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 2(큰글자도서)

레가토 2(큰글자도서)

$23.00
Description
삼십여년 전, ‘카타콤’이라 불리던 반지하 써클룸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 당시 써클 회장이었던 박인하와 신입생들은 정치인, 출판기획사 사장, 국문학과 교수, 등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느날 영문을 알 수 없이 실종된 동기 오정연에 대한 기억이 깊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들 앞에 어느날 오정연의 동생이라는 하연이 나타나 언니의 흔적을 수소문하면서 그들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서로 얽히고 이어지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현재라는 시간이고,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어긋난 관계들의 종합이 한 사람을 이룬다. 인생이란 결국 그것을 발견해내는가 발견해내지 못하는가라고 말한다.
저자

권여선

장편소설『푸르른틈새』로등단.소설집으로『처녀치마』『분홍리본의시절』『내정원의붉은열매』『비자나무숲』『안녕주정뱅이』『아직멀었다는말』,장편소설로『레가토』『토우의집』『레몬』이있음.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인문학상,동리문학상,이효석문학상수상.

목차

6.진흙의시간/7.가면겨울숲/8.꽃핀오월의목장/9.거울속벽화/10.에필로그:강변파티/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권여선은기억에대한집요한탐색을통해인간관계의미세한균열과그로인해부각되는일상의이면을날카롭게파헤치는데탁월한솜씨를지닌작가다.첫장편과세권의소설집을통해그가보여준그서늘하고씁쓸한생의진실과마주한독자와평자들은권여선이라는이름을한국문학의한특출한성취로인정하는데주저하지않았다.그런그가등단이후15년만에두번째장편소설『레가토』를써냈다.작가의등단작이장편인점을감안하면창비문학블로그‘창문’에연재한이작품이야말로작가로서첫연재작이자본격적인첫장편소설이라고도할수있다.생생한인물형상화와감탄을자아내는단단하고선명한문장,인생의아이러니에대한신랄하면서도담담한포착등단편들에서보여준그만의매력이집대성된,권여선소설의결정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닐작품이다.

끊어진기억을연주하는아름답고잔혹한서사의연금술

『레가토』는삼십여년전,‘카타콤’이라불리던반지하써클룸에서청춘의한시절을보낸인물들을둘러싼이야기이다.당시써클회장이었던박인하는지금은중년의유명정치인이되어있고,그시절철없던신입생들은현재출판기획사사장,국문학과교수,국회의원보좌관등으로각자의삶을살고있다.그리고그들에게는어느날영문을알수없이실종된동기오정연에대한기억이깊은공백으로남아있다.그런그들앞에어느날오정연의동생이라는하연이나타나언니의흔적을수소문하면서그들의과거의기억과현재의삶이서로얽히고이어지기시작한다.

늙은인간이란이미가지고있는것으로그럭저럭조달하며사는데익숙해져버린존재인것이다.갑작스런기억의환기로일상에작은혼란이나번거로움이초래되는것을달갑지않게여기게된존재인것이다.과거는과거일뿐이다.

소설은각장마다현재와과거의시점을오가며그들의젊은날과현재의삶을번갈아보여주면서진행된다.엄혹한시절,학기초첫‘피쎄일’의경험을시작으로여름의농활과합숙,가을의첫데모를거치며운동권이되는절차를밟아가던그들의청춘은한편으로순진하고열정적이고,한편으로서툴고어리석고맹목적인면모를동시에지니고있었다.반면인생의격동기를지난현재의그들은언뜻세속적이고안정된삶에접어든듯보이지만여전히젊은날의기억을생생하게끌어안고있거나애써잊으며살아가고있다.과거는누군가에게는끔찍한죄의식으로,또누군가에게는애써환기하고싶지않은부끄러운기억으로남아있다.모든것을돌이킬수없게만든치명적인사건이있었고,그것은오랜세월이지나다른모습으로그들앞에나타나과거를호출한다.써클회장이던박인하는어느날오정연에게행한충동적이고치명적인폭력의기억을평생의죄책감으로품고살아가고,정연을흠모했던신입생조준환은박인하에대한열등감을끝내떨쳐내지못하며,다른동기들역시각자의젊은날과정연에대한기억을각자의방식으로현재의삶속에묻은채살아가고있다.

가장끔찍한과거와의대면을망각하고가는인생도있지만,그것을굳이환기함으로써나아갈힘을얻는인생도있다.(…)이것이한시적으로나마그에게작은고난과유혹들을인내할힘을줄것이다.자신이가진모든상처와야만을다이너마이트로만들어질주하는차량에탑재해야한다.그럴수밖에없는게불가역한삶의운명이다.

선명한문장으로포착해낸인생의아이러니

『레가토』는낯익은듯한이야기를탁월한솜씨로가공해낯설어보일만큼선명하게세공해내는것이권여선소설의특장임을새삼깨닫게해준다.무엇보다인물들하나하나가너무도생생하게살아있어소설에긴장감과활력을불어넣는점은장편에서더욱돋보이는미덕이다.작가는능란한필치로그들의혼란과갈등,미숙과과오를때로는신랄하게,때로는담담하게,때로는유머러스하게그려내며독자를소설속으로빠져들게한다.특히이야기의중심에자리한인물인오정연이잔혹한운명속에서도발휘하는생기와발랄함은서늘하고처연한인생의아이러니마저의연한기품으로감싸안는다.인물들의됨됨이와사회적이력까지미세한뉘앙스속에녹여내는감칠맛나는대화와,인생과관계에대한모호한깨달음을명쾌하게붙잡아내는절묘한문장들역시권여선소설을읽는큰즐거움임은물론두말할것없는일이다.

사는일이쉽지않은이유는모든시간이첫시간이기때문이라고은수는생각했다.이십대도처음이었지만오십대도처음인것이다.인생에두번째란없다.그래도만약두번째의이십대가온다면링에모인이인간들은어떻게살아갈까.

모욕의관계에서증오를품는쪽은모욕을당하는쪽이아니라모욕을가하는쪽이다.모욕을감내하는자의얼굴은모욕을가한자에게견딜수없이냉혹한거울이니.누군가를지독히모욕한자기악의심연을들여다보는일이니.

편재하는우연이새처럼날아들면그순간인생은단박에뒤틀린다.그런의미에서스무살청춘에게허여된한달또는반년의말미는필연의첨탑을쌓기에충분히긴시간이기도했다.

삼십년의세월을잇는기억의이음줄,레가토

소설의제목인‘레가토’는악보에서음과음사이를이어서부드럽게연주할것을지시하는음악용어다.그것은이작품에서과거와현재를‘끊지말고이어서’읽어달라는주문으로읽힌다.“소멸하는앞의음과개시되는뒤의음이겹치는순간의화음처럼,나는이소설이과거의흔적과현재의시간이겹쳐뭔가를만들어내는레가토독법으로읽히기를소망하면서썼다”는작가의말처럼,이것은기억의서사를다루는권여선만의방식을직접적으로드러내는말이기도하다.과거를대상화하고미화하여결국현재의삶을변호하는데바쳐지기십상인통속적인회고담과달리,권여선의소설속인물들은과거와이어지고겹쳐진시간속에서과거를현재로서재구성하고,반복하고,발견한다.그래서그들에게일어나는것은현재의삶에대한얄팍한합리화가아니라과거와현재의삶전체를송두리째뒤흔들어다른삶으로바꾸어내는단절의경험이다.다시작가의말처럼,“이음의욕망이겹침의차원을낳고,겹침은다시새롭고낯선단절을연다.”그렇게과거와현재가겹쳐독특한무늬를만들어낸다.

그들이그시절그녀와나눈것은무었이었나.(…)왜그들은그토록메마르고무지한정신으로,왜그렇게근본적인단절의포즈를고수했나.모든시대의청춘들과마찬가지로그역시어디서건제운명을읽어내고야말겠다는광적인과잉에사로잡힌영혼으로한시절을살아냈을따름인데

누구에게나잃어버렸는지도모른채잃어버린것이있다.그것들로이루어진것이현재라는시간이고,그잃어버린기억속에서어긋난관계들의종합이한사람을이룬다.권여선표‘기억서사’가우리에게알려주는것처럼,인생이란결국그것을발견해내는가발견해내지못하는가이다.소설의독자역시그가펼쳐보이는기억의연금술을따라우리자신의과거와현재를‘레가토’하는순간이전과는다른삶의차원을,아름답고도잔혹한시간의무늬를발견할수있을것이다.그것이『레가토』가우리에게선사하는값진경험이며,권여선의소설이도달한하나의휘황한순간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