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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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7년 1월 18일, 작년 이맘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한 소설가 故 정미경의 유고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고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었다. 소설집으로 묶이지 않았던 근작소설 5편과 고인의 동료인 소설가 정지아 정이현, 그리고 유족 김병종 화백이 그리움을 담아 써내려간 추모산문 3편을 함께 묶었다.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기도 한 표제작 「새벽까지 희미하게」는 《창작과 비평》 2016년 여름호에 발표했던 단편소설로,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또한 이번 유고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못」은 “욕망의 끈을 붙들고 추락하는 남자와 추락할 것을 알기에 욕망하지 않으려는 여자의 쓸쓸한 삶을 정교한 언어로 직조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제17회 이효석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삶의 세부를 치밀하고 견고하게 새겨넣는”(해설 백지연) 작가 정미경은 “이데올로기를 현실의 삶으로 끌어들여 생생한 피와 살을 부여할 줄 아는 작가”(추모산문 정지아)였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 또한 자본주의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독을 촘촘하게 파고들어 존엄한 삶의 방식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우리 앞에 남긴다.
저자

정미경

이화여대영문과를졸업했으며,1987년중앙일보신춘문예희곡부문에당선되고2001년『세계의문학』에단편소설「비소여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나의피투성이연인』『발칸의장미를내게주었네』『내아들의연인』『프랑스식세탁소』,장편소설『장밋빛인생』『이상한슬픔의원더랜드』『아프리카의별』『가수는입을다무네』등이있다.오늘의작가상,이상문학상등을수상했다.2017년1월별세했다.

목차


엄마,나는바보예요
새벽까지희미하게
목놓아우네
장마

추모산문
정지아·정이현·김병종

해설|백지연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소설가故정미경의마지막소설집
“미워하고노래하고사랑하는것,
그것들을빼면삶에서뭐가남을까.”

“빛들이말한다.너희는웃고껴안고달리는존재라고.”
삶을향한뜨거운찬사,한층더깊어진소설세계

「못」은“이런단호함이전에도있었던가”(추모산문정이현)싶게그간읽어왔던작가의소설과는조금다른면모를보여준다.‘금희’와‘공’두남녀의시선을분리해서서술해나가는이작품은“자신의욕망에전력으로매달림으로써불안을유예하는”남자공과,“미리내려놓음으로써불안의싹수를자르는”(36면)여자금희의이야기이다.결국공이잃었던제자리를다시찾음으로써금희의곁을떠나고,그와함께기르던고양이를금희가병원에버려두고나오는대목이특히강렬하게다가오는이소설의마지막문장은이렇다.“다음.다음이란건없어.”(44면)

인도나동남아시아풍의화려하고도조악한꽃무늬여름원피스들이놀랍도록싼가격표를붙이고바람에흔들리고있었다.이제곧지나가버릴계절의옷들.늙거나젊은여자들이리어카앞에붙어옷을고르고있었다.자신의생에서내년여름이라는시간이100퍼센트있을거라는그확신이놀라워그녀들을한동안바라보다파란색과꽃분홍색옷이걸린옷걸이를빼들고는제몸에하나씩대보았다.(38면)

내년여름이반드시있을거라확신하고철지난여름원피스를고르는사람들을놀라운눈으로바라보는금희를통해“다음이란건없”다고말하는작가는이시점부터무엇을응시하고있었던것일까.하지만생애마지막으로발표한작품「새벽까지희미하게」에이르면그결말이주는빛의여운이따스하게오래남아작가를더욱그립게한다.
다양한불행으로점철된삶을살아가는인물‘송이’와좀더윤택한삶으로건너가기위해송이의성과를가로채고모른척했던‘유석’의이야기를담은이작품은불행에도지지않고자신의삶을살아나가는인물‘송이’가특히인상적이다.돈을벌다사람을찌르게돼구치소에가게된아버지와집안에쌓인빚까지,사람들은송이의불행이전염이라도될듯그를피한다.그런송이를마지막으로보게된날유석은“저여자,앞으로의삶도지금과달라지지않을것이다.절대로.”(117면)라는생각을계시처럼떠올리지만,“새벽까지희미하게떠있던달만큼이나”“멀고뜬금없는소리”(122면)를잘하던송이는결코삶에지지않는다.밤의놀이터에서서로의이야기를뜬금없고도마구잡이로쏟아놓았던시간들이,당시가장힘든시간을지나고있던유석에게또한힘이되었음을소설은놓치지않는다.그렇게대화아닌대화로도,서로를알지못하고스쳐가는관계로도,거짓말에도위로가스며들수있다는삶의아이러니한어긋남을작가는「목놓아우네」를통해서도여실히보여준다.트럭을운전하는여자‘심’이설계기획팀에서일하는남자‘심’에게잘못보낸문자로둘은우연히소통하게되고종내에는누구에게도털어놓지못했던서로의깊은마음까지나누게된다.하지만너무내밀한이야기까지전하게된탓에그들의연결은끊어진다.작가는이렇듯인간의욕망과세상의속물성을끊임없이마주보면서도무책임한냉소나위로에머물지않는다.
특정한악인을전제하지않고인물이느끼는불안에다채롭게접근하는「엄마,나는바보예요」는부르주아적삶에스민욕망과불안을촘촘하게고찰한작품이다.“아침에일어난사고”(73면)로만이야기되는갑작스러운사고는세월호참사로짐작되는데,출근길지하철에서심장마비로사망한한승객의이야기가보여주듯우리는삶의파국을예감할수도대비할수도없다.그렇게무자비한삶의속성을껴안으면서도우리는살아가야한다는용기를주는소설「장마」는여행지에서만난두남녀의이야기를아름답게풀어놓은작품이다.양육자역할을제대로하지않은어머니의죽음을마주하러낯선도시에온여자‘윤’과기계적인일에시달리는남자‘장’이함께한하루동안의이야기는삶을향한뜨거운찬사로읽히기도한다.어쩌면이소설의마지막대목은작가가우리에게남기고싶었을전언이었는지도모른다.

지나온삶에서,우연히다가온따뜻하고빛나는시간들은언제나너무짧았고그뒤에스미는한기는한층견디기어려웠다.그랬다해도,지금이순간의따뜻함을하찮게여기고싶지않다.(189면)

세상에빛을남겨줄정미경의소설

남자와함께죽음의춤‘부또오(舞蹈)’를관람하고난여자는말한다.“세상에100의빛이있으면-100의어둠이있어요.그어둠에-1을곱하면100의빛이되는거죠.부또오는,그-1을찾는여행이라더군요.”(188면)어쩌면작가정미경에게그-1은소설이었을것이다.100의빛과-100의어둠이공존할수밖에없는세상에서100의빛을남겨줄-1의소설.
한작가가우리곁을떠난다는것은이제다시는그의새로운작품을만날수없다는말과도같다.너무이르게떠나갔지만우리시대중요한작가로남을故정미경,이제우리에게남은일은그가남긴마지막작품들을천천히곱씹어읽는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