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최진영 소설집)

팽이 (최진영 소설집)

$18.00
Description
“어쨌든 내 꿈은 행복해지는 거다.”

차가운 세상에 맞서는 우리 시대의 뜨거운 문장
삶을 향한 진심을 담아낸 최진영 소설의 경이로운 출발지
* 창비에서는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엄선해 새로이 단장한 ‘리마스터판’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년 등단 이후 한겨레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강렬한 세계관과 섬세한 감수성을 동시에 증명해온 최진영의 첫번째 소설집 『팽이』(초판 창비 2014)를 새롭게 단장해 펴낸다. 2014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집은 폭력과 결핍, 침묵과 생존의 감각을 치열하게 붙들어온 작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초창기 작품다운 패기 넘치고 강렬한 문장이 특히 매력적이다. 이러한 독보적인 색채는 단순히 이목을 끄는 것을 넘어 주류 세계 밖 약자들의 삶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담아내겠다는 간절함에 가서 닿는다. 동세대 작가 가운데도 발군이라 할 수 있는 이 감각이야말로 최진영의 서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은 빛을 발하게 하는 주된 이유이다. 리마스터판에서는 문장과 작품 순서를 세심하게 다듬었지만, 서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전히 뜨겁고, 다시 만나도 강렬한 이 이야기들은 초판 출간 당시부터 이미 많은 수를 차지했던 “이 소설가와 함께 인생을 늙어갈 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젊은 독자들”(추천사, 전성태)에게 다시 한번 ‘소설의 힘’을 증명한다.

희망이란, 부서져도 다시 돌기 위해 쓰는 것
이름 없는 슬픔을 기억하는 열가지 방식

『팽이』에 실린 열편의 단편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각처럼 각각 한 세대가 직면한 삶의 그림자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본다.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처럼 그 시작조차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본질과 감정의 윤곽을 드러낸다.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결코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 채, 나름의
저자

최진영

저자:최진영
2006년『실천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팽이』『겨울방학』『일주일』『쓰게될것』,장편소설『당신옆을스쳐간그소녀의이름은』『끝나지않는노래』『원도』『구의증명』『해가지는곳으로』『이제야언니에게』『내가되는꿈』『단한사람』,짧은소설『비상문』『오로라』,산문집『어떤비밀』등이있다.이상문학상,만해문학상,백신애문학상,김용익소설문학상,신동엽문학상,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주단
돈가방
남편
엘리

첫사랑
팽이
새끼,자라다
월드빌401호
어디쯤

해설송종원
새로쓴작가의말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희망이란,부서져도다시돌기위해쓰는것
이름없는슬픔을기억하는열가지방식

『팽이』에실린열편의단편은세계곳곳에흩어져있는조각처럼각각한세대가직면한삶의그림자를각기다른방식으로들여다본다.이름을붙이기도전에이미존재했던것처럼그시작조차가늠할수없는슬픔의본질과감정의윤곽을드러낸다.소설의인물들은대부분자신이살아가는세상에결코온전히스며들지못한채,나름의방식으로삶을이어나가려애쓰는사람들이다.
표제작이자등단작인「팽이」는엄마가집을떠난뒤,어린오빠와함께남겨진소녀‘재이’가자신의세계를인식해가는이야기이다.떠날날을알수없고“아무균형도규칙도없는”곳이지만자신을둘러싼전부처럼느껴지기도했던작은방에서재이는조금씩성장한다.소설은한아이가무너짐없이세상을버텨내는모습을‘팽이’라는상징안에압축하며,간명하고정직한문장과놀라운몰입감으로삶의본질에가까이다가간다.
첫번째작품「주단」역시통제할수없는어둠과그늘을온전히껴안고성장한인물의심리를섬세하게그려낸다.쌍둥이형제중병약한동생‘단’과그의욕망,그리고죄책감과혐오사이에서고통받는형‘주’의심리가성인화자의회고형식으로펼쳐진다.작가는감당할수없는고통과그것이남긴상흔을섬세하게더듬으며,문학이슬픔을기억하는방식으로어떻게작동하는지를보여준다.청소년화자의시선으로펼쳐지는「첫사랑」은처음사랑에빠질때의몽글몽글한감정을서정적으로담아낸다.강렬한작품들사이에서유독여리고투명한감수성이돋보이는이단편은,어떤것으로부터도구속받지않은사랑의감정을통해삶을움직이는근원적인동력을환기한다.

아직은다헤아릴수없는감정과갈등으로가득찬세계속에서무언가를버티며살아가는이들의모습은,그자체로애틋하고서글픈빛을띤다.그러나삶은그애틋함을오래붙잡아두지않는다.시간이흐르고,혼자힘으로세상을살아내야할어른이된이들은더없이냉혹하고건조한현실과마주한다.「월드빌401호」와「창」은청년들이처한생존의현실을폭력적으로,혹은극단적으로보여준다.거대한폭력을경험한뒤집에서나오지못하게된「월드빌401호」의주인공은과거의학대자‘괴물’이감옥에들어가있음에도과거의공포에서벗어나지못한다.그에게유일한위안이던반려견조차끝내폭력의희생양이되는서사는,트라우마의반복을그야말로가혹하게그려낸다.
「창」의주인공은비정규직여성이다.성희롱과따돌림을견뎌온끝에,자신을향한모멸의언어들이적힌메신저대화를목격한그는충동적으로회사창문을부수고집으로돌아온다.우연히이웃커플의사랑의기척을접하고잠시설렘을느끼지만,곧그작은방조차자신에게안전하지않다는사실을자각하며절망에이른다.두작품은사회속개인이감당해야할폭력과고통의무게를적나라하게드러낸다.
알레고리적장치를통해청년세대가느끼는막막함을효과적으로드러낸「엘리」는모든것을내려놓고산속에서살아가는청년과코끼리의이야기이다.이소설은불안한내면과허망한행복의틈을날카롭게짚으며,‘꿈’조차생존의언어가되는삶의비의를드러낸다.‘코끼리’로상징되는환상과꿈은주인공의희망에대해망연한감정이들게만들다가도,끝내스스로를놓지않기로결심하는이태도를과연허무하고가벼운것으로여겨넘길수있을까하는물음에도착한다.독특한형식과설정이돋보이는또하나의작품「새끼,자라다」는사막에서태어난자라와펭귄이각자자신의진짜자리를상상하는이야기이다.소설은우화적설정을통해세계의잔혹한단면과그안에서꿈틀대는생의욕망을동시에포착해낸다.

상처위에삶을세우는이야기,
좁은방의침묵을깨고더밝은쪽으로나아가는첫발걸음

한편,가장가까운관계의민낯과인간으로부터오는미묘한불편함을예리하게그려낸작품은「돈가방」과「남편」이다.이두작품은속도감있는이야기구조위에정교하게쌓아올린인물의내면과현실의모순을통해,독자의깊은몰입과사유를이끌어낸다.「돈가방」은형제부부가3억원이든돈가방을발견하면서벌어지는이야기로,탐욕과죄책감,그사이의이기심을세밀하게그린다.‘약속’은결국배신으로,‘가족’은이기적선택으로무너진다.「남편」은남편이여고생강간살인사건의피의자로지목된아내의이야기로시작된다.안쓰러운존재였던남편은순식간에강력범죄자로낙인찍히고,아내는다니던마트에서도해고된다.가정의파괴와주변의낙인,경제적붕괴,신뢰의균열까지모든것이단번에무너진세계속에서,그럼에도남편을믿고자유치장을찾아간아내는‘억울하다’는남편의말보다자신의분노를먼저마주하게된다.가장친밀한관계에서터져나오는갈등과심리의균열을날카롭게포착한이소설들은,우리가어디서부터엉켜버렸는지도모른채살아가는세상속에서‘나’의자리를묻는다.
마지막작품「어디쯤」에서주인공은“어디쯤이냐”고반복하여받는질문을통해사회로부터조금씩밀려나는자신의모습을인지한다.애인도,가족도,사회도,그가어디에있는지를묻지만그의혼란을책임지지않는다.교류를시도해도좀처럼마음을내어주지않는스산한타인들,깊은밤과함께밀려오는알수없는공포속에서,결국주인공을기다리는것은“아직이냐”묻는아버지의질문뿐이다.이무심하고공허한물음은‘어쩌다여기까지와버렸는지’를되묻는독자의자리를남겨둔다.

일관된속도와긴장을유지하는최진영의문장들은작품전체에고유한결을형성하며,독자를강하게빠져들게만든다.나아가온통의문으로가득한세계의그림자를기어이끌어안도록이끈다.작가는우리시대의가장연약한영혼들을발견해내고,한세대를함께살아내는품이되기로결심한다.“현재를살아서과거라는그릇을만들어야미래의내가의미를채워넣을수있다”고믿으며,“희망을지속적으로가꾸고살리기위해”,그리고“쓰러져도팽이는팽이”(새로쓴작가의말)라는믿음을위해,그는계속해서쓴다.어두운시대가변하지않을것같고절망이계속되어도최진영의이야기가여전히어둠속에서뚜렷하게빛을발하며우리문학의나아갈길을제시하고있는이유이다.

저자의말

오래전에쓴글을다시읽으면당혹감에휩싸일수밖에없음을몇차례의경험으로알고있다.그때와생각이달라졌더라도고칠수없고지울수없다.지금의언어와사유로고치려는순간강한저항감이올라온다.과거의내가나를노려보며경고한다.고치겠다고?없애겠다고?네가감히나를?그럼무사할것같아?과거를손보는순간현재가무너질텐데?마음을다잡고원고를읽어야한다.팽팽한줄이느슨해지거나끊어지지않도록힘을조절해야한다.그줄위에바로내가서있기때문이다.
(…)
여전히과정중에있다.현재를살아서과거라는그릇을만들어야미래의내가그그릇에의미를채워넣을수있다고생각한다.누구의잘못도아니기에시간의흐름에기대야만회복되는상처도있음을받아들였다.당신들이말하는어떤희망이내게는거짓일수도있다.그러나내가애써찾아낸희망까지거짓으로둘순없다.그래서계속쓴다.희망을희망의자리에두기위해서.희망을지속적으로가꾸고살리기위해서.너무빨리돌아가는팽이는마치멈춰있는것처럼보인다.진짜멈추면쓰러질것이다.쓰러져도팽이는팽이다.쓰러져야다시돌릴수있다.다른방법으로줄을감아볼수있다.영원히쓰러지지않는팽이는거짓이다.
(…)
여기제첫소설집이있습니다.저는이렇게출발했어요.혼자라고생각한적이있습니다.여전히혼자라고느낄때가있고요.그리고그와같은순간에꺼내볼야광볼같은기억이있습니다.이제저에겐그것이있어요.여러분이건네준야광볼입니다.
2025년?여름
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