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거장황석영작가의장편소설『여울물소리』가출간되었다.작가는초판본(2012)의오류를바로잡고,1년여에걸친치열한퇴고를통해한결정갈한작품으로『여울물소리』를재탄생시켰다.또한우리근대사에서가장중요한역사적현장으로기록될동학혁명과천도교(소설속‘천지도’)를주소재로한작품이혁명120주년에맞춰재출간되었다는점도특별한의의를갖는다.
1894년사회적으로고착된부패와외세의내정간섭에맞서들불같이타오른혁명의현장을배경으로작가는피폐해진민중의삶과그속에서피어난사랑을생생하게되살려낸다.서사의부재가고착화된작금의한국문학에서황석영작가특유의이야기솜씨는두주인공의애절한사랑,혁명의좌절과희망,당시질박한민중들의삶을아우르며독자들에게재미와감동은물론답답한오늘의현실을견디고헤쳐나갈지혜를얻게한다.특별히이『여울물소리』는6개월간오디오북을무료써비스하는‘더책특별판’으로출간되어시간과장소에구애받지않고소설의재미를느낄수있다.
이것이거장황석영의이야기다
끝나지않은혁명,지울수없는사랑!
오디오북을무료써비스하는더책특별판
소설은‘반동의시대’인19세기후반부를시대적배경으로이야기꾼(전기수傳奇?)이자혁명가인주인공의생애를무게감있게,때때로판소리처럼구성지고경쾌하게그려낸다.임오군란(1882)과동학혁명(1894),청일전쟁과갑오개혁(1894)등굵직굵직한역사적사건들이전면과배면에등장함으로써마치대하소설을읽는듯한착각에빠지게도만든다.
소설의주인공은서자출신인‘이야기꾼’이신통과,“오입쟁이는아니었지만어리숙하고주변머리없는”시골양반과“재예가그리뛰어나지는않았지만남자후리는솜씨가남달”(9면)랐던관기사이에서태어난서녀박연옥이다.소설은연옥이“내마음정한곳은당신뿐이니,세상끝에가더라도돌아올거요”(76면)라는말을남기고떠난신통의행적을쫓는이야기로전개되면서동학혁명등과같은근대화과정의역사적사건과격변의시대를살아가는민중들의삶의모습이씨줄날줄로얽히며숨가쁘게펼쳐진다.
방대한내용들을한권의소설로밀도있게담아낸압축미와작가특유의입담과필력은‘과연황석영’이라는감탄을자아내게한다.또한주인공의행적을따라가다보면‘이야기꾼이들려주는이야기꾼의이야기’로서반세기를넘긴작가로서의황석영과그의문학인생이자연스레겹쳐진다.이것은그가자신의작가적에너지를집약하여‘이야기란무엇이고,무엇을위해존재하는지’에대한근본적인물음에응답하며작품을집필한것과관련이깊다.
이소설은혁명이야기다:서얼의서자로태어나전기수로유랑하다천지도(동학)에입도하고혁명에참가한뒤부터는쫓기는신세로전국을떠돌며종내에는활빈당에서활동하다가총에맞아생을마감하는이신통의이력은당대민중의삶을대변하는상징으로서절망적인현실을현장감있게증언한다.작가는‘새로운시대,더나은세상은무엇인가’‘사람이곧하늘이다’‘세상은반드시바뀔것이다’를필생의화두로삼았던이신통의파란만장한일생을통해격동시대의얽히고설킨아픈역사를오롯이담아내면서,현재를살고있는우리에게도같은화두를던져준다.물론혁명이실패하고말거라는암시는소설전반부에등장한다.하지만이를통해실패를각오하더라도뜻을세우고피우는것이가장중요한근본이라는것을역설적으로강조한다.
봄꽃도먼저피면반갑고이쁘기는하더라만그것이천기를보는거여.꽃샘바람불고눈보라치면속절없이지는법이니라.세상이만화방창할제더불어피어나야절기를누리는거란다.
그러면어여쁜본색을어찌드러낼수있나?(57면)
이소설은사랑이야기다:세상을품고변혁시키기위해사랑하는사람곁에머물수없는사내와그런사내의세상까지품어안기위해그의행적을쫓아전국을떠도는여자.강렬한첫사랑이후평생을어긋나기만하는인연과그리움은읽는내내독자들의가슴을아프게한다.하지만사랑하는사람의곁에남아부담이되기보다는자신의빈자리를남겨두고떠나오는여자의애절한결단은진정한사랑과그리움의가치를상기시킨다.
어찌그와함께살았던날을하루씩쪼개어낱낱이이야기할수있으랴.나중에그가곁에없게되었을때,가뭄의고로쇠나무가제몸에담았던물기를한방울씩내어저먼가지끝의작은잎새까지적시는것처럼,기억을아끼면서오래도록돌이키게될줄을그때는알지못했다.(76~77면)
나는기왕에사방으로거처를옮겨다니는신사의도소를따라가지못할바에야신통의짐이되어서는안되겠다는생각이었다.불승들처럼단칼에마음의집착을휙베어낼수야없겠지만,내몸이먼저떠나면마음은타래에서풀린실처럼서서히따라오다가모르는결에어디선가툭끊어져나가게될것같았다.혹시누가알까,그이가끊어진실의끄트머리를잡고내가간길을되짚어돌아오게될지.그이에게부담이되기보다는내빈자리를그의곁에남겨두고싶었다.(381~82면)
이소설은예술의여향(餘響)이다:주인공이신통은혁명가이기도하지만저잣거리에서책읽어주는이야기꾼전기수로서특출난재능을발휘한다.흥미로운것은동학2세대교주인최시형을이야기꾼으로파악하고소설에녹여낸것인데,“이야기꾼이야말로민중과함께새로운세상을설계하는혁명가”(최원식추천사)로설정하는것은이소설의또다른매력이기도하다.또한주인공은전기수,재담꾼,연희대본가로서판소리소리꾼,악사,광대패등과어울려다니는예술가이기도하다.신재효(작품속‘손동리’)의입을빌려펼치는음악관과예술관역시별미를선사한다.
평조(平調)가소리의기본이니라.한밤중에달이중천하늘에높이떠있는것처럼,또는한들바람이잔잔한수면을스쳐가듯이맑고도시원한소리다.우조(羽調)는맑고격하고장하고거세며엄한가락이니라.사납게들어올리기때문에맑고장하고격동하여한말이나되는옥이부딪쳐서깨어질때에옥부스러기소리가요란하게나는것과같도다.계면조(界面調)는처절하고슬픈소리니아득하게멀고숙연한가락이다.(…)평계면은평조에가까운잔잔한애조로,단계면은슬픔이아직은밖으로드러나지않고가슴속에쌓여있는울적함으로,진계면은슬픔이북받쳐통곡으로터져나온소리니라.그리고여향(餘響)이있으니,들보위의티끌이떨리고흘러가는흰구름을멈추게하는가락이다.새벽의먼산사에서마지막타종소리가끊길때와같도다.(307면)
이소설은세태풍자이다:이소설은무겁기만한역사소설이아니다.임오군란과청일전쟁의배경으로드러나는외세의폭압과조선백성의처참한일상은자괴와비애를실감케한다.하지만조선말망가진사회시스템을단적으로보여주는과거시험장의대리시험풍경은씁쓸한웃음을짓게만드는세태풍자의압권을보여주는대목이다.이와더불어수차례등장하는소리꾼,광대패들의노는장면은풍자와해학과기지가넘쳐난다.
자아,우리는하늘을지붕삼고땅을집삼아조선팔도길이란길은휘뚜루마뚜루쓸고다니는초라니광대패인데,날이면날마다영동장에오는게아니외다.내일이자리서우릴찾아봐,없어,재너머옥천가면있지만.예,오늘딱하루만놀다갑네다.펄쩍뛰었다제천장신발이없어서못보고,바람이불었다청풍장시원해서못보고,청주장을보잤더니술이취해서못보고,황간장을보잤더니땡감이많아못보고,예산장을보잤더니예산이없어못보고,온양장을보잤더니전다리많아못보고,돈안내고술먹기는공주장이제일이요,아산에도둔포장은큰애기술장사제일이요,청산보은대추장은처녀장꾼이제일이요,엄벙중천에충주장은황색연초가제일이요,서산태안가을장은어리굴젓이제일이요,한산서천여름장은세포모시가제일이요,천안삼거리옛장터는능수버들척늘어졌네.자아,쳐라!(91면)
소설에나오는인물들은대체로실존인물이다.작가는리얼한역사적사건의재생을피하고소설문학적전개를보여주고자‘천도교’를‘천지도’로바꿔쓴것처럼지명이나실제인물의이름을바꾸어등장시킨다.이를테면서일수는서장옥,김봉집은전봉준,최성묵대신사는최제우,최경오신사는최시형,손천문은손천민,손동리는신재효,그리고심백화는조선최초의여성명창진채선을가리킨다.작가는또한당대의현실속으로뛰어들어격동의시대를살다간민초들의이야기속에해학과풍자의언어유희와말재간이어우러진당시의민요,연희대본,언패소설등다양한소재를곁들여소설읽는재미를더한다.
현재와미래를관통하는가까운근대이야기
실패할줄알면서도싸울수밖에없는삶의무게,그리고희망
“세상은반드시변할것입니다”
현재우리의시대와120년전의세상을비교해보면역사는진일보하는가에대한의문을가질수밖에없다.현재이땅의민주주의는후퇴했고권위주의시대의작태가버젓이자행되고있다.또한억울한죽음은도처에만연하며민의는땅에떨어졌고권력과유착된부정부패의사슬만이더욱견고해졌을뿐이다.이러한작금의세태를살펴보건대,『여울물소리』는오래전지나간옛이야기가아니라현재진행형의생생한이야기이자현재와미래를되비추는역사의거울이된다.때가아니었음을알았고“패망할줄알”았으나싸울수밖에없게끔내모는현실의무게는죽음을각오할만큼무거웠을것이다.“다들싸우겠다는데망해두함께해야”(73면)한다는비장하고한맺힌결의는결국수많은민중의목숨을앗아간실패한혁명이되었으나그아름다운정신만은살아숨쉬며지금을살아가는우리들에게커다란위로를준다.
날선시대정신을한결같이작품에반영해온작가황석영의숱한명작중에서도이작품에깊은의미가있는것은,‘세상은반드시변할것’이라는신념과희망을우리에게선물해주기때문이다.동학혁명과그정신은작품의표제가암시하듯‘여울물소리’처럼선명하게모여들어거대한강물로합수되면서현재를관통하고미래를향해유유히흘러가고있는것이다.
추천사
경험을나누는지혜의오랜축이었던이야기에대한최초의공격으로서서구근대소설(novel)이출현한이래현대소설은나날이이야기로부터급히이륙해왔다.『여울물소리』에서작가는바로이문제로직핍,이야기의운명에몸을맡긴다.농민전쟁-청일전쟁-갑오경장,이세사건이손잡고폭발한1894년을축으로우리근대사가다시조명되는과정에서이야기꾼이야말로민중과함께새로운세상을설계하는혁명가라는깨달음이동터온다.이점에서『여울물소리』는현재우리소설이처한곤경을성찰하면서노블이후를탐색하는메타소설인데,그반성이민주화이후도래한불편한세상에거처를둔작가의궁핍함에말미암은바를상기하거늘,출구를찾는간절함이따듯함과제휴한이특이한소설의마음씨가긍휼하다.최원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