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학수
明學秀201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폴이라불리는명준미친개의처분에관한보고서dmswl은하그녀에게무슨일이있었나호수쓰러질듯말듯도도하게말의속도가우리의연애에미친영향해설작가의말수록작품발표지면
독자를결말까지단숨에데려가는흡인력간단하지않은생각거리끝에깨닫는이야기의매력「폴이라불리는명준」은이민가정에서자란한국계미국인‘이명준’과세계적인미술가앤디워홀의삶이교차하는이야기다.크리스마스를앞두고앤디워홀은‘최후의만찬’미니어처를사는데,이일은나비효과처럼이명준아버지의죽음으로이어진다.배우가된이명준은이름있는영화에출연하기도했으나중년이되며서서히잊혀간다.그러던중브로드웨이극단의앤디워홀역모집소식을들은이명준은오디션에지원하고,외형적차이를극복하며배역을따낸다.자신의캐릭터에사로잡히고만이명준의삶은달라지게되는데……운명같이이어지는우연의연쇄가긴장감을증폭시키며읽는이를결말까지단숨에데려간다.「미친개의처분에관한보고서」는‘햇빛로32단지’라는가상의지역을배경으로한다.거주민들은미친개를처분하라는‘국가관리국’의통지문을전달받는다.그통지문의내용은무척기이한데,미친개를식별할수있는건십대청소년들뿐이며그들도다른집의개만식별할수있다는것이다.빠른시일내에자신의개가미쳤는지를확인하고,미친개로판명되면자신의손으로‘제거’해야한다는이야기에주민들의일상은서서히파괴된다.흡인력높은가상의이야기가현실의상황을순간순간환기시키는수준높은정치적우화라할만하다.「dmswl」는연극처럼이어지는기이한연출이눈길을끄는작품이다.‘현우’와‘윤희’의고등학생딸‘은지’의자살에서이야기는시작된다.남자친구‘민수’와의관계에서생긴아이를임신중이었다는사실은그죽음이후밝혀진다.딸을잃은둘은‘dmswl’라는인스타그램계정을만들어출산에이르는여고생의임신일기를사진과함께올린다.학교에는그사진이은지의모습이라는소문이돌고민수가찾아와계정을삭제할것을부탁하지만둘은아랑곳않는다.이기이한계정의전말이서서히밝혀지며독자들은기억과재현에관한문제를떠올리게된다.「은하」에등장하는‘나’와‘미영’은소설에푹빠진대학생커플이다.취향은극명하게달랐지만,그다름에서조차강한끌림을느끼며둘은깊은관계로발전한다.그둘의사이를갈라놓은것은『은하』라는한권의장편소설이다.고등학생부모의실제이야기를각색한이소설을놓고둘은언쟁을벌이는데,『은하』가SNS의사연과문장을도용했다는사실이밝혀지며일은더복잡해진다.‘나’가군대를간사이에둘은서서히이별하고시간이흐른다.그러다‘나’는미영이『은하』라는소설집을쓴것을발견하고미영이나타나는장소를찾아뒤따라다니기에이른다.소설과현실,현실과소설사이의인과관계를교묘하게비틀어가며아슬하게이어지는감정선이일품이다.「그녀에게무슨일이있었나」는언어와소통에대해생각해보게한다.고등학교동창들과의모임끝에만취한‘수진’은‘기훈’의집에서일어난다.마지막술자리인기훈의집에수진을남겨놓고친구들은하나둘각기다른이유로귀가한다.그이후현재와과거를오가며기훈과수진사이에무슨일이있었는지를두고미묘하고불쾌한대화가교차된다.수진은전화나SNS로자기가잠들었던순간에대해확인해가지만,이는수진의불안과서로의의심을키워나갈뿐이다.과연진실은무엇인지,그리고진실은어쩌면누군가에의해만들어지는것아닐지를생각하게하는이야기다.「호수」에도소문이주된소재로등장한다.다만여기서소문은일상의무료함을뒤흔드는역할을한다.중견작가인‘나’는정부가주최하는문학세미나에참석하지만행사에금방흥미를잃고자리를뜬다.갑작스럽게비가쏟아지고,우산없이서있는여성을발견한‘나’는우산을함께쓰기를권한다.대화끝에‘나’는이지역에있다는호수를보러가자고제안하지만,둘의여정은이내사라져버린것들의흔적을발견하는일로뒤바뀐다.호수는의문스러운살인사건의배경이되기도하고,이성을유혹하기위한수단이되기도하며,세계관의차이를확인시켜주는장치가되기도하며반복해등장한다.결말에이르러‘나’는또다른호수이야기를창작하기에이르는데,여기까지이르는과정이손에땀을쥐게한다.「쓰러질듯말듯도도하게」의‘나’는어느영화의조감독인데,우연히본고양이이야기를감독에게꺼냈다가곤경에처한다.주택가에서한쪽다리를다쳐서절룩거리는고양이를도와동물병원까지데려다준이야기를듣고감독은여주인공의캐릭터를위해그고양이를데려오라고한것이다.‘나’는딱한번만났을뿐인고양이를찾아이곳저곳을다니지만헛수고에그친다.그런반면시나리오에서고양이의비중은점점커져만간다.결국후보로선택된고양이는다리를절지않았고,배역을위해서는다리를다쳐야만한다.이잔인한상황은어떤결말을맞이하게될지.독자들은이야기의끝에서‘연출되고꾸며지는삶’의의미를되묻게된다.「말의속도가우리의연애에미친영향」은어느커플의즉흥적인결정으로시작한다.빠듯한경제사정으로아르바이트를전전하는대학생커플‘나’와‘영주’는휴일데이트를위해서울랜드로향하다가갑자기경마공원으로목적지를바꾼다.난생처음와보는경마공원,그런데기적이라할만큼‘영주’가베팅하는말은매번우승을차지하고둘은큰돈을거머쥔다.이기묘한행운은매주이어지다가‘나’가형의결혼식때문에경마장을가지못하게되며돌연끝나게된다.동시에둘의관계도끝을맺는다.몇년뒤우연히만난‘나’에게영주는한가지비밀을털어놓는데……사람에게관계란어떤의미인지를곱씹게하는작품이다.이렇듯『말의속도가우리의연애에미친영향』은각기다른일상에서출발하며모두의경험을조금씩간지럽히지만,어느순간일상을아득히초월하기도한다.독자들은우연과운명,소통과관계,과거와미래등간단하지않은생각거리를제공받지만이과정은이야기와함께자연스럽게스며들어오기에조금도고통스럽지않다.서사가파생시키는갖가지상념이모였다흩어지기를반복하는독서경험끝에읽는이는자신의자리와자기를주변에서구성하는‘사회’의존재를다시생각하게된다.독자로하여금“잠시다른각도로세상을볼수있게”(해설,김요섭)해주는동시에읽는시간을재미로채워주는이야기들,어쩌면이것이야말로소설의본령이아닐까.작가의말해경(海卿)이눈을떴다.그를깨운건어쩌면어떤향기였을지도모른다.그는몸을일으켜방안을두리번거리다책상위에서무언가를발견한다.그것을손에쥐고만지작거리며생김새를관찰하고향을음미하던해경은그것이한자로레몬영과레몬몽을사용하는영몽의껍질임을깨닫는다.입맛을다시며영몽의물기없는노란껍질만바라보던해경은금홍(錦紅)이그것의과육을모두먹어치우고껍질만남긴것이라단정한다.해경은영몽을찾아거리로나선다.하지만1930년대의경성에서영몽은귀한과일이었다.일본인들이운영하는백화점과과일가게와시장,심지어식당과주점과찻집까지,과일이있을만한곳은모두찾아가물었지만영몽은어디에도없었다.해경은온종일거리를헤매다실의에잠겨친구의화실에들른다.그곳에서해경은마침내친구의정물화속에그려진영몽과조우한다.허탈한마음으로그림을바라보던해경은탄식한다.저건영몽이아니라영몽(靈夢)이로구나.해경은우리에게이상(李箱)이라고알려진작가의본명이며실존인물이다.하지만위의이야기는실화가아니다.이상이정말영몽을찾아경성의거리를헤맸는지,심지어당시경성에영몽이라는과일이있기는했는지나는모른다.그러니까,저건거짓말이다.내가오직상상에의존해서지어낸어설픈픽션이며,대략십년전,종일소설만생각하며습작에몰두하던시기에나도모르는사이내머릿속에던져진작은씨앗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저이야기는여전히씨앗이다.지금까지대략십년이흘렀으니저씨앗이나무가되어열매를맺으려면앞으로십년,아니,더많은시간이필요할지도모른다.지난십년동안다행히나는저것을포기하지않았고저것도나를떠나지않았다.나는저것이여전히내안에남아있는지수시로확인한다.저것이있어서든든하고마음이놓인다.저것을만지작거리며꿈을꾸는시간이나는좋다.그런시간들이쌓여나의여생이되기를바란다.저것이레몬나무가되지않아도좋다.이대로영원히씨앗으로남아도좋겠다는생각도든다.그러다어느새나는깨닫는다.어쩌면저씨앗이나의영몽(靈夢)일지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