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자화상 1(큰글자도서) (전성태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1(큰글자도서) (전성태 소설집)

$20.00
Description
이전 세대와의 단절이 문학의 새로움인 양 논의되는 세태 속에서 작가 전성태는 한국소설이 지닌 풍요로운 서사와 리얼리티를 계승하면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간단없는 자기갱신을 거듭하면서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새얼굴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은 작가가 『늑대』(2011) 이후 새롭게 펴낸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에도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넘어선 소설적 성취가 오롯이 들어 있다.
『두번의 자화상』에 실린 열두편의 단편소설은 시간의 심연을 날렵하게 포착해내며 인간의 기억에 녹아들어 있는 사실과 진실, 인지와 망각, 현실과 비현실 등을 추적하기 위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갈래의 이야깃길을 따라 걸으며 독자들은 작가와의 공명(共鳴)을 넘어 단절된 시간이 품고 있던 저마다의 아련한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성태 특유의 해학과 풍자적 요소들 역시 독자들을 반긴다. 이어 단단하게 짜인 구성과 절제미 돋보이는 문체 그리고 비극적이고 아픈 세상의 현실들조차 서정성 짙은 정경으로 치환해내는 적막하고 투명한 회화적 묘사가 펼쳐진다.
저자

전성태

全成太
1969년전남고흥에서태어나중앙대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1994년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매향(埋香)』『국경을넘는일』『늑대』,장편소설『여자이발사』가있다.신동엽문학상,채만식문학상,오영수문학상,현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소풍/배웅/낚시하는소녀/밥그릇/영접(迎接)/로동신문

출판사 서평

적막하고투명한묘사로그려내는세상의정경들
세상의모든아이들은이야기를좋아하고그세계에살고있으니까

점차비인간화되어가는세계의섬뜩함이나돌이킬수없는삶의회한들이이소설집에종종등장한다.현대문학상수상작이기도한「낚시하는소녀」에등장하는주인공소녀는아이답지않게영악스럽고,병든몸으로매춘을하며생계를유지하는소녀의엄마는어른답지않게어리숙하다.

소리들은서로몸을섞지않는다.멀고가깝고,높고낮고간에소리들은저마다고유하다.붉은물감에노란물감을섞으면주황이되고,파란물감을섞으면보라가되지만소리는섞여도다른소리가되지않는다.지저귀는새소리는고양이울음소리와섞이지않는다.텔레비전에서나는웃음소리는엄마가웃는소리와섞이지않는다.여러소리가동시에일어도소리들은양파처럼겹을이룬채제모양을흩뜨리지않는다.아이가느끼기에모든소리들은표정과감정을갖고있다.엄마가웃을때손가락을물어뜯거나가슴을치고있을때도있다.(「낚시하는소녀)」74면)

미래와생에대한불안으로일찍철들어버린딸과하루하루힘들게살아가는엄마가간신히누리는작은평화가실은얼마나위태롭고허약한토대위에서지탱되는것인지,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를존재케하고살아갈힘을주는것은서로에대한사랑과연민임을작가는담담한어조로말하며넓고깊은여운을남긴다.천형처럼짊어진모녀의비극을가슴시리게다루고있음에도한편으로이소설이아름다운동화처럼그려지는까닭은소외된이들을대하는따뜻하고넉넉한작가의시선덕분일것이다.
불우한가정환경속에서도첫사랑을시작하는소년의성장기를그린「소녀들은자라고오빠들은즐겁다」,얼굴한번보지못하고죽은낯선남자를좋아하는「국화를안고」,심한과대망상증을앓고있는아들에대한진한부정(父情)이담긴「지워진풍경」,불법체류중인한외국인노동자의출국을돕는「배웅」,간첩과무장공비들이묻혀있는적군묘지를돌보는한퇴역군인의이야기를그린「성묘」,실향민노인들이안고있는해묵은갈등과화해를그린「망향의집」등의소설에도궁핍하고불안한삶이지속될수록더욱소중해지는관계에천착하려는작가의시선이잘드러난다.특히「국화를안고」와「지워진풍경」은광주5ㆍ18,「성묘」와「망향의집」은분단이라는역사적사실을다루고있으면서도특정한테제에치우치지않고넉넉한정서로소재를수용하며질곡많은현대사를살아온사람들의내면을애잔하면서도아름답게그려낸다.

“뭐,어쩔수없는세상아니었나.못난시절에못난사람들이산거지.”(「망향의집)」220면)


삶은늘이야기로되돌아온다
전성태의이름으로갱신되고넓어지는한국소설의리얼리즘

“나는말예요,차나를때절대손님을사람으로안보거든요.내열아홉에어쩌다가쟁반을들게됐는데그때살고싶은마음하나도없었어요.아,옛날생각하니까꿀꿀해지네.뭐지금도역시손님을사람으로안봐요.그런다고돈으로보느냐,그것도아니에요.짐승으로도안봐요.그냥사람으로안볼뿐이에요.뭐라고그래야될까.암튼그냥나는찻잔을나르는거거든요.배달많은날은하루에도사백잔을날라요.뭔맘이있겠어요.”(「영접(迎接)」180면)

해학적문체로소외된사회현실을탁월하게묘파한첫번째소설집『매향』을펴낸전성태는이후에도방언,풍자등이두드러진문체로공동체와삶에깊이뿌리박은작품세계를구축해왔다.최근의많은소설들이날로독백적으로되어가면서작가의목소리가서술을넘어묘사와대화전체를지배하고있는경우에비해볼때전성태의소설에등장하는인물의말과행동에관한묘사는그와같은경향과는방법론적으로구별된다.
「영접(迎接)」,「밥그릇」,「로동신문」등의작품에서시종일관쓰이는생생한언어는이작품들의가장큰특장이라할수있다.비루하고비극적인현실을다루고있음에도이이야기들이그무게에짓눌리지않고속도감있고흥미롭게읽히는가장큰연유는바로이러한우리말에대한작가의애정과집념에서기인한다.또한해학과풍자이면에는공동체구성원들에대한회한과연민이자리하고있다.

어머니를보고있노라면기억은아주물리적인경계들에쌓여있는것같다.구월의기억이지워지고팔월의기억이지워졌다.칠십세의기억이지워지고육십세의기억이사라졌다.어미로서의기억이사라지고신부의기억이사라진후친정의기억마저지워졌다.(「이야기를돌려드리다」307면)

「소풍」과「이야기를돌려드리다」는이번소설집에서각각처음과끝에수록된작품이다.한작가가쓰는모든이야기가자신의삶과연관있는것이겠지만이두작품은작가자전적삶에더욱밀착해있다.치매에걸려점차기억을잃어가는어머니를돌보며작가는시간과존재의근원에대한깊은사유에잠긴다.그리고곧작가는근원이란기억을통해서연결되는것이고기억은결국이야기로존재한다는것을깨닫는다.이제는“주인공을잃어버린소설”(「작가의말」326면)이되었지만전성태의이야기는계속되고있다.그리고당연하게우리의삶도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