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랏골의 비가 2(큰글자도서)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 2(큰글자도서) (송기숙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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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77년에 출간된 이래 오랫동안 민중문학의 전범으로 자리매김해온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송기숙은 한국 현대사의 엄혹했던 시절과 정면으로 맞서온 작가이다.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으며, 깊이있는 역사의식과 토속적인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긴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족문학의 중추역을 담당해왔다.

그의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는 3.1운동 전해(1918)부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4.19혁명(1960)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한 촌락이 겪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민중문학의 역작이다. 이번 개정판은 옛 표기를 바로잡고 장정과 디자인을 새로이 하였다.

작품의 배경은 전라도의 어느 벽지인 '자랏골'이다. 순박하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자랏골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제일가는 유지인 이양문 일가의 존재이다.

이양문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의 비호 아래 위세를 떨치고, 해방 이후엔 자신이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대왔다는 거짓말과 국회의원 아들의 위세에 힘입어 자랏골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자랏골 최고의 명당자리에 이양문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저자

송기숙

1935년전남완도에서태어났다.전남대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으며,1965년과1966년『현대문학』에각각평론과소설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민주화운동과교육운동에치열하게참여하여두차례옥고를르기도했으며,분단현실과민중의삶을깊숙이파고든중량있는작품을속속발표하며민족문학의중추역할을감당해왔다.소설집『백의민족』『도깨비잔치』『재수없는금의환향』『개는왜짖는가』『테러리스트』『들국화송이송이』,장편소설『자랏골의비가』『암태도』『은내골기행』『오월의미소』,대하소설『녹두장군』,산문집『녹두꽃이떨어지면』『교수와죄수사이』『마을,그아름다운공화국』,민담집『보쌈』,어린이청소년도서『이야기동학농민전쟁』『보쌈당해서장가간홀아비』등을지었다.목포교육대국어교육과및전남대국문과교수,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장,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의장,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및상임고문,5.18연구소장등을역임했다.현대문학상,만해문학상,금호예술상,요산문학상,동학농민혁명대상등을수상했다.2021년12월향년87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자랏골의비가2/작가의말/초판후기

출판사 서평

1977년에출간된이래오랫동안민중문학의전범(典範)으로자리매김해온송기숙장편소설『자랏골의비가』가새롭게출간되었다.송기숙은한국현대사의엄혹했던시절과정면으로맞서온작가이다.치열한민주화운동의중심에섰으며,특히동학농민운동을장구한이야기로풀어낸대하소설『녹두장군』,광주민중항쟁을다룬장편『오월의미소』등깊이있는역사의식과토속적인우리말의아름다움이담긴다수의뛰어난작품들을선보이며민족문학의중추역을담당해왔다.그의첫장편『자랏골의비가』는3·1운동전해(1918)부터일제치하와한국전쟁을거쳐4·19혁명(1960)에이르기까지남도의한촌락이겪은수난과항거의역사를기록한우리민중문학의역작이다.옛표기를바로잡고장정과디자인을새로이한이번개정판은그의소설을탐독해온오랜독자들은물론젊은독자들에게도커다란재미와감동을선사할것이다.

치열한역사의식으로풀어낸현대사의진경들

작품의배경은전라도의어느벽지인‘자랏골’이다.순박하지만평생가난의굴레를벗지못하고살아가는이들이이마을을지키고있다.이들의삶을더욱피폐하게만드는것은,자랏골은물론인근지역의제일가는유지인이양문일가의존재이다.이양문은일제치하에선일본의비호아래위세를떨치고,해방이후엔자신이독립운동자금을비밀리에대왔다는거짓말과국회의원아들의위세에힘입어자랏골을쥐락펴락하는인물이다.소설은자랏골최고의명당자리에이양문이자기어머니의묘를이장하면서벌어지는갈등을중심축으로삼는다.

낮은산줄기하나가마을한가운데로흘러내려오다가자라대가리처럼고개를쳐든바로그대가리부분에,양문이묏등이논두어마지기요량의널찍한묏벌을꽃방석처럼깔고덩실하게솟아있는것이다.그묏등의양쪽과앞뒤에는사람사는집들이임금주변에국궁한신하들의조심스러운몸가짐으로숨을죽이고엎드려양문이묏등의위세를돋우고있었다.
사실자랏골안통은오로지이묏등을위해서있는것같았다.

대대로한데어울려살아온자랏골의주민들로서는동네를굽어보는명당에사욕을위한묘가자리잡는다는사실을받아들일수없었던것인데,이갈등은현대사의중요한길목마다끊임없이불거진다.일제시대엔묘의이장에반대하는이들을일본헌병과순사들이잔혹한폭력으로진압하고,한국전쟁때는이묘가국군과인민군이아귀다툼을벌이는구실이되며,전후자유당독재시기에이르면이양문과마을주민간의뿌리깊은불신과증오의상징으로기능한다.

“큰소리로외쳐요,큰소리로!자,반동의묏등박살을내자!”
반동의묏등이아니고자랏골사람들을박살을내겠다는서슬이었다.
“반동의묏등박살을내자!”
뒤죽박죽인대로아까보다소리는조금맞았으나,놈들의시퍼런서슬에비기면장마에흙담무너지는소리였다.
“정이러기요?다한번죽어보겠소?다한번죽어보겠어?”

결국이모든이야기는이양문과그들을비호하는세력으로부터가족을잃은젊은세대의준엄한저항을야기한다.묘의혈자리인바위를파버리려는마을이장종수와,그보다더욱대담한계획을준비하는선찬이의존재는끝내,밝아오는4·19혁명과함께자랏골에희망을드리운다.

“아니,이승만이가대통령자리에서물러났다는소리여?”
“학생들이들이닥치는통에별조화없이물러났다는마.”
“허허.저무지한양문이묏등을어긋내는장사가있등마는이참에는이승만이를몰아내는장사가있단말이여?”

작가는결정적인대목에서는직접개입해서역사의식을드러내는과단성을보이기도하지만그와중에작품의일관된분위기와해학성을잃지않는다.더불어수십년세월을그리면서도순차적흐름에따르는손쉬운방식에서벗어나시간적배경을자유로이넘나드는구성은이작품이35년전에쓰였다는사실을어느새잊게할정도로탄탄한짜임새를보여준다.

가진것이적으면적은대로,인생이초라하면초라한그만큼,저마다한몫씩저저금의제인생이있는것이고보면,함박쪽박속에서도오롱조롱소리가나는것,다제가지닌제인생의제분수대로다한몫씩은해방의터질듯한환희와감개가있었다.

구수한언어와다양한인물들이선사하는탁월한재미

『자랏골의비가』에시종일관쓰이는토속적인언어는이작품의가장중요한특장이라할수있다.남도의구수한사투리를고스란히담아낸대화는그자체만으로도어느소설에뒤지지않는탁월한재미를선사한다.적재적소에활용되는속담들역시이러한개성을배가한다.실상은무척이나답답하고비극적인현실을다루고있음에도이소설이그무게에짓눌리지않고다분히유쾌하고흥겹게읽히는가장큰원동력은바로이러한우리말,혹은방언에대한작가의장인에가까운집념에있다.

사람이랏것이세상에나와갖고사대육신이썽썽해사개똥밭에서이슬을받아묵고궁글어도그것이사람이제,소리듣는귀가그것이귀창이터져부렀으먼사람이그것이사람일것이여?손바닥으로쌔려봐도앵소리만나고소리는통안들려.그런께금매그잡아죽일것들이총을쏘드래도사람덜이쪼깐덜놀래게,아니멀리사람있는것봐감시롱쏴도쏴사쓸것아녀.시방도먹먹하그마.

인물들의다양한면모또한『자랏골의비가』의재미를더욱풍성하게해주는요소이다.자랏골주민들을탄압하며평생호의호식하는이양문일가와대다수의순박한‘무지렁이’들이큰대비를이루는가운데,작가는그안에서도어느누구하나허투루보기어려울만치꼼꼼한애정으로인물들을형상화하고있다.똑부러지고강단있는종수와왠지모를미스터리한면모로극적인결말을이끌어내는선찬이,동학농민운동에참여했다마을에숨어든고당영감,힘과기개가대단한용골영감과그아들곰영감,엘리트대학생신분을포기하고독립운동에뛰어든김태율,자랏골을부흥시키려다되레사고를치고마는다혈질문길,이양문의묘지기로생존을위해밉살스러운언행을마다않는질천이,그리고그자리를은밀히청탁하는덕재영감이나추석장을보러갔다얼결에야바위꾼에게사기를당하는텃골댁,동네바보해룡이에이르기까지저수많은인물들은제각각의흥미로운사건들과함께생생히살아나이소설을한층다채롭게한다.또한이러한면모들은『자랏골의비가』가비단문학의영역에그치는것이아니라지난시대민중의생활사에대한기록적인성격까지지니게한다.

끝심이는어제이옷을사와서부터혼자몇번이나꺼내서만져보고볼에비벼보고했는지모른다.이옷을입고사람들앞에나서면사람들이뭐라고할것인가.모두가자기만쳐다보고부러워할것같아한없이자랑스럽고,그대로날개라도달린듯훨훨날아갈수있을것같았다.사람들이너무자기만쳐다보며부러워할것같아속이상할것같기도해서안절부절잠을설쳤다.그러나그렇게여러가지로생각하는중에서도사람앞에서만그럴것이라고생각했었는데,햇살아래서까지이렇게황홀해서그만감당을할수가없었다.

민중문학의장쾌한감동

한편이이야기는단순한선악의대비로만규명할수없는데,권력과부를가진자들의폭력과억압에분노하면서도다시한꺼풀의획책에의해결국그자리를벗어나지못하는하층민들의아둔함이라든지,그들의소시민성에의해조장되는내부갈등,이질적인계층에느끼는실체가불분명한불신과증오등에대한때로조소에가까운묘사는전근대적인시기의자랏골이라는가상의공간을넘어지금의우리에게도시사하는바가크다.

이렇게술자리가어느만큼어우러지는것을기다렸다가이공도는한마디부탁을했다.내일부터대밭을치겠다며동네사람들이모두나서서,동네에울력났다생각하고하루쯤품을내주면양문이가대단히감사하게생각할것이라고했다.묏등쓰는것을부당하게여기는쪽에서따지면,안뒷간에뒤보려고안아가씨더러거적문열어달라는소리였으나,모셔들이기로작정하는쪽에서보면,기왕맞아들일때는손잡아맞는것이인사가아니겠느냐고할수있었다.굴풋하던판에푸짐하게막걸리를한잔씩마시고난사람들은그렇다마다해야고맞장구를치고나왔다.

하나의작품이“민중문학의모범적인사례”(진정석,추천사)가되기위해선그안에당대현실의모순들을포착해내는날카로운통찰력과그에조응하는실천적인의식,그리고뛰어난문학성이동반되어야할것이다.여기송기숙의삶과그의문학이바로그러하다.그자신의말처럼“민중의삶과말,그리고역사를문학으로담아내고자”(‘작가의말’)한송기숙의작품들은지금까지그래왔듯앞으로도오래도록우리곁에살아숨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