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꿈들에대해이야기해줄수도있을것이다
그것들이내모든밤과어둠속에함께있었다고”
주영하의작품속에서그려지는세계는무르고약하다.표제작「굴과모래」를비롯한일곱편의작품에서인물들은저마다비극을겪는다.「굴과모래」는굴이사라지기시작한세계적재난이한해안도시의노부부가운영하는굴요리식당에당도한순간을그린다.「새해」는시한부인생을선고받은남편과함께도피하듯여행을떠난‘나영’의시간을뒤따른다.「햇살에게」는실종된아이의흔적을좇는어느성당신부의죄책감을,「계속되는이야기」는32년전히말라야에서잃어버린연인의부재를품은‘제나’의여정을따라간다.소중한이가사라지고어둠이들이닥친뒤에야비로소이야기가시작될수있다는듯,작품들은하나같이돌이킬수없는사건이이미벌어져버린자리에서출발한다.
주영하의인물들은방금막잠에서깨어난사람처럼어리둥절한모습으로비극앞에선다.그들은벌어진일을곧바로이해하지못하고,두려움과아픔앞에서망설이고외면한다.지나간사건의실체는선형적으로또렷하게드러나지않는다.굴속의모래,빛바랜사진,실종된아이의노란구두한짝,활주로의갈라진아스팔트틈과같은사물과풍경이오랜기억의파편을끌어와두서없이흩뿌려진다.이때비극은설명되어해소되는것이아니라,촉감과기척의형태로다시돌아와인물들의내면을흔든다.주영하의소설은사건의원인이나진실이아닌,그것이삶을통과한뒤에반복되는악몽같은잔상들을붙든다.
“예전엔먼곳으로떠나는이야기를좋아했다고
이제는집으로돌아가는이야기를좋아한다고”
섬세한문장으로길어올린단단한사랑
주영하의작품속인물들은번번이서로를구해내지못한다.아내를죽음으로밀어넣는남편,아끼던이의곁을홀연히떠난한때의동료,아이를홀로두고떠난엄마,손녀를지키지못한할머니,실종된아이를두고뒤늦은죄책감속에남겨진사람들까지.이들은무책임하고무능력하며때로는너무늦는다.그러나주영하의작품은그들을단죄하거나증오로밀어내지않는다.오히려그들을이해하고자애쓰는,끝내이해하지못해고통에잠긴인물들을작품의전면에내세워실패한이들의흔적을진득하게따라간다.작가는실패의원인이나죄의대가를소상히밝히지않는다.다만사건의진상이온전히드러나지않은순간에도그들을사랑할수있는지,그럼으로써몰이해에휩싸인괴로운감정에서벗어나스스로를구원할수있는지를묻는다.
이러한문제의식은개별작품들속에서더욱선명해진다.「아쿠아리움」의어린화자는실직한어머니와함께보낸결코유쾌하지못했던하루의기억을더듬고,「얌은어디에나」의식당주인은버려진공간을떠돌던소년‘얌’이사라진후그의흔적을끝내놓지못한다.「아이오와」의화자는옥수수밭농가에서한시절을공유했던이들을떠올리며서로의곁을지키지못한이유를곱씹는다.사라지거나떠나간존재와함께했던시절을끊임없이되돌아보며그곁에오래머무는태도,설명되지않는빈자리에서이야기를이어나가는회고의방식은이소설집의토대를이루는윤리이자태도다.
아주나쁜세계에서도끝내우리를버티게할,
지금여기에필요한새로운상상력
『굴과모래』는멸망을향해기울어가는세계에서재난을경고하거나불가항력의공포를과장하는데머물지않는다.이소설집이끝내붙드는것은파국그자체가아니라,파국이후에도끝나지않는돌아봄의시간이다.「굴과모래」의노부부는“우린그때죽었어”(34면)라는말앞에서야오래전자신들이지나온죽음의순간을다시마주하고,「계속되는이야기」의제나는“왜한사람은죽고한사람은살았을까”라는질문을품은채인천행비행기에오른다.질문에는끝내답이없지만,“어떤순간을이해하기위해전생애가필요하다면”(254면)그긴시간끝에야비로소도착하는깨달음또한있을것이다.주영하의소설은바로그늦은깨달음의시간을따라가며잊히고사라진존재들이어떻게다시현재의감각속으로돌아오는지를보여준다.
그러므로이소설집이향하는곳은절망의끝이아니다.「계속되는이야기」의마지막에서제나는“진짜삶에서는돌아갈집이쉽게사라지고,한번잃은걸손상없이돌려받는일은없”(255면)다고말한다.그럼에도주영하의인물들은떠나간사람을기억하고,설명되지않은사건을다시이야기하며,늦게나마누군가에게닿기위해길을나선다.결국『굴과모래』는구원의실패를사랑의종말로그리는대신,실패이후에비로소드러나는사랑의조건과형식을탐색하는소설집이다.무너진세계에서도끝끝내희망을향하는단단한불빛처럼,소설집에수록된일곱편의작품은상실이후에도계속되는삶을선명하게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