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리학을이끈방향타이자동아시아주자학의교과서
이황은1501년(연산군7년)에태어났다.그다음해부친이세상을떠나고숙부이우의보살핌과지도를받았는데숙부마저이황이17세때세상을떠나면서그뒤로는특정한스승없이혼자서공부를이어갔다.성균관에서공부했으며34세에문과에급제했다.1543년『주자대전』간행시에교정을맡았으며그뒤로『주자대전』을새롭게고증하여그주제를정확히규명하는실증적연구를이어갔다.특히주희의문집전체를통독한뒤『주자서절요』를펴냈는데,이『주자서절요』는당대동아시아주자학의주요교과서처럼쓰였고,이황의이론은이후조선이학을이끄는방향타가되었다.
벼슬에는큰뜻이없어명종이여러차례불렀을때에도얼마간조정에서일하다가다시귀향하기일쑤였다.1567년에는명나라사신을응대하는제술관에임명되어명사신들에게한반도를대표하는유학지식인들(우탁,정몽주에서부터조광조와서경덕에이르기까지)을소개했다.뒤이어선조대에도왕의부름을받고조정에서일하며당시조정의급선무를정리하여「무진육조소」를올렸다.또한『성학십도(聖學十圖)』를올려군주가사적인욕망을자제하기위해일상에서항상성학(聖學,성인이되는학문)을갈고닦을것을당부했다.
이황이유학연구와실천에매진했던때는중국에서는양명학이,일본에서는불교가성행하던때였다.이황은당시유행하는중국양명학에맞서정통주자학의입장에서인간의본성을해명하고실천했다.이황이론의핵심은“선학(禪學)처럼인륜의마음을깨닫고각성하는것이아니라,외물이오면응대할수있게인륜의이치가온전하게갖추어져있는마음의상태를잘견지하는것”(18면)에있었다.이내용을담은『연평답문』은특히일본에서이학을전파하는데에주요한근거가되었다.
1555년귀향한뒤로이황은본격적으로주희의편지중에서여러이론적쟁점및정론이되는부분을선별했다.이작업은단순히『주자서절요』와『자성록』이라는해설서를펴냈다는결과를넘어,이론을실천으로전환해내지못하는이황자신의내적간극을좁히는노력이었다는점에서그에게큰의미가있다.이처럼지식을축적함과동시에실천을통해인격의성숙을꾀하는시도는당대동아시아유학자들에게절실히다가왔고,자연히『주자서절요』와『자성록』은당대유학자들의주요교과서로자리매김했다.
이황은성균관에서공부하던시절에접한『심경부주』를통해『심경』을평생수행의지침으로삼기도했다.이또한조선유학자들의또다른지침이되어,이후조선에서는『심경』을공부함으로써이학의심법(心法)을실천하는것이일상화되었다.“『심경』은당사자에게는자신의마음을요순의마음과같게하는성학(聖學)의지침이되고,임금을향해서는요순같은성군으로인도하는격군(格君)의지침이되며,백성을위해서는요순처럼백성을친애하는안민(安民)의지침이되었다.”(20면)
이황은유년시절부터이(理)에대해깊이관심을가졌다.12세때숙부에게“무릇사물에서옳은것이이(理)인가요”라고묻고자신의오랜의문을해소했다는일화는유명하다.뒤이어공부를이어가면서인간의본성이사단(四端)과칠정(七情)으로발현되는과정을이(理)와기(氣)로설명하는문제를연구했다.이같은성찰은기대승과의서신왕래를통해8년에걸쳐논변으로전개되었고,이것이바로이른바사칠논변,사단칠정논변이다.특히서경덕의제자인이구가체(體)와용(用)이어떤실체가아니라추상적개념이라고제기했을때에이황은이(理)자체가구체적인실체〔體〕이며사물에서발현될때에용(用)이된다고주장했다.이같은사칠논변은조선후기내내유학자들에게회자되며유학이론을근본적으로성찰하게하는단서가되었다.이황의업적중에서는서원의중흥을꼽지않을수없다.이책에서는서원과향약에관련한이황의글가운데,그가백록동서원의사액을요청했던글과이산서원의학규,역동서원의건립을기념하여쓴글,향약조례,그리고향회에서나이를기준으로자리를정해야한다고밝힌글등을뽑아수록했다.
시대를넘어학파를넘어,조선유학의에토스가되다
이황은자신의죽음이후에자신에대한과장된평가를막기위해직접본인의일생을정리해두었다.이책에는이황이만년에적은「도산기」와「도산잡영」을비롯하여「자명」「고종기」「유계」를수록했는데,이는죽음을맞이하는대학자의실제모습을생생히엿볼수있게해줄뿐아니라,현실의어려움을감내하면서학문을즐기는‘지식인의한전형’을선보이기도한다.이황을‘조선의에토스’그자체로평가해도손색없는이유가여기에있다.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
‘전환’이라는강력하게실천적인과제는우리모두에게다른삶의전망과지침이필요하며,전망과지침으로살아작동할사상이절실함을뜻한다.그런사상을향한다급하고간절한요청에공명하려는기획으로서,창비한국사상선은한국사상이라는분야를요령있게소개하거나새롭게정비하는평시적작업을넘어어떤비상한대책이기를열망하며구상되었다.(「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에서)
서구사상은오랜시간세계지성계에서압도적발언권을유지하는한편오늘날의위기에대해서도이런저런대응을내놓고있다.그럼에도그강력한위상의이면에강고한배타성과편견이작동하고있음은이제주지의사실이다.사상적인면에서도서구가가진위상은돌이킬수없이상대화되었고보편의자리는진실로대안에값하는사상들의분투에열려있다.이시점이야말로유·불·선의회통이라는특유의사상적기획이나최제우,박중빈의개벽사상등으로한국사상이전지구적과제를향해독자적인목소리를보태기에더없이적절한때일것이다.이황을포함하는창비한국사상선사상가들의사유에는역사와현실을탐문하며새로운삶의보편적전망을구현하려한강인한실천성,그리고사회를변혁하는일과개개인의마음을닦는일이진리를향한단일한도정에있다는깨달음이깊이새겨져있다.한반도의경험과지혜가응축된사상적활력을드러내는창비한국사상선이문명전환의개벽적인사유와실천의지평을열어가는데의미있는밑거름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