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안창호의진면모를다시이야기해야할때
안창호는1878년평안도에서태어나어린시절유학을배우고2년가량신학문을익혔다.이때의경험은그가사물의이치와근본을따지는습관을들이는데큰역할을했다.유길준의『서유견문』과중국사상가양계초의책을토대로세계관을정립한그는당대조선의상황을면밀히분석하는일을최우선으로삼았다.즉안창호의“최고의스승은당대의구체적현실과정세”(20면)였던것이다.그는개화파이면서기독교도였는데,그가민족혁명의핵심적사건을이야기하면서갑신정변이아닌동학농민혁명을첫손으로꼽은것은의미심장하다.한마디로그는“개벽을향해열린개화파”(22면)였는데,그가일상에서동학의수련을연상하게하는수양을강조했고,동학의평등주의와인본주의에공감했으며,한반도신종교에두루열려있었다는사실이그점을뒷받침한다.
평생실속과실천을강조한이답게,안창호는독립운동기간내내탁월한재정실무자로“자립에기초한물적토대의확충”(24면)을중요시했다.다음과같은연설속에담긴경제관념을보자.“임시정부가한일이무엇이오?동아시아에있는이가한일이무엇이오?재정모집과시위운동을계속한것이외다.이것으로외교와전쟁과모든것이될것이오.내가며칠후에는피흘리는이에게절하겠소마는오늘은돈바치는이에게절하겠소.”(95면)이같은‘무실역행(務實力行)’의정신은우리민족의현실을토대로한다는점에서중도의사상과일맥상통한다.안창호는당대독립운동이여러이념과사조로분열되는현실을지켜보면서자칫기회주의적이고기계적중립에빠지지않도록운동의과제와목표를현실적이고구체적으로설정하려했다.
그는대중을하나의추상적이고단일한수준의집단으로보지않고각자수준과역량이다른존재임을인정했다.그리하여그에게민족혁명이란운동가각자가서로의차이나결함에집착하지않는통합의깃발이었고,“정치적혁명이나경제혁명이나종교혁명같은부분적성질에있지않고우리민족으로는누구나다같이어떤혁명분자나다같이힘쓸결심을해야할것”(251면)이었다.여기서안창호가주창한대공주의(大公主義)가현대의‘변혁적중도주의’와맞닿는지점을살펴볼필요가있다.
대공주의란일상의소소한저항에서부터전세계공동의변혁에이르기까지모든것이연계된다는주의이다.당시일제치하의현실에빗대어말하자면,대공주의란“우리의주권회복과모범적공화국건설이민족적요구에따른당위일뿐아니라미·중·일·러가교차하는한반도를세력균형의완충지대로만듦으로써‘동양평화’의초석을놓고세계평화를바룬다는발상”(28면)이라고편저자강경석은말한다.이같은발상을현실화하기위해서는비현실적인급진노선들과체제순응적인개혁발상에서벗어나각시대현실에알맞게대처하고다수의대중을모을수있어야한다.이는곧백낙청의변혁적중도주의와동일한맥락이다.
우리는변해야한다
안창호에게한반도독립은그에뒤이은신공화국건설과더나아가동양평화,세계평화로이어지는첫번째단계의임무이다.이같은장구한혁명을이루기위해서는그방침또한추상적이고급진적이어서는안되고구체적이고점진적이어야할것이다.그가벌인첫번째독자적활동이최초의남녀공학학교였고그학교의이름이점진(漸進)학교라는점이흥미로운이유가여기에있다.이처럼‘점진적으로변혁해가야한다’는안창호의주장을오늘날에따라본다면‘혁명은여전히진행중’이다.일제로부터독립하긴했지만남북으로갈라져산지어느새80년에가까워졌다.즉2020년대를살아가는우리에겐한반도분단체제를극복하는것이우선이요,뒤이어동양평화와세계평화를이뤄가야하는과제가남아있는것이다.
편저자가서문의머리부분에쓴것처럼,안창호의편지와일기를제외하면그는직접글을쓰지않고대부분자신의사상을다수의대중앞에서발표했다.그의연설은강연주최측의서기를통해서나언론사취재록으로남겨졌다.다시말해그의말을누가어떻게옮기느냐에따라문체와기록이달라지는터라‘단하나의원전’을하나의기준으로잡기란쉽지않다.이런이유로이책은안창호의최초기록문헌을기준으로삼아극히최소한의윤문을가했다.또한국한문체기록의시대적인차이,국내매체와해외매체의표현·용어차이등을추가로고려했다.
이책을읽으면서우리는안창호가자신의담대한이상을거침없는언변으로이야기하는모습을머릿속에떠올릴수있다.그리고연설문행간곳곳에서,100여년전한반도와중국,미국등지에서망국의설움을달래면서세계평화를바랐던동포들의마음도어렴풋이떠올릴수있을것이다.이책편자의말처럼“도산의삶과사상을만나는일은가장낮은곳에서솟아오른가장원대한이상과마주하는경험”이다.이제,안창호를다시제대로읽을때이다.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
‘전환’이라는강력하게실천적인과제는우리모두에게다른삶의전망과지침이필요하며,전망과지침으로살아작동할사상이절실함을뜻한다.그런사상을향한다급하고간절한요청에공명하려는기획으로서,창비한국사상선은한국사상이라는분야를요령있게소개하거나새롭게정비하는평시적작업을넘어어떤비상한대책이기를열망하며구상되었다.(「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에서)
서구사상은오랜시간세계지성계에서압도적발언권을유지하는한편오늘날의위기에대해서도이런저런대응을내놓고있다.그럼에도그강력한위상의이면에강고한배타성과편견이작동하고있음은이제주지의사실이다.사상적인면에서도서구가가진위상은돌이킬수없이상대화되었고보편의자리는진실로대안에값하는사상들의분투에열려있다.이시점이야말로유·불·선의회통이라는특유의사상적기획이나최제우,박중빈의개벽사상등으로한국사상이전지구적과제를향해독자적인목소리를보태기에더없이적절한때일것이다.안창호를포함하는창비한국사상선사상가들의사유에는역사와현실을탐문하며새로운삶의보편적전망을구현하려한강인한실천성,그리고사회를변혁하는일과개개인의마음을닦는일이진리를향한단일한도정에있다는깨달음이깊이새겨져있다.한반도의경험과지혜가응축된사상적활력을드러내는창비한국사상선이문명전환의개벽적인사유와실천의지평을열어가는데의미있는밑거름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