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한국사상선 3차분 전기편(11~15권) 세트

창비 한국사상선 3차분 전기편(11~15권) 세트

$117.70
Description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한반도를 흔들어 깨운 ‘시대의 사상가’들을 만난다
창비 한국사상선 3차분으로 완간!
전지구적 위기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맞서 어떻게 사유하고 살아갈 것인지 묻는 질문이 절실한 때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창비 60주년을 맞아 한국의 위대한 사상적 거장들의 사유와 철학에서 우리 앞에 닥친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보는 특별기획이다. 조선 건국기 정도전부터 한국 현대사의 김대중까지 창비 한국사상선이 선정한 59인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면밀히 살피고 새로운 삶의 보편적 비전을 제시하는 사유를 남겼다. 그들의 사상적 고투 덕택에 우리는 오늘의 한국을 이루어냈고 전세계적인 K문화 또한 이같은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2020년 처음 기획을 시작한 이후 2024년 1차분 10종, 2026년 2월 2차분 10종을 출시한 데 이어 이번에 3차분 10종을 출시함으로써,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을 맞는 올해 2026년 전30권 완간 목표를 달성했다. 전30권에 총 59명의 한국사상가를 제시하며 한국사상의 새로운 계보를 구축했다.
이번에 출간된 3차분 전기편에는 '대전환의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조선 후기 사상가들이 소개된다. 조선실학의 원조로 평가받는 유형원과 이익(11권),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실천한 홍대용과 김정희(12권), 조선유학을 새롭게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14권)과 19세기 후반 급변하는 한반도에서 그 정신을 이어받은 최한기(15권)까지, 실학의 줄기를 만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 특별한 재능을 선보이며 남성 중심의 지식계에 참여했던 여성 사상가들(임윤지당ㆍ이사주당ㆍ강정일당)을 소개한 것은 이 시리즈만의 특징 중 하나다. 세계 정세와 인류 문명이 중대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오늘, 한반도의 역동적인 변화를 몸소 감당한 이들 사상가들의 깊이 있는 고민과 빛나는 발상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줄 것이다.

전30권 완간은 마침표이자 출발점
대전환의 시대를 밝혀줄 K사상의 결정판을 만난다

창비 한국사상선 1·2차분 20종은 그간 언론·출판계·학계의 호평을 받아왔다.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2025년)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2025·2026년)에 선정되는 등 추천도 이어졌다. “사상가들을 골라낸 출판사와 기획팀의 혜안”(김호)과 “기획의 독특함과 새로움”(한겨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는 한국사상선 독서모임이 조직되어 우리 사상의 가치를 공유했다.
완간 이후에도 한국사상 전파는 이어질 예정이다. 9월말부터 독자 서평대회와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 그리고 인물별ㆍ주제별 연속특강이 열리고, 10/16(금)에는 창비 60주년 학술행사에서 전환의 시대에 한국사상의 가능성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여기 실린 한국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자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

백낙청(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임형택(성균관대 명예교수)
최원식(인하대 명예교수)
백영서(연세대 명예교수)
박맹수(원광대 명예교수)
이봉규(인하대 교수)
황정아(한림대 교수)
백민정(가톨릭대 교수)
강경석(『창작과비평』 편집위원)
강영규(창비 편집부장)

목차

11권 유형원·이익: 개혁적 실학사상의 선구 | 윤석호ㆍ김보름 편저
12권 홍대용·김정희: 공관병수와 실사구시의 사상 | 박희병 편저
13권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 조선의 여성 유학자들 | 이숙인 편저
14권 정약용: 유교 문명의 새로운 구상과 실천 | 백민정 편저
15권 최한기: 전환을 읽고 보편을 사유하다 | 임형택 편저

출판사 서평

각권 소개

창비 한국사상선 11
유형원·이익
개혁적 실학사상의 선구
윤석호·김보름 편저

변화에 직면한 사회에서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개혁을 향해 스스로 깨쳐나간 조선 실학의 출발점

창비 한국사상선 제11권 『유형원·이익: 개혁적 실학사상의 선구』는 조선 중기 실학의 태동기에 이를 정치와 사회 전반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던 유형원과 이익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책이다. 대개 이 두 학자는 중농주의 실학자로 농업을 중시하여 토지제도 개선에 앞장섰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이들이 단지 농업뿐 아니라 국가체제 전반의 개혁을 주장했다는 점, 그리고 당대의 유학이 단지 내적 수양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민생 정치에 쓰여야 한다고 역설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같은 근본적 전환의 요구는 실천적 학문을 추동하고 국가제도를 개혁해냄으로써, 명실상부한 개혁사상의 뿌리가 되고 조선 후기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을 배출해내는 진원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조선 후기 국가 개조론 곳곳에 담긴 유형원과 이익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국가체제 개혁론의 비조, 유형원

반계 유형원은 임진왜란 이후 태어나 청소년기에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조 대혼란기의 고뇌와 회의를 품고 평생을 살아간 학자다. 단지 전쟁의 참화뿐 아니라 사화를 통해 아버지를 잃은 개인사적 고통을 치르며 청년기에 전북 부안으로 낙향하고 만다. 하지만 이 같은 은둔은 유형원이 오로지 학문에만 주력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허균·이수광 등 북인 계열의 지식인들은 그의 학문적 성장에 큰 자양분을 제공해주었다.
청년 유형원은 정치·경제·역사·지리 분야 등 다방면의 학문을 섭렵하고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당시 몰락해가는 조선의 현실을 이해하는 안목을 키웠다. 그는 성리학을 발본적으로 사유하여 고대 중국 세 왕조(하·은·주)의 법도와 천리(天理)를 기본으로 삼아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이 같은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사상은 그의 대표작 『반계수록』 『동국여지지』 등에 고스란히 담겼다.
『반계수록』은 31세에 착수해 49세까지 총 18년간 집필하여 완성한 역작으로, 조선 중기 국가체제 개혁안을 위주로 한 경세서다. 유형원은 인습과 폐단으로 엉망이 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며 당대 조선의 통치가 공공성을 갖췄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는 토지제도 개혁, 인재 선발, 관직 임용과 봉급 제도의 개편, 군사 체계의 정비 등 체제 전반의 공공성 회복을 내세웠다.
이 책에서는 『반계수록』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유형원의 토지제도 개혁안은 사유지를 국가가 몰수하여 재분배하는 안으로 ‘공전제(公典制)’라 불린다. 그는 백성들을 사농공상의 네 부류로 나눠서 차등을 두어 토지를 분배하자고 주장했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20세 이상 평민 남성에게 농지 1경을 지급하고, 15세 이상 양반계급 남성에게는 최소 2경에서부터 최대 12경까지 관직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눠 받은 토지는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는 국가가 다시 환수하는 식이다.
또한 유형원은 경묘제(절대면적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기존에 농지 면적을 수확량으로 결정했던 결부제(상대면적제)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안으로, 균일한 면적의 토지를 제공함으로써 세금을 균등하게 징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또한 농민의 경작지가 보장됨에 따라 백성들이 생계 유지에 대해 부담을 덜 느끼면서, 병역에 대한 의무도 전에 비해 수월하게 질 수 있으리라 보았다. 토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변방의 방어까지 이뤄낼 수 있는 이른바 ‘병농일치’의 실현이라 볼 수 있다.

4민 모두에게 직분에 근거하여 농지를 차등적으로 지급 및 회수토록 했던 것은, 유형원이 구상한바 과거제 혁파와 공거제(貢擧制) 시행, 노비제 폐지 등 사회적 분업 체계의 공공적 재조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형원은 군현제의 조정, 국가 재정 체계의 정비, 상업과 수공업의 국가적 관리 및 진작 등과 같이 국가체제의 공공성을 재건하는 전면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이들 모두는 공전제를 중핵으로 하여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서문 26면)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그의 사후에 여러 계파들 사이에서 두루 읽혔던 것은, 단순히 이 같은 국가경영론의 유효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통치방법론이 “조선 후기의 학인들에게 성리학의 다양한 경세론을 탐색케 하고 당대의 폐단에 대한 방법론적 영감과 성찰을 던져주는 중대한 지적 자원”(28면)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지성사 전환의 기수, 이익

성호 이익 또한 정쟁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안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탓에 외출을 삼가야 해서 자신의 형들로부터 글을 배워야 했지만 워낙 총명하여 어린 나이에도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형이 노론을 비판하다가 매를 맞아 죽는 것을 보며 과거를 포기하고 경기도 안산에서 은거하며 독서에 파고들었다.
“그가 보기에 학술은 권위를 내려놓아야 했고 지식은 재정비되어야 했으며 현실은 개혁되어야 했다.”(175면) 성호 이익의 눈에 비친 당대 유학은 주자학을 교조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이익은 성리학 경전을 철저히 고증하는 한편, 노자·장자를 비롯하여 서양 학문에 이르기까지 유교 바깥의 문물 또한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본인이 은거하던 안산 지역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고 농민의 피폐한 삶을 야기하는 원인을 살피면서 국가의 개혁이 필수라고 보았다. 이 같은 사회개혁론을 바탕으로 화폐의 유통과 상업 발달, 관리 임용과 교육 등에 관한 논설을 펼침에 따라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 또한 많아졌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안산 첨성촌에 몰려들면서 조선 후기 실학의 요람이 된 성호학파가 만들어지게 된다.
성호학파의 학문 방법론은 유교 경전을 그저 따르기보다는 스스로의 의심이 해소될 때까지 이치를 규명해내는 데 있었다. 이익은 그 당시 학자들이 주자학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스스로 독자적인 해석을 덧붙인 주석을 작성했다. 또한 관념적인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물질성을 사유했고, 이로써 유학의 도덕 원리가 어떤 방식으로 실제의 물리적 현상 연구를 통해 인간의 이해에 다다르는지를 살폈다. 이를 위해 유형원은 서양의 천문학, 지리학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병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실질적 탐구에 대한 의지는 민생 안정을 비롯한 사회 개혁에 대한 열의와 맞닿았다. 유형원은 그의 대표 저술인 『성호사설』과 『곽우록』에서 조선사회를 개혁할 구체적인 안들을 제시했다. 토지 제도에서는 토지 소유를 균등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잡고 토지 매매를 금지하고 가구당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토지를 보유토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당시 어수선한 화폐 유통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화폐 사용을 금지하고 곡식과 포목을 유통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농업 생산 증진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고뇌에서 비롯한 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호학파의 제자들은 서양 학문을 둘러싼 다양한 사상으로 분화하며 조선 후기 사상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성호학파 중 우파(안정복 등)는 성리학의 정통성을 토대로 서양 학문을 비판적으로 보았고, 좌파(권철신 등)는 서양 학문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실질적인 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이 두 학파는 공히 개인의 마음 수양과 공적인 실천, 정신과 육체, 관념과 실질 등의 논제를 다각도로 사색하며 조선 후기 지성사에 풍성한 자취를 남겼다. 유형원과 이익이 남긴 이러한 학문적 유산과 실천의 정신은 후배 학자들을 거쳐 정약용에게까지 이어졌다.


유형원柳馨遠
조선 후기의 유학자·실학자. 전라도 부안에 은거하며 농촌 현실을 직접 체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제민의 정책론인 『반계수록』을 저술했다. 토지의 균등한 분배를 비롯해 교육·관료·군사·조세제도 전반의 개혁을 주장하며 자영농 육성과 민생 안정을 추구했고, 후대 실학 형성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익李瀷
조선 후기의 유학자·실학자. 과거와 관직에서 멀어진 뒤 성호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성호사설』 『곽우록』 등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신문물을 폭넓게 탐구하고, 유학을 바탕으로 현실 개혁과 경세실용을 추구했다. 그의 학문은 성호학파로 이어져 안정복과 정약용 등 후대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편저자 윤석호尹錫皓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 정약용 경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조선을 중심으로 한 전근대 동아시아 경세론의 전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한국토지용어사전』 『민장치부책으로 보는 1906년의 강진』 등의 저역서에 참여했다.

편저자 김보름
안양대학교 연구교수. 정약용의 저술과 학문에 대한 문헌학적·철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중국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의 한문서학서를 매개로 동양과 서양의 문명교류를 연구하고 있다.



창비 한국사상선 12
홍대용·김정희
공관병수와 실사구시의 사상
박희병 편저

안팎에서 도전에 직면한 조선 유학
새로운 사유에 눈을 뜬 사상가 담헌과 학자 추사의 길

창비 한국사상선 제12권 『홍대용·김정희: 공관병수와 실사구시의 사상』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인 홍대용과 김정희의 글 중에서 그들 사상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 되는 것을 뽑아 엮은 책이다. 책의 부제 가운데 ‘공관병수(公觀倂受)’는 홍대용 사상을 집약하는 키워드로, 공정하게 보아서 이단의 장점을 두루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이전까지 절대적 진리로만 여겨진 주자학을 회의하고 노자·장자와 불교 등에까지 시선을 확대하여 두루 살핌을 가리킨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사실에 의거하여 진실을 찾는다는 의미로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주요 논제를 이어받아 자신의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