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16.00
저자

편혜영,최진영,정한아,정보라,예소연

저자:편혜영
미쳤다는말을들어본적이거의없다.그걸영별로라고여기고있다.대개안전했고자주지루했다.몰(沒)과중독,광기를선망하지만몰입과심취보다냉담을,빠져들기보다헤어나오기를잘한다.미치거나돌아버릴것같은순간을기다리고있다고생각해왔는데,어쩌면그건나의오랜거짓말인지도모르겠다.

저자:최진영
하루대여섯시간글을쓴다.글쓸때는고요하고차갑게미친상태를유지하려고노력한다.그외시간은헐겁고느슨하게예민하다.타인을만나고집에돌아오면내가했던말과행동을떠올리며반드시잘못을찾아내는데,그럴때는내가나에게미친것같다.잠잘때가장나답다고생각한다.

저자:정한아
두아이와고양이의책임자.십대시절열렬한문학소녀였다.주말마다작가사인회에쫓아다녔던선배님들을이제는실제로마주할수있으니직업만족도가꽤높은편이다.아무래도쇼핑중독인것같아서얼마전휴대폰의쇼핑앱을전부삭제했다.그후웹검색으로쇼핑을이어가고있다.요즘플라잉요가에빠져있다.무거운몸으로공중을나는법을연구중이다.

저자:정보라
글이잘써지거나써지지않을때설거지를하거나레인지청소를하거나귀신얘기를구상하거나데모를한다.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도근로기준법의보호를받아야한다.데모만이살길이다.열심히데모하여비정규직철폐하자.투쟁.

저자:예소연
이따금내가미친사람에가깝다는생각을한다.완전히미쳤다고는할수없는데그러지않다고도말할수없다고.그러면조금낙담하다결코미치지않은여자는세상에없다는생각을하게된다.그런뒤에나아진마음으로할일을한다.

목차

편혜영―재배의경제/작가노트
최진영―듣고있어/작가노트
정한아―여자들의산/작가노트
정보라―부서지는여자/작가노트
예소연―목숨과숨통/작가노트

출판사 서평

여자들의불안과분노,
그리고펄펄살아숨쉬는욕망을읽는다

인간의내밀한마음과일상의폭력을강렬한이미지로구현해온편혜영이「재배의경제」로소설집의문을연다.옹벽에서굴러떨어져크게다친‘나’에게누나‘석미’는움직이지않는노동을제안한다.하반신마비를가장해장애판정을받고보험금을타내려면휠체어에앉아아무것도하지도,느끼지도말아야한다는것이다.뿌린대로거두는것만큼“비경제적인건없다”고주장하는석미는보험조사관의눈을속이기위해그녀만의돌봄노동을수행한다.시간이지날수록점점기괴해지는남매의노동이신체마저재화가되어버린자본주의시장에서장애와빈곤,젠더와돌봄에대한근본적인질문을던지게만든다.
섬세한감수성과치열한세계관으로인물들의목소리를생생하게전하는최진영은「듣고있어」에서살아남는일자체가고통이되어버린‘금옥’의이야기를통해우리가과연타인을진정으로이해할수있는지질문한다.금옥은본부장의괴롭힘을견디다못해회사를그만두기로결심하며엄마‘애정’에게메시지를남기고,딸의연락을받은애정은‘화목한가정’이라는환상을좇아온지난세월을돌이켜본다.남편과가족과사회에끝없이배신당하고도다시속아넘어가는자신의멍청함을탓하면서도하루만참으라는말로딸을애써달래려하지만,금옥은그말에더이상버틸수없다는사실을확인할뿐이다.

정한아의「여자들의산」은오래된낡은기도원을배경으로광기에휩싸인사람들의뒤틀린믿음을조명한다.‘나’는예상치못한사고로운영하던학원을폐업하고어린시절가족들과함께지내던금식기도원을찾는다.기도원과학원이라는전혀다른두공간에서벌어지는사건들이어쩐지닮아보이는건왜일까?기적같은치유,희생을전제한돌봄을갈구하며간절하게기도를올리는사람들사이에서‘나’는문득자신을둘러싼상황의기이함을깨닫는다.매력적인서사로상실이지나간자리를예리하게포착하는정한아특유의서술이‘어머니의마음’을가장해온‘나’의부조리를소름끼치도록선명히보여준다.

삶의모순을장르적상상력으로묘파하며전세계독자를사로잡은정보라는「부서지는여자」에서여성에게가해지는억압을조각조각깨지는장면묘사와인물의인식으로구현한다.장례식장접객실도우미와청소업체일을하며하루하루먹고사는‘나’에게단골손님이생긴다.월세,공과금,휴대폰요금과전남편이데려간아이양육비까지마련해야하는상황이라매주1회꼬박꼬박청소를요청하는‘사모님’을만나게된것은반가운일이다.어느날그집바닥에떨어진정체불명의하얗고둥근것을발견하고,그이후로모든일상이무너지기시작하기전까지는분명그랬다.

마지막으로예소연의「목숨과숨통」은소년원에들어간아들‘윤범’의행적을이해해보기위해애쓰는엄마의분투를그린다.‘나’는제뱃속에서나온반듯한아이가범죄를저질렀다는사실을도무지믿을수없었고,고민끝에아들의휴대폰을켠다.아들의메신저를통해알게된‘한나’를만나면이상황을더욱자세히파악할수있으리라생각했지만,한나와함께하는하룻밤동안불길한일이연이어벌어진다.가족이라는불완전한결속이헐거워지는순간긴장을자극하는묘한상상력이성큼자라나며일상의감각을뒤흔든다.시대의감수성을증언하며감정의민낯을유려하게그려내는예소연의문장이빛을발한다.

‘모두다미쳤고아무도미치지않았다’
관념을뒤엎는쾌감으로찬란히빛나는이야기

20세기영국문학의지표를뒤흔든작가이자신경질환으로평생을고통받은버지니아울프는“그시절,위대한재능을타고난여자라면누구라도틀림없이미치고말았을것이다”라는말을남겼다.100여년전의선언이21세기를살아가는우리에게여전히유효하게느껴지는까닭은여성의언어,역사,정치,문학이여전히사회적억압에분투하며답을찾아나가는중이기때문이리라.우리시대여성들은어쩌면끊임없는차별과배제와혐오속에서분노와광기를에너지삼아생존하고있는지도모른다.
『아무도미치지않았다』는버지니아울프의선언을이어받아문학적상상력으로새로운미래를그려보는책이다.오늘날여성이느끼는정동을다각도로조명하는동시에성별위에덧씌워진프레임을걷어차는다섯편의이야기가낡은관념을화끈하게전복한다.섬뜩할만큼아름다운광기를지닌소설속인물들이마침내가장생생하고찬란히살아있는여성들을증언해낸다.

저자의말

삶으로부터도망치려다주저앉고마는여자들,인생에별로바란게없는데그마저도주어지지않은여자들이야기는언제나내가겪는가장슬픈이야기이다.―편혜영

고요하고평온한사랑사이에는그처럼시끄러운사랑도있다.쓰지못한목소리가무성하다.여전히무언가들끓고있다.―최진영

우리가함께도망칠만한장소를그리고싶었다.그것이위로였는지,고백이었는지,아니면또다른회피였는지아직은알수없다.―정한아

억압이사람의마음을부순다.그런세상이여자를미치게만든다.―정보라

그렇게우리는함께미궁을탐색하며어떤한줄기빛을찾기위해애쓰는것이다.그건상상하기에꽤나기분좋은일이었다.―예소연

책속에서

누나는교훈을얻었다.돈을벌기위해서는시간을투자해야한다는것을.시간만투자해서는아무의미가없다는사실도배웠다.팔과다리같은신체일부를대가로내놓아야했다.
―편혜영「재배의경제」(13면)

어째서이렇게까지해야하느냐고물으니누나는오히려왜그런질문을하느냐는듯나를훑어봤다.스스로의진실에속은나머지정말로내가움직일수없게되었다고믿고싶은모양이었다.
―편혜영「재배의경제」(25면)

나를구원하기위해죄인을자처했던내가할수있는말은하나뿐이었다.
너는결코이해할수없을거야.
―최진영「듣고있어」(63면)

꼭그렇게까지했어야했니.
뒤늦은대답을중얼거린다.
그질문을받아야하는사람은내가아니야.
―최진영「듣고있어」(64면)

여자는정말그렇게될거라고믿고있었다.매순간그믿음이자신을떠나지않게단속하고있었다.믿음을잃는순간모든게끝장이라는걸알고있었다.
―정한아「여자들의산」(94면)

그녀는덜컥겁에질렸다.자신이미쳤다는사실을들킬수는없었다.
하지만이제어떻게해야하지?
그녀는알수없었다.
아무것도알수없었다.
―정보라「부서지는여자」(144~45면)

같이살아놓고도나는이제걔가어떤앤지전혀모르겠다는거.그게나를미치게했다.그래서알아내고싶었다.
―예소연「목숨과숨통」(161면)

거대토끼미끄럼틀을타는아이들의풍요로운웃음소리를들으며우리는서로에게사과했지만그사과가정확하게무엇을향한건지도알지못했다.그런데그냥했다.응당가족이라면미안해하고괜찮아해야했으니까.
―예소연「목숨과숨통」(1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