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옥상에서 만나요

$14.26
저자

정세랑

1984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0년『판타스틱』에「드림,드림,드림」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3년『이만큼가까이』로창비장편소설상을,2017년『피프티피플』로한국일보문학상을받았다.소설집『옥상에서만나요』,『목소리를드릴게요』,장편소설『덧니가보고싶어』,『지구에서한아뿐』,『재인,재욱,재훈』,『보건교사안은영』,『시선으로부터,』산문집『지구인만큼지구를사랑할...

목차

웨딩드레스44/효진/알다시피,은열/옥상에서만나요/보늬/영원히77사이즈/해피쿠키이어/이혼세일/이마와모래/해설|허희/추천의말|이언희/작가의말/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내가남긴자리에앉은당신에대한염려,
그런마음이만들어낸단단한연대의이야기

표제작「옥상에서만나요」는직장에서부조리한노동과성희롱에시달리며늘옥상에서뛰어내리고싶다는충동을느끼는‘나’가회사언니들의주술비급서를물려받고서마침내절망에서빠져나오는이야기를담고있다.이야기표면에는주술비급서가있지만‘나’를버티게한힘은사실“다정하게머리를안쪽으로기울이고엉킨실같은매일매일을어떻게풀어나갈지함께고민해주었”던사람들,옥상에서뛰어내리지않게막아준언니들인셈이다.해서‘나’는“내후임으로왔다는너”를염려하며‘너’가“나와내언니들의이야기를”발견해주기를바란다.내가남긴자리에앉은누군가에대한염려는그마음만으로단단한연대의힘을만들어낸다.
같은드레스로연결된44명여성의목소리를담은작품「웨딩드레스44」는한벌의드레스를빌려입고결혼한혹은결혼할여성들의이야기를44개의짧은에피소드형식으로담아냈다.낭만적신화가아닌제도로서의결혼을생생한목소리로들려주는이작품에는다양한여성서사가등장하는데,특히이드레스를마지막으로입은여성이고등학생들이라는점이의미심장하게다가온다.그들이성인이되어결혼을할때쯤에는,혹은하지않을때쯤에는과연어떤풍경이그려질것인가.정세랑은이처럼다양한여성인물의이야기를그려내는데에탁월한재능을발휘한다.이러한동시대성을정세랑만큼독특한감수성으로보여주는작가는단연코없을것이다.
이혼한뒤집안의물건을모두처분하는‘이혼세일’을열게된‘이재’와그의친구들의이야기를담은「이혼세일」에는“40대가……50대가보이질않아.선배들다어디로사라졌지?”물으며여성으로서느끼는직장생활의어려움을토로하는목소리가있고,“다른사람들의삶은근사하고자신만지옥에버려진듯한”기분속에서아이를키우며자신의선택을되돌아보는목소리도있다.
「효진」의주인공효진은“어둡게끈적이는어떤것”으로부터도망쳐온인물이다.효도효,다할진이라는이름대로살라고강요하는아버지로부터,가난해서자기를떠났다고생각하는열등감가득한전애인으로부터도망치고또도망친다.예고된불행에맞서는인물이아니라도망치라고말할뿐인효진의목소리는지금-여기에서살아가는우리에게이상한용기를불어넣는다.

혹시나의특장은도망치는능력이아닐까?누구나타고나게잘하는일은다르잖아.그게내경우에도주능력인거지.참잘도망치는사람인거야.상황이너무나빠지기전에,다치기전에,너덜너덜해지기전에도망치는사람.(62면)
적당히차가운곳으로도망쳐잠시숨을고르는것,거기서얻는것들은분명히있어.(64면)

과로로돌연사한언니의죽음을애도하는방식으로친구들과‘돌연사맵’을만드는「보늬」와,한국으로유학을온이스마일이과자공장에서아르바이트를하다과자귀를갖게된이야기「해키쿠키이어」는전작『피프티피플』을떠오르게한다.단지일을했을뿐인데사망한사람들,자신이소속된조직의부조리를고발했다해고된사람들,이들이불행을딛고다음세대로나아갈수있는길을작가는끊임없이고민해오고있었다.
한편곶감을먹으면죽는다는뱀파이어가되고만여자의이야기를담은「영원히77사이즈」,‘은열’이라는여성인물을상상하여전근대한일관계사속에놓아둔「알다시피,은열」,서로다른언어를사용하는두나라가화살편지로인해오해를쌓아가는「이마와모래」는작가가얼마나다양한상상력을자유롭게풀어놓는지잘보여주는작품들이다.

「옥상에서만나요」에는절망을빨아들이는‘남편’이나온다.그는절망을밥처럼먹어야하는존재이기때문에‘나’는절망에빠진사람들을그의앞에데려다놓는다.그면면도다양하다.“뇌종양수술후후각을잃은요리사”“험악한이웃과마찰을겪은캣맘”“텔레마케터”“20년넘게키운앵무새가죽은사람”“극우국회의원의딸”등,작가는직업과상황만으로그사람의인생을상상하게만든다.
정세랑은한인터뷰에서“선한사람들의이름을불러주고싶었다”라고말하기도했던바,평범한사람인듯보이지만사실은수많은얼굴을가진우리들의이름을한명한명호명하는작업을이처럼계속해나가고있다.정세랑만의각도와빛깔을가진새로운이야기는바로이지점에서탄생한다.이해할수없는세상의많은일들을그려내는작가의시선을따라가다보면살아있는것들을보듬는그애정어린손길을믿고싶어진다.그애정이바로정세랑만이보여줄수있는‘명랑’일것이다.지금우리에게는이런작가가필요하다.그만의애정과강인함이모두에게전염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