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운명처럼 시작된 서툰 연애,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오랜 상처
열일곱에 자신을 낳은 엄마와, 아빠가 모두 다른 세 동생, 십삼년의 연애 끝에 이별한 연인까지. 모든 관계를 뒤로하고 집을 나온 세련은 동네 카페 한편에서 타로 리딩을 하며 웹툰 스토리 작가로서 새 삶을 꾸려간다. 그렇게 맞은 첫 겨울, 연하의 웹툰 작가 진주와 연인이 되지만 그의 거침없는 다정함 앞에서 세련은 자꾸만 뻣뻣해진다. 무책임했던 엄마와 끝내 실패한 지난 연애가 떠오를 때마다 세련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어두운 틈”(10면)에서 머뭇거린다.
설렘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일상은 연달아 흔들린다. 카페 사장은 가게를 접겠다고 선언하고, 옛 연인 ‘윤주’는 약혼녀와 함께 나타나 청첩장을 건넨다. 그럼에도 세련은 조금씩 달라진다. 늘 혼자 삼키던 마음을 진주 앞에서 처음으로 털어놓고, 애써 외면해온 엄마와의 관계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까지, 한해를 꼬박 통과한 세련의 마음은 어디에 가닿게 될까.
카드 한장이 비추는 저마다의 갈림길
타인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답을 찾아가다
이 책의 각 장은 그 장을 압축하는 타로카드 한장과 해설로 닫힌다. ‘악마’에서 시작해 ‘세계’로 끝나는 열일곱장의 카드는 세련이 통과하는 한해의 궤적이기도 하다. 카페에는 여전히 저마다의 질문을 품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유부남 애인을 기다리는 여자, 무대에 서는 꿈을 놓지 못한 무당, 약속보다 농구를 택한 ‘그애’의 마음이 궁금한 소녀, 믿었던 형에게 모든 것을 잃은 남자까지. 세련은 이들 앞에 카드를 한장씩 펼쳐 보이며 정해진 답을 일러주는 대신 저마다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마음을 함께 읽어내려간다.
오랜 결혼 생활 끝에 남편에게 이혼 요구를 받고 딸과 함께 찾아온 손님이 있다. 남편은 아내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바람을 피운 상황. 이런 경우 남편을 용서하라거나 이혼을 말리는 조언은 쉽사리 꺼내기 어렵다. 그러나 세련은 손님의 툴툴대는 말투 뒤에 숨은 마음을 읽어내고 이렇게 말한다. “충분히 사랑했다는 걸 내가 납득하면 그다음은 더 편해질 거예요.”(163면) 손님들이 돌아간 뒤, 자신의 진짜 마음을 헤아린 끝에 연인에게 답장을 쓰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계속해보자고”(164면) 스스로를 다독인다. 타인에게 건넨 조언이 하나씩 세련에게 되돌아오며,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곧 스스로의 마음을 읽는 일이 된다.
“괴로운 일들이 또 기다릴지 모르지만 해보겠다”
피하지 않기로 한 결심이 여는 새로운 세계
작가는 전편의 결말이 해피엔드인 이유는 인물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같은 결말이어서가 아니라, 똑같은 결말을 맞게 될지언정 피하지 않겠다고 ‘드디어’ 마음먹은 세련의 변화 덕분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읽는 타로카드』는 그 결심 이후의 시간을 그린다. 누군가는 곁을 영원히 떠나기도 하고, 때때로 세련은 다시 자기만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떠나야 할 사람은 놓아주고 어떤 기억은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해온 작가는 겨울에서 봄을 지나 다시 겨울에 이르는 계절의 흐름 속에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무거운 사연 앞에서도 담백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상처를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읽는 타로카드』는 지나간 일을 떠나보내고 다가올 순간을 맞이할 용기를 한장의 카드처럼 건넨다.
작가의 말(부분)
인물의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설에서조차 그 마음에 온전히 공감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이만큼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을 독자분들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랑을 읽는 타로카드』에서 세련은 『타로카드 읽는 카페』에서보다 더 용기를 내어 변화하고자 합니다. 그녀를 아끼는 주변인들은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그녀를 응원하며 곁을 지키고요. 물론 영원히 그녀의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그 과정에서 세련은 다시금 자기만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지만, 떠나야 할 사람은 놓아주고 어떤 기억은 서서히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과정을 함께하며 여러분도 버려야 할 인연, 시간, 기억 들을 평화롭게 떠나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가을
문혜정
책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 윤주와 나는 십삼년이나 만나고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헤어졌다.
(…)
우리는 사랑을 담보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할퀴었다. 담보가 모두 넘어가고 남은 건 예고된 파산뿐이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감정도 파산한 연인에게는 기한이 지난 약속어음에 지나지 않았다.
--- p.9
하지만 우리 사이를 망가뜨린 건 내 결핍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어두운 틈. 버려지고 싶지 않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 꿈꾸지 않고, 욕망하지 않는 척, 원하지 않는 척했던 내 비겁함.
--- p.10
어설프게 왈츠를 추는 몸치처럼 한번씩 발이 허공에 머물렀다. 좋으면서도 조금은 두려웠다. 이러다 두 발 다 땅에서 떨어지는 건 아닌가. 그랬다가 정말 쾅 하고 갑작스레 주저앉게 되는 건 아닌가. 그때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호강에 겨워 쓸데없는 불안에 발목이 잡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 p.24
너도 같을 거라는 생각, 나는 또 똑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는 불온한 예감이 저 깊은 곳에서 자꾸만 이곳으로 넘어오려고 틈을 엿본다.
(…)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계속해보자고, 상처는 두려워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 p.164
나도 계획이 가능한 삶을 살게 되었다.
(…)
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평균’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음에 말 그대로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아, 행복하다.”
나는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 p.177
하지만 부모는 땅속 깊이 박힌 뿌리라서 비바람에 버티게 해주거나 반대로 이유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게 할 수도 있다. (…) 그렇다고 해서 나를 좀먹는 썩은 뿌리를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도, 홀로 도려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 어느 쪽이든 나는 상처받는다.
--- p.205
“타로카드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끝인 동시에 시작이죠. (…) 불행한 순간뿐 아니라 행복한 순간도 지나가잖아요. 그냥 그런 거예요. 결국 다 지나가고 또다시 와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흘러가게 두세요. 다음 행복이 올 때까지.”
--- p.229~230
우리의 앞날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빈약한 과거의 나에게 새로운 미래가 올까? 지금의 나는 겨우겨우 바닥에 가라앉아 안정을 찾은 것 같은데, 다시 나를 흔들면 흙탕물이 일어날까, 청량한 물결이 일어날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지나가고 또다시 온다는 사실 말고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