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연습했다

이별을 연습했다

$15.00
저자

김진경

제1부강물은흐르고
강물은흐르고
세상의불빛
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
화염산
늘가득히채워지는삶이어디있으랴
길위에서죽다
밤섬
비가잔잔하게오시는날은
새들은낮과밤의경계에서운다
가을강물은깊어가고
수묵으로흐려져가는정물화처럼

제2부황홀한귀향
먼편백나무숲향기
황홀한귀향
물비린내
물안개
첫눈
단풍든다
휴식
해발고도307센티미터,밤섬
저마다의우담바라
편안한길
로빈후드,어떤좌절후에도희망은있다고

제3부깨어진달한조각
산귀(山鬼)
벚꽃이진다
꽃이지는것을시샘하나
유리창
한월(寒月)
초롱꽃
금강초롱
지귀(地鬼),봄
지귀,겨울
귀성(鬼星)
한씨할머니
귀교(鬼橋)
다시길위에서서

제4부유목의나날
유목
뼈의노래
불멸(不滅)
오래된길
누구신가
까막잠
어느늙은시인의고향집풍경
표선
감자에대한명상
즐거운일기예보
이지구라는푸른별에서

제5부그여자의지옥도
이별을연습했다
그여자의지옥도
욕망이가면을벗을때
전설
까마귀
새벽첫전철,심청
내몸안의역사유적
참혹한것에는입이없다
우리는신들을죽이며살아왔구나
똥배
두근두근
당신의한미워킹그룹

해설|권정우
시인의말

목차

제1부강물은흐르고
강물은흐르고
세상의불빛
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
화염산
늘가득히채워지는삶이어디있으랴
길위에서죽다
밤섬
비가잔잔하게오시는날은
새들은낮과밤의경계에서운다
가을강물은깊어가고
수묵으로흐려져가는정물화처럼

제2부황홀한귀향
먼편백나무숲향기
황홀한귀향
물비린내
물안개
첫눈
단풍든다
휴식
해발고도307센티미터,밤섬
저마다의우담바라
편안한길
로빈후드,어떤좌절후에도희망은있다고

제3부깨어진달한조각
산귀(山鬼)
벚꽃이진다
꽃이지는것을시샘하나
유리창
한월(寒月)
초롱꽃
금강초롱
지귀(地鬼),봄
지귀,겨울
귀성(鬼星)
한씨할머니
귀교(鬼橋)
다시길위에서서

제4부유목의나날
유목
뼈의노래
불멸(不滅)
오래된길
누구신가
까막잠
어느늙은시인의고향집풍경
표선
감자에대한명상
즐거운일기예보
이지구라는푸른별에서

제5부그여자의지옥도
이별을연습했다
그여자의지옥도
욕망이가면을벗을때
전설
까마귀
새벽첫전철,심청
내몸안의역사유적
참혹한것에는입이없다
우리는신들을죽이며살아왔구나
똥배
두근두근
당신의한미워킹그룹

해설|권정우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영원한현재를살려는자들은
마지막생의위엄을알지못한다”
이별을그러안으며마침내펼쳐지는생의총체

평생을교육민주화에헌신하며격동의세월을온몸으로통과해온시인은밤섬,마포나루,망월동5·18묘지,한강과임진강등역사적사건과아득한내력이깃든지역들을비추며인간의의미를뼈에새긴다.시인은지나온삶의정경을되돌아보며“늘완성되는삶”(「늘가득히채워지는삶이어디있으랴」)이란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을담담하게받아들인다.그렇다고지나간시간이회한으로만남는것은아니다.시인은때로는국가의거대한폭력에맞서기도하고때로는은거하며암암리에자신의사상을전파하기도한,이른바‘이단적존재’들의생생한생명력을예민하게감지한다.“가라앉지않은기억의파편들”(「가을강물은깊어가고」)과“묵은냄새를풍기는오래된상처”(「내몸안의역사유적」)들은서로포개어져오늘의삶을이룬다.잘못된선택이라고여겨온젊은시절의회한은삶의가치를추구한아름다운선택으로재구성되고,마침내는“새로운한생을돋아나게”(「늘가득히채워지는삶이어디있으랴」)하는거름이되어삶을다시살아가게한다.
이처럼누구에게나끝내미완일삶을마주하며,시인은필연적으로만나게될이별과소멸의과정을차분히바라본다.시인은세속적인집착을내려놓고마지막순간에홀로초연하게“생의위엄”(「이별을연습했다」)을지켜내는개나고양이와같은가녀린존재들에게서오히려강인한생명력을발견한다.세상과의이별을선선히받아들이는이들의방식은죽음마저삶의경로에포함함으로써결국진정으로죽음을초월하는결기이며동시에,삶의총체적인궤적을긍정하는태도를보여준다.그리하여시인은소멸의비극앞에서도허무주의에빠지지않으며,상처로가득한세상에서도끝내꺼지지않는생명의불씨를지핀다.

절실하게받아적은혼들의구구한이야기
존재의무상함이선사하는진정한자유의의미

한편시인은보이지않는세계를일상적세계에겹쳐보이며,세상을떠난이들의목소리를전설처럼풀어내기도한다.꺼져버린어린혼의초롱처럼아른대는불빛,돌아갈집을잃어버린망자의걸음,참사속에서스러져간젊은이의말간얼굴등이그것이다.그는“이름도붙이지못한채가매장된”망월동무덤을찾아민주화운동에“목숨을걸”던열사들의“숭고한아름다움”을느끼고,모든의미에앞서그저존재함으로써아름다운인간의“살아있는한끝나지않는질문”(「까마귀」)에빠져든다.또밤하늘을바라보면서사라진존재들이어둠속으로완전히소멸한것이아니라지금도우리곁에머물며숨쉬고있음을환기한다.이처럼떠난이들은현실세계의도처에불빛으로남아삶의길을비추고인간의욕심에경고등을켠다.시인은“할말이많은죽은넋들”(「금강초롱」)을애도하고그들이오랜시간에걸쳐전하는이야기를절절하게옮겨적는다.
그런가하면현실에서영원한권세와생명을누리고자하는이들은살아있되진정으로산자가아니다.어떤이들은“비틀린욕망을”“내려놓을줄을몰라”(「그여자의지옥도」)엉망으로만들면서까지세상을자신의손아귀에붙들고자한다.또다른이들은전생애에걸쳐영원을찾아헤매다,오랜방황끝에자신들이떠나온고향집에돌아와그곳이다름아닌“영원의집”이었음을깨닫고비로소“자유혼의긴휘파람”(「황홀한귀향」)을불기도한다.고정되지않은인간의좌표를어떻게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삶의순리를따라갈수있을까.시인은“어디로든떠날수있다는/무수한길들의의미”만이자명한유목의삶으로부터,“그냥존재함의아득한의미”(「유목」)로하루하루를지탱하는힘을찾는다.인생은변화무쌍하며해답을내어놓기란언제나어려운일이다.그러나무상함이당연하다는사실을받아들인다면,고정되지않은삶의경로는그자체로삶의근거가되어준다.시인은이사실을마치사막바람처럼의연하고도강렬하게새긴다.
기나긴침묵끝에세상에나온이시집이특별히소중하고귀한까닭은단지22년이라는세월의무게때문만이아니다.인생의지평선을바라보며담담하게걸어가는시인의발걸음이여전히묵직하고,세상을향한목소리가우렁차게살아숨쉬고있기때문이다.“세상의경계에서서시쓰기를자신의존재방식으로선택”하여평생을살아온그는“시는결국팔한쪽떼어주는것을대가로세상에던지는한바탕의농담”(시인의말)이라고말한다.이번시집에서두드러지는점은죽음과이별을슬픔에가두지않고,영원한고향으로돌아가는‘귀향’의과정으로재해석했다는점이다.시인은“강물의영혼처럼/자유로이불어가는바람의강”(「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을따라굽이치는인생의질곡사이사이에새겨진이야기들을세상에부려놓는다.“보이지않는것을언어로표현하고,숨은뜻을알려주고,사람들이보지못하는것을보여주는”(권정우,해설)시의미덕을오랜세월한결같이지켜온결과로탄생한이바람의목소리는독자들에게묵직한울림과깨달음을선사할것이다.

추천사

김진경의이번시집에는“풋풋하”고“달큰하”며“곰삭아아리기도한”서정의오묘한무늬가물씬채워져있다.나는이것들에포획되어한생이이루어가는아득한풍정속에빠져드는것인데.아하,그런데거기.한강,고수부지,밤섬,빌딩들이드리운도회지의일상적시공간에산귀,지귀,화귀,귀접의영성세계가슬그머니끼어든다.보이는세계와보이지않는세계가이질감없이공존하는것이다.나는이를“수백만광년멀리서왔으나/이제까지밝혀지지않았고/앞으로도영원히밝혀지지않을/특별한원소”가이끌어내는“푸른별”지구에대한김진경통찰의진경(眞境)이라여긴다.김진경은스스로“격정의시간은지나갔다”라고쓰지만,그가펼쳐나갈사랑과생명의무한한가능성은그래서격정적으로현재형이다.
정우영시인

책속에서

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
어쩌면우리는어항속의물고기처럼
너무오래바람의말을
잊어버리고살았는지도모르겠어
그렇지않다면어찌잔물결의반짝임이
도무지해독할수없는
그대의설렘처럼느껴지겠어

그렇지않다면어찌
강가의흔들리는미루나무들이
도무지해독할수없는
그대의속삭임처럼느껴지겠어
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
강물의영혼처럼
자유로이불어가는바람의강
―「강물위엔또하나의강이흘러」부분

오래전이었을거야
어딘가정말돌아가야할
영원의집이있을것만같아
저들이홀연히말에올라
이곳의낡은고샅길을떠난것은
영원을향한터무니없는그리움처럼
끝없이불어오는바람에
푸른살의혼하나하나깃발처럼흔들며
(…)
언덕에서문득
마침내도달한영원의집이
오래전뿌리치고떠났던고향집임을깨닫고
망연히바라보고서있는거야
영원의집을찾아멀리떠나는자만이
비로소영원한고향에이를수있는걸까?

번개처럼스치는깨달음에
하나하나피묻은깃발처럼흔들던푸른잎
저렇게망연히황금빛으로물들이고있는거야
영원의고향에바치는눈물처럼헌사처럼
황금빛살의혼마지막한잎까지흩뿌리고
찬하늘에앙상한뼈의혼으로서서
자유혼의긴휘파람휘―휘―불고있는거야
―「황홀한귀향」부분

지쳐돌아와남모르는가슴앓이로이마에식은땀촉촉이젖을때쯤
어머니는내이마에손을얹으며말씀하셨다
신혼때어느혼자사는과부댁이하도무섭다고해서
네아버지헌신발을주었더니
그집댓돌위에아버지헌신발이놓이고부터
밤마다그집으로가는꿈을꾸시더구나
캄캄한그믐밤네아버지또그런꿈을꾸시기에
수십리를걸어그과부댁집댓돌에놓인헌신발을찾아왔단다

오늘밤또백리라도걸어네헌신발도찾아오꾸마
어머니돌아가시고헌신발꼼꼼히챙기는이없어그런지
형제들다뿔뿔이흩어져가고
나도내헌신발이댓돌에놓인집마다찾아다니다
그것도참별게아니로군,남모르는가슴앓이도식어
까맣게잊었었는데
오늘또어쩌자고어스름속으로
길들이새하얗게뻗어소름돋게하는것이냐
(…)
아무래도저고갯마루당산나무높은가지위
별들총총한하늘어디쯤먹빛대청마루시원한집이있어
그집댓돌위에내헌신발이놓여있나보다
그헌신발찾아올이지상에없어이제먼길떠나야하나보다
등굽은당나귀한마리동무삼아가면좋으련만
당나귀방울소리쨍쨍한별들로흩뿌리며가면좋으련만
내몸밖에내가있는것처럼
달빛속에새하얀길이아득하다
―「다시길위에서서」부분

뜨거운햇볕이죽은말들의해골을하얗게풍화하는
언덕의돌무더기를지나
거친바람따라흐르는잔모래에
금방덮여버릴것처럼위태로운
작은초원,그곳에
몇마리의낙타와말들과양떼와함께
둘마네가족이산다

작은초원을사방에서포위한
붉은모래구릉
모든관계와의미를소각하는불볕속에
남아있는건언제든
어디로든떠날수있다는
무수히뻗은길들의의미뿐

둘마가족의하얀게르는
부는바람따라구르는함흘처럼
언제든다시흘러
또다른위태로운작은초원에뿌리를내릴것이다
삶의의미까지소각당하는사막의영원에
항거하는그냥존재함의아득한의미처럼

존재하는한언제든
기약없이떠날수있다는아득한길들,
사막을건너는건조한표정의낙타,
늘태초인모래위에
흩어지는낙타의방울소리,
여기저기사막의영원위에
덧없이나타났다사라지는푸른보석,그곳에
그냥존재함의아득한의미처럼
둘마네가족이산다
―「유목」전문

햇볕따뜻한마당에서
손녀아이와숨바꼭질놀이를한다

아이들의숨바꼭질놀이는
이별을연습하는거라고하지
엄마아빠와조금씩이별하고
조금씩세상으로모험을떠나기위한

아이들의숨바꼭질놀이는
이별을연습하는거라고하지
홀로모험을떠나더라도
소중한사람이어디선가지켜준다는
믿음을키우기위한
(…)
오래전우리집에살던고양이버들이는
죽음이가까워지자
창고높은곳에올라가
아무것도먹지않고일주일을꼿꼿이앉아
할퀴어대곤했다접근하지말라고
그리고어느날밤홀연사라졌다

어디있지,못찾겠는데?
어디있지,못찾겠는데?
산이뒤구석에숨어있는손녀아이가
참지못하고키득키득웃음소리를낸다
이제막피어나는꽃과
흙으로툭떨어져내리는꽃
야생성이남은개나고양이가
마지막순간보여주는생의위엄을알기에
나는알은척도않는산이를
알은척도않고그냥놓아둔다
―「이별을연습했다」부분

욕망이가면을벗을때
네가내민손의가면을벗겨내고
내가슴에들이댄날선칼을보여줄때
내가그칼을네가내민손이라고생각했던건
폭력의기억과두려움때문이었다는걸
비로소깨달을때
거기가세상의끝이야
(…)
욕망이가면을벗을때
거기가한세상의끝이고
거기서비로소다른한세상이시작되는거야
언땅을밀고올라오는푸른보리처럼
생명은늘무너진벙커와폐허에서일어서고
어디서나새로운둥지를틀어
종달새처럼높이날아오를
새새끼들을키워내리니
―「욕망이가면을벗을때」부분

옛날밥한덩이얻어먹은스님이
성문의사자상눈이붉어지면큰물이질것이니
즉시높은산으로피하라일렀네
걱정많은노파매일가서사자상눈을들여다보았지
성문지키는병사장난삼아
사자상눈을붉게칠해놓았더니
다음날노파가와서보고허겁지겁뒷산으로달음질쳤네
병사들이그꼴을보며낄낄거리다가
그런데왜자네머리위에물고기가앉아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