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영화 (공선옥 소설집)

은주의 영화 (공선옥 소설집)

$14.00
Description
활달한 서사, 아픔을 가로지르는 입담
우리 시대 가장 믿음직한 작가 공선옥, 12년 만의 신작 소설집
아픔을 가로지르는 생생한 입담으로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온 작가 공선옥이 『명랑한 밤길』 이후 12년 만에 신작 소설집 『은주의 영화』를 선보인다. 표제작인 중편소설 「은주의 영화」를 비롯,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한 작품 8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약자의 아픔을 농익은 필치로 풀어내는 솜씨가 여전하거니와 옛 가족이 해체되며 느끼는 불안과, 폭력의 시대가 여성에게 남긴 상처,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고독을 공선옥 특유의 활달한 서사로 들려준다.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28년, 우리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해온 작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처, 그 속에서 침묵을 깨고 피어난 이야기는 공선옥 소설의 활력을 다시금 증명해낼 것이다.

이 소설들이 지금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가닿아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까. 말을 걸 수나 있을까? 혹은 누가 이 소설들에 말을 걸어오기나 할까? 소설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는 할까? 나는 혹시 노래를 익혀 ‘밤무대 가수’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 것이 ‘존재 의의’로서는 좀더 윗길이지 않았을까?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소설’로밖에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저자

공선옥

1963년전남곡성에서태어났다.1991년『창작과비평』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피어라수선화』『내생의알리바이』『멋진한세상』『명랑한밤길』『나는죽지않겠다』,장편소설『유랑가족』『내가가장예뻤을때』『영란』『꽃같은시절』『그노래는어디서왔을까』등이있다.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올해의예술상,요산김정한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행사작가/순수한사람/오후다섯시의흰달/은주의영화/염소가족/설운사나이/어머니가병원에간동안/읍내의개/작가의말/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내영화는그오랜침묵의끝에서부터시작되었다
이야기였고울음이었고끝내노래가된낮은목소리

표제작「은주의영화」는영화감독이꿈인취업준비생은주가카메라한대로이모의이야기를촬영하면서본격적인이야기가시작된다.광주에서대구탕집을하는이모는5·18때어떤장면을본이후로다리를절게되었는데카메라를통해그런이모의이야기를무심히듣던은주는어느새카메라속으로빨려들어가는경험을하게된다.

카메라가나를빤히바라보고있다.카메라가숨을쉰다.카메라가큰숨으로나를빨아들인다.나는저항하지못하고카메라속으로빨려들어간다.카메라속에서카메라를찾는다.그리고나는알았다.카메라속에서는카메라가필요없다는것을.카메라속에서는내가카메라이고카메라가이모다.나는이제이모가되었다.(83면)

은주가되어버린카메라앞에서이모는남성의폭력에무방비하게놓였던아픈과거를털어놓는다.카메라는마치영매처럼죽은사람까지불러들이는데,종내에는이모와은주가얽힌한소년의비극적인죽음이떠오르고그소년의죽음이1989년실제있었던조선대학생이철규의의문사와도연결되어있다는사실이드러난다.침묵함으로써감춰두었던각자의상처는영매가되어버린카메라앞에서이야기가되고한바탕울음이된다.
폭력의시대에서학대받은여성은「어머니가병원에간동안」「읍내의개」에도등장한다.「어머니가병원에간동안」의‘언니’는남의집살이,버스차장,공장노동자로일하며번돈으로집에소를사주지만소는병들어죽고결국언니도병들어병원신세를지게된다.엄마와언니가병원에있느라며칠집을비운사이아직어린‘나’는혼자동네를돌아다니다폭력적인상황에노출되고허공을향해엄마를불러보지만응답은들려오지않는다.「읍내의개」에는지긋지긋한집을떠나먼곳으로가려는‘나’가읍내차부에서전두환대통령의취임식을라디오뉴스를통해듣는장면이나오는데,공선옥은‘작가의말’에서“내가스무살을향해가던무렵세상에는‘큰개’‘작은개’들이곳곳에서‘발광’을했다”라고그시대를떠올린다.
「순수한사람」은착취당하는어머니의삶이세대가지나도끊어지지않고이어져내려오는비극을보여주는작품이다.땅도집도소도전부자식들에게내어주느라아무것도가진게없는어머니는“느그어매젖은진작에보타져불고수중에일전한닢이없다”라고말하며울음을터뜨리는대신목청을돋워노래를부른다.그런어머니의딸인‘나’는중학생아들의요구로이혼한남편을향해양육비청구소송을시작해내키지않는재판을이어가는중이다.
옛가족이허물어진뒤에오는외로움과불안을서늘하게그려낸「염소가족」또한강렬한인상을남긴다.“나의염소가족들은언제쯤한마리도빠짐없이모일수있을까”라는말로전통적인가족의해체를보여주는이소설은어린시절사라진염소처럼뿔뿔이흩어져버린가족들의저녁식사를아스라한시선으로그려낸다.
한편소설은쓰지못한채강연으로먹고사는‘행사작가’로전락한소설가K의이야기와,‘쌍용자동차사태’를바깥에서지켜보는여성화자의목소리를통해사는일의서러움을그려낸「설운사나이」도잊지못할감동을준다.
다섯살아이의납치계획을세우는퇴임교수‘윤’의고요한일상을그린「오후다섯시의흰달」은아내와아들이사고로죽고하나남은딸마저독립을해집을나가면서혼자남게된‘윤’이우연히알게된다섯살아이를통해묘한생기를찾게되는과정이스산하게그려진다.낮도밤도아닌시간인오후다섯시는그끝에고요한밤이올지불안한밤이올지모른다는의미에서경계에있는애매한시간이다.어쩌면작가는그시간뒤에‘흰달’을둠으로써희미하게나마비치는빛의자리를남겨두고싶었는지도모른다.

이야기가된슬픔은더는슬픔의자리에만머물지않는다.은주의카메라앞에서말못했던가슴아픈사연을다풀어놓은이모는밤새내린비로말개진봄날아침,날아가는노랑나비를쫓는다.이제는다음세대인은주가자신의이야기를시작할차례다.긴침묵의끝에서부터시작될그이야기는비로소‘은주의영화’가되어흰달빛처럼독자들곁을오래도록비출것이다.
언제나우리곁가장아픈자리를써온작가공선옥,우리를대신해울어주고노래해주는그의소설이있는한곧다가올밤이어둡지만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