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1(큰글자도서) (천명관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1(큰글자도서) (천명관 소설집)

$19.00
Description
천명관은 그 이름 자체로서 힘이 넘치고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희대의 이야기꾼’으로서 등단 이후 꾸준히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선보여온 작가 천명관이 7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선보인다.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이 천명관 특유의 재치와 필치로 살아나는 여덟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웃음이 나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히는 먹먹한 감동을 얻게 되고 그 여운은 진하게 오래 남는다. 그사이 천명관의 유머에는 따뜻한 서정과 서글픈 인생에 대한 뜨거운 위로가 더해졌고, 통쾌한 문학적 ‘한방’은 더욱 강렬해졌다.
저자

천명관

千明官
경기도용인에서태어났다.2003년문학동네신인상에소설「프랭크와나」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고래』로2004년문학동네소설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고래』『고령화가족』『나의삼촌브루스리1,2』,소설집『유쾌한하녀마리사』가있다.

목차

1권)봄,사자(死者)의서(書)/동백꽃/왕들의무덤/파충류의밤/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

출판사 서평

"뭐가잘못된건지모르겠는데,하여간그렇게됐다"
인생의아이러니를간파하는천명관의탁월한솜씨

‘고귀하게’태어났지만처연하게객사해중음을떠도는‘죽은자’의이야기(「사자(死者)의서(書)」)로시작해죽음의고비를넘긴할아버지의자애로운미소(「우이동의봄」)로‘인생의준엄한깨달음’을전하기까지,천명관의소설은고통받고방황하는절박한사람들의이야기를삶과죽음,꿈과현실을오가며때로는통쾌하게때로는쓸쓸하게담아낸다.그들은한때잘나가던트럭운전사였지만이혼후가족이함께밥도먹지않는하루살이막노동꾼이거나(「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부푼꿈을안고귀농했지만‘파리지옥의끈끈이’에들러붙어괴로워하는파탄난가족이거나(「전원교향곡」),‘삼만원의행운’을바라며매일밤어두운도로를오가는대리기사들(「핑크」),혹은섬에서혹독한삶을감내해내야하는질투많은여자들이다(「동백꽃」).사회의주류에편입된듯보이는사람들의사정도다르지않은데,겉으론화려해보이는인기작가는어린시절폭력의트라우마를안고살며여전히내적으로방황하거나(「왕들의무덤」),이십년이상출판사에서일하며편집장까지지낸화자는지독한불면증에시달리며밤새잠들지못하고길고외로운시간을견뎌낸다(「파충류의밤」).

긴여행을통해얻은것도있었다.언제부턴가지독한불면을자신에게주어진삶의조건으로받아들이게된거였다.완전한체념이었다.더는애면글면잠을이루려고애쓰지않았고체내에중금속에축적되듯피로가쌓여당장쓰러질것같아도울지않았다.다만깊고달콤한잠에대한갈망과아득한상실감만이그녀의깡마른몸에선명하게남아있었다.그렇게불면을껴안고어두운방안에서뒤척거리는동안그녀가탄비행기는서서히랜딩을준비하고있었다.(「파충류의밤」91면)

소설속주인공들은깊은잠을이루지못하고가수면의상태로꿈속을헤매거나,현실을악몽처럼살아가거나,혹독한현실과꿈의괴리를메우지못해좌절한다.불면혹은절망의시간을버텨내기위해나약한그들이선택할수있는쉬운방법은다름아닌투약/복용이다.밥을먹고나면소화제를먹고,잠을자기위해수면제를먹고,머리가지끈거려진통제를먹고,섹스를위해비아그라까지먹어야하는‘화학적인생’을사는사람들은암에걸리지않기위해비타민을과다복용하기도한다(「파충류의밤」).호르몬앞에서무력한인간은대리운전을하기위해신경안정제에의지해몽롱한상태로운전을하고(「핑크」),‘노가다’들은소주를약삼아마시며하루하루를버텨낸다(「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노란알약,하얀알약,파란알약을번갈아가며먹듯”(87면)천명관이보여주는아픈존재들의면면을하나하나살피다보면어느새희로애락의감정들이잘처방된강장제를들이켠것처럼청량한위로가전해진다.
그렇다면그의인물들은왜이렇게아프고,언제부터아프기시작했는가?천명관이모든이야기에서천착하는주제는비극의원인은있지만,결국그것은밝혀지지않고또밝혀질수없다는,“뭐가잘못된건지모르겠는데,하여간그렇게됐다”(121면)는결론에이르게되고,바로이러한소설적장치를통해천명관은인생사의비애와아이러니를탁월하게보여준다.게다가비극의궁지에몰린인물들이난관을헤쳐나가기위해택한해결책이전혀예상치못한극단적인방법이거나오히려엇나가는방향이라는점에서천명관소설의아이러니는단순한농담이나해학을넘어선비극적깨달음에이르게된다.「전원교향곡」은젊은귀농부부가꿈꾸던시골에서의삶이유쾌하고흥겹게완주되지못하고파탄나는모습을서글프게그리고있다.한때아름다운그늘을드리워주던‘포도나무아래’엔감당할수없는빚과더불어‘실패한꿈의잔해’만이남게된다.하지만결국모든것이불바다로변하게되는소설의마지막장면은장엄하고숭고하게끝나는베토벤의교향곡제6번〈전원교향곡〉의마지막악장과묘한화성을이루며감동을자아낸다.

거대한불바다가된계곡을내려다보며그는비로소자신이진즉에했어야하는일이무엇인지분명하게알것같았다.(…)그는자리에서일어설생각도않은채고개를들어연기로뒤덮여가는하늘을올려다보았다.말라버린포도나무잎사귀사이로여전히별들이총총히빛나고있었다.문득개에게물린팔이저리게아파왔지만물속에가라앉은듯마음은한없이편안했다.그런데도이상하게자꾸만눈물이흘러내렸다.(「전원교향곡」156면)

꼬이는인생을위해함께달려주는천명관의슬프고따뜻한유머
“아무데도갈데가없었다.하지만어디로든가야했다.”

비극의원류를알수없어도삶이지속되듯인생의목적지가없어도우리는어디론가향하고있고,그과정에는대부분필연같은우연이작용한다.「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에서처럼인생은예기치않게손에들어온칠면조가지독하게따라붙는상황과같을지도모른다.그리고이우연의산물은어느새‘당당한존재감’으로삶을새롭게지배하는무엇이되기도한다.노가다일을하는중년의이혼남‘경구’는냉동창고에서일을하다우연히거대한냉동칠면조고기를받게된다.버리고싶어도버릴수없고‘지독하게도따라오는’칠면조를들고다니던경구는길에서만난빚쟁이를칠면조로흠씬두들겨패주면서묘한카타르시스를느끼고,벤츠트럭을훔친뒤가족이다시한자리에둘러앉을수도있다는실낱같은희망을품고전부인을만나러간다.아내는그가불쑥내미는칠면조를반가워할까?이예측할수없는길을함께달려주는작가의따뜻한시선은경구의마음의소리에귀기울여주고그가밟는액셀러레이터에힘을실어주며응원한다.“그래,까짓것.거칠게한판살다가는거다.인생뭐있나?”(110면)

육체노동자들은목소리가크다.화통을삶아먹은것같다.술집을가든당구장을가든제일큰소리로떠드는이들은노가다들이다.그것은그들이늘시끄러운공사판에서일하느라소리를지르는게습관이되어서이다.또한아무도그들의말을귀담아들어주지않기때문이다.그래서고래고래,악을쓰며고함을지르는것이다./이씨발것들아,제발아가리닥치고내말좀들어봐!.(「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120면)

그래!진즉에트럭을몰았어야했다.운전석에앉는순간경구는비로소자신의인생이어디서부터잘못되었는지깨달았다.그가트럭에서내려오던바로그때부터스텝이꼬이기시작해결국여기까지떠밀려온거였다.육중한트럭의엔진소리를들으며달리는동안경구는조금씩마음이가라앉았다.두려움도걱정도사라졌다.십일톤트럭안에앉아있으니어쩐지든든한기분도들었다.깨어지지않는어떤단단한보호막이자신을지켜주는느낌이었다.그래,잘됐다.(「칠면조와달리는육체노동자」128면)

천명관의소설을읽다보면그와밤새마주앉아술잔을기울이며이야기를나누는것같다.우리는그의이야기속주인공들을현실에서종종맞닥뜨리기도하지만가끔은그주인공이우리자신이라는자연스러운착각에빠진다.“도대체뭐가잘못된거지?”(60면)우리는자주이공허하고막막한질문앞에서머뭇거릴때가있다.그럴때마다작가는조용히등을토닥이며슬프고도따뜻한유머를선사하며어느봄날할아버지와우이동으로벚꽃놀이를갔을때그에게서들었던비밀스러운이야기(「우이동의봄」)를꺼낼지도모르겠다.

얘야,잊지마라.사는건누구나다매한가지란다.그러니딱히억울해할일도없고유난떨일도없단다.(「우이동의봄」182~1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