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적

자본주의의 적

$14.00
Description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하며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진 언어의 세공

“정지아의 소설은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한국소설계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8년 만에 새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을 선보인다. 작년에 심훈문학대상과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며 저력을 과시한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섞어가며 세태의 흐름을 정밀하게 포착해낸다. 특히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에서 보여주는 언어적 세공이 탁월한데 아버지 세대의 이념갈등과 역사적 상흔을 아들이 이어받는 모습을 뻔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게 그려냈다. 남로당이었던 부모의 삶을 소설로 써낸 『빨치산의 딸』(실천문학 1990) 이후 인간의 삶에 스며든 현대사의 질곡을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새로운 화법도 다양하게 시도한다. 갑작스럽게 기억상실에 빠진 인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극소수 마니아의 ‘취향’만을 ‘저격’할 듯한 생소한 커피원두와 인테리어의 세계를 부려놓는 식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소설가 정지아가 ‘경험’ ‘기억’ ‘관계’ 등 고유한 실존적 요소에서 살짝 눈을 돌려 정체성의 새로운 요소를 탐사하기 시작했음은 시사적인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취향이 자기 서사의 확고한 페르소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세상 변화에 적극 감응하는 가운데 그 진폭을 넓혀가는 정지아의 이번 소설집은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며 독자를 몰입시킨다.
저자

정지아

1965년전라남도구례에서태어났으며,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박사과정을마쳤다.1990년『빨치산의딸』을출간했고1996년「고욤나무」로조선일보신춘문예소설부문당선되었다.소설집『행복』,『봄빛』,『숲의대화』,『자본주의의적』등이있다.이효석문학상,한무숙문학상,올해의소설상,노근리평화문학상을수상하였다.그밖에저서로는청소년소설『숙자언니』,『어둠의숲에떨어진일곱번...

목차

자본주의의적
문학박사정지아의집
검은방
아하달
애틀랜타힙스터
엄마를찾는처연한아기고양이울음소리
계급의완성
존재의증명
우리는어디까지알까

해설정홍수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낯선시도가배반하지않는소설의본령
“그래서우리는정지아를읽는다”

갑자기기억상실에빠진한남자가까페에서정신을차리는장면으로시작하는「존재의증명」은기존정지아소설에비춰봤을때유독낯설다.스스로가누구인지밝혀내기위해이런저런질문을던지는남자는자신의정체가오리무중이되어가는와중에도자신의커피나액세서리의취향을마음에들어한다.결국경찰서에서한바탕소동을겪은뒤그는자신의집으로추정되는장소에도착한다.자기가누구인지알지못하지만“기억은사라져도취향은사라지지않는다”(242~43면)라는남자의묵직한한마디는그간정지아소설에서주변부에위치해온사물들이이제정체성을대변하는상관물로도약했음을의미한다.「애틀랜타힙스터」에는취향이존재자체의이유인‘힙스터’들이등장한다.비싼자전거를사기위해굶는것을마다하지않는원어민교사‘존’,인도에심취한도예가이자까페사장인‘윤’이대표적이다.이힙스터들이살아가는곳이남도의한소읍이라는점은아이러니하다.화자인‘스텔라’가이들을관찰하며이야기가전개되는데어느날‘존’에게개인교습을받기위해찾아온‘미경’의무례한말들이이들사이에묘한기류를만들어낸다.어색한분위기,뮤지션을꿈꿨던‘존’이연주하는피아노의불협화음,흩날리는벚꽃의삼박자가형성하는소설결말부의불편함은취향외에는정체성을표현할곳이없는젊은이들의처량함을상징하는듯하다.매일야근을반복하던하룻밤갑자기집으로뛰어들어온고양이가낳고간새끼들을돌보며전개되는이야기「엄마를찾는처연한아기고양이울음소리」는사회초년생의짙은애환이서려있다.팀장의폭언,끝나지않는잔업,그리고자기를이해해주지못하는‘금수저’남자친구때문에힘든와중에아기고양이까지떠맡게된주인공은매일밤유튜브로처연한아기고양이소리를틀고다니며어미를‘설득’한다.그골목길에서주인공은새끼를버린어미의마음을이해하게되는데작품마지막의서늘한독백이특히인상적이다.경비원으로일하는화자가서서히‘풋케어’에빠져드는「계급의탄생」은한편의시트콤을보는듯하다.버스를타고가다우연히고급외제승용차뒷자석노인의“분홍빛발바닥”(196면)을본화자는자신의갈라터진발바닥이“뭔가억울”(199면)하다며화장품가게에서풋크림을사는데,그래도발이‘분홍빛’이되지않자거금‘칠십만원’을들여풋케어샵을드나들게된다.카드명세표가날아들자집안에거대한폭풍이휘몰아치고화자는자신의지난삶을반추한다.그리고고된아르바이트로이미굳은살이덕지덕지붙어있는아들발의각질을깎아내기시작한다.「아하달」은개를초점화자로삼아이야기를전개한다.알래스카대설원을누비던늑대의자손인화자는한국땅에서케이지에갇힌신세이지만자존심만은여전하다.‘모든관계에서툰’인간남자에게구조를받아교감을나눠가는도중,“기품의맛을결코알수없는족속”(114면)으로여기는동네개의“욕정”(129면)때문에생명을잉태한다.그가‘엄마’가되어가는과정과,그것을보살피는남자의모습이자아내는새로운관계성에대한묘사가이채로운동시에따뜻하다.이러한낯선시도들은각각의이야기가완결적일뿐더러세상을섬세하게묘파한다는점에서소설의본령을배반하지않는데,한달음에읽히는문장끝에서독자들은작은위로를저마다품게될것이다.

그리하여삶은어떻게복원되는가
“다시한번,소멸되지않는빛과어둠의리얼리즘”

정지아의오랜독자들이더느껍게받아들일만한작품들은그광채가한층더깊어졌다.‘K-픽션’(아시아)시리즈로번역돼이미해외에번역소개된바있는「검은방」이대표적이다.『빨치산의딸』의모델인아흔아홉‘노모’가등장하는이작품은어머니의과거와현재를천의무봉하게넘나든다.사상때문에목숨도버리는빨치산이된배경에한남자를향한‘사랑’이있었고,지금그사랑은“사상말고,그녀가찾은,살아야할유일한이유”(85면)인‘딸’로이어진다는사랑의연대기가아름다우면서도,이작품이“30년전부터시작된정지아의‘긴전투’”(문학평론가정은경)를드러낸다는평가에걸맞게삶에대한수많은생각을파생시킨다.‘노모’와‘작가’가직접출연하는또다른작품인「문학박사정지아의집」은하나의코미디라「검은방」과연이어읽었을때더욱정겹다.어느날중앙일간지기자가‘지리산은둔자’인화자와그집의텃밭을취재하러나온다는소식에그는눈앞이캄캄해진다.평생농사한번지어보지못한터라제대로가꾸지못한텃밭에는잡초가무성했던것이다.뒷말이무성한시골마을에서유난히입이무거운‘송씨아주머니’에게급히도움을요청하는데이과정에서벌어지는소동과‘송씨아주머니’와의사이에서피어나는우정담이마음을데워온다.표제작인「자본주의의적」은화자의대학동기인‘방현남’이주인공이다.모르는사람을만날때마다극심한스트레스를받는방현남은어디서도자기를드러내지않는비기를습득했는데,작가는그가왜“자본주의의진정한적”(8면)인지를익살스러운어투로풀어낸다.늘잠만자던현남이안기부에잡혀갔다생채기하나없이배웅을받으며귀가한이야기,현남의운전도전기,그리고“야쿠르트아저씨”(29면)가꿈인현남의아들에피소드는하나하나웃음을자아내지만,‘가상화폐’와‘주식’에몰두하는이시대에는한방의카운터펀치가된다.「우리는어디까지알까」는말기암환자인사촌동생‘기택’의여름한나절방문기다.“당신아버지와동네장정스무명이국군총에맞아죽는걸”(251면)눈앞에서본기택의아버지는평생술만마시며살다암으로죽었다.기택은그런아버지를미워했지만결국알코올중독으로인한‘섬망증상’을겪으며똑같은죽음을앞두고있다.한집에모인기택과화자,그리고화자의어머니(‘짝은어매’)는매운탕을끓여서먹기시작하는데,‘지식인’이자‘사회주의자’의관점에서계급의식이없다며무시해온기택이사실은자기의삶을뒤에서지탱해준존재였음을서서히깨닫는다.한국현대사에서입은마음의상처는어떻게이어지는지,그리고삶은어떻게소멸되고복원되는지를장인적인필치로그려냈다.

한국소설의또다른시작
정지아소설은언제든살아온만큼,그리고살아내는만큼이다

문학평론가정홍수는이소설집을읽고“정지아소설은언제든살아온만큼,그리고살아내는만큼이아니었던가”(해설,295~96면)라는질문을독자에게되돌린다.이번작품집에서보여준파격적인시도역시삶의현존을정확하게묘사해온정지아소설의본질에서벗어나있지않았다는뜻이다.이소설집에는‘문학박사정지아’를비롯한실존인물과,누가봐도허구로창조해낸인물,그리고그구분이모호한수많은인간군상이등장한다.저마다다른이야기안에서살아숨쉬지만소설집을덮을때독자들은이들이서로다양한방식으로기대고있음을알게된다.그리고“짝은어매헌티쫌전해주소.짝은어매땜시이때꺼정나가살았네”(「우리는어디까지알까」275면)같은남도의입말이긴여운으로남으며우리삶을지탱해주는존재의이름하나하나를떠올리게될것이다.날렵한최첨단의소재로무장한젊은세대작가들의소설이주는재미와는다른,육중한주제의식을무겁지만은않은위트와에피소드로버무려내는중견작가정지아의소설을읽는경험은재미이상의메시지와울림으로다가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