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두·이충익·심대윤 (참된 마음의 공부길)

정제두·이충익·심대윤 (참된 마음의 공부길)

$23.00
Description
인간 마음의 참된 본질에 대한 강화학파의 탐구
내면을 충실하게 만들고 주체적 행동으로 나아가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9권 『정제두·이충익·심대윤: 참된 마음의 공부길』은 조선의 실심실학(實心實學)을 주도한 강화학파 대표 학자들의 주요 문헌을 정리한 책이다. 강화학파는 18세기에 들어서 조선 주자학이 현실 정치를 개혁하는 데서 유명무실해지고 고작 하나의 편협한 당론으로 굳어갈 때, 당쟁에서 소외되거나 거리를 둔 학자들이 강화도에 결집해 형성한 사조다. 강화학파의 학자들은, 조선 주자학이 정신을 중시하는 동시에 실천을 강조하는 방식이 서로 연관되지 않는 두 세계를 ‘무매개적’으로 잇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인간 내면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개개인의 생활에서 각자 취하는 주체적 행동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관심을 두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만든다는 ‘실기(實己)’의 사상”(14면)이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 수시로 자신을 점검하는 주체적 학문의 발흥으로 이어졌다.
18세기 강화학파의 실심실학은 소론의 가계를 통해 계승되었다. 여기서 소론의 가계란 정제두로 대표되는 연일정씨, 이충익으로 대표되는 전주이씨 덕천군파, 심대윤으로 대표되는 청송심씨 등을 가리킨다(좀더 자세한 가계와 계파 관련 정보는 이 책의 서문과 표 ‘강화학파 학맥’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이 학파를 이룬 18세기는 조선의 유학이 당쟁의 도구로만 쓰이면서 기존에 사회 전반을 지탱하고 통합하는 이념이었던 쓰임새를 스스로 팽개치는 시대였다. 강화학파 학자들은 당시 정통 주자학이 갈수록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있다며 ‘허학(虛學)’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믿고 실천하는 윤리주체라는 점을 내세우는 실기의 실학을 모색하는 때가 도래한 것으로 판단했다.
저자

정제두

조선후기의학자로,주자학중심의학문풍토를비판하고양명학을적극수용·연구해강화학파의사상적기반을마련했다.지행합일과실천을중시한사유로후대에영향을미쳤다.주요저술로『학변』『존언』『중용설』『논어설』『맹자설』등이있다.

목차

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

서문
정제두・이충익・심대윤의‘실기實己’사상

핵심저작
【정제두】
1장주자학인가양명학인가
2장생리(生理)가학문의대상이다
3장격물치지와사단칠정재론
4장신학문의기획과조선학의창시

【이충익】
1장가짜학문,가짜군자가혐오스럽다
2장세간법世間法과출세법出世法은두길이아니다
3장기초학문에서다시시작하자
4장우리는슬픔을함께한다

【심대윤】
1장노동과연대,그리고공부
2장선악과시비의교조적분할에반대한다
3장공공의복리를위하여
4장자기일에힘쓰는것이인간의도리

참고문헌
강화학파인맥
정제두연보
이충익연보
심대윤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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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마음을실하게하는공부,이를위한새로운모색

강화학파의성립을이끈정제두(1649~1736)는정몽주의11대손으로1649년서울에서태어나청년기에박세채와윤증으로부터가르침을받았다.32세때벼슬이내려졌지만정계에진출하지않은채로국왕에게상소를올리며정국운영에영향력을미쳤다.1689년기사환국으로남인이집권하여율곡이이등을문묘에서출향했다는소식을듣고는경기도안산으로낙향했다.박세채와윤증등당대의유학자들이정제두를가리켜주자학에충실하지못함을책망하자,양명학적입장을들어주자학을비판하기도했다.78세이던1726년에는양명학을주장한다는이유로탄핵의계를받았다.
정제두의사상에대해서이책의편자심경호는다음과같이간명하게정리했다.“사물의이치인물리(物理)를논의의중심에두지않고역동적인이치인생리(生理)를사유의중심에두어,사고의궁극적대상을인간에두었다.”(26면)즉정제두는이(理)를물리(物理)와생리(生理)로나누면서,물리는공허하고죽은생각인반면에생리는정신생기(精神生氣)를가진인간의참다운성(性)을뜻한다고보았다.또한생리의선한부분을진리(眞理)로보면서진리가모든사물을능동적으로통섭한다고말했다.이같은주장은정제두를‘양명학자’로보는시선을더욱강화했지만,실제로정제두는양명학으로는세상을구할수없고백성의일상에적절한대응책을주지못한다는의구심을평생품었다고전한다.정제두가제기한물리와생리의문제는강화학파의이후세대들이인간특히‘몸’에대해사유하고인간개개인의생활을탐구하는단서를제공했다.
그후속세대의주요인물인이충익(1744~1816)은12세가된1755년생부이광현이귀양을가자강화학파덕천군파의계보에서중요한인물인이광명의양자로들어가게됐다.이로써강화학파중기의학맥은이광명이후이충익,이면백등으로이어질수있었다.이충익은생부와양부가귀양가있는경상도기장과함경도갑산을오가면서그들을모셨다.두아버지가돌아가신뒤에는강화초피봉아래에집을짓고살며내내곤궁하게살다가73세에눈을감았다.이충익을비롯한강화도덕천군파는주자학의격물치지론을재해석하거나불교와도교사상을실기(實己)와접목하고자했다.특히이충익은불교에심취하여마니산아래암자를짓기도했다.이를타박하는재종형제이영익에게이충익이보낸시구의일부가인상적이다.“인연따라인도하여설할일이지,어찌자취를따지랴/문을닫고문을여는것도다만이한몸의일.”(170면)이충익은양명학도불교도진리에도달하기위한하나의방법일뿐이고진리그자체는아니라고보았다.오로지“이한몸”의주재하에진리에도달할수있다고주장한것이다.
심대윤(1806~72)은정제두의제자심육의후손으로,경기도안성에서태어났다.그는정제두의학문가운데양명학적인면을추종하지않았고,몸의사상과백성들의자발적실천윤리론을세우고자했다.이처럼그는강화학파의이론을그대로따르기보다는스스로를‘초야의기인’이라고부르며자신만의사유를구축하는데열의를보였다.선대의인물들이대거옥사당하면서심대윤은생애내내극심한곤궁에시달렸지만,그는목공방과약방을열어생계를유지하면서도공부를게을리하지않았다.특히목공방에서몸으로일한경험을바탕으로,신체를움직이는것이인간의본연을들여다볼수있는주요통로라는사실을체득했다.유교본연의물질에대한철학을한층더본질적으로탐구하고자한것이다.“하늘이내려준직분을게을리하고자기의삶을포기해버리면,살아있는형체는해골같아지고영명한본성은식은재처럼적막하게되어,죽지않았으나죽은것이되고사라지지않았으나사라진것이된다.”(38면)이는강화학파특유의‘몸의사유’를계승하고자한심대윤의의지가돋보이는대목이다.

주체의철학으로강화학파사상을재발견하다

강화학파의초기와중기를대표하는인물인정제두·이충익·심대윤은조선유학이라는고정적틀에연연하지않은글쓰기를펼쳤던터라그들의글은유려한수사없이그저소박하다.또한강화학파는사상적으로탄압을받으며내내소외받았던탓에이들의주요저술중에간행된경우는없다시피했고,그렇다보니그들의사상은근대에들어우리사상사에서거의언급되지못했다.그리하여현대에이들강화학파의주요사상을일목요연하게정리하는것은쉽지않은작업이다.
하지만이같은한계에도불구하고정제두·이충익·심대윤이보여준사유는인간양심의순수동기에주목하여‘실기(實己)’를그중심에두었다는점에서특출나다.“그들은시문에서늘자기를속이지않았고열패한선비나참혹한처지의농민,여성,노비에대해진성으로슬퍼했다.”(44면)그리고강화학파학자들이보여준혁신적인기세는한반도를살아온평범한이들의구체적인일상과현실정치의모순을날카롭게드러내면서한국사상사에서무척의미있는‘주체의철학’을수립해냈다고평할수있다.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