밟혀죽을것같은작은것들”(「말하는희망」)이있는가장자리를향한다.그의눈길이닿는곳에는“서글플만큼어린소녀가모퉁이를돌아달려오는”풍경이있고,“그저지나갈뿐”(「지구적인면모」)인무력한존재들이서있다.그는그모서리너머로사라지는이들이있음에도불구하고무심하게흘러가는비정한현실을직시하며어디선가외롭게죽어가고있을“모르는사람의이름”(「전혀알지못하는사람의소식」)을불러보고,“그의이름을몰라도그를애도할수있다”(「티백위의남자」)고되뇌며스스로그이름의자리를대신지키고자한다.그러나이름을불러누군가의자리를지켜주는일과,이름으로그를어떤틀안에가두는일은어쩌면한끗차이인지도모른다.그위태로운경계를표제작「두나」는정면으로파고든다.

인간이되자,인간이되자,두나에게말하면두나는금세투명해진다.참을수없다는듯닦여버린다.지워져버린다.(…)내가두나를불러서두나는두나가된것인데내가두나를부르지않으면두나는두나보다더멀리갈수있을것같은데.두나의어깨를붙잡는다.새로운종과처음닿는것처럼깜짝놀라두나를본다.나는두나를놓친다.두나는더멀리간다.두나없는두나가고개를든다.두나는거기서부터시작된다.
―「두나」부분

화자는청소로봇인두나에게“인간이되자,인간이되자”말을걸지만두나는인간에가까워지기는커녕투명해지고지워질뿐이다.“내가두나를불러서두나는두나가”되었듯이름을준다는것은곧존재를그자체로존중하지않고어떤틀안에붙들어두는일이기도한것이다.그래서화자가끝내두나를놓치는순간,“두나없는두나가고개를”들고“두나는거기서부터시작된다”.이는화자와두나를이어주던이름이끊어지는순간이자,그이름위에세워져있던관계와세계가함께무너지는순간이기도하다.그러나그자리에남는것은폐허만이아니다.이름이지워진뒤에야비로소고개를드는“두나없는두나”처럼,무너짐은이름너머의존재가처음으로스스로나타나는자리이기도하다.상처입은채로도자라나는마음처럼,누군가지어준이름과역할을벗어난자리에서,관계가끊어지고세계가무너지는바로그자리에서진짜이야기는시작될것이다.


책속으로

루꼴라는자란다
우적우적씹어먹어도양심의가책이느껴지지않는다
베란다화분에피부조직같은잎이보인다
너의발등을떠온것같은
---「루꼴라재배일기」중에서

마른풀을뜯어먹는요니를쓰다듬는다
나와요니
요니와나
한무리로포괄되지않는
그렇다고멀리떨어져있지도않는
요니는길들여지지않은눈으로나를바라본다
한번도울어본적없는눈을하고서주위를맴돈다
---「내가사랑하는얼룩말」중에서

천국에도지워지지못하는자국이있을것이다
그것이간혹희미한빛으로보이듯
그들의날카로운발자국
이상한그림처럼뭉개지는그림자
그것들을두고쏟아지는노란빛
사람을사랑하게되었어
재가된마음에게중얼거리다가
끝없이미끄러지더라도
---「마음오르기」중에서

부드러운털을가진짐승이발목을스치며지나간다어느날은참지못하고안아버렸지집으로데려와따뜻한물을건넸다짐승은빠르게자랐다이빨이쑥쑥나고다리가길어지고맘마맘마엄마엄마발음할줄알게되고웃기도하고울기도하고화를내고이내슬픔을가지게되고
---「가장먼곳」중에서

어느밤두나와손잡고산책한다.빛이쏟아지는아름다운도시.로드킬당한짐승을피해걷는밤의발걸음들.두나의컨트롤러안의지구는어떤모습일까.두나에게물어볼까?두나,지구는무엇이야?그렇게물어보면두나는내가원하는아름다운대답을내놓을까?거실에놓인꽃병을닦다가꽃냄새를맡는두나.아니다.꽃위에쌓인먼지를들여다보는것이다.내가두나를불러서두나는두나가된것인데내가두나를부르지않으면두나는두나보다더멀리갈수있을것같은데.두나의어깨를붙잡는다.새로운종과처음닿는것처럼깜짝놀라두나를본다.나는두나를놓친다.두나는더멀리간다.두나없는두나가고개를든다.두나는거기서부터시작된다.
---「두나」중에서

천사가손을뻗어내땀을닦아주었다
천사는열사병에걸릴것이다
이번여름을넘기지못하고죽을지도모르겠다
지구의여름은처음일테니까
---「천사와의드라이브」중에서

넌누구니?누군가물었을때
개의이름과나의이름을바꿔말해도이상하지않을때
---「재탄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