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내성적인 1(큰글자도서)

지극히 내성적인 1(큰글자도서)

$19.00
Description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정화의 첫 소설집. 일상 속의 균열과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작가 최정화가 등단 이래 활발한 활동으로 쌓아온 열편의 소설이 묶였다. 온전해 보이는 세계 안에 스며 있는 불안의 기미를 내성적인 사람들의 민감한 시선으로 날렵하게 포착해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자세가 야무지고 미덥다.

소설집의 표제를 제공한 작품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극대화된 작품으로, 시골에서 집을 구해 여름 한철을 보내며 작품을 쓰는 소설가와 그 집주인 미옥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최정화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 현실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길 바란다"고 썼다. "하다못해 앞서 걷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여 가던 길을 멈추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소설을 통해 무뎌진 감각을 세련하고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문학의 오랜 소명일 것이다. 그 감각을 깨우러 최정화의 소설이 우리에게 왔다.
저자

최정화

생태환경문화잡지사〈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살림지기로근무하다가2012년『창작과비평』신인소설상에「팜비치」가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6년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2016년녹색연합에서제작한영상캠페인〈너와나의설악산이야기〉에참여했고,2019~2020년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소식지인『초록숨소리』에환경만화를그렸다.2022년희망제작소에서〈없이살기:냉장고,세탁기,인터넷,화학제품과새옷없이사는삶에대해〉라는주제로강연했다.소설집『지극히내성적인』,『모든것을제자리에』,『오해가없는완벽한세상』,중편소설『부케를발견했다』,장편소설『없는사람』,『흰도시이야기』,『메모리익스체인지』,에세이『책상생활자의요가』,『나는트렁크팬티를입는다』등을썼다.접기
수상:2012년창비신인소설상
최근작:〈비닐봉지는안주셔도돼요〉,〈오해가없는완벽한세상〉,〈세상이멈추면나는요가를한다〉

목차

구두
팜비치
오가닉코튼베이브
틀니
홍로

출판사 서평

최정화의소설로일상이미세하게떨리기시작한다
내면의불안과관계의균열을포착하는최정화의섬세한감각

최정화의소설을읽고나면우리의평온했던일상이미세하게떨려오기시작한다.예민한감각을가진소설속주인공들은공통적으로불안한내면을다스리지못하고균열된관계를해소할수없어괴로워한다.그들은별로중요할것같지않은한가지생각에끝없이골몰하기도하고,원인을알수없는관계의삐걱거림을회복하지못해극단으로치닫기도한다.가사도우미면접을보러온여자가안주인자리를위협한다고느끼는주인공([구두]),끊임없이자신의처지를불안해하며새로운것을배우고탐닉하지만여전히악몽을꾸는아내([오가닉코튼베이브]),한때는완전무결한존재였으나사고로앞니여섯개를잃고틀니를하게된남편을무시하게된여자([틀니]),계약으로맺어진애인관계가친구들에게들통날까봐노심초사하는남자와그의심을일축시키기위해감쪽같은거짓말로상황을모면하려는여자([홍로]),임신한십대딸아이를바라보며혼란스러워하는아빠([타투]),인테리어소품으로산하이데거의책을읽어내기위해고군분투하는아내([파란책]),좁은집에사는이웃이신경쓰여집을바꿔주려고갖은궁리를하는소심한남자([집이넓어지고있어])등이소설집에등장하는인물들은"열등감이나죄책감,피해의식때문에다른사람들을조금씩불편하게만드는존재들이다"(강경석해설).하지만이면면에는어딘지나와닮은,혹은나만이알고있는나의모습들이엿보이기도한다.

누군가는내가너무쉽게과거의불행을잊었다고생각할지도모르지만우리의인생에서더낫거나덜한것이있을까.그때원했던것과지금원하는것,그때충족되지못했던것과지금충족되지못한것이있을뿐이다.평수는작더라도내집한칸마련한다면바랄게없을것같던시절이있었고,아이가병치레를할때는그저아무탈없이완쾌하는것이유일한소망인때도있었다.하지만이층짜리주택에살면서아들녀석의성적이기대에못미쳐못마땅해할때,건강하게만자라달라고되뇌던간절한바람은대체어디로사라져버리는걸까.술에취한상태에서별거중인전처에게전화를걸때면나는통화버튼을백번도넘게눌렀다.그때는그녀가전화를받지않는것이내가세상에서완벽하게실패했다는증거였다.([대머리])

최정화는예민한것을듣고느끼는재주를타고났다."뒤축의굽이다닳아서현관바닥의타일과부딪치며울리는짜랑짜랑한마찰음"([구두])을들으며불안을감지하고"턱없이값이부풀려진선물세트를고르"([대머리])는옛직장동료의모습에서인생후반부의좌절과외롭고고단한미래를읽어낸다.하나의사물이나사건에스며든여러사연,그리고이를넘어우리시대의불안을예리한감각으로포착하는최정화의탁월한능력은작품곳곳을지배하며"개인의불안에침잠하는게아니라세계의불안과마주하"(심사평)게한다.

여자가벗은구두는축이망가져서제대로서있지못하고약간비뚜름하게놓였습니다.산지적어도오년은지나보이더군요.부도가나서지금은사라진,그러나그당시에는꽤나유행하던브랜드의상품으로매우세련된디자인이었어요.하지만발볼을둘러싼가죽은잔뜩늘어났고발등에달린금속의술장식은녹이슬어있었습니다.집을나서기전솔질을했는지다른부분은광택이났지만구두코는다해져서허연속가죽이드러날만큼닳아있었습니다.일부러연민을불러일으킬생각으로신은게아니라면여자가경제적으로딱한처지라는것은쉽게짐작할수있었습니다.([구두])

발바닥밑에서는계속해서간질간질하면서도타오를것같은열기가꿈틀거리고있었다.그는자기가발에심장하나를더갖게되었다고믿었다.(...)그는힘겹게한발을내밀고나서는사람들이기억나지않는단어를기억해내려고애쓸때처럼모든기력을동원해또한발을내밀었다.왼쪽발바닥이지면에닿을때면끔찍한진실이라도알게된것처럼소스라치듯놀랐다.그는그렇게절뚝이며걸어나갔다.그는마치세상에저홀로이단의신앙을가지게된자처럼외로웠다.([팜비치])

소설집의표제를제공한작품[지극히내성적인살인의경우]는소심하고‘내성적인’인물들의내면심리가극대화된작품으로,시골에서집을구해여름한철을보내며작품을쓰는소설가와그집주인미옥과의이야기를그리고있다.화합될수없던두인물의관계가가까워졌다다시멀어지는과정을통해미옥의집착과피해의식이그녀의손에종이칼을쥐게만드는데,‘내성적인살인’으로까지가게될지결과조차우연에맡기거나상대에게전가하는미옥의태도는섬뜩하게다가온다.이는타인과의관계속에서우리가막연하게느끼게되는적개심이거나관계망에서벗어나홀로된개인이겪는공통된고립감과도무관하지않을것이다.

뭘까요?대체왜그렇게말했을까요?그책은나를위한책이고선생님도내내나를잊지못했다는걸잘알고있는데어쩌자고다른친구를불러내어나의존재를감추려고하는걸까요?내실수에대한복수인걸까요?나를영영용서하지않겠다는걸까요?동생이선생님과나사이를오해라도했던걸까요?그것도아니면,나를완전히잊어버린걸가요?설마기억에도없는걸까요?아니면애초부터,함께지내던시절에도나따위는안중에없었던건가요?난그저집주인일뿐이고선생님은손님이었을뿐인가요?([지극히내성적인살인의경우])

최정화는‘작가의말’에서자신의독자들이"소설을읽는동안잠시현실을떠났다가,다시현실로돌아왔을때무언가달라진점이있길바란다"고썼다."하다못해앞서걷는사람의걸음걸이에이상하게자꾸신경이쓰여가던길을멈추기라도했으면좋겠다"고.소설을통해무뎌진감각을세련하고삶에변화를일으키는일은문학의오랜소명일것이다.그감각을깨우러최정화의소설이우리에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