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새 (정찬 장편소설)

발 없는 새 (정찬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역사의 심연을 파고드는 강렬한 미학
한국문학의 독보적인 시선, 정찬 소설의 정수
권력과 폭력의 문제, 그리고 고통 아래에서도 빛을 발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해온 작가 정찬의 열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가 출간됐다. 소설은 난징학살, 히로시마 원폭, 일본군성노예제, 문화대혁명 등 20세기 전반에 걸친 폭력의 역사를 새롭게 성찰하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되묻도록 만든다. 역사의 큰 줄기 아래에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며 가공의 인물 워이커씽을 중심으로 장국영, 첸카이거, 아이리스 장, 최승희 등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더없이 세밀한 재현으로, 때로는 흐릿하고 몽롱한 꿈의 장면과 같이 펼쳐진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질문을 쥐고 “스스로 그림자가 되고 꿈속의 사람이 됨으로써” 저마다 스러져가는 인물들의 “아름다운 무너짐”(추천사 김연수)은 역설적으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역사의 폐허를 일으켜 세워 보인다. 등단 이후 40년에 가까운 시간, 늘 새로운 물음을 던지며 부조리한 고통의 실체와 숨겨진 진실을 찾아 밝혀온 정찬의 집요한 문제의식이 응축된 역작이다.
저자

정찬

1983년무크지『언어의세계』에중편소설「말의탑」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기억의강』『완전한영혼』『아늑한길』『베니스에서죽다』『희고둥근달』『두생애』『정결한집』『새의시선』,장편소설『세상의저녁』『황금사다리』『로뎀나무아래서』『그림자영혼』『빌라도의예수』『광야』『유랑자』『길,저쪽』『골짜기에잠든자』등이있다.동인문학상,동서문학상,올해의예술상,요산김정한문학상,오영수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장패왕별희
2장발없는새
3장역사의아이
4장맹인악사
5장나비의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진정한구원을위한치열한물음들
환영처럼뒤섞이는사실과허구

소설은베이징에서중국특파원으로일하는‘나’가영화배우장국영의투신자살소식을접하며시작된다.‘나’는‘난징학살심포지엄’에서만나가깝게지내오던워이커씽이장국영과영화「패왕별희」의감독첸카이거와깊게교류했다는사실을알게된다.‘나’가독특한식견과미묘한존재감을지닌재야역사학자로만알고있던워이커씽은젊은시절전설적인경극배우메이란팡의공연에서연주를했던음악가로,「패왕별희」촬영당시어려움을겪던장국영에게영감을불어넣어주고우정을나눈일이있었다.마치유령처럼느껴지던워이커씽의사연이조금씩드러나고,비애가감도는그의생애에더큰궁금증을가지게되면서‘나’는자연스럽게그와주변인물들의생애에깃든역사의비극적그림자를마주하게된다.
소설의제목이자영화「아비정전」속장국영의유명한대사이기도한‘발없는새’는땅에내려앉아쉬지못하고바람에떠밀리듯살아간장국영의생애와소설속인물들의어두운운명을암시한다.주인공워이커씽은난징학살직후출생하여일찍가족을잃고맹인악사에게음악을배워중국각지를정처없이떠돌며살아왔다.작품전반에걸쳐드러나는워이커씽의악에대한집요한탐구와숨길수없는깊은허무는그개인이지닌슬픔뿐만아니라,폭력으로점철된20세기역사의그림자를끊임없이상기시킨다.첸카이거는그의영화「패왕별희」속주인공들처럼문화대혁명의격랑에휩쓸려혹독한체험을한인물이다.그는워이커씽의아름다운연주를듣고그에게서예술과자유의가치를배웠던어린시절을회상하며,그러한가치와배치된‘혁명’을추종하는홍위병이되어예술가였던아버지를공개비판해야만했던고통스러운일화를‘나’에게들려준다.
장국영의거짓말같은죽음으로시작된소설은또다른중심인물인아이리스장의자살소식으로큰변곡점을맞이한다.『TheRapeofNanking』의저자아이리스장은중국계미국인역사가로워이커씽과함께난징학살에천착하여그진상을세계에알리고,희생자와가해자를나란히구원하는꿈을꿨으나일본극우세력의비난과협박으로우울증을앓다죽음에이르고만다.워이커씽과‘나’는아이리스장을추모하며다시한번폭력의실체와구원의가능성에대한이야기를나눈다.한편‘나’의고모할머니는일본군성노예제의피해자로,어린시절난징의위안소에끌려갔다돌아와홀로살아간다.그는끔찍한트라우마를겪으면서도“꽁꽁묶인삶”(131면),즉가해의역사에다시무릎꿇지않기위해자유롭고온전한삶을이어가려노력한다.이렇듯소설의인물들은전쟁의폭력과권력의억압에휩쓸리면서도역사를직시하며묻고답하기를멈추지않는다.이들은저마다피할수없었던참혹한역사를증언하는동시에그것의억압으로부터벗어나살아가려한다.주요한소재로등장하는중국의경극,한국의판소리,일본의노(能)는그간절한삶들을모사하는예술장르인동시에,메이란팡,최승희등소설속인물들이자신을아름답게완성하는삶의한형태로생생하게묘사된다.

“악을이해할수없으면
그악을행한이들도이해할수없는사람이되니까요.“

정찬의치열한물음들이늘그러했듯『발없는새』가역사를바라보는방법은통념에서벗어나있다.소설은폭력의역사앞에서느끼는깊은분노와허무를그리는동시에불가해한악의실체를냉철하고예리하게분석한다.소설의중심이되는난징학살은워이커씽의표현에따르면20세기역사에서가장‘곤혹스러운’사건이다.워이커씽은그곤혹스러움의근원으로일본천황을지목한다.“아우슈비츠의야만이아리아민족의순결을위한것이었다면,난징학살의야만은한인간을위한것이었습니다.희귀한갑각류와미키마우스를좋아했고영국식조반을즐겼던한인간을일본인은신으로섬겼습니다.”(43면)소설은초월적존재로군림하는천황에게인간의죄악에대한책임을물을수없으므로,일본인에게도그책임을묻지못하게되는이모순에서부터‘악에대한이해’를시작한다.워이커씽은난징의“대척적인공간”(44면)으로원폭피해를입은히로시마를제시하며,침략국인일본이스스로를“난징의죄악”을짊어져야할가해자가아니라,“히로시마의신성”(45면)만을기억하는희생자로만여기고있는부조리에대해이야기한다.또한워이커씽과아이리스장은이‘곤혹스러운’악의구조를분석하고비판하는데서그치지않고더나아가가해자를이해하고희생자와함께구원하고자노력한다.타인에대한이해를포기하는것,“사람을사람이아니라고생각한다는”(162면)것이야말로난징학살을비롯한수많은폭력의근원이라는사실을역설한다.이들이가닿고자하는구원은추상적이고종교적이기만한것이아니라매우구체적인변화다.
『발없는새』는가해자가사과함으로써가해자가피해자를,피해자가가해자를이해하고나란히서는변화를꿈꾼다.이는“가해자가자신이가해자임을고백”(241면)하지않는현실속에서아직은희미하고아득한몽상이다.그러나동시에이간절한꿈은“역사의시간위에서역사를내려다보며”(240면)날아가는‘장자의나비’와같이,시간과망각을이겨내고이어지는아름다운몽상이다.그렇기에『발없는새』가그리는몽상은소설이끝나며사라지고마는환영이아니다.소설을읽고이아름다운몽상을나눠가질때,우리는새로운역사를함께꿈꿔볼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