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조선후기,특히18세기이후는상품이나화폐경제의발전에따라도시가형성되고,양반사족이몰락하거나중인계급,평민들이신흥부자로대두하는등전통적인가치관으로여겨지던것들이크게동요하는시기이다.이에따라양반과평민사이의갈등,남녀간의갈등,기존규범과의모순등이당대사람들사이에서중대한문제로제기된다.
‘한문단편’은1970년대중반처음으로학계에등장한용어로,야담과「허생전」같은한문소설의중간쯤이라고보는것이일반적이다.한문소설처럼완벽한소설적형식을갖추지는못했지만,야담...
조선후기,특히18세기이후는상품이나화폐경제의발전에따라도시가형성되고,양반사족이몰락하거나중인계급,평민들이신흥부자로대두하는등전통적인가치관으로여겨지던것들이크게동요하는시기이다.이에따라양반과평민사이의갈등,남녀간의갈등,기존규범과의모순등이당대사람들사이에서중대한문제로제기된다.
‘한문단편’은1970년대중반처음으로학계에등장한용어로,야담과「허생전」같은한문소설의중간쯤이라고보는것이일반적이다.한문소설처럼완벽한소설적형식을갖추지는못했지만,야담에비해소재나그것을다루는솜씨가훨씬더사실적이었다.
따라서한문단편은조선시대변화하는사회상을과감하게,사실적으로다룰수있는장점이있었다.물론어른들,특히양반사대부들이심심풀이오락으로즐기는독서물이긴했지만,17세기이후전국을다니며말로이야기를전해주었던이야기꾼의역할로이후에는단순한오락물에그치지않고당시의사회현실을상당히사실적으로보여주게된다.
한문단편의소재는매우다양한데,소설가이혜숙씨는그중에서현실에서는존재하지않는도깨비나괴물등을소재로한한문단편아홉편을골라이책에담았다.이를테면조선시대환타지라고도볼수있는데,무섭고재미있고신기한이야기들을통해서당시생활상은물론,옛사람들의상상력을엿볼수있다.
이씨리즈첫권인『토끼전』에서와같이재치와해학이넘치는이혜숙의묘사는읽는맛을더해줄것이며,각단편의캐릭터들을잘살려마치조선시대인물화를보는것처럼당시사람들의모습을해학적으로그려놓은정경심의그림또한내용과잘어우러진다.
「남대문안술집」에는두사람의술장수가등장하는데,한사람은장사첫날외상으로술을먹은손님을잘대접해서부자가되고,다른사람은이사람을야박하게대해서결국엔망하고만다.그런데이손님이꼭도깨비같아서마치도깨비를잘대접해서부자가된것처럼읽히기도한다.어떤손님이든푸대접을하면장사가잘될리없다는교훈은예나지금이나마찬가지인가보다.
조선의역관이중국에가던중중국의시골마을에서하룻밤을머물면서겪게되는이야기인「동전구멍」에는한술객이등장한다.술객은도술을부려눈위에꽃을피우기도하고,동전구멍을수레바퀴만하게커지게만들기도하는데,돈욕심이많은역관은술객의경고에도불구하고동전구멍안을들여다보다가이구멍에허리가끼이고만다.한밤중에펼쳐지는술객의도술은요즘의판타지동화못지않은신기함과독특함을보여준다.
모습은보이지않는데목소리만들리는도깨비가정말있을까?「도깨비손님」에는이런목소리도깨비가등장한다.이도깨비는식구들먹을양식도부족한가난한선비의집에나타나밥달라,돈달라며괴롭힌다.양반으로서체면을지키려면손님을박대해서는안되기에주인공심생은밥을해바치기도하고,친척의도움을받아고향으로갈노잣돈까지챙겨준다.하지만다시마누라도깨비가나타나집안사람들을놀라게한다는,한편의꽁뜨처럼유머가넘치는이야기다.
사령의심부름꾼인가난한염동이는어떻게하면식구들배를곯리지않게할수있을까늘궁리한다.그러던어느술취한날밤에만나게된도깨비를잘사귀어서부자가되지만,끝내는그들을배신할수밖에없었다.「염동이」에는도깨비들이밤에잔치를벌이던장소로‘오간수’‘영도교’등이나오는데,이곳은요즘복원공사가시작된청계천부근으로,당시청계천이백성들에게얼마나친근한곳이었는지잘알수있다.
「죽었다살아난가난뱅이」는부자친구들틈에끼여놀림만받던가난한김영감이단한번의기회로자신을놀려먹던부자친구들을멋지게한방먹이고많은돈까지받게된다는이야기다.이후김영감은시골로내려가부지런히농사를지어부자가된다.
「박포장」은다른역관수행원들과는달리가난해서빈손으로중국에가다가풍랑을만나일행에게따돌림을당하고혼자무인도에남겨지는박포장의이야기다.하지만전화위복으로박포장은섬에사는구렁이괴물을죽이고괴물뱃속에들어있던보물을발견해부자가된다.
이웃사람이우연히잡은죽은기러기로돈을벌자순박한산골사람은자기도그러겠다며그물을짜서바다로간다.그물코에걸린기러기들이날아가는바람에허리에그물을동여매고있던산골사람도덩달아하늘을날다가바다에떨어져고래뱃속에들어가게된다.「산골사람고래잡기」에서기러기떼를따라바다위를나는장면이나,고래뱃속에삼켜졌다가다시살아나는장면은18세기영국에서출간된라스페(R.E.Raspe)의『허풍선이남작의모험』과이딸리아동화,꼴로디(C.Collodi)의『삐노끼오의모험』과아주비슷하다.언제어디에살든사람의상상력에는비슷한구석이있는걸까?
「엿장수총각의꿈」은가난하지만효심이깊은엿장수총각에게신령이나타나은궤짝을알려주고,이를가난한선비에게전해주도록해서이후선비는과거공부에전념해서출세하고엿장수총각도선비의도움으로잘살게된다는이야기다.은궤짝을선비에게줄때차용증서를쓰게하고,나중에이를근거로빈궤짝에은을채워놓게하는설정은당시사회가경제관념이철저했다는것을보여준다.
조선후기벼슬길이막힌양반들은시골에서땅주인노릇을하며농민들에게도조를받거나돈을빌려주고높은이자를받았다.농민들은이런양반들에게시달림을받으며살아야만했다.「양반골려주기」에도이런생원과농사꾼이나오는데,생원의빚독촉에시달리다못한농사꾼은기발한꾀를내어생원을골려주고빚까지탕감받게된다.농사꾼의말에감쪽같이속아쩔쩔매는생원의모습에담긴,양반에대한풍자가무척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