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다음은 파도

첨벙 다음은 파도

$13.00
Description
“여기 망가지고 짓이겨진 기쁜 우리가 있다”
완전히 새로운 포스트아포칼립스 시인의 등장
종말 너머로 도약하는 자유롭고 담대한 시작의 몸짓
202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오산하 시인의 첫 시집 『첨벙 다음은 파도』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아포칼립스를 내다보는 드넓은 시야로 재난의 세계와 ‘우리’를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심사평)으로 그려내 주목받은 시인은 등단 3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삶과 죽음, 생존과 종말의 이미지를 독창적인 상상력과 매혹적인 언어로 직조해냈다.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한 혼돈의 세계”를 냉철하게 응시하면서 “파국과 종말에 대한 상상 저편에 자리한 현재의 불안”(김영임, 해설)을 되비추는 기기묘묘한 시세계를 열어 보인다. 재난과 파멸의 장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만, 어두운 절망에 빠지지 않는 활달한 발걸음이 읽는 재미를 이끄는 동시에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진실한 태도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삶을 지배하는 죽음을 자각하는 동시에 죽음에서 이어진 삶을 찾아낼 수 있는 각별한 눈”(안도현, 추천사)으로 재난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불안의 징후를 그려내는 자유분방한 리듬이 전에 없던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건 하나의 생의 여러갈래”
가라앉더라도 다시 뛰어드는, 연대의 역설적 희망

시집은 엄습하는 재난의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풍경으로 거침없이 돌입한다.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시드볼트」)라는 질문은 파국 이후의 세계까지 바라보는 시인의 예민한 감각과 날카로운 예지력을 보여준다. 이때 시인이 그려내는 파국의 장면은 단순한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와 맞닿아 있으며, 요동치는 사회와 개인의 불안한 내면을 동시에 비춘다. 그러나 암울한 세계는 절망에 갇혀 있지 않다. “악몽 또한 꿈이어서 좋다”(「이후의 세계에서」)라거나 “굴러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시드볼트」)와 같은 담대한 발언을 통해 절망은 오히려 웃음과 유머로 전환된다. 이는 “유토피아적 기다림이나 구원의 약속”(해설)에 기대지 않고, ‘지금-여기’의 불안과 혼돈을 끝내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려는 다짐이자 용기이다.
죽음 이후의 장면들은 독특하게 변주된다. “바다에 빠진 잠수부를 구하기 위해/잠수부가 바다에 뛰어들었다”(「wave」)라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자기 자신조차 구할 수 없는 세계의 모순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은 그 속에서 언어와 의지의 지속을 발견하며, 종말을 목전에 두고도 삶에 대한 애착과 연민을 놓지 않는다. “첨벙 다음은 파도/더 거세졌을까”(「wave」)라는 질문은 절멸의 순간에도 언어로 세계를 붙잡으려는 시적 몸부림을 보여준다. 세상의 무너짐을 그리면서도 끝내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태도는 종말을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견뎌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는 담담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한편 시집 속 세계는 일상과 비일상이 끊임없이 겹쳐지는 낯선 장면과 이미지로 가득하다. “떨이로 나온 오이를 사서/씻고 깎아 소금에 재워두는” 일상의 공간은 “홰 위에서 아이가 울고/오이 냄새가 밴 손을 내밀어도/여전히 홰 위에 서 있는”(「홰와 나무」) 기묘한 풍경으로 변하고, “길게 늘어진 불행”의 “잿더미 위에서 밥을 먹는”(「거기에서 만나」) 그로테스크한 공간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은 일상을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상의 공간으로 뒤틀며 긴장과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귀신, 야광 인간, 신화 속의 새 호문조 같은 비인간적 존재들을 호출하면서 현실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하는데,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비현실적 장면으로 바뀌는 묘하고 낯선 순간 우리는 시대와 내면에 깔린 불안의 본질에 한층 가까워진다.

“이 말은 정해진 미래가 된다”
재난의 시대를 체화한 ‘지금-여기’의 사유

오산하의 시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면서도,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없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벌거벗지 않은 사랑 찾기」)는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보여주며, “맞잡고 걷자/사라지지 않을 불빛을 찾아 걷자” “서로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걷자”(「수목」)라는 구절에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배어 있다. 나아가 “여기 망가지고 짓이겨진 기쁜 우리가 있다”(「빈 병 줍기」)라는 선언은 끝내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전한다. 무너져가는 세계 속에서 절망을 웃음으로 바꾸고, 언어로 버티며, 연대를 모색하는 오산하의 시는 ‘지금-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가히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 묻는 엄중한 시대적 물음 앞에서 서성이는 모든 이에게, 자기만의 목소리를 확고히 보여준 오산하 시인의 첫 시집을 자신있게 권한다.
저자

오산하

저자:오산하
202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

수목
거기에서만나
시드볼트
겨울영원
야광인간과손맞잡고걷기
거짓나무소리
홰와나무
진입금지
Farewell
버려진이름전(展)
최신세
두꺼운책
이곳은영원히자란다
이전의목록
거북이는도착한다
wave
물길
폭풍우

제2부

불꽃놀이
구멍
올나이트스탠드쇼
공원의모양
굿것
종점과건축가와언덕
우리가잠깐죽었을때
돌수집가가문을두드렸고
오리는혼자서잘자랐다
공원으로의복원
옥수수를가진사람
김치스마일똠얌꿍
녹나무아래혀내밀고있는것은
예언이될때까지
밤없이도거짓말을해
빈병줍기

제3부

미로에초대되었습니다
발명
뮤지컬스타호문조
밤의물속낮의물속
영웅이된이후에
비실재
들개의자라지않는친구들
크리소카디움
추락을위한안내서
우리에게있는빈방
점점빠르게쓰는
돌아래놓인
벌거벗지않은사랑찾기
낙과
햇빛걷어내기
이후의세계에서

해설|김영임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이건하나의생의여러갈래”
가라앉더라도다시뛰어드는,연대의역설적희망

시집은엄습하는재난의구체적이고실감나는풍경으로거침없이돌입한다.“전쟁과전쟁이끝나고난뒤언제가가장끔찍할거같아”(「시드볼트」)라는질문은파국이후의세계까지바라보는시인의예민한감각과날카로운예지력을보여준다.이때시인이그려내는파국의장면은단순한허구적상상이아니라우리가살아가는현재와맞닿아있으며,요동치는사회와개인의불안한내면을동시에비춘다.그러나암울한세계는절망에갇혀있지않다.“악몽또한꿈이어서좋다”(「이후의세계에서」)라거나“굴러떨어지는법을배운나깔깔웃는다”(「시드볼트」)와같은담대한발언을통해절망은오히려웃음과유머로전환된다.이는“유토피아적기다림이나구원의약속”(해설)에기대지않고,‘지금-여기’의불안과혼돈을끝내외면하지않고온몸으로견디며살아가려는다짐이자용기이다.

죽음이후의장면들은독특하게변주된다.“바다에빠진잠수부를구하기위해/잠수부가바다에뛰어들었다”(「wave」)라는아이러니한장면은자기자신조차구할수없는세계의모순을적실하게보여준다.그러나시인은그속에서언어와의지의지속을발견하며,종말을목전에두고도삶에대한애착과연민을놓지않는다.“첨벙다음은파도/더거세졌을까”(「wave」)라는질문은절멸의순간에도언어로세계를붙잡으려는시적몸부림을보여준다.세상의무너짐을그리면서도끝내언어를포기하지않는시인의태도는종말을두려움의상징이아니라견뎌야할현실로받아들이는담담한인식과맞닿아있다.

한편시집속세계는일상과비일상이끊임없이겹쳐지는낯선장면과이미지로가득하다.“떨이로나온오이를사서/씻고깎아소금에재워두는”일상의공간은“홰위에서아이가울고/오이냄새가밴손을내밀어도/여전히홰위에서있는”(「홰와나무」)기묘한풍경으로변하고,“길게늘어진불행”의“잿더미위에서밥을먹는”(「거기에서만나」)그로테스크한공간으로전환되기도한다.이처럼시인은일상을위태롭고불안정한상상의공간으로뒤틀며긴장과공포의그림자를드리운다.귀신,야광인간,신화속의새호문조같은비인간적존재들을호출하면서현실이얼마나쉽게뒤집힐수있는지보여주기도하는데,일상의익숙한풍경이비현실적장면으로바뀌는묘하고낯선순간우리는시대와내면에깔린불안의본질에한층가까워진다.

“이말은정해진미래가된다”
재난의시대를체화한‘지금-여기’의사유

오산하의시는종말이후의세계를상상하면서도,지금이곳에서살아가는우리의불안과희망을동시에드러낸다.“없음에서시작되는이야기”(「벌거벗지않은사랑찾기」)는삶에대한끈질긴애착을보여주며,“맞잡고걷자/사라지지않을불빛을찾아걷자”“서로를바깥으로꺼내면서걷자”(「수목」)라는구절에는따뜻한연대의마음이배어있다.나아가“여기망가지고짓이겨진기쁜우리가있다”(「빈병줍기」)라는선언은끝내희망을놓지않으려는단호한의지를전한다.무너져가는세계속에서절망을웃음으로바꾸고,언어로버티며,연대를모색하는오산하의시는‘지금-여기’를사는우리에게가히신선한충격과깨달음으로다가온다.인류가스스로를구원할수있을지묻는엄중한시대적물음앞에서서성이는모든이에게,자기만의목소리를확고히보여준오산하시인의첫시집을자신있게권한다.

시인의말

쑥대밭진창뒤죽박죽의세상에서
초를켠다
영혼은뼈와살이란등피를입고
더밝게빛난다
그러니말이야우리는
오래살아서더러워질것이다
꿈틀거리며와락뒤집어버릴것이다
초가녹으면새로운초를만들기
망가지고짓이겨져도기쁘게,기쁘게

2025년여름
오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