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사

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사

$23.00
Description
『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사』는 191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 조선 땅 방방곡곡의 가마니 생산에 관한 신문기사 340건을 엮은 자료집이다. 일제의 농업수탈 정책이 가동한 시기부터 산미증식계획과 농촌진흥운동을 거쳐 전시체제 아래 ‘애국’의 명분으로 가마니 제작이 장려되기까지, 조선 농가의 부업으로 정착한 가마니 짜기와 이에 종사한 농민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어린아이들까지 학교에서 가마니 짜기를 배우는 당시 풍경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가마니를 생산하고 생산대금마저 국가에 헌납해 ‘가마니호’라는 비행기를 만드는 데 소용되고 말았던 고달픈 식민지 농촌의 실상을 낱낱이 증명한다.
저자

인병선

저자인병선은짚풀생활사박물관장.1935년평안남도용강에서태어나서울대철학과를중퇴했다.1991년짚풀문화특별전을열고,1993년짚풀생활사박물관을설립하는등우리집풀문화에대한조사·정리작업을꾸준히해왔다.2005년짚문화연구에대한공로를인정받아제2회대한민국문화유산상을받았다.
지은책으로『짚문화』『풀문화』『우리가정말알아야할우리짚풀문화』『벼랑끝에하늘』『들풀이되어라』『우리민족찾아아시아대장정』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해설:일제의농업수탈과가마니|김도형

제1장:쌀수탈을위한가마니제조강요(1910~19)
제2장:산미증식속에서가마니도증산(1920~31)
제3장:농촌진흥을위한‘갱생’가마니(1932~36)
제4장:전시체제하의보국운동,‘애국’가마니(1937~45)

기사목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산미증식계획부터애국가마니의등장까지
일제강점기가마니생산과농민삶에관한사적자료


흔히곡식담는자루를가리키는‘가마니’는순우리말이아니다.가마니는일본어‘카마스’에서유래한말로,실제로도1876년강화도조약이래일본이조선에서쌀을수탈해가기위해조선에일본식자루를들여오면서보급되기시작했다.1차대전이후일본경제가호황을맞이하여일본본토의쌀수요량이급증하자가마니수요도더불어증가했고,가마니는조선에서본격적으로제작되었다.가마니이전조선에는곡식담는포대로‘섬’이있었는데,가마니는섬보다부피가작아한사람이운반하기에적당했으며두께가두껍고사이가촘촘해곡물이흘러내리지않았다.일제강점기조선농촌은일본에쌀을공급하는기지로서가마니생산을핵심부업으로삼게되었다.
이책『가마니로본일제강점기농민수탈사』는1910년대부터해방전까지조선땅방방곡곡의가마니생산에관한신문기사340건을엮은자료집이다.『매일신보』『동아일보』『조선일보』에실린이들기사는일제의농업수탈정책이가동한시기부터산미증식계획과농촌진흥운동을거쳐전시체제아래‘애국’의명분으로가마니제작이장려되기까지,조선농가의부업으로정착한가마니짜기와이에종사한농민삶의다양한모습을담고있다.어린아이들까지학교에서가마니짜기를배우는당시풍경은,일제의전쟁수행을위해가마니를생산하고생산대금마저국가에헌납해‘가마니호’라는비행기를만드는데소용되고말았던고달픈식민지농촌의실상을낱낱이증명한다.

‘자력갱생’과‘애국’의이름으로,
가마니짜던사람들


이책은일제강점기조선의가마니생산을네시기로구분한다.첫번째는토지조사사업이시행되고일제의농업수탈정책이확립되던1910년대,두번째는산미증식계획으로가마니생산도급증한1920~31년,세번째는농촌진흥운동속에서농민의‘자력갱생’명목으로가마니생산이부업으로장려된1932~36년,네번째는전쟁물자를조달하기위해‘보국’과‘애국’명목으로가마니생산이촉진된1937~45년이다.
1910년대일본인들은조선에서자신들의입맛에맞는벼품종을보급했으며농사법과거름주기방식을개량하고일본식정미소를운영하는등철저히수탈을위한농업정책을펴나갔다.조선에서생산된쌀을일본본토로반출하기위해가마니제조를늘린것도이무렵이다.1907년경전남나주에서일본식가마니가처음제작되고난뒤,조선총독부에서는가마니짜기가농가부업으로적합하다는이유를들어가마니생산을장려했으며,전국에가마니짜기교습소(전습소)와가마니짜기대회를열고가마니짜는기계를보급하는등대대적으로이를홍보했다.
1920년대는1차대전이후일본의경제호황과‘쌀폭동’으로일본내부족해진쌀공급을위해조선에서산미증식계획이실시된시기다.이에따라밭을논으로바꾸고기존의논을개간하는사업이이뤄졌으며,그렇게증산된쌀가운데일본으로이출된쌀의양은1920년175만섬에서1930년542만섬으로10년새3배가늘었다.일제는산미증식계획으로몰락한조선농민을가마니생산으로유도하고자모범부락을선정해가마니생산효과를선전했다.또한편으로는값싸고질좋은가마니를확보하고자‘가마니검사규칙’을시행해가마니의크기·용도·등급을규제하고개인판매를금지했다.
1920년대말세계경제공황의여파속에일제는군국주의체제를강화하고1931년만주사변을일으켰다.조선에서도쌀값폭락으로농민층몰락과농민항쟁이가속화되자일제는농촌진흥운동(1932)을펴고「조선농지령」(1934)을제정하는등소작농을안정적으로관리하기위한정책을실시했다.이때가마니짜기는농가인원을최대한활용하는부업의핵심사업으로장려되었다.특히1920년대후반부터보통학교학생들에게가마니짜기를가르치기시작해가마니짜기강습회와경기대회가전국적으로확산되었는데,이는어릴때부터‘근로정신’을함양해농촌지도자를양성한다는명분아래행해졌다.
1937년중일전쟁이후일제는전시체제를굳히고「국가총동원법」(1938)을통해전쟁에필요한물자와인력을조선에서공출할토대를마련했다.가마니는군수식량을포장하거나참호같은군사시설을만드는데필요한직접적군수용품으로서공출과통제의대상이었다.새끼·거적·가마니는농촌에서생산하는‘병기’였던셈이다.1930년대말조선에서는연간약1억장의가마니를만들어야했다.총독부는조선승입협회를만들어가마니생산과유통을일원화했으며,농민들에게황소한마리를경품으로주면서까지가마니생산을독려했다.또한가마니생산에‘보국’과‘애국’을명분으로내걸고,가마니생산·판매대금을‘국방금’으로헌납하도록부추겼다.1940년대『매일신보』에는집집마다가마니짠대금을모아기관총이며배,비행기를국가에헌납했다는기사가심심찮게등장한다.심지어강화에서는보통학교학생들이가마니짠대금을비행기대금으로납부하기도했다.이런일화는언론을통해미담으로널리선전되었다.
자력갱생과농촌진흥,애국과보국등구호를바꿔가며식민지농업수탈정책이지속되는동안수많은조선농민은토지를잃고가마니짜는부업으로겨우생계를유지해갔다.가마니의재료인볏짚이귀한지역에서는그마저도빚을져볏짚을구해야가능했다.1927년10월25일자『동아일보』에는일야인(一野人)이라는필명으로르포성격의글이기고되었는데,‘농촌고화(農村苦話)’라는연재제목그대로가마니를짜던당시조선농민의힘겨운생계를생생하게묘사한다.이글은두세칸짜리오막살이에사는농촌의3인가정이새해를맞는풍경을취재한것이다.근방에사는지주·자본가들이농민의피와땀으로얻은“위스키와고급서양요리와기생”을곁에두고연회를즐기는풍경과대조해,“콩나물김치와수수떡”을먹으며“무서운빚쟁이와착취자로부터5,6일쯤의독촉과몰아댐을면하는휴식”을얻는것도“노예에지나지않는우리로서는”감사할일이라며운을뗀다.기고자가들여다본이가정의일상은아침부터밤까지꼬박가마니를치고,다시밤부터아침까지가마니모양을내는3인교대노동으로쉴틈이없다.

가마니를치는데는볏짚이흔한지방에서는과히그렇지않지만그것이귀한곳에서는이에적당한원료를얻기위하여우리농민들은한달에6리가넘는1~2원의고리대금을간신히얻어가지고20리내지30리의먼시골을쏘다니지않을수없다.(…)딸은기다란바늘대에짚을낱낱이꿰어서늘어놓인날사이로그것을슬렁슬렁지르면그아버지는이것을바디로소리가나게쿵쿵내리친다.하루에몇천번인지,몇만번인지모르게이렇게지르고또이렇게구르고하여그이튿날읍내장에열리는가마니조합판매에어기지않으려고밤이깊도록작업을계속한다.이리하여두사람의숙련자로서아침부터밤까지꼬박친것이라하면하루에12~13장을치는소녀는“아이고팔아파”하는소리와함께피로를이기지못하여그만짚더미속에쓰러지게된다.그의오른팔에는멍울이서고힘줄이당긴다고한다.그러나그부모는그사랑하는딸의팔을만져줄새도없이다시이것을새끼로써꿰매고접고해꾸미기에분주하다.이것을끝내고나면흔히닭우는소리를듣게된다.그남편은이튿날아침에밥을재촉하여먹은뒤에이것을짊어지고20리길이나되는읍내장을향해달음질을친다.(본문94~95면)

그밖에‘공급부족’과‘생산과다’를왔다갔다하며농민들을압박하는식민정부아래,12세소녀가가마니짜기를잘해일가족6명이이번봄에는풀을먹지않아도되었다고하는등의‘미담’도있다.이책은농가의부업에서어느새농민삶의질곡이된가마니짜기를통해일제강점기농업정책의효과를미시적으로보여준다.시대의단면을포착한르포르타주로서,노동수탈현실을고발하는기록으로서오늘날새롭게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