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신규식 :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구원 - 창비 한국사상선 18

박은식 신규식 :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구원 - 창비 한국사상선 18

$22.00
Description
고국 없는 세상에서 더욱 절실해진 성찰의 계기
민족의 고통을 딛고 재생을 꿈꾸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8권 『박은식·신규식: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구원』은 격변기 구한말에 태어나 경술국치 이후에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국’을 회복할 방안을 강구했던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을 엮어낸 책이다. 박은식과 신규식은 각각 『한국통사』와 『한국혼』이라는 탁월한 민족주의 역사서를 쓴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로서, 한반도의 역사를 제대로 전승하는 것이 곧 민족을 구원하는 토대가 됨을 역설했다. 최근 정치사나 사회사 연구에서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서 ‘감정’에 주목하곤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박은식과 신규식의 역사서가 공통적으로 아픔을 증언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적어낸 통사(痛史)는 비단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격렬히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픔을 교육·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의 여러 굴종을 이겨내는 기폭제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역사이다.
박은식과 신규식 사상의 핵심, 아픔과 구원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청년기에 그는 평안도에서 지내면서 서북 지역민들이 겪어온 뿌리 깊은 지역 차별을 날카롭게 인식했다. 그뿐 아니라 보통의 백성들이 겪는 굶주림 등의 계층 간 불평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 그는 고뇌에 빠진다. “지치(至治)란 무엇인가? 인정(仁政)이란 무엇인가? 인민의 참상을 해결할 방법은 유학 안에 있는가? 인민의 참상을 해결할 의지는 정부 안에 있는가?”(17면) 그는 교육만이 현실의 난국을 타개할 방안이라고 보았다. 우선 그는 자신이 공부해온 유학에서 해법을 찾아보았고, 『주역』의 겸괘(謙卦) 편에서 과거 선현들의 지혜를 확인하고는 자신의 호를 겸곡(謙谷)이라 짓는다. 박은식이 실천성을 강조한 양명학으로 기울어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때에도 그는 각각의 인간이 마치 종교인이 된 것처럼 한 개인을 넘어 전 사회의 아픔을 절절히 느꼈으면 하고 바랐다. 그에게 지식이란 “공감하고 행동하는 앎”(18면)이었다.
이 같은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과 더불어 그가 내세운 것은 바로 ‘자강과 혁명’이다. 여기서 자강(自强)이란 ‘스스로 강자가 된다’라는 뜻이 아니라, ‘자조(自助)’ 즉 자신의 실력을 키워 스스로를 돕는 것을 넓게 의미한다. 또한 이때의 혁명이란 단지 국권의 회복만이 아니라 세계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그는 『한국통사』에서 이 같은 ‘자강과 혁명’의 인물로 흥선대원군과 김옥균, 그리고 동학당을 손에 꼽으며, 각 인물·집단이 가진 현재적 의미와 한계를 되짚는다.
각자 시대사적 과제들을 짊어지고 있던 박은식과 신규식은 중국의 신해혁명 소식에 크게 감화를 받고 상하이로 향한다. 이후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는 공동체’라는 뜻을 지닌 ‘동제사(同濟社)’라는 모임을 결성했고, 이 단체는 향후 독립운동에서 한중 연대 활동의 매개가 되었다. 박은식은 한국과 중국 간의 연대가 단시간 내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맺어온 관계 아래에 풍부히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한중 연대 의식은 그 자체로 머물고 정지하는 개념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주의에 도달해야 하는 유기적 힘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 간 연대의 극적인 장면으로는 “1921년 상해 통합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신규식과 광동 호법정부 대총통 쑨원 사이의 만남”(23면)을 꼽을 수 있다. 그해에 신규식은 쑨원을 방문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해줄 것과 당시 미·영·중·일 등이 참여하는 태평양회의에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요청했다.
신규식은 1880년 태어나 대한제국의 청년 장교로 경력을 시작했다. 을사늑약 후에 음독자결을 시도할 정도로 독립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 박은식과 마찬가지로 1911년 중국 신해혁명에 감화를 받고 상하이로 이주해 쑹자오런, 황씽, 천치메이 등 중국 혁명지사들과 교류하고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해 독립과 근대화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들을 규합했다. 그가 『한국혼』을 완성한 것은 35세 때인 1914년으로, 이 책은 ‘국가가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절절히 호소하는 역사서이다.

근대 한국사상계의 명작, 『한국통사』와 『한국혼』

이 책에 실린 박은식의 글은 문집, 교육서, 잡지, 역사물, 신문 등의 다섯가지 범주로 나뉜다. 그중 『겸곡문고』는 대한제국 초기 박은식의 글을 모은 문집으로, 사상가 박은식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간결하고 구체적인 논변이 돋보이는 글들이 실려 있다. 편저자는 이 중에서 「행하만록」과 손정현에게 보낸 세 편지(「첫번째 서한」 「두번째 서한」 「세번째 서한」)를 대표작으로 뽑으며 그 글들에 담긴 현실 인식과 개혁 사상에 주목해보길 권한다. 또한 교육서 『학규신론』은 한국 근대 교육학의 선구적인 저술로서, 박은식이 유교 지식인으로서 갈고닦아온 ‘교육자강론’의 핵심이 담겨 있다.
당대 한국과 중국의 여러 잡지에서 박은식은 단골 논객이었다. 워낙 많은 언론에서 그의 글을 실었기에 이 책에서는 그의 필명이 확인되는 기명 기사에 한정하여 선별했고, 여러 글을 ‘자강과 단합’ ‘교육과 실업’ ‘지방의 발흥’ ‘다양한 주체’ ‘유교의 혁신’ ‘중국의 현장’으로 주제를 나누어 재구성했다. 이 산문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선 박은식이 주변부의 차별과 불평등에 꾸준히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유교혁신론을 펼치며 한국사회가 도덕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여러 구체적인 행동을 벌여나갔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단순히 글로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서 더 나아가, 몸소 실천하며 하나의 사상을 물심양면 전체의 운동으로 만들어갔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한국 민족주의 역사학의 한 전범으로서, 박은식이 한국 독립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쓴 실천적 저술이기도 하다. 편저자 노관범은 이 책에 각각의 서론과 결론을 수록하면서, 독자들에게 이 두 책이 전하는 감각의 차이를 짚어가며 읽기를 권한다.
신규식의 대표작이자 강연록인 『한국혼』은 그 전문을 수록했다. 『한국혼』에서는 듣는 이의 감정에 절절히 호소하는 웅변의 힘이 진정 돋보인다.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한국 근대 역사학의 고전으로서 널리 알려진 데 비해 『한국혼』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다. 베트남의 혁명지사 판보이쩌우가 서문을 쓴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세계주의자로서 신규식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혼』에서 신규식은 한국인들이 나라를 잃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고, 진정한 공동체 회복 방안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변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립 이후에 어떤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준비하느냐이다. 그리고 그 변혁의 주체들을 아우르는 정치적 구심점은 바로 ‘민족의 시조’이고 ‘역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혼도 연대도 모두 그 깊은 곳에는 ‘아픔과 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픔과 구원’의 메시지를 경청하고 한국 근대 사상사의 흐름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는 작업은 오늘날의 한국 사상계를 성찰하고 미래의 진로를 설계하는 유익한 길이 되어줄 것이다. 1910년대 한국사상계의 명작으로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신규식의 『한국혼』을 돌아보는 까닭이다.”(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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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은식,신규식

저자:박은식
한국근대사상가이다.대한제국기에한성사범학교에서한문을가르쳤고,『대한매일신보』와『황성신문』의주필로활동했으며,서우학회와서북학회를기반으로사회운동을전개했다.일제강점기에는『한국통사』와『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집필해광복의역사의식을고취했다.대한민국임시정부제2대대통령을역임했다.

저자:신규식
한국근대사상가이다.대한제국기에무관학교를졸업하고장교로임관했으며교육과실업활동에뛰어들었다.신해혁명후중국으로망명하여동제사를조직했고중국혁명지사와교류했다.『한국혼』을집필하여민족의식을고취하였다.대한민국임시정부법무총장을역임하고국무총리를대리했다.

엮음:노관범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HK교수.근대전환기한국사상사를연구하고있다.조선후기지적전통과20세기근대학술의관계에관심을두고있다.개념사,지식사,학술사등의방법을통해한국인의사유방식을새롭게통찰하는데에서즐거움을느낀다.저서로『고전통변』『기억의역전』『백암박은식평전』『껍데기개화는가라』등이있다.

목차

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

서문
아픔과구원의사상사

핵심저작

【박은식】
1장대한제국의선비:『겸곡문고』의세계
수양과철학│가까운사람들│국가의현실│개혁의길

2장근대교육의방향:『학규신론』의세계

3장근대국가만들기:학회지와잡지의세계
자강과단합│교육과실업│지방의발흥│여성과노동자│유교의혁신│홍콩에서

4장근대역사학의현장:역사서의세계
세계사와민족사│역사서를쓰는이유│한국근대사를읽는다

5장대한민국임시정부의지도자:『독립신문』의세계
임시정부의어른│임시대통령에올라

【신규식】
1장한국국민에게고함:『한국혼』의세계

2장한중연대의추억:「비랑호반의한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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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박은식과신규식사상의핵심,아픔과구원

박은식은1859년황해도에서태어났다.청년기에그는평안도에서지내면서서북지역민들이겪어온뿌리깊은지역차별을날카롭게인식했다.그뿐아니라보통의백성들이겪는굶주림등의계층간불평등에도관심을가졌다.이같은현실앞에서그는고뇌에빠진다.“지치(至治)란무엇인가?인정(仁政)이란무엇인가?인민의참상을해결할방법은유학안에있는가?인민의참상을해결할의지는정부안에있는가?”(17면)그는교육만이현실의난국을타개할방안이라고보았다.우선그는자신이공부해온유학에서해법을찾아보았고,『주역』의겸괘(謙卦)편에서과거선현들의지혜를확인하고는자신의호를겸곡(謙谷)이라짓는다.박은식이실천성을강조한양명학으로기울어진것도이와같은맥락에서였다.이때에도그는각각의인간이마치종교인이된것처럼한개인을넘어전사회의아픔을절절히느꼈으면하고바랐다.그에게지식이란“공감하고행동하는앎”(18면)이었다.

이같은공동체의고통에대한대안으로교육과더불어그가내세운것은바로‘자강과혁명’이다.여기서자강(自强)이란‘스스로강자가된다’라는뜻이아니라,‘자조(自助)’즉자신의실력을키워스스로를돕는것을넓게의미한다.또한이때의혁명이란단지국권의회복만이아니라세계국가들과어깨를나란히하기위한혁명과도같은변화가필요하다는의미까지담고있다.그는『한국통사』에서이같은‘자강과혁명’의인물로흥선대원군과김옥균,그리고동학당을손에꼽으며,각인물·집단이가진현재적의미와한계를되짚는다.

각자시대사적과제들을짊어지고있던박은식과신규식은중국의신해혁명소식에크게감화를받고상하이로향한다.이후상하이에서활동하며‘어려운시기를함께건너는공동체’라는뜻을지닌‘동제사(同濟社)’라는모임을결성했고,이단체는향후독립운동에서한중연대활동의매개가되었다.박은식은한국과중국간의연대가단시간내에형성된것이아니라오랜시간맺어온관계아래에풍부히내재되어있다고보았다.또한한중연대의식은그자체로머물고정지하는개념이아니라더나아가세계주의에도달해야하는유기적힘이라고생각했다.당시한국과중국간연대의극적인장면으로는“1921년상해통합임시정부국무총리대리신규식과광동호법정부대총통쑨원사이의만남”(23면)을꼽을수있다.그해에신규식은쑨원을방문하여대한민국임시정부를승인해줄것과당시미·영·중·일등이참여하는태평양회의에한국과중국이공동으로대응할것을요청했다.

신규식은1880년태어나대한제국의청년장교로경력을시작했다.을사늑약후에음독자결을시도할정도로독립에대한열의가높았다.박은식과마찬가지로1911년중국신해혁명에감화를받고상하이로이주해쑹자오런,황씽,천치메이등중국혁명지사들과교류하고박은식등과함께동제사를결성해독립과근대화에대한열정을지닌청년들을규합했다.그가『한국혼』을완성한것은35세때인1914년으로,이책은‘국가가멸망한이유는무엇인가’라는주제를절절히호소하는역사서이다.

근대한국사상계의명작,『한국통사』와『한국혼』

이책에실린박은식의글은문집,교육서,잡지,역사물,신문등의다섯가지범주로나뉜다.그중『겸곡문고』는대한제국초기박은식의글을모은문집으로,사상가박은식의진면목을알수있는간결하고구체적인논변이돋보이는글들이실려있다.편저자는이중에서「행하만록」과손정현에게보낸세편지(「첫번째서한」「두번째서한」「세번째서한」)를대표작으로뽑으며그글들에담긴현실인식과개혁사상에주목해보길권한다.또한교육서『학규신론』은한국근대교육학의선구적인저술로서,박은식이유교지식인으로서갈고닦아온‘교육자강론’의핵심이담겨있다.

당대한국과중국의여러잡지에서박은식은단골논객이었다.워낙많은언론에서그의글을실었기에이책에서는그의필명이확인되는기명기사에한정하여선별했고,여러글을‘자강과단합’‘교육과실업’‘지방의발흥’‘다양한주체’‘유교의혁신’‘중국의현장’으로주제를나누어재구성했다.이산문들에서주목해야할점은우선박은식이주변부의차별과불평등에꾸준히관심을두었다는점이다.또한유교혁신론을펼치며한국사회가도덕적으로재무장해야한다고주장했고,이를위해여러구체적인행동을벌여나갔다는점도들수있다.단순히글로써자신의의견을피력하는데서더나아가,몸소실천하며하나의사상을물심양면전체의운동으로만들어갔다는점은특기할만하다.

『한국통사』와『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한국민족주의역사학의한전범으로서,박은식이한국독립에우호적인여론을만들기위해쓴실천적저술이기도하다.편저자노관범은이책에각각의서론과결론을수록하면서,독자들에게이두책이전하는감각의차이를짚어가며읽기를권한다.신규식의대표작이자강연록인『한국혼』은그전문을수록했다.『한국혼』에서는듣는이의감정에절절히호소하는웅변의힘이진정돋보인다.박은식의『한국통사』가한국근대역사학의고전으로서널리알려진데비해『한국혼』은여전히우리에게생소하다.베트남의혁명지사판보이쩌우가서문을쓴데서엿볼수있듯이,이책에서는동아시아를아우르는세계주의자로서신규식의면모를확인할수있다.

『한국혼』에서신규식은한국인들이나라를잃은원인이무엇인지를묻고,진정한공동체회복방안을제시한다.그에따르면,한국의변혁에서정말중요한것은단순히나라를독립시키는것이아니라독립이후에어떤정치공동체를어떻게운영할지를준비하느냐이다.그리고그변혁의주체들을아우르는정치적구심점은바로‘민족의시조’이고‘역사’라는것이그의주장이다.“국혼도연대도모두그깊은곳에는‘아픔과구원’이자리하고있다.‘아픔과구원’의메시지를경청하고한국근대사상사의흐름에서그역사적의미를찾는작업은오늘날의한국사상계를성찰하고미래의진로를설계하는유익한길이되어줄것이다.1910년대한국사상계의명작으로박은식의『한국통사』와신규식의『한국혼』을돌아보는까닭이다.”(32면)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

‘전환’이라는강력하게실천적인과제는우리모두에게다른삶의전망과지침이필요하며,전망과지침으로살아작동할사상이절실함을뜻한다.그런사상을향한다급하고간절한요청에공명하려는기획으로서,창비한국사상선은한국사상이라는분야를요령있게소개하거나새롭게정비하는평시적작업을넘어어떤비상한대책이기를열망하며구상되었다.(「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에서)

서구사상은오랜시간세계지성계에서압도적발언권을유지하는한편오늘날의위기에대해서도이런저런대응을내놓고있다.그럼에도그강력한위상의이면에강고한배타성과편견이작동하고있음은이제주지의사실이다.사상적인면에서도서구가가진위상은돌이킬수없이상대화되었고보편의자리는진실로대안에값하는사상들의분투에열려있다.이시점이야말로유·불·선의회통이라는특유의사상적기획이나최제우,박중빈의개벽사상등으로한국사상이전지구적과제를향해독자적인목소리를보태기에더없이적절한때일것이다.박은식과신규식을포함하는창비한국사상선사상가들의사유에는역사와현실을탐문하며새로운삶의보편적전망을구현하려한강인한실천성,그리고사회를변혁하는일과개개인의마음을닦는일이진리를향한단일한도정에있다는깨달음이깊이새겨져있다.한반도의경험과지혜가응축된사상적활력을드러내는창비한국사상선이문명전환의개벽적인사유와실천의지평을열어가는데의미있는밑거름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