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괜찮아요

여기는 괜찮아요

$15.00
Description
“그냥 거기 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야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서정의 향연으로 일구어낸 한국소설의 빛나는 이정표
섬세한 묘사 아래 꿈틀대는 역동적인 이야기의 힘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탄탄한 문학성을 널리 입증받아온 전성태가 9년 만에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를 펴내며 그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던 독자들을 찾아왔다. 한국어가 지닌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올곧게 계승하면서도 토속과 세속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풍성한 이야기를 통해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한층 무르익었다. 해학과 풍자적 요소 이면에서 민족의 아픔과 현대사의 비극을 느끼게 하는 특유의 서사적 기법이 여전히 시대와 공명하며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는 가운데, 간명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필치로 그려낸 시간의 궤적이 더욱 선연하게 다가오며 감동을 선사한다. 더불어 이번 소설집에는 세월호참사, 코로나19 등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 담겼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과 맞물려 핍진하고도 세밀한 서사로 재탄생했고 이는 독자의 기억과 어울려 깊은 공감을 만들어낸다. 전성태는 비극적 소재를 극대화된 신파로 풀어내기보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사건들이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라 ‘한때 우리가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무언가’임을 일깨운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늘한 세계 끝에 당도하는 따뜻한 시선, 척박한 현실을 비집고 올라오는 향토적인 생명력. 전성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뚜렷하고도 생생한 실감을 이제 우리는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또다른 진화’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저자

전성태

저자:전성태
1969년전남고흥에서태어나중앙대문예창작학과및동대학원을졸업했다.1994년『실천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소설집『두번의자화상』『늑대』『국경을넘는일』『매향(埋香)』,장편소설『여자이발사』,산문집『세상의큰형들』『기타등등의문학』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채만식문학상,오영수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등을수상했다.현재국립순천대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깡통
숲으로
가족버스
합석
상봉
조용한생활
이웃
섬으로가는엉뚱한여행
여기는괜찮아요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뜻밖의여정마다발견되는소설의재미
새로운만남이선사하는묵직한감동

『여기는괜찮아요』의작품속인물들은저마다예상치못한만남을경험한다.「상봉」의일흔넘은노인장시곤은천신만고끝에이산가족상봉장소인금강산에도착한다.태어나기도전에헤어져서얼굴조차모르는친동생을만나기위해서다.상봉에는그의아들과며느리도동행해장시곤을보필한다.우여곡절이후만남이성사되었는데,형제의외모는닮은듯안닮은듯아리송하다.이윽고양가의가족사가이어지는데……장시곤은상봉장소에서친동생을찾을수있을까.

그러나갑작스럽게인물의삶을침범하는사건들은오히려또다른인연이되어황망한마음에안부를건네기도한다.표제작「여기는괜찮아요」의주인공‘나’는대학교수다.코로나팬데믹이한창인때,‘나’는비대면강의를하면서섬에서혼자지내는수강생경진의글쓰기과제를첨삭한다.그러던중오래전청산도에서만났던공무원어르신오동순씨는기억에도없는책을돌려달라며연락해온다.두사람은‘나’와직접만나본바없거나,만났더라도기억에서잊힌사람들이다.그럼에도‘나’는암울해보이는경진의글로부터그의안위를걱정하고,오동순씨가시간을거슬러터무니없는부탁을해온사정을헤아리고자한다.‘나’가먼저건네는물음에,두사람은비로소“여기도괜찮아요”,“아즉여그는청청한게”라며화답한다(275면).

숱한엇갈림과상관없이현재를공유하는누군가와새로이연결되는감각은소중한사람의난자리를푼푼하게채워준다.내력을다이해할수는없어도그마음만은헤아릴수있다는듯새로운만남이곁에다가앉는모습은어리둥절하게유머러스하면서도개운하게따뜻하다.

흙과식물처럼어우러지는서늘함과유머
남아있다는공통감각으로부터먼저건네어보는안부

『여기는괜찮아요』의이곳저곳에는상실의상황이전제되어있다.그런데특이한점은상실이작품에비애를드리우지는않는다는것이다.첫작품인「깡통」은한몽사전편찬작업을하러한국에온네르귀의이야기다.여기서네르귀는몽골의다양한이야기를들려준다.몽골에서는태명을지어주지않는다거나,첫눈이오는날하늘을올려다보지않는다는말에한국연구원들은의문을표하면서도신비로운세계를접한양관심을가진다.어릴적네르귀의부모는돈을벌러한국으로왔고네르귀는몽골에할아버지와둘만남았는데,어느날여행자들이네르귀에게콜라다섯캔을선물한다.네르귀는이달고도톡쏘는맛에매혹되지만,할아버지는오랜시간이지나도썩지않는깡통에두려움을느끼고네르귀에게수백킬로미터나떨어진울란바토르에콜라캔을버리고오라고시킨다.이여정은상실,또다른만남과이어지며소설집전체의분위기를고조시킨다.

저자는계속해서떠난사람의자장속에여전히남아있는사람들에대하여술회한다.「숲으로」에서수아와의붓어머니금이는아버지의장례식을마치고집으로돌아온다.아버지의죽음은수아로하여금금이의생애를돌아보게만들고,금이가남모르게겪어온차별과수모가환상으로분하여수아를찾아온다.그런가하면「가족버스」는어머니의장례식을따라가며‘올바른’애도의방식에의문을던진다.중년의딸인‘나’는어머니에게드릴편지를써서낭독해달라는부탁을받고부담을느낀다.게다가고2딸지민은세월호참사를추모하기위해팽목항에들르고싶다며고집한다.반대하던‘나’는“무슨대단한걸하겠다는거아니었”다며,“잊지않았다고말해주고싶었”다는(87~88면)지민의말에수긍하고,자신도어머니에게보낼편지를완성하게된다.애도란거창한일이아니라그저애틋한마음을꺼내어놓는일이라는사실을포근하게도닥여주듯이보여주는작품이다.

여기에서나아가「조용한생활」은상실을온전히수용한뒤에야다음으로갈수있다는감각을극명히드러내는빼어난소설이다.준모는고등학생시절을지낸탐매마을에모교의선생이되어돌아오게된다.어느날,주인집허노인이여순사건희생자의학적을찾아달라고부탁해온다.마을에서언급조차금기시되던여순사건에특별법이제정되어비로소희생자를찾을수있게된시점,준모는허노인의부탁을이행하며유일한친구양태민과보낸어두웠던학창시절을되짚는다.그러면서탐매마을에“아직끝내지못한자신의시간이남아있는것을”깨닫는다.“기억으로구부러진골목을매일같이걸”으며두갈래의과거를직면하는사이에흐드러졌던홍매화는져내리고,비로소준모는하늘을올려다볼수있게된다(192면).

소설은분단,여순사건,세월호참사,코로나19등한국현대사의굵직한사건을불러낸다.국가적트라우마라고할만한사건에서대부분의사람들은당사자라기보다는주변인이다.그러나같은시간과사회를공유하기에그대부분의사람들은사건의기억에서자유롭지않다.그렇다면,그냥잊기어렵다는사실을인정해보면어떨까.우리는아직여기에남았기에먼저간사람들을정리하고기억할수있다.그들의이름을호명하고“잊지않았다고말”(「가족버스」)할수있다.서로멀리떨어져있더라도,시간이흐른지금도“우리는아직괜찮”(「여기는괜찮아요」)다고,서로의안부를묻고답할수있다.

전성태는소설집을펴내며어떤사람이“죽어사라”진뒤,“겨우그를보낸이야기나쓰고만다”고말한다(작가의말).그러나남은사람이아니라면,누군가를보낸이야기를다른누가할수있을까.그를알고그사건을아는사람,그럼에도아직살아있는사람만이그사람에대해서곱씹을수있지않을까.애도의직접적인대상이지상에존재하지않음에도이야기를계속해야만하는이유,계속해서기억을호명해야하는이유는단순하다.그들과같은시간을살았던우리에게도사건은여전히현현하기때문이다.우리가전성태의소설을읽어야하는이유도여기에있다.

“멀어질것을알고도다가가는마음으로그의소설을만납니다.비워두어선연한그리움,드러내지않아더욱짙은비애의그림자,윤슬처럼반짝이는아름다운한국어와정감어린방언,이야기자체가발산하는순수한즐거움으로가득한그의소설이이제당신에게묻고있어요.당신이계신그곳은어떤가요,괜찮은가요?”(추천사,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