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2(큰글자도서)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2(큰글자도서) (권여선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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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그 비극을 견디는 자들이 그리는 아름다운 생의 무늬
2007년 제15회 오영수문학상,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2012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그리고 2014년 “작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상찬을 받으며 장편소설 『토우의 집』으로 제18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여선이 다섯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선보인다.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바지런히 발표한 일곱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한국문학의 특출한 성취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권여선의 이번 소설집은 이해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지난 삶의 불가해한 장면을 잡아채는 선명하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삶의 비의를 그려낸다. 인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 인간을 벼랑 끝까지 밀어뜨릴 때,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불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 미세한 균열로도 생은 완전히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온 권여선은 그럼에도 그 비극을 견뎌내는 자들의 숭고함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낸다.
저자

권여선

權汝宣
1965년경북안동에서태어났다.1996년장편소설『푸르른틈새』로제2회상상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소설집『처녀치마』『분홍리본의시절』『내정원의붉은열매』『비자나무숲』,장편소설『레가토』『토우의집』이있다.오영수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리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역광/실내화한켤레/층/해설신형철/작가의말/수록작품발표

출판사 서평

인생이농담을하면인간은병들거나술을마신다…
지독한생에거꾸러진주정뱅이에게건네는쓸쓸한인사

“산다는게참끔찍하다.그렇지않니?”(8면)라는문장으로시작하는소설「봄밤」에는아무것도가진게없는두남녀가등장한다.스무살에쇳일을시작해서른셋에일으킨사업으로제법돈을벌지만곧부도를맞아아내에게버림받고서른아홉에신용불량자가돼노숙생활까지하게된수환,교사생활을하다결혼하지만곧이혼하고아들을빼앗긴뒤부터술을마시기시작한영경.술때문에생활이마비돼직장도그만둘수밖에없었던영경앞에수환이나타났을때,영경은그순간을이렇게회상한다.

그가조용히등을내밀어그녀를업었을때그녀는취한와중에도자신에게돌아올행운의몫이아직남아있었다는사실에놀라고의아해했다.(28면)

더한불행이있을까싶은그들에게치명적인병까지찾아오고,오로지서로에게서로만남은상태로그들은죽음앞에예정된이별과가차없는삶을사랑의형식으로견뎌낸다.
인생에결코지지않은인물은「이모」에도등장한다.안산외곽의오래된소형아파트에서혼자살고있는‘이모’의집에는텔레비전도컴퓨터도휴대전화도없다.착취했다고밖에는말할수없는가족곁을완전히떠나기전5년간악착같이모은1억5천만원에서1억은아파트보증금으로,남은5천만원으로는그돈이떨어질때까지아무일도하지않고살겠다결심한‘이모’가췌장암으로죽기전까지살아간2년의삶은이런것이다.

간단히아침을만들어먹고씻고열시쯤가방을메고도서관에간다.필기도구와지갑,열쇠가든가방에보리차를담은물병을챙긴다.(…)도서관에가면일단서가에서책을고르고자리에앉아하루종일그책만읽는게그녀의방식이었다.(…)오후두시쯤집에돌아와점심을만들어먹고다시도서관에가서문을닫는여섯시까지책을읽는다.책을다못읽으면대출해가지고와서저녁을만들어먹고잠들기전까지마저읽는다.(83~84면)

‘이모’가처음부터이렇듯고독하고도자유로운삶을누렸던것은아니었다.“그날은시작부터이상한날이었다”(90면)는말을기점으로이모는인생을바꿔놓은겨울밤의한장면에대해말한다.‘이모’가풀어놓는이야기는눈앞에드리워진장막을슬쩍들추고그안을들여다보는듯한,단편소설만이보여줄수있는어떤찰나의진실을예민한관찰자의언어로생생하게보여준다.
관찰자적면모는세사람의짧은여행을다룬「삼인행」에서도잘드러난다.‘규’와‘주란’부부의하룻밤이별여행에친구‘훈’이가세하며시작되는이소설은그들이맞닥뜨리는에피소드와일견무의미해보이는세사람의언쟁을고스란히중계한다.맛있는밥을먹는것만이지상목표라는듯먼길을돌고돌며끝을유예하는듯한그들여행을초점화자‘훈’을통해들여다보게되는데그시선을따라가다보면이소설이보여주는진실의얼굴을슬쩍맞닥뜨릴수있다.
권여선은또한신경증자를그려내는데도탁월한솜씨를발휘한다.「역광」에는식사후커피잔에소주를부어마시는,알코올중독자로서불안장애를갖고있을것으로짐작되는신예소설가‘그녀’가등장한다.이야기를끌고오던인물과사건이모두애초없었던일이라는듯소설은끝을맺는데,이작품에등장하는주요인물의이름(‘위현僞現’)처럼‘모든것이거짓으로나타났을뿐’이라는듯이소설의결말은‘그녀’의불안정한내면을보여준다.
이책에는술마시는장면이자주등장한다.이유는제각각이지만그들은습관적으로혹은무언가를견디기위해술을마신다.아이를빼앗기고술을마시다알코올중독이되어버린「봄밤」의영경이술에취한채김수영의시를큰소리로외는장면은그중단연압권이다.바닥을맞닥뜨린자의절망을고통스럽게보여주며취기어린인물의행동을복기해내는권여선의언어는곧허물어질것같은‘주정뱅이’의아슬아슬한내면을서늘하게포착한다.

권여선소설만이보여줄수있는비극적기품

「카메라」에는우연이라고밖에는말할수없는비극이등장한다.‘문정’은연인과사소하게다투고헤어진이후그(‘관주’)와연락이끊어져당연히연애가끝났다고받아들인채2년을살았다.오랜만에만나게된그의누나(‘관희’)를통해전모를알게되지만문정과관주,관희를둘러싼그불행은부당하게느껴진다해도누구를탓할수조차없는우연한사고일뿐이다.
인간은그누구라도벼락처럼떨어지는불행에대비할수없다.인생에는누구의탓이라고책임을전가할수조차없는비극이산재한다.그래서어떤비극은마치인생이던지는악의적인농담처럼느껴지기도하는것이다.「층」에는“이게,내탓은아니잖아요?”(224면)라고묻는인물이등장한다.그물음에대구를이루듯이작품은“내가무슨도움이되겠어요?”(242면)라는말로끝을맺지만소설은,그리고문학은분명도움이된다.모든것을잃은이들은서로를위로할수있다.마치「봄밤」의영경과수환처럼.이책에등장하는인물들이“그렇게꽉쥐지말아요,문정씨.놓아야살수있어요.”(135면)라는말로상대를위로할때,그위로는이소설을펼치는우리에게도건네진다.마치“안녕주정뱅이”하고담담한듯건네는쓸쓸한인사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