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개정증보판) (양장)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개정증보판) (양장)

$13.00
Description
“이 시들은 가난한 마음에 맑은 물결이 되어 영원히 흐를 것이다”

서정예술의 정점에 선 실존적 사랑의 고백록
미발표작을 더해 20여년 만에 재출간된 정호승의 명작
따뜻하고 정갈한 언어로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 한국시단의 서정시인 중 첫손에 꼽히는 정호승의 초기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총 20만부 이상 판매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1990~200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초판(열림원 1998) 출간 무렵 쓰인 미발표작 스물한편과 ‘어른이 읽는 동시’로 선보인 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열림원 2002)에서 선별한 네편을 더해 제4부에 수록함으로써, 외로움과 상처를 근거로 인간의 보편적 실존을 노래한 정호승 시의 완결판이 ‘지금’ 다가왔다는 평가(해설 유성호)가 무색하지 않도록 재출간의 의미를 더했다. 20여년 저편에서 발화된 이 시집은 ‘거리두기’와 ‘격리’로 인해 유난히 외로움이 많은 이 시대의 독자들을 다시 한번 위안과 희망의 차원으로 이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는 정호승 시의 수많은 미덕 가운데서도 삶에 대한 긍정과 자연에서 유래한 근원적 사랑이 편재한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생활과 관계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맞춤한 메시지가 되어주며, 영원히 흐르는 물결처럼 이 시집이 그 생명력을 유지해가리라 저자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것(시인의 말)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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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호승

1950년경남하동에서태어나대구에서성장했다.경희대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197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석굴암을오르는영희」가,1973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시「첨성대」가,1982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위령제」가당선돼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반시(反詩)’동인으로활동했다.시집으로『슬픔이기쁨에게』,『서울의예수』,『새벽편지』,『별들은따뜻하다』,『사랑하다가...

목차

제1부
사랑한다
내가사랑하는사람
남한강
꽃지는저녁
석련(石蓮)
수련
발자국
윤동주의서시
정동진
고래를위하여
리기다소나무
당신
첫마음
꽃다발
문득
풍경달다
자국눈
첫눈이가장먼저내리는곳
철길에앉아
너는전화를받지않는다
입산
후회
별똥별

수선화에게
절벽에대한몇가지충고
바닷가에대하여
나무들의결혼식
결혼에대하여
반지의의미

제2부
우박
달팽이
달팽이
나비
잠자리
개미
개미
밤벌레
나뭇잎을닦다
소록도에서온편지
싸락눈
오동도
질투
가을
사막
나뭇잎사이로
새벽
거지인형
그리운목소리
귀뚜라미에게받은짧은편지
마음의똥
새벽의시
새들은지붕을짓지않는다
손가락글씨
새똥
자살에대하여
종소리
안개꽃
봄비

제3부
세한도
우물
성의(聖衣)
검은민들레
나의조카아다다
겨울한라산
길떠나는소년
밤눈
쓰레기통처럼
길바닥
새벽김밥
나의혀
산낙지를위하여
겨울잠자리
가을폭포
목련은피고
아버지들
약현성당
오병이어(五餠二魚)
마더테레사수녀의미소
서울의성자

제4부
불국사
첫편지
보길도에서
새벽에
사랑하게되면
쓸쓸하다
아버지의편지
오빠
잠들기전에하는작은기도
너의창에게바란다
첫눈
엽서
연애편지
쓰지않은일기

친구에게
첫눈오는날만나자
풀잎에도상처가있다
풀잎소리
낙엽
제비
봄기차
산정호수
불일폭포
보름달

해설│유성호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사랑을길어내는‘눈물’과‘외로움’
이시대를보듬는따뜻한정호승의시

정호승의시를읽으면가장먼저슬픔과그리움이스며든다.그러나그슬픔은비극적이거나감상적이지않고오히려독자를차분한자기성찰로이끈다.“눈물없는세상을만들기위해/볏단처럼쓰러져간벗들”을기리는사회적발언을내뱉을때조차그목소리는“기다리는자의새벽별”과“새벽의고요한눈길”이되기를바라는식으로따뜻하다(「아버지의편지」).이는시인스스로가다른존재를향한연민과타인을향한끝없는사랑을지녔기때문이다.

나는눈물이없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눈물을사랑하지않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한방울눈물이된사람을사랑한다
기쁨도눈물이없으면기쁨이아니다
사랑도눈물없는사랑이어디있는가
나무그늘에앉아
다른사람의눈물을닦아주는사람의모습은
그얼마나고요한아름다움인가

이시집에수록된그의대표작「내가사랑하는사람」의구절에서도드러나듯이‘눈물’은정호승의연민과사랑을상징하는시어다.“바위도하나의눈물”(「석련石蓮」)이고,하늘에서반짝낙하하는유성을보면서도“내가너의눈물이되어떨어”(「별똥별」)진다고한다.투명한감정의결정체인눈물은다른사랑을불러오는매개가되며,“이러한‘눈물’의연쇄를통해정호승시는슬픔의에너지를연꽃으로피어나게끔해”(해설)준다.

‘외로움’또한정호승의시를경유하면한차원승화된감정으로탈바꿈한다.그를대표하는또다른수록작이자이시집의제목을품고있는「수선화에게」에는“새들이나뭇가지에앉아있는것도외로움때문이고/네가물가에앉아있는것도외로움때문”이라고쓰여있다.정호승에게외로움은존재가근원적으로품고있는운명적인마음이다.그래서이시집을읽다보면외로움에서벗어나기위해발버둥치기보다는그것에순응하면서도다른외로운존재를보듬는심상이생겨난다.

“지금시대의외로운마음들에게”
앞으로도영원히읽힐따스한목소리

이시집이아름답기만한것은아니다.『외로우니까사람이다』에는근대가초래한마음의공허에대한본원적인성찰이담겨있는데,이또한거대한에너지가되어독자의몸과마음을움직인다.“나뭇잎에앉은먼지한번닦아주지못하고사람이죽는다면/사람은그얼마나쓸쓸한것이냐”(「나뭇잎을닦다」)라는물음을그냥지나치기란쉽지않다.인간이저지른파괴가기후위기와전염병으로되돌아오는세상에서‘나뭇잎’으로표상되는자연을보듬는시심(詩心)은그자체로미래로올곧게나아가는힘이되어준다.그밖에도이시집곳곳에는생태에대한관심과자연과더불어살아가는태도가돋보인다.“새들은지붕을짓지않는다/잠이든채로그대로눈을맞기위하여/잠이들었다가도별들을바라보기위하여”(「새들은지붕을짓지않는다」)라는깨달음이이를잘보여준다.새집의형태를단순한새의습성으로파악하기보다는새와자연이조응하는호혜적관점으로바라본것이다.이러한날카로운포착이이시집의잎과가지를오늘도더욱푸르고풍성하게하는영양분이다.

“이시집에는나의대표성을지닌시들이실려있다”라며정호승은‘시인의말’을통해『외로우니까사람이다』에대한애정을드러냈다.이시집은누구나사랑하는문장덕분에한국시문학의독자층을넓히는데크게기여했으며,다수의시가교과서에수록되는등그야말로한국서정시의얼굴이라할수있다.저자는시편을더하고기존발표작을세심하게다듬으며이번개정증보판을묶었는데,이를세상에내놓으며“시인은늙어가도시와시집은늙지않는다”라고말했다.언제읽어도이시집이눈물과함께사랑의마음을불러일으키는것도그여전한젊음덕분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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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그늘이없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그늘을사랑하지않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한그루나무의그늘이된사람을사랑한다
햇빛도그늘이있어야맑고눈이부시다
나무그늘에앉아
나뭇잎사이로반짝이는햇살을바라보면
세상은그얼마나아름다운가

나는눈물이없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눈물을사랑하지않는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
나는한방울눈물이된사람을사랑한다
기쁨도눈물이없으면기쁨이아니다
사랑도눈물없는사랑이어디있는가
나무그늘에앉아
다른사람의눈물을닦아주는사람의모습은
그얼마나고요한아름다움인가
―「내가사랑하는사람」전문

울지마라
외로우니까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외로움을견디는일이다
공연히오지않는전화를기다리지마라
눈이오면눈길을걸어가고
비가오면빗길을걸어가라
갈대숲에서가슴검은도요새도너를보고있다
가끔은하느님도외로워서눈물을흘리신다
새들이나뭇가지에앉아있는것도외로움때문이고
네가물가에앉아있는것도외로움때문이다
산그림자도외로워서하루에한번씩마을로내려온다
종소리도외로워서울려퍼진다
―「수선화에게」전문

저소나기가나뭇잎을닦아주고가는것을보라
저가랑비가나뭇잎을닦아주고가는것을보라
저봄비가나뭇잎을닦아주고기뻐하는것을보라
기뻐하며집으로돌아가고이고이잠드는것을보라
우리가나뭇잎에앉은먼지를닦는일은
우리스스로나뭇잎이되는일이다
우리스스로푸른하늘이되는일이다
나뭇잎에앉은먼지한번닦아주지못하고사람이죽는
다면
사람은그얼마나쓸쓸한것이냐
―「나뭇잎을닦다」전문

나무를껴안고가만히
귀대어보면
나무속에서어머니의목소리가들린다
행주치마입은채로어느날
어스름이짙게깔린골목까지나와
호승아밥먹으러오너라하고소리치던
그리운어머니의목소리가들린다
―「그리운목소리」전문


신촌뒷골목에서술을먹더라도
이제는참기름에무친산낙지는먹지말자
낡은플라스틱접시위에서
산낙지의잘려진발들이꿈틀대는동안
바다는얼마나서러웠겠니
우리가산낙지의다리하나를입에넣어
우물우물거리며씹어먹는동안
바다는또얼마나많은
절벽아래로뛰어내렸겠니
산낙지의죽음에도품위가필요하다
산낙지는죽어가면서도바다를그리워한다
온몸이토막토막난채로
산낙지가있는힘을다해꿈틀대는것은
마지막으로한번만더
바다의어머니를보려는것이다
―「산낙지를위하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