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곁에서

작별 곁에서

$13.74
SKU: 9788936439019
저자

신경숙

인간내면을향한깊은시선,상징과은유가다채롭게박혀빛을발하는문체,정교하고감동적인서사를통해평단과독자의관심을지속적으로받아온한국의대표작가다.1963년1월전라북도정읍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6학년때야겨우전기가들어올정도의시골에서농부의딸로태어난그녀는열다섯살에서울로올라와구로공단근처에서전기회사에다니며서른일곱가구가다닥다닥붙어사는'닭장집'에서...

목차

봉인된시간
배에실린것을강은알지못한다
작별곁에서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작별곁에서있는이들을위로하는
신경숙의따뜻한손길

뉴욕에서일년간함께했으나지금은무슨일인지연락이닿지않는화가‘선생’에게쓰는편지로시작하는「봉인된시간」의화자는역사의소용돌이에휘말려고국으로돌아가지못한채오랜시간‘봉인된시간’을살고있는인물이다.1979년외교관으로파견된군인남편을따라온가족이미국으로떠난지반년만에박전대통령암살사건과12·12쿠데타가일어나고,암살자의최측근이라는이유로가족은한국땅을밟지못한채불법체류자신분으로낯선미국땅에서생존하기위해고군분투한다.고국에서시집을출간하기도했던화자는모국어를향한그리움을품은채시쓰기를놓지않는다.그러던중평소흠모했던고국의화가가뉴욕으로와체류한다는소식을접하고그가머물집을알아봐주는일을시작으로일년간그와가깝게교류한다.그가고국으로돌아간뒤에도꾸준히연락을시도하지만어쩐일인지연락이닿지않고,태풍샌디로집안에갇히게된화자는답장을받지못할편지를써내려가기시작한다.이작품은태풍이라는자연현상때문에오도가도못한채집안에갇힌화자의현재상황처럼삶의격랑에휩쓸려표류할수밖에없는인간의한계,그럼에도불구하고생을향해투쟁하는존재의격렬한생명력을동시에보여준다.

「배에실린것을강은알지못한다」는죽음을앞두고있는오랜친구에게보내는가슴아픈작별인사를담은작품이다.20대초반부터우정을나누다가공부를하기위해독일로떠났던친구는암투병을하며인생의마지막을앞두고있다.‘나’는친구의작별인사가담긴이메일을받고친구를마지막으로보기위해유럽으로향하지만친구는한사코‘나’를만나주지않는다.친구와함께했던소중한시간들을복기하며‘나’는친구가사는독일의지척에서매일매일전화를건다.“나에겐너의손이거기에있었고너에겐나의손이거기있”어서위로받았던시간들을뒤로하고하루하루작별의시간은다가온다.이작품의제목인‘배에실린것을강은알지못한다’는인도출신설치미술가의작품제목이기도하다.“퇴락한기다란목선안에빈틈없이실린남루한살림살이들”을전시한이작품은‘나’로하여금인생의의미를되새기게한다.“우리는강위에떠있는수많은배중의하나에불과”할뿐,“강만이아니라너의배에무엇이실렸는지나는모른다”는사실을말이다.하지만낡은배를타고인생이라는차디찬강을건너는중에도맞잡을수있는서로의손이있다면우리는앞으로나아갈수있다는찬란한진실을펼쳐보이며‘나’는사랑하는이와비로소온전하게작별한다.

표제작「작별곁에서」는인생이한순간에무너져내리는뼈아픈작별을겪은‘나’가「봉인된시간」의화자에게8년만에보내는답신으로쓰인작품이다.소중한이들을떠나보내고오랜시간은둔했던‘나’는작업실로사용했던제주의숙소를8년만에다시찾는다.그사이전세계는코로나19라는유례없는팬데믹상황을맞았다.인간생활의친밀감을두려움으로바꿔놓은바이러스는모두를위축시키지만‘나’는깊은무기력속에서도집주인‘유정’과함께제주의이곳저곳을돌아보며지난흔적과조우한다.‘유정’의안내로4·3의아픈흔적을마주한‘나’는“내숨이내것인것만이아니”며“다살지못한사람들몫까지내가함께살고있는것”이라는유정의이야기를통해다시삶쪽으로발을내디딜힘을얻는다.우리는그렇게모두연결되어있다는진실은매순간헤어지며살아갈수밖에없는이들을위로한다.“부서진그자리에서다시살아봐야하는것이숨을받은자들의몫”(작가의말)이라는작가의메시지는이렇듯애틋한발신음이되어절망의끝에서도우리를구원할한줄기빛을선사한다.

부서진자리에서마주한
생의찬란한숨결

생명을품고살아가는한우리는마음을주었던것들과종내에는이별할수밖에없다.살아가는데있어깊은의미가되어주었던모국어와의작별,유약한젊은시절서로에게큰힘이되어주었던소중한친구와의작별,한때생의전부이기도했던그모든존재와의작별을통해작가는역설적으로후회없이사랑하는방법을일러주는듯하다.‘작별’에대한신경숙의깊은사유와빛나는통찰은우리에게아직사랑할시간이남아있다는사실을일깨운다.그리하여“당신이사랑한것,마음이묻어있는것들과온전하게작별할수있기를”(작가의말),환한삶쪽으로한발짝더나아갈수있기를바라는이세통의긴편지글은인생속에서한때부서져본사람이부서지려는사람에게건네는손길이기도하다.이다감한손길은생의찬란한숨결이되어지금작별곁에서있는당신의어깨를가만히보듬어줄것이다.

작가의말
어느순간예기치않은일들로삶의방향이틀어져버린사람들의작별이희미하게서로연결된채여기있다.이연작소설을이루는세통의긴편지가어디에도착할지는알수없는일이다.당신이수신하기를바란다.그들의간절한발신음들이당신을만나서로손이닿기를.희망을안고탔던배는종종난파되어우리를목적지에데려다주지않는다.배는폭풍우가몰아치는바다위알수없는곳에우리를내려놓고부서져버리기도한다.그럼에도부서진그자리에서다시살아봐야하는것이숨을받은자들의몫이라는말을당신에게하고싶었는지도.부서지려는사람에게내가할수있는게고작이독백형의세통의편지를쓰게하는일뿐이었다.다만쓰는동안나자신이저쪽으로가봐야겠다는생각으로몸을일으키기도했으니읽는당신도한발짝앞으로나아가보고싶은마음이들기를.
(…)
나는메말라가지만내가어떤글을쓰든그글들이종내는작별옆에서있는사람들의어깨를보듬어주는온기를품고있기를바라본다.그리하여당신이사랑한것,마음이묻어있는것들과온전하게작별할수있기를.지금내게는작별하는일이인생같다.

2023년봄
신경숙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