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소설집 | 반양장)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소설집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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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물속에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는 법,
무른 몸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법”

담백한 이야기의 감칠맛 속에 깃든 인생의 참맛
한국문학의 싱그러운 새바람, 김유나 첫 소설집
“화자의 갈팡질팡하는 마음 곁에 나란히 서서 그 마음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독특한 힘”(심사평)을 지닌 작가로 주목받으며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김유나의 첫번째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이 출간되었다. 정교한 묘사와 감정의 축적, 감칠맛 나는 유머가 버무려진 일곱편의 수록작에 제각각 깊이 익은 인생의 참맛을 담았다. 인물의 다층적인 내면과 핍진한 서사를 균형있게 다룬 첫 장편소설 『내일의 엔딩』에서 보여준 솜씨가 더욱 무르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와 인물이 “서로 같이 고군분투하는”(추천사, 윤성희) 진심이 자상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고달픈 인생을 버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는다.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보통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인생의 쓴맛을 맛깔나게 묘사하며 세계의 담백한 진리를 담았다. 작중 인물들은 시련을 맞이해 사기와 배신, 폭로와 도주, 침묵과 공모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며 세상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다. 하지만 김유나는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인다면 삶 역시 우리를 속이기 시작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또렷하게 직시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해피엔드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더욱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은 뒤 독자들에게 묘한 개운함과 깊은 여운이 남는 이유는, 김유나가 ‘더 나은 삶’을 애써 꾸며내기보다 ‘덜 거짓된 삶’을 향한 한 걸음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이다. 진실 너머의 모호한 희망을 약속하는 대신, 나답게 살며 한 걸음이라도 내 호흡으로 걸어가는 것, 그 작고 더딘 움직임이 삶의 가장 단단한 본질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유나는 인물의 감정과 선택이 현실의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한다.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돌봄, 기후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인물의 심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촘촘히 얽힌다. 이야기를 술술 읽히게 만들면서, 독자들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의 소용돌이로 데려간다.
수상내역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름 없는 마음」 수록
저자

김유나

2020년「이름없는마음」으로창비신인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내일의엔딩』등이있다.

목차

이름없는마음
랫풀다운
너하는그일
으름씨뱉기
부부생활
물이가는곳
내가그밤에대해말하자면

해설|한영인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거짓으로점철된삶의진창을건너
가장솔직한나에게로내딛는걸음

열심히살아도누추해지는게인생일까.김유나의소설속인물들은이질문앞에서늘어정쩡한자세로서있다.잘살아보겠다는의지로속고속이며하루하루를견뎌낸다.그러나거짓의안전한껍질안에오래머무르지못한다.꾸며낸말과선택들이오히려진실을또렷하게드러내는순간,그들은비로소자신이어디에있는지자각한다.표제작「내가그밤에대해말하자면」은도박에빠진엄마와단둘이시골산자락의외딴집에이사온열살아이의이야기다.소설은배신과기만,탐욕과무절제로가득한어른의세계를아이의시선으로밀도있게포착한다.때묻지않은순수함이사랑스러운한편그와대비되는어른들의추한비밀이넘실거리고,마침내아이가‘배신’이라는단어를이해하게되었을때,진실이만천하에드러난다.아이가필사적인몸짓으로써폭로를감행할때내뱉는말이자책의제목이기도한“믿을수있을만큼의진실”에는숨기려해도결국드러나는욕망과진실,그리고그것을각자의조건만큼감당해야하는삶의한계와가능성이응축되어있다.
창비신인소설상수상작「이름없는마음」은가족이라는이름으로가장오래,가장깊게서로를버텨온남매의이야기다.세살터울의동생현권은누나인‘나’에게항상짐이었다.심한약시와학습부진,틱과사회성결여까지,약점투성이인동생을어린시절부터지금까지‘나’가보살펴야했다.결혼이후동생을떼어내려했으나차마그러지못하며‘남편’으로상징되는외부세계의압력을감당하는‘나’의분투는,결국남매모두‘미안함’과‘지겨움’사이를오가며“알수없는마음”을품고살아왔다는깨달음에이른다.폭발하는갈등끝에화해도재회도남지않는결말부에서어렴풋이드러나는진심은도저히한마디로정의할수없는‘가족’이라는서글픈세계를애틋하게그려낸다.
「랫풀다운」과「물이가는곳」은비슷한위기에처했지만각각“물렁한”사람과독한사람이된두인물의모습을그린다.「랫풀다운」의석용은역도선수로활동하다가부상으로은퇴한후헬스트레이너가되었다.무거운바벨을들어올리듯자신의자리에서묵묵히성실하게살아온석용은친한형이자헬스장대표인승우형에게뒤통수를맞는다.투자명목으로석용이빌려준돈과헬스장고객들선납금까지들고잠적해버린승우형을찾기위해그는마음을모질게먹고추적에나선다.마침내승우형의본가인제주도까지찾아가지만,석용은홀로초라하게지내는승우형의노모에게아무말도하지못한채되레친절을베풀어주고뒤돌아선다.끝내모질지못한자신의물렁함을받아들이고비로소삶의다른방향을모색하기시작한다.
한편「물이가는곳」의주인공김기왕은지독한보험왕이다.법인보험을팔기위해기업대표들을상대하는그에게특별한필승전략이있기때문이다.바로탐정사무소와연계해불륜을저지르는대표를알아내고,그들에게불륜사실을폭로하겠다고협박해보험을판매하는방법이다.김기왕은한때잘못된투자로막대한빚을졌고,운영하던유도장을비롯한전재산을날려아내와이혼하고자식들과도떨어져산다.아이들앞에서떳떳한아버지가되기위해재기를꿈꾸며보험판매에열을올리는데,예상치못한인물이난입해없다시피하던김기왕의양심을찌른다.기상이변탓에녹아내리는빙하와기이할정도로땀을흘려대는김기왕의모습이복선처럼포개지며작품은시종위태롭게출렁인다.숱한위기와경고에도어긋난행동을반성하기는커녕더욱강한자기확신으로밀고나가는김기왕이져야할책임은,최악의방향으로튀어딸하윤이의탈선으로불붙는다.
고된현실을벗어나기위해발버둥치지만냉혹한진심앞에서곤두박질하는인물들이선뜩한실감을주는작품도있다.「너하는그일」의태은은회계사시험2년,세무사시험5년,도합7년이넘도록수험생활중이다.엄마의용돈과고된물류센터알바로생활하며악착같이공부했으나아슬아슬한가채점결과에머리만쥐어뜯던중새아버지와싸우고쫓겨난엄마가찾아와갑작스런동거생활이이어진다.아빠에게평생매맞고살더니또자신을함부로대하는남자와재혼한엄마를도저히이해할수는없지만,엄마와의따뜻한일상이태은은내심좋다.어느날엄마가“너하는그일”해보겠다며물류창고알바에동행하는데둘은하필지옥같은중량품층으로배정되고,아등바등하다결국개구멍으로도망치기에이른다.작품은꿈과현실,가족과폭력,모녀관계가얽힌복잡한양상을물류센터의압도적인풍경속에촘촘하게새기며상승욕구과추락하는현실사이에서반복되는삶의궤적을생생하게보여준다.탈출이곧바로또다른추락으로이어진다는사실을알면서도,도망은도망일뿐이란것을알면서도,인물들은다시도망치듯움직일수밖에없다.
‘소중한사람을위해서’라는명분이변주되고왜곡된끝에숨겨둔진실을비추는작품들도흥미롭다.「으름씨뱉기」에서채림과현우부부는영재인딸지수를위해투자이민을결심한다.자금확보를위해채림의엄마에게돈을빌리러찾아가고,채림의외조부모성묘를다녀오라는특명이떨어진다.7억3천짜리벌초에나선셋은심경이복잡해진다.조상님돈으로지수를방주에태워미래없는한국땅을떠나려는채림과현우에게지수는돌직구를던진다.과연방주에탈자격이있는사람은누구일지,이가족에게지금정말필요한게무엇일지.코로나팬데믹으로직격탄을맞자은행털이를시도하는학원원장구영수와요양보호사오진희커플이야기인「부부생활」은그누구보다딴판인두인물이한마음한뜻이되기까지,알쏭달쏭한로맨스가펼쳐진다.김유나는이충동적인서사속에서누구도도덕적우위에서지못하도록만든다.질문은남는다.강도행각에앞서출사표처럼내민혼인신고서와가짜칼을든그들의복수의끝엔뭐가있을지,대체사랑이란무엇인지,애초에지키려했던것이사랑인지,아니면스스로에대한변명인지.

이름붙여주고싶은무수한다정과웃음의이야기

“개인에게패배를강요하는세계를힘겹게버티는주체의운명을유머로감싸”(해설,한영인)는김유나의이야기는두말할것없이재밌다.그것도건강하게재밌다.자극적인소재나빼어난인물같은첨가제없이다채로운웃음을선사한다.만담하듯주고받는인물들의대화는생동감넘치게웃기고,심각한상황에서허를찌르듯태평한모습이웃음을자아내고,인물의과장된자의식은헛웃음이나올지경이며,아이의시야로천박한어른의세계를엿보며씁쓸한미소까지새어나온다.온갖종류의웃음을선사할뿐아니라김유나는이웃음을쉽게휘발시키지않는다.장면과장면을거쳐웃음은폭소가되고분노나슬픔으로변주되며더서글퍼지기도,스릴과반전으로몰아치며충격이극대화되기도한다.이쯤되면김유나는‘재미’라는소설의본원에서출발해‘감동’이라는본명으로그누구보다매끄럽게독자를모시는뱃사공이라고해야할까.인생이내게늘웃어주지만은않는다는자명한진실.소설속인물의얼굴에인생의다양한표정을꾹꾹눌러담아보여주는이다정한작가에게독자들은보여주고싶을것이다.책한권을맛있게읽고난뒤에떠오른만족스러운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