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터의 고뇌(큰글자도서) (반품불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큰글자도서) (반품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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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로 내용의 대부분은 베르터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일기처럼 쓰인 부분도 상당하다. 이 작품에서 서간체 형식은 소통이나 대화의 의미라기보다는 주인공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독백 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9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 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 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 ≪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목차

제1부
제2부

작품해설 / 절대적 사랑과 전인(全人)의 꿈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청년 괴테가 ‘가슴의 피를 먹여 탄생시킨 작품’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바치는 자유와 젊음, 사랑의 기록

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청년 괴테는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느끼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괴테는 수습 근무를 중단하고 낙향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괴테에게 이 작품은 실연의 고통과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베르터 씬드롬을 일으키며 당시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전인적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운동의 구심 역할을 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들에게 찬탄과 매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구문학사 최초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여전한 울림을 주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엄정한 번역으로 새롭게 만나는 불멸의 고전

그간 꾸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본래 발음과 동떨어진 ‘베르테르’라는 잘못된 표기가 여전히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널리 읽힐 고전인 까닭에 새 번역을 내놓으며 원어의 발음에 가까운 ‘베르터’로 바로잡았다. 제목 역시 그간 널리 알려진 ‘슬픔’ 대신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옮겼는데, ‘슬픔’이라는 단어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간 처절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다소 부족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비롯된 괴로움 말고도 신분차별에서 오는 모멸감, 갑갑한 사회환경에서 오는 권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고려하여 ‘고뇌’를 번역어로 선택했다. 원제에 쓰인 독일어 단어 ‘Leiden’이 복수형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며, 사전적인 의미 역시 ‘슬픔’보다는 ‘고뇌, 고통, 괴로움, 수난’ 등을 가리킨다.
가장 적확한 번역을 찾기 위한 노력은 본문에서도 두드러지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지글의 번역 문체이다. 이 작품은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로 내용의 대부분은 베르터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일기처럼 쓰인 부분도 상당하다. 이 작품에서 서간체 형식은 소통이나 대화의 의미라기보다는 주인공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독백 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일인칭 독백체를 살려 번역했으며, 이러한 시도를 통해 베르터의 내면 풍경을 한결 여실하게, 사뭇 새로운 느낌으로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그간의 낯익음보다는 낯선 엄밀함을 추구함으로써 그저 또 하나의 번역본이 아닌 진정 새로운 번역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청춘의 고전을 다시 만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