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획일적인 산업사회의 이념에 맞서
자유로운 상상력의 가치와 개개인의 존엄을 옹호한 디킨스의 수작
자유로운 상상력의 가치와 개개인의 존엄을 옹호한 디킨스의 수작
몰입감 있는 전개와 특유의 재기 넘치는 묘사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어려운 시절』이 창비세계문학 95번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가진 자의 허위의식과 갖지 못한 사람들 고유의 생명력을 밀도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은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공허감과 허전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커다란 울림을 선사한다. 디킨스 전문 연구자인 울산대 장남수 교수는 영미문학연구회와의 공조를 통해 이룬 명징하고도 섬세한 번역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작품의 매력을 고스란히 펼쳐 보인다. 특히 작품의 세세한 표현에 담긴 의미까지 정밀하게 짚어낸 역자의 해설은 디킨스 작품세계의 본령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출간 이후 충실한 고전연구의 성과로서 이 책이 주목받은 이유다.
날카롭고 거침없는 세태 비판과 풍자
작품의 무대인 영국의 공업도시 코크타운은 공장과 증기기관의 도시이자, 노동자들의 도시, 수치화할 수 있는 효용만이 절대적인 이른바 공리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도시다. 소설은 공리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인 국회의원 그래드그라인드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상상을 억압하는 그의 교육철학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딸 루이자와 아들 톰 역시 아버지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모범적인 학생으로 길러지지만, 이들의 인생은 그래드그라인드가 꿈꾸는 이상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전개된다. 상상과 애정을 억압당한 채 자란 루이자는 스무살 연상의 자본가 바운더비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톰은 방탕한 생활에 빠져 도박과 강도에 연루된다. 이처럼 그래드그라인드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이념은 개인의 타고난 양심과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참히 짓밟고 인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획일적인 이념에 스러지지 않는 민중 개개인의 존엄
이야기의 다른 한편에는 산업문명의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는 노동자계급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스티븐 블랙풀이 있다. 성실한 노동자인 그는 노동자총연맹에 가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받고, 공장주인 바운더비로부터는 불합리한 해고를 당한다. 결국 코크타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그는 나아가 톰 대신 은행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들이 이해와 연대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디킨스는 그를 통해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자 개개인의 존엄을 옹호한다. “엔진에는 신비가 없지만 일손들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한다”(112면)라는 표현에서처럼 노동자계급에 대한 디킨즈의 애정 어린 시선은 소설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상상력과 연대의 가치
디킨스의 이러한 산업사회 비판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코크타운의 공장과 대비되는 곡마단의 존재를 통해서이다. 곡마단은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민담과 민요 등의 의미를 부각하고, ‘사실’의 세계와 대비되는 ‘상상’의 세계를 대변하며, ‘노동’의 원리와 배치되는 ‘놀이’의 가치를 웅변한다. 곡마단의 단원들은 학식은 보잘것없지만 ‘놀랄 만한 부드러움과 천진함’(63면)을, ‘서로 돕고 동정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63면)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은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해 서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맹목적인 이윤 추구와 대비되는 공동체적 가치를 드러낸다. 특히 곡마단 출신의 정 많은 소녀 시시 주프는 ‘사실’과 ‘이성’의 억압 속에서도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고 여성 등장인물들 간의 연대를 주도하는 등 작품의 극적인 맥락 속에서 도드라진 영향력을 발휘한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이념으로서의 공리주의가 포섭하지 못하는 삶의 다양성과 민중적 덕목을 옹호한 디킨스의 문제의식의 강렬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그의 장기이기도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와 생생한 묘사는 그가 당대에 획득한 대중적 인기를 오늘날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어려운 시절』은 디킨스의 소설이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까닭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전의 현재적 가치를 되새길 기회가 될 것이다.
날카롭고 거침없는 세태 비판과 풍자
작품의 무대인 영국의 공업도시 코크타운은 공장과 증기기관의 도시이자, 노동자들의 도시, 수치화할 수 있는 효용만이 절대적인 이른바 공리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도시다. 소설은 공리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인 국회의원 그래드그라인드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상상을 억압하는 그의 교육철학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딸 루이자와 아들 톰 역시 아버지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모범적인 학생으로 길러지지만, 이들의 인생은 그래드그라인드가 꿈꾸는 이상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전개된다. 상상과 애정을 억압당한 채 자란 루이자는 스무살 연상의 자본가 바운더비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톰은 방탕한 생활에 빠져 도박과 강도에 연루된다. 이처럼 그래드그라인드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이념은 개인의 타고난 양심과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참히 짓밟고 인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획일적인 이념에 스러지지 않는 민중 개개인의 존엄
이야기의 다른 한편에는 산업문명의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는 노동자계급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스티븐 블랙풀이 있다. 성실한 노동자인 그는 노동자총연맹에 가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받고, 공장주인 바운더비로부터는 불합리한 해고를 당한다. 결국 코크타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그는 나아가 톰 대신 은행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들이 이해와 연대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디킨스는 그를 통해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자 개개인의 존엄을 옹호한다. “엔진에는 신비가 없지만 일손들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한다”(112면)라는 표현에서처럼 노동자계급에 대한 디킨즈의 애정 어린 시선은 소설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상상력과 연대의 가치
디킨스의 이러한 산업사회 비판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코크타운의 공장과 대비되는 곡마단의 존재를 통해서이다. 곡마단은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민담과 민요 등의 의미를 부각하고, ‘사실’의 세계와 대비되는 ‘상상’의 세계를 대변하며, ‘노동’의 원리와 배치되는 ‘놀이’의 가치를 웅변한다. 곡마단의 단원들은 학식은 보잘것없지만 ‘놀랄 만한 부드러움과 천진함’(63면)을, ‘서로 돕고 동정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63면)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은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해 서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맹목적인 이윤 추구와 대비되는 공동체적 가치를 드러낸다. 특히 곡마단 출신의 정 많은 소녀 시시 주프는 ‘사실’과 ‘이성’의 억압 속에서도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고 여성 등장인물들 간의 연대를 주도하는 등 작품의 극적인 맥락 속에서 도드라진 영향력을 발휘한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이념으로서의 공리주의가 포섭하지 못하는 삶의 다양성과 민중적 덕목을 옹호한 디킨스의 문제의식의 강렬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그의 장기이기도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와 생생한 묘사는 그가 당대에 획득한 대중적 인기를 오늘날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어려운 시절』은 디킨스의 소설이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까닭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전의 현재적 가치를 되새길 기회가 될 것이다.
어려운 시절 - 창비세계문학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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