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 소설Q (양장)

두고 온 여름 - 소설Q (양장)

$14.00
Description
독자와 평단이 주목하는 신예 성해나의 첫 장편소설
우리가 두고 온 모든 인연과 마음을 위하여
한 시절의 여운 속에서 전하는 애틋한 안부 인사
첫번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나와 타인을 가르는 여러 층위의 경계와 그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진중하고 미더운 시선으로 탐사했던 작가 성해나가 신작 소설 『두고 온 여름』을 펴냈다. 젊은 감각으로 사랑받는 창비의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여섯번째 작품이다. 왜 타인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낯설고 어렵기만 한지,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인연과 슬픔도 후회도 없이 작별할 수 있는지, 실패한 이해와 닿지 못한 진심은 어떻게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빛나는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한층 깊어진 응시와 서정으로 풀어냈다.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로 지냈지만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영영 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 두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 소설은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마음을 경험한 모두에게 따스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로 다가선다. 아울러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센”(윤성희, 추천사) 성해나의 문장은 한국문학 독자라면 누구나 기꺼이 반길 만하다.
저자

성해나

201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중편「오즈」로당선되며등단.글을쓸때마다이전과다른사람이되어감을느낀다.그것이좋아글쓰기를시작했고,여전히이어가고있다.깊이쓰고,신중히고치고싶다.

목차

기하
재하
기하
재하

인터뷰성해나×김유나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그게불편해요.가족도아닌데가족인척하며사는게.”
오해와결별로얼룩진관계를다독이는
지금여기,가장특별한가족드라마

소설은기하의회상으로시작된다.사진사였던기하의아버지는매년여름기하의사진을찍어사진관쇼윈도에걸어두었다.하지만기하가열아홉살이었던그해여름,기하는처음으로독사진이아니라‘가족사진’을찍는다.재하모자(母字)와함께.아주어릴때친모를여의고아버지와단둘이살아온기하는아버지의재혼으로갑작스레생긴새로운가족과의생활에쉬이적응하지못한다.재하어머니는“언제든떠날수있고,언젠가는떠날”“객(客)”처럼느껴지고,여덟살이나어린재하의“지나친밝음”은부담스럽기만하다(12~14면).기하의마음을유난히뾰족하게만드는것은아버지의달라진모습.어떤일이든재하와함께하고재하의의중부터살피게된아버지를보며마음속엔실망과원망이켜켜이쌓여가고,그런치우침을만회하려는듯재하어머니가건네는서툰애정은성가실뿐이다.새로이이룬가족을잘가꿔보려는그들나름의노력임을알면서도기하는왜“울퉁불퉁한감정을감추고덮어가며,스스로를속여가며”(69면)“가족도아닌데가족인척하며”(73면)살아야하는지,자꾸만불만을품게된다.이런“날선감정”과“모난마음”(20면)은어린재하와의관계도서먹하게만들고,기하는“지긋지긋한가족노릇에서멀어지고싶어”(39~40면)스무살이되자마자서둘러집을떠난다.

한편재하의기억은어떨까.기하가집을떠나고,재하의친부가벌인크고작은사건으로어머니와새아버지가사년만에갈라선뒤에도재하는짧게나마모두가함께였던그시절을가끔씩돌이킨다.폭력적이었던친부와달리세심하고자상했던새아버지,곁을내주지않는기하형을“백번이고천번이고이해할수있다고”(60면)말하던어머니,“다정을체화하지도,자상하려애쓰지도”(59면)않던기하형.재하는“세사람의미묘한표정”과“공회전하는대화”(71면)속에서누구에게도온전히기대지못하고외로이지나온시간을담담하게풀어놓는다.“고여있던것을흘려보내듯잠잠히”(74면)과거를짚어나가는재하의목소리는읽는이의마음을애틋함으로가득채운다.하지만이책의말미에수록된작가인터뷰에서성해나가밝히듯,재하는“지나간시간을떠올리며비탄에잠기기보다”(166면)따스했던순간또한곱씹는다.아토피가극심했던자신과병원에동행해주었던기하형,치료가끝난뒤함께먹던중국냉면,면위에엉긴땅콩소스를젓가락으로살살풀어주며형이살며시지었던미소같은것을.

우리가친형제였다면어땠을까,상상해보았습니다.우리는둘만아는유머를주고받으며낄낄대었겠지요.치고받으며싸우다가도언제그랬냐는듯금세화해했을겁니다.용기나궁리없이도대수롭지않게연약한마음을내비쳤을수도있겠지요.그런과거가있다면.그런미래가있다면.(61면)

제대로매듭짓지못한관계와감정은두사람에게“아무것도두고온게없는데무언가두고온것만같”(38면)은기분을남기고,그기분으로인해두사람은문득뒤를돌아본다.기하의기억위에재하의기억이포개어지는순간,서로미처알지못했던혹은애써외면했던면면이퍼즐처럼맞추어지며털어놓지못한진심이기억의낙차를거슬러선명하게드러난다.상대에게다정하려는노력과소중한것을지키려는애씀조차때로는서로를더멀어지게만하는,그이상하고슬픈마음의일이더욱가슴뭉클하게펼쳐진다.‘더다가갔다면’‘더용기냈다면’과같은후회를거듭하는대신어떤이해는불가하고어떤오해는필연일수밖에없다는사실을순순히받아들이는두사람의이야기는회한을불러일으키기보다수없이어긋나고멀어졌던우리의인연들을가만히다독여준다.

“그때는형을이해할수없었지만……지금은괜찮습니다.”
다시만난다면우리,조금은달라질수있을까?

그렇게부모의이혼이후남남으로살아가던기하와재하는십오년뒤에다시만난다.‘스트리트뷰’에서우연히재하모자를발견한기하가재하모자가운영하는것으로추정되는중식당에찾아간것이다.긴시간이지나고이제“묵은감정들이사라진자리에희미한부채감”(97면)만남아,오히려반갑고은근히그리운마음이들어찾아간그곳에서기하는예전과비슷하면서도많이달라진재하의모습,더이상세상에없는이의소식,아버지에대해몰랐던사실까지맞닥뜨리게된다.혼란스러우면서도씁쓸한재회속에서기하와재하는한때기하아버지가즐겨찾던출사지이자그들가족의나들이장소였던인릉을산책하며그간의사연을더듬더듬나눈다.여전히솔직하지못한채로머뭇거리며긴긴산책을한끝에,과연그들은과거와는다른현재에도달할수있을까.아니면서로에게완전한과거로남게될까.

소설가윤성희가“성해나는제대로뒤돌아볼줄아는작가”(추천사)라고말한바,『두고온여름』은아쉽게놓쳐버린한순간을섣부른비관이나막연한긍정없이정확하고조심스럽게돌아봄으로써건져올린눈부신결과물이다.소설속에서기하와재하는기하아버지가찍은사진을들여다보며‘가족’이었던한때를떠올린다.곱씹으려고마음먹자기억은무수한결을보여주며자세해지고,사진에는박제되지않은감정과표정이세밀하게되살아난다.멈칫거리던손,울음으로흔들리던어깨,실망을감추던얼굴.상처주고상처받은과거를한장면한장면곰곰이되짚는동안자책과후회,미련과원망이가슴을깊숙이찌르고들어오지만,그럼으로써이루어지는살핌과헤아림은실패한관계를뒤늦게나마따듯이감싸안는다.설령관계가재건되거나감정이복원되지않는다하더라도그들삶에다음장면을열어준다.소설의말미에서이때껏과거의상처에매여있던재하가비로소천천히새삶을향해가는장면을확인해보자.그찬란한전진은우리가미처완성하지못하고두고온한시절을너른품으로껴안도록격려해줄것이다.

작가의말

소설의마지막장을쓸때마다내가두고온인물들이그곳에서행복하기를,평온하기를빈다.나도모르는세계에그들만남겨두었다는죄스러움을사하기위함도있지만,그보다는그들의삶이마침표로끝나지않고쉼표로남아오래흐르기를희원하기때문이다.

『두고온여름』을쓸때도마찬가지였다.기하와재하도그럴수있기를,그들이살아갈나날이더욱복되기를바라는마음으로썼다.
그곳에서기하와재하는몇번의여름을맞을까.
몇번의사랑을하고,또몇번의이별을준비할까.
나는어떨까.
이소설을읽는당신은.

우리가맞을무수한여름이보다눈부시기를.
어딘가두고온불완전한마음들도모쪼록무사하기를.
바란다.

2023년2월
성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