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부터하얼빈까지,
중국일곱도시를걷다
상하이고급호텔바에서패스트푸드치킨을파는까닭은무엇일까?이질문에제대로된답을하기위해서는작은항구도시였던상하이가19세기아편전쟁에서패배하며강제로개항된역사와함께,이후서구제국의조계지로서빠르게성장하고번영했던와이탄지역에대한이야기에서부터시작해야할것이다.이욱연교수는와이두바이철교로시작해와이탄을따라내려오는이길을혼자걸으며상하이식민시대의화려함과강대국으로부상한현대중국의화려함을함께만끽한다.영국이만든서양식공원인황푸공원에서는배우이소룡이입구에붙은‘중국인출입금지’팻말을발차기로박살내는영화「정무문」의한장면을곁들이는한편,중국최초의켄터키프라이드치킨매장에대한비화에서중국이세계에공표한개혁개방메시지를읽어내는등풍부한이야깃거리를통해우리가미처알지못했던중국을생생하게전한다.(3장상하이‘삶의경계와허상을넘는욕망’)
그간우리에게잘소개되지않았던옌안,지난,사오싱등낯선도시의면모를담아낸것도이책의독특한매력으로다가온다.수묵화를펼쳐놓은듯아름다운운하의고장사오싱은중국의소설가이자사상가인루쉰의고향이자전통주인황주로유명한지역이다.루쉰을오랫동안연구해온저자답게이지역에대한해설은유난히종요롭다.저자는루쉰생가주변을천천히거닐며그의작품세계와생애를흥미롭게들려줄뿐아니라,언제나권력자에게단호했던저항적지식인으로서의면모를지역명주‘사오싱주’의향기를곁들여가며설명한다.(6장사오싱‘나를보호하는정신승리의빛과그늘)
아울러저자는산둥반도의지난에서는공자테마파크를방문한다.최근방영된넷플릭스드라마「삼체」는문화대혁명시기를그려세계적인화제를모은바있다.그시기극렬한타도의대상이되었던공자는왜다시현대중국문화에스며들고있는지,역사적으로공자는중국인에게어떤의미였는지,그리고마오쩌둥의생각은그가그렇게거부하려고했던공자의이념과어떻게닮아있는지등이지역역시흥미로운주제로가득한여행길이펼쳐진다.(5장지난‘붉은수수밭의생명력은어떻게퇴화했는가’)
풍부한역사적·문화적지식
나를발견하는질문들
진정한인문여행이란“지식을축적하는여행길이아니라삶을통찰하는지혜를얻는여행길”이라고말하는저자는이번책을묶으며특히삶의위대함과찬란함그리고고단함과비루함을동시에생각했다고말한다.주로영화와소설속인물들의길을따라가며비범한인생뿐아니라짠한감정을불러일으키는초라한인생도깊은애정으로들여다보는그의시선속에서한인간의유한한삶은더큰흐름의일부로다양한울림과감동을준다.『색,계』로유명한중국대표작가장아이링의단편소설「봉쇄」를중심으로일상과꿈사이를오가는인간의욕망을예리하게포착한부분은상하이꼭지중에서,나아가책전체에서가장여운이길게남는내용이다.아내가있는평범한남자와,일생을‘좋은’이나‘훌륭한’이라는수식어에갇혀살던여자가퇴근길일본의공습경보로멈춘전차안에서아주잠깐서로를온전히이해하고오롯이자기자신으로서로의앞에서있게되는순간을맞이한다.두사람은앞으로다른삶을살자고함께다짐하지만,봉쇄가풀리고전차가움직이기시작하자균열이일어났던일상은다시흐르고현실로돌아온남자는‘안되겠다’며여자에게끝을고한다.(3장상하이‘삶의경계와허상을넘는욕망’)
이소설에는이러한대목이나온다.“세상에는진인(眞人)보다호인(好人)이훨씬많다.”진정한자신의모습으로사는사람보다남에게잘보이기위해사는사람이더많다는뜻일것이다.상하이를거닐며저자는우리의삶에도불현듯1940년대,그순간의공습경보가울릴수있음을이야기한다.그봉쇄의순간우리는진정한우리자신의모습을대면할수있을까.여행이라는것은일상을떠나는일이기도하지만,일상에파묻혀있던자기를건져내어돌보는일이기도하다.저자는책곳곳에서풍부한역사적·문화적배경을바탕으로이러한‘나를발견하는’질문을던진다.그것이저자의여행길에동행하는또다른즐거움이다.
최고의중국전문가가전하는,
어떤방식으로읽어도즐거운여행기
‘유튜브조회수100만영상다수’‘미디어가주목하는최고의중국전문가’등의수식어가증명하듯저자는이책에서역사,문학,지리,건축,영화를넘나들며생생한이야기를전한다.특히특정시대에갇히지않고현대중국의모습을풍성하게담아냈다는점이이책을실제여행에도참고삼을수있게한다.처음부터끝까지읽으면거대한흐름으로얽히고설켜마치장편소설을읽는듯한흥미진진함을주는한편,부분부분발췌해읽어도쇼츠클립을보는듯한간편한독서가가능하다.특히자신이직접가본곳을찾아서읽어본다면그곳의숨겨진이야기를발견하는색다른재미를얻을수도있다.
지금한국인에게중국은어느때보다복잡한존재다.경제적으로떼려야뗄수없는나라가된지는오래지만,동아시아의정치상황은나날이복잡해지고문화적적대감은상호간에극심하게높다.그럴수록‘진짜’중국이어떤나라이고,그안에어떤사람들이살고어떤문화가숨쉬고있는지는점점왜곡되어간다.그럴수록역사와문화를통해한발더중국의진정한모습에다가가게해주는이책의존재는중요하다고하겠다.저자는하얼빈어느식당에서“안중근이거사전에마셨다고하는(…)위치안고량주를털어넣”으며“동아시아의평화없이는한국의평화도없다”고나직이말한다.(8장하얼빈‘의로움을위해산다는것’)저자가홀로중국을걷는것은궁극적으로는이러한평화를향한도정이다.이길에언젠가어딘가를홀로걷게될독자여러분들을초대한다.
지식과정보는넘치지만,지혜는부족한시대다.진정한인문여행이란지식을축적하는여행길이아니라삶을통찰하는지혜를얻는여행길이다.인간이일회성동물의시간을사는듯하지만,지고마르고시들었다가도다시잎이나고,꽃이피고,되살아나는식물의시간을사는게인간의삶이다.삶의위대함이여기에있다.이책을통해내가홀로걸었던길에서만난인물들의삶을따라가면서때로는세상의보폭으로,때로는자신만의보폭으로인간과삶에대해사유할수있는인문여행이되길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