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것의 귀환 (초월과 존중과 희생의 시학 | 김종훈 평론집)

시적인 것의 귀환 (초월과 존중과 희생의 시학 | 김종훈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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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6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문단에 나온 이래, 『미래의 서정에게』 등을 통해 서정시의 전통과 미래를 관통하는 평론을 써온 김종훈 고려대 교수가 그간 서정시의 궁극을 탐색해온 결실들을 묶어냈다. 『시적인 것의 귀환: 초월과 존중과 희생의 시학』은 한국 현대시의 전반적인 지형과 계보를 토대로 이 시대 비평가들이 맞닥뜨린 위기와 그것을 헤쳐나가는 임무 그리고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김종훈

金鍾勳
고려대국어국문학과교수,문학평론가이자시인.고려대국어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저서로『한국근대서정시의기원과형성』『미래의서정에게』『정밀한시읽기』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코끼리의거처:21세기한국시에나타난상상력의윤리
시적인것의귀환:인공지능시대와서정의미래
갇힌주체의부정성:2010년대시의감성구조
너에게이르는길:‘나는너다’의모습들
불온한시는어디에서출현하는가

제2부
서정의생명성은무엇인가
현대시와극서정시:극서정시의미학과구조
헤맴의궤적:현대시의리듬
현대시의알레고리:황현산의알레고리
빈집의유령들:리얼리즘시의갱신과관련하여

제3부
춤추는말과진동하는신념:최종천의시
그늘이넓은집,마당에사는빛:이상국의시
최정례의과외수업
어디에도있는너는:곽효환『너는』에부쳐
유안진이이야기를들려주는시간
서툰연인들,외국어주체들:황인찬「나의한국어선생님」에부쳐

제4부
불투명한바람과투명한마음:이은봉『봄바람,은여우』
나기철의발송작업:나기철『지금도낭낭히』
근시(近視)의천사:박라연『헤어진이름이태양을낳았다』
박순원의시는웃프다:박순원『그런데그런데』
최두석의사무사(思無邪):최두석『숨살이꽃』
어두운기도의형상:최정진『버스에아는사람이탄것같다』
내이름은숨은돌:한영수『케냐의장미』
마당을쓰는사람:황동규『겨울밤0시5분』
안도현의평지순례:안도현『능소화가피면서악기를창가에걸어둘수있게되었다』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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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가생각했던것보다더욱세상은시를필요로한다
한국현대시의계보와‘시적인것’의자리를다지는올곧고사려깊은비평

2006년창비신인평론상으로문단에나온이래,『미래의서정에게』등을통해서정시의전통과미래를관통하는평론을써온김종훈고려대교수가그간서정시의궁극을탐색해온결실들을묶어냈다.『시적인것의귀환:초월과존중과희생의시학』은한국현대시의전반적인지형과계보를토대로이시대비평가들이맞닥뜨린위기와그것을헤쳐나가는임무그리고용기에대해이야기한다.

이책의1부는A.I.가여러문화현상을좌우하는지금우리에게‘시란무엇인가’라는질문을끝까지궁구하는글들을모아냈다.인공지능이문화예술의판도를흔들어대자많은이들이미래에는인공지능이기존의시들을데이터베이스로삼아양산해낼것이라고우려한다.이에김종훈은자본주의하의인공지능이일원화하고단순화할세계를겨냥하면서기존의권위를위협하는존재로서의시를언급한다.시는A.I.와는달리,실패한다고다시연습을시작할수있는예행연습의장이아니다.게임처럼종료와죽음을반복하여삶을권태롭게만들지도않는다.인간삶에서죽음이절대적인종료를뜻하는것처럼,“반복되지않는최초와최후는가상세계와변별되며전율을일으킬힘”(36면)을갖는다.이것이바로오래전아리스토텔레스가이야기했고현대의김종훈이그바통을이어받아이야기하는‘시적인순간’이다.
문학은그것의태동이후부터언제나다른매체,장르와견줘지면서그효용을의심받아왔다.20세기후반에는영화라는매체에,지금은디지털가상세계에비교되는식이다.하지만김종훈은시인들이언어와자연이라는재료로써인간심층을탐구해가는한‘시적인순간’과‘시적인것’은끝내보존된다고단언한다.결국디지털가상세계가문학의판도를바꿀것이라는것은한낱기우에불과할뿐이다.김종훈의진단은도리어정반대에가깝다.그는트위터의140자텍스트가어떨때에는“고도로응축된말,집중된정신과두터운시간을담은말”이라고말하며그것이어찌시가아닐수있느냐고날카롭게반문한다.그리하여그는“어쩌면디지털공간은자신의삶을고양시킬수있는말에갈증을느끼는공간,시의말이가장둔중한울림을줄수있는공간”(123면)이라고말한다.디지털미디어를축출과배제의대상이아닌시의새로운창작의장혹은형식으로바라보는관점은문학이가진포용과해석의드넓은범위를일깨워준다.
김종훈은정작중요한것은매체가아니라목적이라며그시선을좀더먼곳을향해던진다.그에게문학이궁극적으로도달해야할곳은‘최초의순간’‘처음의전율’로서,그것은인간이필연적으로실패하고말기에더욱간절해지는목표가된다.이를위해시인은시를쓰고그시는마치굳은살을벗기듯지속적인소통과성찰을거치며‘서정’이라는이름을얻는다.
어느시인이나아름다움을추구한다.하지만시의미학이동시대의사람들과소통하지않고후속세대의세계관또한염두에두지못할때에는그저방종과고립에머물뿐이다.이같은예술의고립이시대적문제라는것을간파한여러비평이새로운소통의방식을제안한바있다.이를테면‘시적정의’‘감성의분할’같은것들.여기서김종훈이제안하는것은극서정시다.그에따르면현대의인간에겐“인간의운명이달래지못하는최초의울음으로돌아가는결단이필요하며,‘우리’로환원되지않는‘너’와‘나’의동일시체험이필요”한데“자기를벗어났다가귀환하는체험이역설적이게도타인과함께사는이시대의시적윤리이자시적인것의출현요건”(7면)이다.
2부에서는서정시를이루는요소들즉그것의정서적측면에서부터리듬이라는운율적요소,알레고리라는장치,리얼리즘이라는사조까지,오래전부터시의미학적특성으로인식된면면들이현대에어떤효용을갖는지를탐색한다.이같은전통적시학개념들은2000년대한국시의극적인변화를거치면서날카롭게벼려졌다.리듬은그변화와어울리며각각의개성을창출했고알레고리는세간의수많은오해를불식하면서‘파편으로서의세계’를구현한다는불가능한기획에도전했다.김종훈이여기에서확인한것은전통개념의고수가아니라갱신을거듭할수있게하는‘시적인것’의힘이었다.그힘을통해우리는서정시의미학적갱신을이루게되는데그것은“장르의특성인내면의부정이아니라표현방식의극복”(104면)으로성취된다.김종훈은이처럼기존의틀을벗어나려는극복에대한의지를가리켜‘용기’라고이름한다.
3부에서는이같은‘용기’를지니고기존의권위에도전했던최종천,이상국,최정례,곽효환,황인찬등의시인과그들의작품을소개한다.이시인론과작품론에서두드러지는것은김종훈이일부러시인과시적화자를분리하지않고해설함으로써발생하는색다른의미들이다.그는“필요하다고판단되면개인적인체험까지동원”(8면)하여시인과화자를두루아울러해석하였고,애써분리하지않았을때비로소짚어볼수있는틈을섬세히조명했다.이로써독자들은그시인이궁극적으로추구하고자한시와삶의경계를짐작할수있게되며,그합일의가능성을통해서만전해질수있는감동을느껴볼수도있을것이다.
김종훈은2000년대시들의첫번째특징으로일인칭권위에대한도전을꼽는다.본래의낭만적자아가주도하던시는종적을감추고시속에여러하위주체들이너나할것없이목청을높이는시들이등장했다.이처럼2000년대시들이권위에대한도전으로한국현대시사에굵은획을그었다면그뒤2010년대,2020년대시들은어떤독창성을지닐까.평론가의시점에서2010년대이후의시들은더이상‘활자의세계’에서만쓰이지않는다.영상,게임등온라인상의데이터베이스들이수많은체험을시적자양분으로제공한다.이경험들은공통적으로위계가없으며그범위가넓다.‘시적인것’의출현배경이완전히달라진것이다.2010년대이후시인들은이같은토대위에서시대를초월하는고유의리듬을만들고자고군분투해왔지만,그들의각기다른원심력들은여전히하나의중심에강하게묶여있다.바로‘최초의순간’들이다.

어린애의말처럼순수한시어를쓰라는말이있다.어린아이의순수함을닮으라는것은해맑은언어를쓰라는것이아니라최초의서툶을기억하라는것이다.내가사용하는말이타락되었다는전제는지각을확장해주는새로운주체를출현시킬수있다.(…)우리의감정을건드렸던저외국인의말‘사장님,사랑해’가시적순간이라고느낀까닭도여기에있을것이다.(239면)

4부는이은봉,나기철,박라연,박순원,최두석,최정진,한영수,황동규,안도현등2000년대이후를대표하는시인들의시집에대한해설을담았다.김종훈이각각의해설을쓰면서유념했던것은논리적연결이아니다.그는시집안의시들이서로주고받는대화를경청하고자했으며,무엇보다그시들의대화속에서이미지들이애쓰지않더라도알아서하나의논리를구성해주기를기다렸다.이는“관례화된자기과시나자연예찬이아니라겨울밤얼어붙은잉크병을녹이거나겨자씨햇살로봄을지피는것”이고이로써“시의중심은갱신되고보존되며지속”(111면)된다.
평론가의시선은삶과죽음,말과말너머의세계를넘나든다.어떤날은턴테이블위의레코드판을보며삶과죽음의연속성덕택에죽음에대한공포가옅어진다는점을,그리하여인간의연대감은두터워지되우리인간고유의‘최초의순간에대한깨달음’또한옅어진다는점을깨닫는다.그래서그가주목하는것은최초의전율을기억하고그경험을잊지않는것이다.김종훈의글들은이렇듯‘잊지않기위한’노력이자사투로도읽히는데,희생과존중을말하며끝내는초월에까지가닿는문장들은강직하며따스하다.

이울음은끝내“당신에게로귀환”하게될것이다.아직까지그울음은시의표현을빌리자면“무의식”인데,이또한내게있으나내가어쩌지못하는것이라는점에서‘시적인것’이다.시적인것은운명을감지하는곳에서발생한다는점에서죽음과내통한다.시적인것은죽음의연대를통해우연하고도일회적으로,누구의제어없이나타난다.그렇다면이것을우리는형상이라고말하지않을수없다.울음의형상은시,시적인것,서정시의미래이다.(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