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소설집)

$15.00
Description
“그런 시간을 통과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불화와 분투 속에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우리’를 발견하는
강인하고 눈부신 이야기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첫 장편소설 『자두』(창비 2020)에서 가부장제와 마찰하는 여성의 현실을 예리하게 묘파하여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 이주혜의 첫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가 출간되었다. 문지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포함해 6년간 써온 아홉편의 단편을 엮은 이 소설집은 여성이 한국사회 가족 안에서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분열, 분노와 절망을 진솔하게 꺼내놓는 동시에 그렇게 욱신거리는 삶만이 성취할 수 있는 위로와 연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아울러 대부분의 작품이 아직 한국문학장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중년여성의 삶을 심도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한국문학의 여성서사를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주혜는 『자두』에 이어 또다시 “독자를 단번에 타인의 삶 한가운데로 데려간다.”(추천사, 김혜진) 일상적 폭력과 편견으로 분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필연적으로 비틀리고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면면이 핍진하고 강렬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활자로 된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열렬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단지 자신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신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부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저자

이주혜

읽고쓰고옮긴다.2016년창비신인소설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장편소설『자두』,옮긴책으로『나의진짜아이들』『우리죽은자들이깨어날때』『모든빗방울의이름을알았다』등이있다.

목차

오늘의할일
아무도없는집
여름감기
우리가파주에가면꼭날이흐리지
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
물속을걷는사람들
꽃을그려요
봄의왈츠
그시계는밤새한번윙크한다

해설│황정아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가족’이라는환상아래
흔들리고비틀거리는이들

표제작「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를기준으로전반부에해당하는앞의네작품은‘가족’을둘러싼환상과통념을한겹씩벗겨내그아래자리한씁쓸한현실과가슴아픈비극을드러낸다.책의첫머리에실린「오늘의할일」이그출발점이다.소설은아버지의사십구재를치른세자매가아버지를회상하는장면으로시작된다.아버지는“자식을넷낳아사계절을뜻하는한자를하나씩넣어이름을지어주는게꿈이었”지만딸셋밖에얻지못했다.다정하나무능했고태평해서원망스러웠던아버지에대한기억이하나둘씩이끌려나오다가셋째의돌연한물음으로뚝끊긴다.“겨울이는잘살고있을까?”어느날아버지가집밖에서낳아데려온사내아이‘겨울’은세자매가영원히인생깊숙이“처박아두고”잊고싶었던존재다.그들은아버지가집안에방치한‘겨울’을“각자의방식으로돌봤”지만또각자의방식으로버렸던순간을떠올리며억울함과죄책감사이기묘한기분에휩싸인다.
「아무도없는집」은대학생때해부학실습을하며가까워진해부학자‘녕’과산부인과의사‘규’,그리고그들이결혼해낳았지만열여섯에스스로목숨을끊어버린‘원’의이야기다.해부학의불문율은‘왜’라고물어보지않는것이지만규는늘질문이많은학생이었다.결혼·임신·출산·육아의과정에서도마찬가지,규는‘엄마됨’을의문없이‘자연스럽게’받아들이지못하고대신집을떠나아프리카난민캠프봉사활동에몰두한다.원이목숨을끊었을때도타국에있던규에게녕은“네가그러고도엄마냐”라고판에박힌비난을하지만,결국깨닫는건“규가원을버리고간게아니라원이서툴기짝이없는부모를버린것”이라는사실이다.
「여름감기」는자신이“무해”하다고믿는남자‘오종’의이야기다.어느날산책길에나선오종은폭우를만난다.몸이흠뻑젖은채귀가했을때,아무도없어야할집에서침입자의낌새를감지한다.그정체는침대에서곤히자고있는아내의직장후배‘제이’이다.억압적이고불행한결혼생활을하는제이의일화를아내에게서수없이들어알고있는오종은제이의“하수구같은가정사”가자신의“순백의가정”을침범하지않길바란다.하지만그런“순백”을자처하는오종의서술이결국기만임이폭로되며,아내가“여름감기”를앓는제이에게잠시침대를내준이유가동정심이아니라동질감때문임이드러나는순간이쓰라리다.
이처럼‘가족’이라는베일을걷었을때마주하게되는것은대부분불화와상처로얼룩진“폐허”의정경이겠지만,그“폐허를정화시”키는(해설,황정아)뜨거운연대의풍경또한있다.「여름감기」에서남성인물의시선을통해서만가늠할수있었던가정내여성들의우정은「우리가파주에가면꼭날이흐리지」에이르러‘나’,수라언니,미예,세여성의우정으로전면에등장한다.초등학생때같은반이었던아이들을통해친해지게된세사람은한국사회에서유자녀기혼여성으로살아가며매순간느끼는고립감을긴밀히공유하며더없이가까워지지만,코로나19로인해그관계는막을내리고만다.팬데믹에홀아버지를여읜미예를위로하고자오랜만에만난자리가수라언니의코로나확진으로불화의도화선이되어버린것이다.언제든“형편없는엄마”“한가롭게놀러다니는유한부인”이라는비난에휩싸일수있는그들에게코로나확진은‘엄마’와‘아내’로서자격미달이라는가차없는심판이다.그러니덩달아확진판정을받은미예가수라언니에게원망의말을쏟아내는것은일견그럴만해보인다.하지만이소설이진정빛나는지점은그들의분열에주목하기보다는끝까지‘우리’를놓지않으려는‘나’의노력에집중한다는데에있다.“자꾸우리를겁쟁이로만들”고“고립시키”는“이바이러스의진짜이름은무엇일까”질문하며“우리는함께이병을앓을것”이라고결심하는‘나’의모습은‘우리’의분노가정말향해야할곳과‘우리’의다음이닿아야할곳이각각어디인지를정확히가리켜보인다.

삶의통증을생의박동으로바꾸어내는
이주혜의소설만이지닌올곧고미더운힘

표제작인「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는오십대여성‘구은정’이수술대에누운몸에서유체이탈하여그간의세월을반추하는이야기로,스무살부터‘처녀가장’이라는꼬리표를달고지낼수밖에없었던가정사,회사생활중알게된‘소희언니’와의우정이깨어지는과정,그리고회사사장이‘은정’에게“부려놓은소문”에관한일화가담담히이어진다.사장은일본어도할줄모르는은정을늘일본출장수행원으로대동했는데이로인해은정은근거없는추문에시달렸다.사장이‘은정’을수행원으로대동한진짜이유가이후밝혀지지만,‘은정’을오해한‘소희언니’는이미돌아선지오래고일본출장에서만나잠시마음을나누었던한사람과도멀어진뒤다.그렇게무언가자꾸만잃어온것만같은삶이라도그삶으로돌아가는결말이슬프지만은않다.“빈자리”에도그만큼의“무게”가있다는은정의깨달음이은정의삶을상실감으로부터구해내기때문이다.은정의회상을함께한독자또한저마다의상실을돌아보고또거기서작으나마구원받는경험을하게된다.
「물속을걷는사람들」은90년대초반학생운동이등장하는여성연대기다.‘나’는학생운동당시불의에함께저항하면서도결정적순간마다여성이라는이유로더무거운수치와곤혹을짊어져야했던경험을오래잊지못하고있다.친구‘기역’은그런‘나’의이야기를영화로만들기도하지만,‘나’에겐그영화도미처담을수없는통증의역사가있다.소설은아직도혼자“물속을걷는”듯한느낌을떨치지못하는‘나’가혼자과거를헤매게두지않는다.“불안정하게일렁이”는“어머니의언어”를이해하고자하는딸‘준’과“묵직한발걸음”에서벗어나“경쾌하게걷는”다음세대여성‘하리나’를지켜보며‘나’는앞으로나아가고자한다.이렇듯상실을상실로만,통증이통증으로만그치게내버려두지않으면서이주혜의소설은스스로미더움을증명해보인다.

소설집의후반에다다르면앞서문제삼은‘가족’의대안을제시하는소설들이등장한다.그시작을알리는작품인「꽃을그려요」는동네에서모종의이유로괴롭힘을당하고있는한소년의이야기이다.소년의집담벼락에는‘사탄,괴물,꺼져’같은글씨가매일빼곡하게나타난다.날마다더선명해지기만하는그글씨를여느때처럼지우고있던어느날,‘오주’라는이름의여자가찾아와말한다.
“지우지말고칠하지그래요?다른색으로덮어버려요.”
이한마디는뒤이은두작품을관통하는메시지가된다.「봄의왈츠」와「그시계는밤새한번윙크한다」속인물들에겐담벼락의글씨처럼매일더선명해져도저히지워지지않는상처가있다.「봄의왈츠」의‘선남’은그저아들밖에모르는엄마때문에“나를낳고엄마는기뻤을까?”같은의문에시달려왔다.‘리온’의아버지는“하나뿐인딸에관해서도무식”할만큼가정에무관심했다.‘미호’는정육점을하는아버지에게소정강이뼈로두들겨맞기일쑤였다.그들은그런과거를완벽히들어낼수없다는것을알기에차라리더눈부신미래로덮어버리는쪽을택한다.이제‘봄’의세엄마가되어새로운일가를이뤄나가는그들의따스한모습은‘가족’과‘모성’에대해다르게상상해볼것을권한다.친구사이인‘온’과‘나’,그리고‘나’의딸‘율’이북해도를여행하며겪는일련의사건을그린「그시계는밤새한번윙크한다」또한‘나’와온,두여성이과거서로에게입힌깊은상처와그상처를피할수없게만든기존의관습을넘어진정한연대의미래를향해발을딛는순간을포착한다.

“나의이야기가당신의이야기를만나
우리의이야기로단단해질수있다면”

여전히공고한가부장적현실을날카롭게해부하고그현실의대안적전망까지충실하게아우르는이번소설집『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는‘여성으로사는일’을통찰하는이주혜의시선이확장되고날렵해지는궤적을확인할수있는현장이다.그럼에도이소설집이‘여성만을위한’이야기가아닌것은이주혜가자신의문제의식을다채롭고흡인력있는서사로그려내독자를폭넓게매혹시키기때문이다.그는문제적현실로인해고통받는삶을실감나게재현하면서도그삶의놀랍도록강인한면모와가능성을끝내발견해내고야만다.그끈질김과진지함이오롯이담긴이소설집은다른미래를성실히상상하고꿈꿔야할지금,가장울림이큰작품이라고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