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소설집)

$15.18
Description
“참으로 이상한데 결국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사람의 삶”
첨예한 언어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축조된
이장욱식 영원의 세계
빼어난 문학성과 정교한 서사로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 이장욱이 네번째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을 펴냈다. 이번 작품집에는 이곳을 떠나 ‘영원’의 세계로 간 이들과 ‘여기’에 남아 지나간 시간들을 기억하며 떠나간 이들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언제나 불가해하지만 단 한번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삶’을 중심에 두고 그것을 끝내 등진 이들과 여전히 “가늘고 긴 줄기에 매달린 잎의 느낌”(「잠수종과 독」)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흩어진다. 뚜렷하게 부재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히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슬프고도 찬연하고, 그들을 추억하는 이들의 모습은 쓸쓸하지만은 않아 따스하고 뭉클한 위로를 전한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고 생의 근본에 대해 꾸준한 물음을 던져온 이장욱의 소설세계에 사랑과 농담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한층 더해진 수작이다.

「잠수종과 독」은 떠난 연인인 현우를 그리워하는 의사 ‘공’의 이야기이다. 주목받는 사진작가인 현우는,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중 불타는 건물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손에 쥔다. 하필 현우는 운전 중이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다급히 핸들을 돌리다 사고를 당한다. 불이 난 곳은 진보 언론사 건물이었는데, 방화범의 소행으로 변을 당한 것이었다. 방화범 역시 분신을 시도했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와 공의 환자가 된다. 언론과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화의 원인을 찾고자 방화범이 의식을 차리기만 기다린다. 의사로서 불안정한 상태의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과 현우의 죽음에 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분노 사이에서 공은 주사기를 든다.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약물이 담긴 그것을.
저자

이장욱

2005년문학수첩작가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고백의제왕』『기린이아닌모든것』『에이프릴마치의사랑』,장편소설『칼로의유쾌한악마들』『천국보다낯선』『캐럴』등이있다.문지문학상,김유정문학상,젊은작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잠수종과독
귀이야기
트로츠키와야생란
●●
유명한정희
혹자가말하길
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
코끼리고구마그리고오조의발목을잡은손들
노보아모르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지나간시간이모여있는세계가
어딘가에는있을거예요.
그곳에서살아갈존재들을기억해줘.”

『트로츠키와야생란』속인물들은누군가를‘기억’한다.표제작「트로츠키와야생란」의‘나’는‘너’와의추억이담긴러시아에혼자도착한다.과거그들은추억의장소에혼자찾아오는일은없도록하자고약속했다.그러나현재그장소에홀로서있는‘나’는“너의없음”을생생하게실감한다.‘너’는활동하던단체에서모함을당해일을그만두게되고,‘너’의자리는‘너’를음해하던‘그자’가차지한다.힘겨워하던‘너’는산에갔다가벼랑에서떨어지는일을겪고만다.‘나’는‘그자’를찾아가계단에서밀치는복수에성공하지만,이내두려움을느끼고러시아로도망치게되었고,그곳에서트로츠키라는남자를만나그가살고있는호수안의섬에머문다.그러던어느날문득“이제다른삶이시작될것같은느낌”을받은‘나’는다시‘너’에게돌아가야겠다고마음을먹는다.하지만호수는꽁꽁얼어섬은고립되었고,‘나’에게주어진선택지는둘이다.여기남아때를기다리는일그리고한치앞이보이지않는얼음길을걷는일.
「잠수종과독」은떠난연인인현우를그리워하는의사‘공’의이야기이다.주목받는사진작가인현우는,인터뷰장소로향하던중불타는건물을발견하고카메라를손에쥔다.하필현우는운전중이었고사진을찍기위해다급히핸들을돌리다사고를당한다.불이난곳은진보언론사건물이었는데,방화범의소행으로변을당한것이었다.방화범역시분신을시도했고,의식이없는상태로병원에실려와공의환자가된다.언론과경찰은뚜렷한이유를알수없는방화의원인을찾고자방화범이의식을차리기만기다린다.의사로서불안정한상태의환자를보호해야한다는책임과현우의죽음에간접적원인을제공한사람이라는분노사이에서공은주사기를든다.약이될수도있고독이될수도있는약물이담긴그것을.
「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의K는클레오를추억한다.클레오는사람들모두일정한비율의행복과고통으로살아가며“운명이라는것은그비율의이름”이라고말하는“조용하고깊고강하고아름다운사람”이지만결국죽음을택해이세상을떠났다.K는클레오의말이옳다고생각하다가도,그렇다면이세상에서사라진클레오의“행복과고통의비율”은어디에있느냐고반문하며클레오에대한지극한그리움과사랑을표현한다.
떠난사람들은정말로‘떠나간’것일까.지금은함께할수없는이들이마치‘여기’에존재하는것처럼느껴지는이유는그래서때로어느것이현실이고환상인지구분할수없는이유는,그들을계속해서기억하고호명하는‘남은사람들’이여전히살아있기때문일것이다.“인생은언제나자신의방식으로”(「유명한정희」)흘러가기에,우리가현실이라고믿는세상속에살아있는사람들은단지자신에게남은삶을살며어디에든죽은사람들을위한세계가있으리라믿을뿐이다.시간이흐르면추억이잊히고사랑하는마음도끝나리라믿지만‘영원’은그런것이아니기에,‘여기’남은자들은기억하는일을멈출수없다.“영원은사람의사랑이아니고지지고볶는마음이아니고괴롭거나우울하거나즐겁거나행복한사랑이아니니까.”사랑하는사람이고통속에서,지지고볶는현실에서벗어났다고생각하면그를보낸괴로움이덜할수도있겠다.하지만그것은또한동시에지극한슬픔이어서,남은사람들은“계속슬프고슬퍼서아무것도알수없게”(「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된다.

불가해한삶의흐름속
아주찰나에지나가는진실

한편사랑하는대상은아니었지만,지금이곳에없는존재들과의기억을곱씹으며그들을나름의방식으로기억하는인물들이있다.
「유명한정희」에는유년시절만난친구‘정희’를기억하는‘나’가등장한다.정희는어린이답지않은“건조하고무뚝뚝한표정”을가진친구였는데,‘나’는‘묵념’을좋아한다고말하고‘정신적교분’같은단어를아무렇지않게사용하는정희를좋아한다.시간이흘러각자다른삶을살게되었을때도정희의소식만은계속전해들을수있었는데,어느날정신과의사가된‘나’의앞에정희가찾아온다.‘나’를알아보지못한정희는자꾸‘살의’를느껴곤혹스럽다고말한다.그런정희와상담하며‘나’는어린시절자신이정희에게품었던알수없는감정의정체를들여다보게된다.
「혹자가말하길」은어릴적함께놀았던‘혹자’라는친구가갑자기눈에보이기시작한김지우와황보염의이야기이다.혹자는사람모습을하고말도하지만그가먹는밥은줄어들지않고거울에도그의모습이비치지않는다.그들이보는혹자의모습과혹자를둘러싼이야기는환상인것도같고실제인것도같아무엇이진실인지알수없다.혹자는그들의기억일수도있고실재하는어떤인물일수도있겠는데,혹자는물론지우와염을둘러싼이야기들역시진실인지확신할수없다.
이외에도귀에서나무가자라는사촌그리고귀가유난히잘생긴애인과기묘한여행을떠나는「귀이야기」,하늘의구름이어느덧코끼리가되어걸어다니고뜨겁게익힌고구마가되어떠다니기도하는가하면길에서손들이튀어나와발목을휘어잡는이야기인「코끼리고구마그리고오조의발목을잡은손들」,서로관계없는것처럼보이다가도엉켜있는사람들이한마리검은고양이의움직임에따라조명되는「●●」,걸핏하면망상에빠져들어어떤것이실재하고어떤것이영화속줄거리로존재하는지뚜렷이분간하지못하는주인공이등장하는「노보아모르」까지.이장욱의작품들은우리가진실이라고믿는것이정말로진실인가물으며,이것이“참으로이상한데결국에는이상하다고생각하지않게되는삶”(「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의모습이기도하다고말한다.
“인생이란강물처럼흘러가는것같다가도어느순간에툭,끊기기도”(「유명한정희」)한다.“인간영혼은고귀하거나선량하거나사악하지”(「잠수종과독」)않고,“우리의의지와선택도실은세상의논리가작용해서만들어진것”일수있겠다.그렇지만삶에는또한“저기존재하는저것이그냥저기에있다는이유만으로우리의마음을움직이는것들”(「트로츠키와야생란」)이있고,“따로고귀한목적이나의미같은것이없”더라도“사소한순간들이쌓여”(「노보아모르」)만들어진인생은아름답고사랑스러울수있다.그렇게속삭이는듯한이장욱의소설들은외롭기보다는따스하고쓸쓸하기보다는환하다.자칫무겁게느껴질수있는삶과죽음,사람과사랑에대한이야기를세심히풀어내면서도이장욱은특유의유머를내려놓지않는다.그와더불어곳곳에서큰울림으로다가오는문장들을만나게되는데,허를찌르는언어들이주는여운에이야기가끝난뒤에도소설속인물들을떠나보내기가쉽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