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개벽사상을정초한이름들,최제우·최시형·강일순
수운최제우는1824년태어나퇴계영남학파의학통을계승하고있던부친최옥으로부터유학을배웠다.어려서부터출중한글솜씨를가졌음에도재혼한어머니의자손이라는이유로과거에응시할수없었고,이일은최제우가조선사회의모순을깨닫고동학을창시하는데영향을미쳤다.생애내내유학을공부했으나이는선친의정통유학계승보다는‘유학극복’의공부에가까웠다.17세에부친이세상을떠나자상심에빠진그는21세가되던해에방랑길에나선다.이후10년간한반도백성들의삶저변을관찰하고,서학(천주교)이침투한민간의풍토를면밀히살핀다.이때의경험을통해최제우는조선의지배질서유교체제를탈피하는사상적대전환이필요함을절감한다.
그뒤로서학을접하면서그교리를공부하면서도,최제우는자신이품은시대적고민을말끔히해소하지못했다.그는서양의기독교가하늘과인간을각기분리된것으로보는이원론적세계관을가졌음을비판하며서학과는다른자신만의생각을차근차근다져간다.그러던중37세가된1860년에‘내림체험’(강령,계시체험)을겪으면서‘하늘님’으로부터천도(天道)와함께21자주문과영부(靈符)를받는다.최제우는그때받은주문과영부를토대로백성들을이끌고덕을펼치는활동을벌인다.신분차별을없앤평등의공동체,빈부를가리지않는상호부조의공동체등을내세웠는데,이같은포덕활동은당시처참한삶을영위해가던백성들의마음을단번에사로잡는다.이책에서는최제우의『동경대전』을실으면서동학사상의정수라고할수있는시(侍,모심)정신을소개한다.시란인간이각자의영성을확립하면서이웃과사회와영적으로일체가되는경지를지향해야함을가리킨다.
해월최시형은1827년태어나어려서부모를잃고가까스로생계를유지하며살다가35세되던1861년에동학의소문을듣고입도한다.그뒤로최제우로부터직접지도를받으며신비체험을겪은뒤포교활동에나선다.최제우가퇴계유학을학문적기반으로삼았던것과는달리,최시형은학문을제대로닦은적이없었던터라백성들의눈높이에서주문수련을중심으로동학을포교했다.그러다가최제우가관군에잡혀목숨을잃고그의자제들까지세상을떠난뒤로최시형중심의단일지도체제가세워진다.최시형은기존의강원남부,충청북부산악지대중심의포교활동범위를충청남부와전라도까지넓히는개가를올렸다.
그러나이때부터나라의탄압은더욱거세졌고교도들의수난이격화되자,최시형은교조신원운동(교조최제우의원한을풀자는내용의합법적시위)을펼치며동학농민혁명의불씨를피우기시작한다.그는최제우의시정신을모태로한‘시천주(侍天主,모든사람이자기안에하느님을모신다)’사상을펼치며평등한세상을만들자고호소했고이는삼경(三敬,경천·경인·경물)사상으로체계화된다.백성의일상속에평등한영성을심고자했던최시형의노력은이책에실린『해월문집』의「을유통문」「무자통문」「임진신약」「임진통문」등에서확인할수있다.
증산강일순은1871년동학농민혁명의진원지인고부에서가난한양반가문의후손으로태어났다.서당에서학문에재능을보였으나집안형편상학업을이어갈수없었고,24세가되던해에동학농민혁명을참관한다.혁명이좌절된이후에는백성들의원한을풀고그들이원하는이상사회를이룩하자는내용으로수련을거듭한다.그러다가31세가되던1901년에계시를받고진리를깨달은뒤에1909년39세의나이로세상을떠날때까지‘백성들의원한을푸는’활동을이어간다.
강일순은‘일찍이하늘에서최제우를지상으로파견하여세상을구원하도록했으나그뜻이제대로이뤄지지않아자신이직접이땅에하강했다’고주장한다.다만그는기존의동학처럼교도들을체계적으로조직하지않았고,제자들을양성하지도않았으며,오로지탈제도적이고민중적인‘천지공사’라는종교행위를벌여갔다.특히기존가부장사회에서억압을받아온여성들의묵은원한을푸는일에큰관심을두었다.경직된유교윤리의폐해를비판하는것을넘어,음(陰,여성)이조화와통일,상생과화해의바탕이되는세계를제시한바있다.그가살았던20세기초인민들의기준에서는대단히선진적이고획기적인제안이아닐수없다.
한반도를토대로한고유의종교이자변혁사상
편저자박맹수는이책에서기존의동학연구가미처살피지못한부분을정확한사실관계를통해되짚었다.예를들어지금까지최시형이그다지주목받지못했음을지적하며기존의오해를해명하고(28~30면),증산강일순의사후교파가다양해지면서증산의행적과가르침에대한이해가크게엇갈리는점등을언급(39~41면)한다.이같은정밀한고증과연구를기반으로최제우,최시형,강일순의저술을정리하여소개했으며,이로써한반도후천개벽사상이라는하나의흐름을일목요연하게정리해냈다.이책은한국의여러사상적천재들중에서도외부로부터유입된학문과종교에귀의하지않고바로이곳한반도를토대로고유의철학을창조한개벽사상가들의삶과생각을한눈에파악할수있는맞춤의자료가될것이다.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
‘전환’이라는강력하게실천적인과제는우리모두에게다른삶의전망과지침이필요하며,전망과지침으로살아작동할사상이절실함을뜻한다.그런사상을향한다급하고간절한요청에공명하려는기획으로서,창비한국사상선은한국사상이라는분야를요령있게소개하거나새롭게정비하는평시적작업을넘어어떤비상한대책이기를열망하며구상되었다.(「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에서)
서구사상은오랜시간세계지성계에서압도적발언권을유지하는한편오늘날의위기에대해서도이런저런대응을내놓고있다.그럼에도그강력한위상의이면에강고한배타성과편견이작동하고있음은이제주지의사실이다.사상적인면에서도서구가가진위상은돌이킬수없이상대화되었고보편의자리는진실로대안에값하는사상들의분투에열려있다.이시점이야말로유·불·선의회통이라는특유의사상적기획이나최제우,박중빈의개벽사상등으로한국사상이전지구적과제를향해독자적인목소리를보태기에더없이적절한때일것이다.최제우,최시형,강일순을포함하는창비한국사상선사상가들의사유에는역사와현실을탐문하며새로운삶의보편적전망을구현하려한강인한실천성,그리고사회를변혁하는일과개개인의마음을닦는일이진리를향한단일한도정에있다는깨달음이깊이새겨져있다.한반도의경험과지혜가응축된사상적활력을드러내는창비한국사상선이문명전환의개벽적인사유와실천의지평을열어가는데의미있는밑거름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