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1(큰글자도서)

파씨의 입문 1(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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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큰 주목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소설가 황정은의 두번째 소설집. 시적인 압축이 돋보이는 간결한 언어운용의 미덕이 완성도를 더했고, 폭력적인 세계를 간신히 살아내는 인물들을 감싸안는 소설적 윤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문학에 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단단히 맞물려 응축된 작품집이다.

한밤에 벌어지는 친지들 간의 갈등을 그린 '야행(夜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은 원령이 주인공인 '대니 드비토',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시공간 속을 하염없이 낙하하는 중이며,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실은 낙하하는지 상승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화자가 등장하는 '낙하하다',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 '양산 펴기'.

어느날 무심코 주워온 항아리가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하는 '옹기전(甕器傳)',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난 길고양이가 들려주는 묘생(猫生)의 일대기 '묘씨생(猫氏生)',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화자가 등장하는 '뼈 도둑', 결국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표제작 '파씨의 입문' 등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황정은

2005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일곱시삼십이분코끼리열차』『파씨의입문』『아무도아닌』,장편소설『百의그림자』『야만적인앨리스씨』『계속해보겠습니다』,연작소설『디디의우산』『연년세세』등이있다.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대산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김유정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젊은작가상대상등을수상했다.
수상:2021년김만중문학상,2019년만해문학상,2017년김유정문학상,2015년대산문학상,2014년이효석문학상,2014년현대문학상,2014년문학동네젊은작가상,2012년신동엽문학상,2010년한국일보문학상,2005년경향신문신춘문예
최근작:〈백의그림자〉,〈[큰글자도서]일기日記〉,〈일기日記〉…총74종

목차

야행/대니드비토/낙하하다/옹기전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에서황정은은지금평단과독자들이가장주목하는젊은작가중하나다.그는첫소설집『일곱시삼십이분코끼리열차』에서독특한상상력과더불어현실과환상의절묘한결합으로그개성을인정받았고,첫장편『百의그림자』로단숨에한국일보문학상을수상하며‘고도의윤리성을바탕으로새롭고도완성도높은소설미학을구축했다’는고평을받았다.그의발표작들은사회정치적관심과소설적미학이성공적으로합치된사례로즐겨거론되며,편편이소재와소설적관심에서다양하고의미깊은변화를보이며눈밝은독자들을사로잡아왔다.그런9편의단편이묶인이번소설집『파씨의입문』은그가받는주목이합당함을,나아가그가2010년대한국소설을이끌어갈유력한작가임을확인해주는증거다.

사라지고잊혀가는것들의세계

잘알려져있다시피,그의소설은간결하고정제된언어와함축적인대화가먼저눈길을끈다.한밤에벌어지는친지들간의갈등을그린소설집의첫단편「야행(夜行)」부터그렇다.소설은정황에대한구구한설명없이간결한행동묘사와생생한대화만으로,어쩌면특별할것도없는사건을낯설고강한여운을남기는한편의부조리극으로만들어낸다.그뿐아니라모든소설이그렇다.무심한듯능청스러운듯,간결하고리듬감있게흐르는문장과대화에압축된단단한긴장감이야말로황정은소설의매력이다.

내가언제요.
박씨가말했다.
마음이짠하다고했지,망가졌다고하지는않았어요.
그게그거지.
그게어떻게그거예요.
그게어째서그게아닌가.(…)
아니,글쎄,그걸로치자면말입니다,하고한씨가말했다.
제수씨쪽이훨씬예전부터망가져있지않았나,나는그런생각을하고있는데말입니다.(「야행」)

그러한긴장은그의확연한특징이라할이른바환상성과어울려더욱두드러진다.「대니드비토」의주인공은사랑하는사람을남겨두고죽은원령(怨靈),떠오르거나흐르거나달라붙거나매달리거나하는유령이다.그는생전에“어쨌든죽으면,나는틀림없이유도씨한테붙을거다.난죽어서도쓸쓸할테니까,유도씨가반드시붙여줘야돼”라고말하고,죽어서원령이되어유도씨에게붙어그의여생을지켜본다.나아가「낙하하다」의화자는아무것도없는무한한시공간속을하염없이낙하하는중이며,자신이죽었는지살았는지,실은낙하하는지상승하는지조차확신하지못한다.소설은그기이한상황을부연하거나치장하지않고,다만담담하게그들이내뱉는나직한독백을전할뿐이다.그리고단순해보이는문장의연속아래쌓여가던어떤묵직한정서가,어느순간이랄것도없이불쑥터져나온다.분명히존재하지만우리가보지못하는,그래서누구에게도기억되지못하는,결국서서히사라져가는이들의목소리가말할수없이쓸쓸하고슬프게다가온다.

어디든충돌했으면좋겠다고생각한다.삼년째떨어지고있으니슬슬어딘가충돌해도좋을것이다.부서지더라도충돌하는것이좋을것이다.마지막순간엔뭘할까뭐라고말할까고마워요정도면친절할까.친절하게충돌해주어서고마워요.(「낙하하다」)

사라져가는,잊혀져가는것들의목소리를듣는것이작가의일이다.「옹기전(甕器傳)」은어느날무심코주워온항아리가“서쪽에다섯개가있어”라고말하는데서시작한다.주인공은처음에는외면하지만항아리가점차사람의얼굴형상을띠어가자결국무작정항아리가말하는서쪽으로가보기로마음먹는다.그길에서그는항아리를무심히지나치는사람들을만나고,‘항아리만보고있다가는사람이못쓰게된다’고말하는할아버지와,항아리를구덩이속에파묻는데몰두하는인부들을만난다.그러면서소설은기이한존재에관한이야기에서점차현시대상황에대한선명한우화이자,망각되고묻혀버리는모든것들에대한탁월한알레고리로서의면모를띤다.

이미밤.이몸은시방인간들이둘러놓은장막안에서이몸을더럽히는세계가완파되기를기다리고있다.묘생猫生십오년,인간으로부터받은이름은몸,나는인간의우방이아니다.(「묘씨생」)

타자의목소리,타자의시선이라고해도된다.「묘씨생(猫氏生)」은다섯번죽고다섯번살아난길고양이가들려주는묘생(猫生)의일대기로,인간에의해죽음을맞는고양이의처절한상황과,그럼에도결코의연함을잃지않는목소리가대조를이루며인간이라는종의탐욕을신랄하게고발한다.그리고여기에,쇠락한상가에서노숙자처럼살아가면서도자존을지키려는노인의이야기가덧씌워져인간대동물로만한정되지않는풍부한함의와울림을낳는다.

간신히존재하는것들을감싸안는맑고단단한언어

환상이나기괴한존재없이생활에밀착한현실적인이야기를다루는작품들도각별하다.「양산펴기」는일일바자회에서양산을파는아르바이트에나선주인공의하루를그린다.순정하고선한황정은소설의인물이마주하는생활전선의현장이담백하고생생하게묘사되고,어느덧바자회장소건너편에시위인파가등장해양측의소리가겹쳐울리는장면에이르러,별안간현실의부조리가낯선모습으로드러나며웃을수도울수도없는비애를자아낸다.

노조사무실야밤급습이웬말이냐호화청사웬말이냐노점상철거민생존권보장비리구청장물러나라.
실크팔십퍼센트스카프만원.(…)
로베르따디까메르노웬말이냐자외선차단노점상됩니다안되는생존양산쓰시면물러나라기미생겨요구청장한번들어보세요나와라나와라가볍고콤팩트합니다방수완벽하고요.
아줌마빤스는국산이좋아국산사세요.(「양산펴기」)

현실에밀착한또다른작품「디디의우산」의주인공디디는어렸을때도도의우산을빌려쓰고되돌려주지못한일을오랫동안마음의빚으로담아두고있다가어른이되어다시만난도도에게자기우산을빌려준다.주인공은그일을계기로도도와함께생활하게되고,비슷비슷하게팍팍한현실에짓눌려살아가는동기생친구들과어울린다.소설의마지막에서,무력하지만선량한이들이함께모여웃는장면은서글픈가운데서도드물게따뜻한위로와연대의기운을느끼게하는특별한장면이다.
그위로와연대의바탕에는“모두의팔이나다리나머리를밟지않도록조심하며”이들에게나눠줄우산을찾아신발장을열어보는주인공의마음이있다.황정은소설의온기는그렇게표나지않게,그러나어디에나드러나있다.항아리의말을끝내무시하지않고나침반을들고서쪽을찾아가는「옹기전」의주인공이그렇고,치욕을감내하고있는노인의발치에서묘,하고우는「묘씨생」의고양이가그러하며,횡단보도건너편에서팻말을걸고선시위대남자를가만히바라보는「양산펴기」의화자역시그렇다.성적소수자라는이유로사회로부터배척당하고스스로를유폐시킨「뼈도둑」의화자가온세상을뒤덮은폭설을헤치고사랑을향해나아갈때,그의결연함과숭고한결단역시결국이와다르지않다.이처럼작가는간신히,겨우존재하는이들의목소리에귀를기울이고,그들을차분히오래바라본다.그리고천천히,사려깊게말을고르며그들의이야기를소설의언어로완성해나간다.그의맑고단단한언어는그고집스러울만큼사려깊음의산물이기도하다.

마지막으로실린표제작「파씨의입문」은결국이모든것의기원에관한이야기이다.“파씨는파씨일뿐,파씨로서발생하고부단히파씨가되고자노력하면서사라질뿐”이라고선언하는주인공파씨혹은작가,언어혹은소설의시작에관한인상적이고매혹적인이야기가이작품에담겨있기때문이다.‘파씨의입문’이란제목은그러므로황정은이라는이름의소설세계의선언이기도하고그세계로의초대이기도하다.어떤이들에게는아직낯설어보일수있겠지만,그매혹에이끌려초대를받아들이고‘파씨’의세계로‘입문’하는독자들에게는,단언코오래오래잊을수없는경험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