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이근화 에세이)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이근화 에세이)

$15.00
Description
“상실과 비애 속에서도
내 안에 얼마간의 명랑함이 깃들기를”

숨 가쁜 일상 속 놓쳐버린 ‘나’를 찾아서
엄마로, 딸로, 생활인으로 살아낸 가슴 뭉클한 일상
지친 삶에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행복 소생기
삶의 비의에 지치지 않고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나가는 힘차고 또렷한 목소리의 시인 이근화가 신작 에세이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를 창비 에세이& 시리즈로 펴냈다. 이번 에세이에는 시 쓰며 아이들을 키우고 노모를 간병하며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과 시라는 두가지 땅에 동시에 발 디딘 채 매일을 일구어나가는 중견 시인의 풍부한 경험과 사유가 차분한 문장에 담겼다. 특히 비상계엄과 포스트코로나,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주제에서 발원한 고민과 성찰은 사회적 진동과 공명하며 동시대인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긴다. 동료 여성, 시민, 시인 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써내려가는 필치 역시 예리하고 유려하다.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드나들면서도 작가는 자신의 주변과 내면을 관찰하고 돌보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일상의 소박한 조각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해내는 명랑한 어조가 지친 마음에 활기를 보태듯 경쾌하다.

네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나’를 잊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토록 흔들리는 세상에서 시 쓰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총 3부로 구성된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에는 딸이자 엄마, 생활인이자 시인 이근화가 촘촘히 엮어나간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하루하루는 역시 녹록지 않다. 육아와 간병, 생업의 압박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자꾸 상실한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몸과 마음은 지쳐간다. 이렇듯 숨통을 조이는 일상에서 오는 단상과 상념, 하지만 삶을 견디게 하는 따듯한 이야기들이 남다른 필력으로 펼쳐지며 대번에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힘겨움을 감추지도 부풀리지도 않는다. 담백하게 고백하고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삶의 난감함 속에서도”“웃고 싶고 기어이 살고 싶”고 “괜찮은 엄마이고 싶고 무엇보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29면)는 작가. 그래서일까. 이 에세이는 보통의 날들 속에서 보석 같은 깨달음을 찾아가는 일상 기록이자 섬세한 마음 관찰기이면서, 건너간 시절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치는 애틋한 편지가 되기도 하고, 삶이라는 한편의 시에 대한 시론집으로도 읽힌다. 마침내 ‘나’를 이루는 것들의 의미를 탐색하고 오리무중이던 행복의 소식을 찾아 나서는 힘찬 발걸음으로 이어지기에, 이 에세이는 궁극적으로 행복 소생의 기록이라 하겠다.
저자

이근화

저자:이근화
시인이근화(李謹華)는2004년『현대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칸트의동물원』『우리들의진화』『차가운잠』『내가무엇을쓴다해도』『뜨거운입김으로구성된미래』『나의차가운발을덮어줘』,산문집『쓰면서이야기하는사람』『고독할권리』『아주작은인간들이말할때』등이있다.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오장환문학상,상화시인상,지훈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들어가며

1부‘나’를재빠르게훔치고속이는기술
솔방울접사
마음을부드럽게하는것
미치지않도록내가하는것들

2부명랑하게무심하게때로는절실하게
한겨울냉면의쨍한맛
내친구풋풋은집에없다
미련한자의입은멸망을부르고
무리바깥의어린양들

3부상처와고통의발명
숲이불타고있다
작은인간들
숲을헤엄치는물고기들
ChatGPT가알려준나의모든것

나가며

출판사 서평

“당장에내일의날씨를몰라도,삶은지속되는것이기에”
자신이가장낯설때비로소발견하는나를사랑하는법

1부‘‘나’를재빠르게훔치고속이는기술’에는“거칠고뾰족한말”이난무하는일상에서“순하고다정한말”(20면)을일깨우는따스한지혜와관록이담겼다.작가는12.3비상계엄과그이후이어진사회적파장속에갈곳잃은마음을산책길에서주운솔방울을통해들여다본다.“겹겹이페이스트리처럼속을알수없는”(16면)솔방울에귀기울이며우리앞에펼쳐진불안한미래를직시하는데,동시에자신의중심을잃지않고작은것들부터차근차근돌보는자세를가다듬는다.그렇기에어머니를간병하는“주삿바늘과소독약의세계”와아이들이있는“초콜릿과동화의세계”(21면)를오락가락하는생활의낙차속에서도시인은낙심하지않는다.“아이를낳고수유를하고,백일이지나면일을시작하고,돌이되어밥에적응하면어린이집에보내는방식으로네아이를키”(31면)워낸연륜과노련함이라해야할까.거칠어진마음을부드럽게해줄휴식과웃음을잊지말자고,종종샛길을걸으며가쁜호흡을가다듬자고조언한다.버석한마음에거창한사랑을강요하기보단사랑에자신만의정의를내린다.사랑은“곁을내어주고함께살아가는일.인내심을갖고기다려주는일.별다른기대없이받아들이는일”(40면)이라고.그렇게일상속비밀한사랑이드러나고있는그대로의‘나’자신이또렷해진다.

2부‘명랑하게무심하게때로는절실하게’에는나를사랑하고삶을사랑하는법을익혀나가는가슴뭉클한깨달음의글들이수록됐다.후배에게냉면한그릇의여유를알려주고길고양이들을헌신적으로돌보며딱한이웃을위해희생하는한선배시인이있다.그토록자신의것을내어주면서도자신이“참많은사람의선의를입고살고있다”(62면)고말하는그를보며우리는묻게된다.혹시고마움을너무쉽게잊어버리며살고있지않냐고.자신의운명을스스로개척해나간동료여성들의이야기또한감동적이다.데뷔당시세간의혹평을받았지만점차진정성있는음악으로사랑받게된미국의자매밴드섀그스와인도의도적왕으로파란만장한삶을살았던풀란데비,프랑스의반자본주의페미니즘운동에앞장선테레즈클레르의이야기를경유하며작가는여성으로서세상이함부로정한한계에도전하는강인한정신을맘속깊이새긴다.물론여성이기이전에한명의사람으로서가장극복하기힘든한계는바로실수투성이인자기자신이다.중요한자리에서사람이름을엉뚱하게읽은실수부터매번알면서도틀리는맞춤법,도무지입에붙지않는알파벳f와v의발음까지,말과가장가까운시인이기에그간의말실수가헤아릴수없다.중요한것은실수속에무엇이담겨있는지탐구하는자세다.그래야만본연의‘나’를마주할수있다.우리는모두“신경질적으로가지를뻗고,시름시름잎새를매단채버티고서있느라”(101면)언제나실수하며살아간다.“실수투성이인‘나’를다시세워보기위한안간힘과반복되는실패.그런미친사랑”(같은면)이삶이고또시라는작가의담담한정리가매번넘어지는우리를다시일으켜세운다.

3부‘상처와고통의발명’에서는추억속인물들을회상하며자기자신과대화하고,상실의빈자리를시로채워나가는이야기들이애틋하게펼쳐진다.우리는늘이별하며살아간다.닿지않는거리에있어서,주어진시간이다해버려서,너무많은비밀을공유해버려서,서로가가질수없는것을가져서,각자바쁜삶을사느라자연스럽게……소중한이들과멀어지고헤어지는이유는제각각이다.작가는다시볼수없는이들을떠올리며죽음에대해,애도에대해,그리움에대해,다시삶에대해질문한다.살기때문에상실은계속된다.그럼에도우리는또하루를살아야한다.목련꽃을닮은친구가투병끝에세상을떠났지만작가는오늘도아이들에게밥을해먹이고학교에서학생들을가르친다.잠시홀로애도할여유조차나지않는다.이거대한슬픔과밀려오는현실앞에서대체무엇을어떻게해야하는지,질문해도아무도답해주지못한다.하지만끊임없이질문하는것이바로시를쓰는일이기에작가는오늘도스스로질문한다.“우리가보내는시간이이토록귀하고,이토록허무해서시란숲이있고,그곳에서한그루나무에대해애써말하는것이아닐까.”(151면)읊조리는문장속에삶이시가되고시가삶이되는사유의정수가오롯하게차오른다.

마음의바닥부터천장까지,
당신만의방을가득채워줄다정한용기

동네해물탕집주인아저씨가애지중지키우는과실수들은작가에게큰행복이다.도심한복판에서싱그럽게자라난무화과,석류,감귤,수박은존재자체만으로생명력을불어넣어주는듯하다.작가는이렇듯일상에서주변을탐구하고사랑하기위해노력한다.“시란가까운곳에서출발하는것,아름답지만규정하기어려운것,애쓰고공들이는것,발견하고창조하는삶의편에서는것”(145면)이라는이문장에‘시’대신‘삶’을대입해읽어보자.시와삶이함께걸어가는작가의진심이기에문장을곱씹을수록삶에대한우리의태도를되돌아보게된다.상실과비애,고단한일은과거에있었고지금도있고미래에도반복되겠지만무기력하게슬픔에잠길수만은없다.잠시멈춰서숨을고르고이근화의작은이야기들에귀기울여보자.각박한삶에치여낯설어진‘나’자신을사랑하게될것이다.자취를감췄던행복의실마리가보이고내일을살아낼용기가모습을드러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