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계절 (양장본 Hardcover)

잃어버린 계절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나는 조용히 네게 맥주를 권하고
초록의 유품인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다”

재일 조선인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김시종의 계절 시편
까칠까칠한 언어, 찢어진 호흡, 낯선 서정을 만나다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운명에 맞서며 평생 치열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김시종 시인의 시집 『잃어버린 계절』이 번역 출간되었다. 철학자 이진경과 한국문학 연구자 카게모또 쓰요시의 공동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완역본이다.
김시종 시인은 제주 4·3항쟁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1949년 일본으로 탈출하여 오오사까의 재일 조선인 거주지 이까이노에 정착한 뒤 줄곧 일본어로 시를 써왔다. 시인에게 일본어는 자신의 감성과 의식 체계의 밑바탕이 되는 모국어나 다름없는 언어였다. 그러나 스스로 ‘일본어에 대한 보복’으로 문필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듯이, 그의 시는 일본식 문체가 아닌 데다가 반일본적 서정이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일본 문단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기도 했으나, 이후 마이니찌출판문화상(1986),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1992), 타까미준상(2011), 오사라기지로오상(2015) 등을 수상하고 최근 ‘김시종 컬렉션’이라는 제목의 저작집이 출간되는 등 주목받고 있다.
『잃어버린 계절』의 옮긴이들은 ‘일본식 서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낯선 어법을 구사하는 저자의 일본어를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기 위해 각별히 애를 썼으며, 해설에 가까운 ‘옮긴이의 말’을 통해 김시종의 문학적 삶과 독특한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했다.
저자

김시종

1929년부산에서태어나제주도에서자랐다.1948년4·3항쟁에참여했고이듬해일본으로밀항해1950년무렵부터본격적으로일본어시를쓰기시작했다.재일조선인들이모여사는오오사까이꾸노에서생활하며문화및교육활동에적극적으로참여했다.1986년『재일의틈새에서』로제40회마이니찌출판문화상을,1992년『원야의시』로오구마히데오상특별상을,2011년『잃어버린계절』로제41회타까미준상을수상했다.시집으로『지평선』(1955),『일본풍토기』(1957),『장편시집니이가따』(1970),『이까이노시집』(1978),『원야의시』(1991),『화석의여름』(1999),『잃어버린계절』(2010)등이있다.

목차

여름


마을
하늘
어금니
여름
빗속에서
시퍼런테러리스트
기다릴것도없는8월이라며
읽어버린계절

가을


여행
창공의중심에서
조어(鳥語)의가을
전설이문(傳說異聞)
희미한전언
두개의옥수수
녹스는풍경
여름그후

겨울


이토록멀어져버리고
나뭇잎한장
뛰다
겨울의보금자리
구멍
수국의싹
사람은흩어지고,쌓인다
그림자는자라고


이무명(無明)의시각을
귀향
바람에날려저멀리
목련
이어지다
언젠가누군가또
4월이여,먼날이여
봄에오지않게된것들

시인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김시종을읽는다는것은
그것을읽는나의서정과대면하는일이다

『잃어버린계절』은2010년에출간된시인의일곱번째시집으로,계절별로8편씩모두32편의시가실려있다.제41회타까미준상수상작이기도한이시집은원서에붙은‘사시(四時)시집’이라는부제만보면사계절을제재로하여자연을노래하는서정시로읽히기쉽다.그러나실제안에담긴것은자연을찬미하는부드럽고평화로운서정이아니다.시인은“삶의밑바닥에앙금처럼”(「구멍」)남은잃어버린시간들을되살려내어자연과인간을다른무엇으로대면하고자비극적삶과타인의고통을성찰하는서정,곧‘서정에반하는서정’(옮긴이의말)에가닿는다.여기서우리는평생서정과대결해온시인이이시집의제목을‘김시종서정시집’이라고하려다민망해서그만두었다는말을또렷이이해해야한다.
시인은녹슬어가는일상의시간을바림질하며빛바랜영상으로남아있는‘멈춘시간’들을현재속으로불러내어“스스로시간의출구”(「녹스는풍경」)가되어간다.돌아갈곳을잃었으나“어디서살든죽지않는한사람은살게마련이다”(「잃어버린계절」)라는시인의외침은자못처연하게들려온다.갈곳없는삶에도계절은어김없이피고질것이고,“다시는돌아갈수없는나라일지라도/도달할수는있을터”(「귀향」),그리하여시인은고요한마음의지평,“끝없는꿈의대지”(「여름그후」)를찾아나서는것이다.
구순(九旬)의나이에“지금나는/부도덕할만큼살찐놈”(「어금니」)이라는깨달음속에서시인은“이제야알게된나의어리석은60년”(「여름그후」)을곱씹어본다.그리고거기에있다는것조차잊어버릴만큼사소한존재들에게촉촉한시선을던지면서,아득하게멀리있고이제는오지않게된것들과우리가매일잃어버리지만“결코미미하다할수없”(「봄에오지않게된것들」)는것들에대해쓴다.파편처럼깊이박힌쓰라린기억들을되새기며,조국을빼앗았던식민종주국의언어로시를써온노시인의회한과“누구도밀쳐낼수없는/깊은우수”(「마을」)가서린시들이오래도록가슴을울린다.

옮긴이의말

이시집에붙인‘사시(四時)시집’이라는부제는사계절을따라자연과인간의서정을노래하려는듯한인상을준다.그러나이시집에서읽게되는것은사계절로상징되는자연과인간의삶을,‘잃어버린계절’이라는제목처럼시간을거스르며‘잃어버리고’이미잃어버린,그러나잊을수는없었던멈춘시간을통해계절의시간을,자연또는인간을다른어떤것으로대면하려는시적긴장이다.자연스러운서정의내부로들어가그서정을멈추고교란하려는반서정적서정시이다.
(…)
『잃어버린계절』은평상시에는거기에있는지누구도모를만큼작은존재에시선을던지면서,동시에생활의장을그밑바닥까지내려가는수직의시선을통해아득하지만인접한거리를바로‘내’가서있는그곳에서보여준다.매우가까운곳에있는아득한것,혹은아득히멀리있는가까운것의역설적감각은있어도보지못하는것,또한보지못해도있음이분명한것들을지각하는감각을준다.그것은수직적시간의경험과더불어우리의삶을밑바닥에서흔드는것이다.

2019년여름
이진경ㆍ카게모또쓰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