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정인보 (조선적인 것의 재구성)

홍명희·정인보 (조선적인 것의 재구성)

$23.00
Description
민족의 난관을 돌파할 사상의 탐색과 창조
조선의 과거·현재·미래를 새롭게 보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24권 『홍명희·정인보: 조선적인 것의 재구성』은 근대 조선의 전통문화와 서구의 신문화의 경계에서 수렴과 융합, 극복과 변혁의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 홍명희와 정인보의 글과 말을 엮은 책이다. 일찌감치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신문물을 체험한 홍명희나 조선 유학의 고질적 병폐를 실심실학으로 극복하고자 한 정인보 모두 1910년 국권침탈의 위기에서 ‘조선적인 것’을 더욱 깊이 탐구하며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민족 전체를 이끌 사상을 정립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이 같은 사상적 고투는 그들의 글과 말에 담겨 현대 한국 사상의 향방을 정하는 데에 굵은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

홍명희

일제강점기소설가·언론인·사회운동가로,대하소설『임꺽정』으로이름을떨쳤다.동아일보편집국장과시대일보사장을지냈고,신간회창립등민족운동에앞장섰다.해방후에는민주독립당대표로서좌우를아우르는통일정부수립운동을전개했으며,남북연석회의를계기로월북한후북한부수상을역임했다.

목차

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


【홍명희】
서문
진보적민족주의자의행로

핵심저작
1장반일애국사상
2장진보적민족주의
3장과학과계몽
4장차별비판과평등사상
5장조선학운동과진보적역사관
6장리얼리즘과중도적문학관


【정인보】
서문
길을잃은시대의윤리와실심실학

핵심저작
1장현실돌파의윤리
2장윤리적철학의기반
3장윤리적학술의전통
4장식민지지식인의학술윤리
5장윤리적문학의전통과실천


홍명희연보
정인보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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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좌우파대립속에서피워낸진보적민족주의

1888년충북괴산의노론명문가집안에서태어난홍명희는20세에일본으로유학한뒤십여년간서울과토오꾜오,상하이,싱가포르를오가며여러근대문물을접했다.이다채로운여정속에서민족주의와계몽주의를거쳐사회주의에이르기까지다양한근대사상을공부할수있었다.이처럼그가근대서구사상을받아들이는데기본토양이되었던것은어린시절명문가의자손으로전통한학을배우며갖춘조선의선비정신이었다.홍명희의다음과같은열변이그의삶을간명히압축해준다.“나는『임꺽정』을쓴작가도아니고학자도아니다.홍범식의아들,애국자이다.일생동안애국자라는그명예를잃을까봐그명예에티끌조차묻을세라마음을쓰며살아왔다.”(17면)
홍명희가일본유학을떠난때는공교롭게도을사조약부터경술국치에이르는5년간이었다.유학하는동안날카롭게민족정체성을다져온그는,1910년경술국치직후아버지홍범식이비분하여자결한것을보고반일정서를더욱투철히다지게되었다.그의이같은반일애국사상은상하이에서동제사에가입하여활동하면서자연스럽게근대민족주의로전환되었다.민족해방을위해서는반일을넘어선좀더실천적대안이필요하다고본그는1919년3·1운동만세시위주도건으로투옥되었다가출소한뒤에는본격적으로사회주의자로활동한다.그리고1927년민족주의자와사회주의자간의협동전선체인신간회창립을주도하면서「신간회의사명」을발표한다.당시발표문에서홍명희는사회주의사상을각나라마다자기현실에맞게수용해야할것을주문했다.“신간회의나갈길은민족운동만으로보면가장왼편길이나,사회주의운동까지겸(兼)치어생각하면중간길이될것이다.”(49면)
홍명희는1920년대『동아일보』에‘학창산화’등의제목을건칼럼을써서전세계의다채로운지식을소개했다.특히자연과학·사회과학·역사·철학·언어학등의분야에대한지식을항목별로흥미롭게소개했다.이같은지적편력은홍명희가민족주의,사회주의어느것에도편향되지않고합리적인사고를기반으로당시의지정학을폭넓게이해하는데큰도움을주었다.또한과학에대한신뢰를바탕으로하여당시횡행하던여러미신과유사종교의발흥을우려한점은전근대적이고비합리적인구습을퇴치함으로써근대민주주의의발판을마련할수있다는믿음에서비롯되었다.
1930년대에는비타협적민족주의계열의학자들사이에서일어난‘조선학운동’에공감하고함께참여했다.조선학운동의선두에있던정인보등과절친했고신채호의이론을국내에적극적으로소개했던홍명희는본인스스로도고전문학을정리하는데에앞장서서김정희와홍대용,서유구등의저서를교열하기도했다.또한조선시대양반계급에대해신랄하게비판하면서도동시에양반의생활이념중‘지조’에대해서만은높이평가했다.사대부의지조가당대비타협적민족주의자들의양심과통한다고본것이다.
8·15해방후에홍명희는다시정치현장에나서서중간파정치노선을자처하면서좌우합작운동을벌였다.당시그가“우리의민족문제는세계적계급문제의일부분”(56면)이라고일갈한데서알수있듯이홍명희는민족주의와사회주의간의긴장속에서두사조를과학적으로분석하고자했다.홍명희편의엮은이강영주는홍명희의이같은노선을두고“진보적민족주의”라고명명했다.
좌파와우파의대립을지양한홍명희만의중도적문학관은본인문학이추구하는예술성에다분히담겨,프로문학과민족주의문학의장점을고루갖춘『임꺽정』을탄생시켰다.그는문학을정치에예속된것으로보는일부프로문학가들에대해단호하게비판하는한편,우파문인들의순수문학을더욱거세게비판했다.그의민족문학,민중문학에대한애정은1941년여름에현상윤과치른대담의한문장에서엿볼수있다.“문학은문학을통해서도달하는길이있을뿐이지살림살이를떠나서야있을수없지.”(29면)


조선학의부흥을통해정립하고자한민족의자아상

서울에서명문가의자제로태어난정인보(1893~1950)는어린시절한학을충실히공부하다가경술국치의해인1910년당시강화학파의대표적학자인이건방의제자가되었다.강화학파는조선후기주자학이유명무실해지면서실심실학(實心實學)을통해인간내면의본질을탐구하고실천에나서야한다고보는선진적학파였고,이때이건방에게서배운학문은훗날정인보가조선학운동을펼치는데에큰밑거름이되었다.
정인보는1911년부터중국과서울을오가면서독립운동에관여했다.21세이던1913년에는상하이에서신채호등과함께독립운동단체동제사를결성하고본격적인활동에나서기도했다.그뒤주로국내에서활동하며연희전문학교교수,『동아일보』논설위원등을지냈다.「양명학연론」은1933년한해동안『동아일보』에연재한글로,정인보의대표작이라할수있다.
조선이망한이유중하나로주자학의도입을든정인보는,주자학을대체하는학문으로양명학을제안했다.기존의학술이‘허(虛)와가(假)’의영역에서벗어나지못했으니양명학을통해실(實)과진(眞)으로돌아와실심(實心)을지녀야한다고본것이다.
1934년에는다산정약용의모든저작을간행하는일을도맡아5년여만인1938년76책,권수로는500권이넘는방대한『여유당전서』로출간하기도했다.그러다가일제강점기의탄압과폭정이이어지자서울을떠나전북익산에서은둔생활을했다.
1945년해방이되자전조선문필가협회장을맡는등새정부수립을비롯한다양한국가적사업에헌신했다.이시기그가만든노랫말들은개천절,제헌절의노래등으로지금도여전히여러경축일에서불리고있다.이렇게왕성히활동하던때에한국전쟁이발발했고그는평양으로끌려가던중에불의의사고를당해비운의죽음을맞았다.조선학의부흥을통해과거와현재를연결하여새로운공동체의윤리를제시하고자했던그의꿈또한좌절하고말았다.21세기우리가누리는일상이갈수록개인화되어가는때에,실심실학의지식인으로서일제강점기내내민족의자아상을만들고이를독립한국의민주주의에접목하고자한정인보의뜻을다시금새겨보길권한다.

문명전환의과제에서세계적보편성을획득하고자하는
창비한국사상선의도전적기획

지구기후와자본주의가불가분의위기를맞닥뜨리고각종갈등이팽배한지금이시대에우리가떠맡은과제는결코가볍거나단순하지않다.백낙청(서울대명예교수)을필두로하는창비한국사상선간행위원회는이모든위기를돌파하기위해수행해야할과제를다음과같이말한다.

‘전환’이라는강력하게실천적인과제는우리모두에게다른삶의전망과지침이필요하며,전망과지침으로살아작동할사상이절실함을뜻한다.그런사상을향한다급하고간절한요청에공명하려는기획으로서,창비한국사상선은한국사상이라는분야를요령있게소개하거나새롭게정비하는평시적작업을넘어어떤비상한대책이기를열망하며구상되었다.(「창비한국사상선간행의말」에서)

서구사상은오랜시간세계지성계에서압도적발언권을유지하는한편오늘날의위기에대해서도이런저런대응을내놓고있다.그럼에도그강력한위상의이면에강고한배타성과편견이작동하고있음은이제주지의사실이다.사상적인면에서도서구가가진위상은돌이킬수없이상대화되었고보편의자리는진실로대안에값하는사상들의분투에열려있다.이시점이야말로유·불·선의회통이나개벽사상등한국사상특유의사상적기획이한국사상이전지구적과제를향해독자적인목소리를보태기에더없이적절한때일것이다.
창비한국사상선사상가들의사유에는역사와현실을탐문하며새로운삶의보편적전망을구현하려한강인한실천성,그리고사회를변혁하는일과개개인의마음을닦는일이진리를향한단일한도정에있다는깨달음이깊이새겨져있다.한반도의경험과지혜가응축된사상적활력을드러내는창비한국사상선이문명전환의개벽적인사유와실천의지평을열어가는데의미있는밑거름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