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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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해와 교류의 상대로서 조선과 일본을 발견하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부터 1764년까지 170여 년 간의 일본 견문기 35종을 바탕으로 조선의 일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추적해 조일관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재일교포 3세로 일본과 한국에서 수학하고 현재 중국 중산 대학에 몸담으며 동아시아인들의 교류상을 연구해온 저자는 정밀한 통찰력으로 170여년에 걸친 시대의 기록을 엮어 일방적 전파가 아닌 상호 교감과 교류의 파노라마를 그려냈다.

저자는 문학교류에 치중해온 기존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딛고 이념·제도·풍습·종교·문화·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일본사회를 이루는 총체적 기반을 당대 조선의 눈을 빌려 탐험한다. ‘우월한 유교문명의 전파자’ 조선 대 ‘선진문물의 수용자’인 낙후한 일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화합과 충돌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인간적인 교류를 쌓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평화적 공존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본다.
조선 문인들은 한편으로 경탄하고 한편으로 경계하는 가운데 문명세계의 일원으로서 이웃 사회와 함께 살아가기를 꿈꿨다. 그들에게 일본은 호감과 반감이 섞인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이질적 공간이었는데, 교류의 장에서도 이처럼 상반되는 감정이 오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처럼 낯설고 특이한 일본이라는 나라를 관찰한 경험의 축적이 무엇을 낳았는지, 일본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무엇을 감지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저자

박상휘

저자박상휘朴尙輝
1979년일본토오꾜오에서태어난재일교포3세이다.토오꾜오외국어대학중국어학과를졸업한후토오꾜오대학에학사입학해동대학원에서석사과정을마치고,서울대국어국문학과에서조선통신사관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중국중산대학(中山大學)국제번역학원특빙연구원으로재직중이다.일찍이동아시아에서생존한사람들이이웃나라의문화·제도·생활환경에어떤위화감을가지고있었으며어떻게교류했는지를연구하고있다.주요논문으로「조선후기존황사상의전파와천황제인식의변화」「조선사절이본일본의신분제」등이,옮긴책으로『청령국지』(공역)가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1.이책의과제/2.이책의내용과구성/3.선행연구의문제점과이책의특징

제1장삶과죽음
1.‘호생오사’와‘낙사오생’/2.죽음이일상화된사회/3.‘경생’에서‘호생’으로

제2장원한
1.토요또미히데요시를원망하는일본인/2.과거를뉘우치는일본인/3.‘구세복수’와‘와신상담’

제3장제도
1.병농분리사회를관찰하다/2.양민과양병/3.신분제에대한인식

제4장통치법
1.어떻게평화가유지되는가?/2.세습되지않는관직/3.구임제와세습제

제5장사치와번영
1.풍요로운사회/2.검소한생활/3.나가사끼에대한관심과조선의해외통상론

제6장기술
1.‘천하일’과일본의기술문화/2.건축과도량형/3.조선술

제7장문자생활
1.‘카나(?名)’와일본식한자/2.한자와한문의사용/3.훈독법과한문직독법

제8장문풍
1.한시수창을둘러싼갈등/2.오규우소라이숭배와일본의문운/3.타끼카꾸다이와의만남

제9장교류
1.계미년의문학교류/2.교감과유대의식/3.‘동문세계’에의꿈

제10장문화와풍속
1.신불숭배/2.유풍에대한평가/3.일본의유교화와동아시아의평화

결론위화감과대화하며공존하다
주/참고문헌/찾아보기/도판출처

출판사 서평

조선문인들의마음에파문을일으킨
일본무사사회의파노라마

호감과반감,동질성과이질성이교차하는
조선문인들의에도(江?)시대견문기를통해
평화적공존의역사적기원을찾는다

우리에게일본은무엇이었나?영원한이웃일본과조화로운공존을모색하는작업은언제나이질문에서시작하게마련이다.인간이라면누구나‘삶을좋아하고죽음을싫어한다’(맹자·주자)고여기던조선문인들은‘호전적’이며‘죽음을가벼이여기는’무사의나라,에도시대일본과마주해이곳을살아가는이들의눈빛과표정,몸짓·태도에서무엇을읽어냈을까?
이책『선비,사무라이사회를관찰하다』는임진왜란직전인1590년부터1764년까지170여년간의일본견문기35종을바탕으로조선의일본에대한인식변화를추적해조일관계를보는새로운시각을제공한다.저자박상휘는문학교류에치중해온기존연구의성과와한계를딛고이념·제도·풍습·종교·문화·일상생활에이르기까지일본사회를이루는총체적기반을당대조선의눈을빌려탐험한다.전란을겪으며적대와혐오,반감을품고시작한교류는낯선땅에서살아가는인간애를지닌사람들을만나면서서서히이해와공감의장으로들어선다.조선문인들은한편으로경탄하고한편으로경계하는가운데문명세계의일원으로서이웃사회와함께살아가기를꿈꾼다.이책은‘우월한유교문명의전파자’조선대‘선진문물의수용자’인낙후한일본이라는이분법에서벗어나이해와교류의상대로서조선과일본을발견하도록독자를이끈다.
재일교포3세로일본과한국에서수학하고현재중국중산(中山)대학에몸담으며동아시아인들의교류상을연구해온저자는,정밀한통찰력으로170여년에걸친시대의기록을솜씨있게엮어일방적전파가아닌상호교감과교류의파노라마를그려냈다.

글읽는선비와세가지칼을찬무사,
달라도너무다른두세계의만남

조선과일본은얼마나다른나라인가?임진왜란이있기까지조선은200년간단일한통치이념아래전쟁없는평화를누리고있었다.반면일본은400년가까이크고작은내전을거치며만인이만인을경계하는전국(戰國)시대를살고있었다.이런역사적배경은무엇보다인간에대한인식에서정반대의관점을낳았다(제1장삶과죽음).또한조선과일본은국가를운영하는방식(제3장제도,제4장통치법)부터생활태도와풍속(제5장사치와번영,제6장기술,제10장문화와풍속),교육과학습방식(제7장문자생활,제8장문풍)등거의모든방면에서상반되는모습을보였다.
가장근본적이고상징적인차이는생명관에나타난다.정유재란때포로가되어1597년부터3년간일본에서억류생활을한강항(姜沆)은일본무사에게묻는다.‘삶을좋아하고죽음을싫어하는것은사람이나만물이나같은법인데,일본사람들은어째서죽음을즐기고삶을싫어하는가?’(27면)조선이예와도를중시하는선비?사대부의사회였다면일본은죽음으로써의를실천하는무사사회였다.남자들은상대를죽이거나방어하거나여의치않으면자결할목적으로항시대·중·소세가지칼을차고다녔으며(28면),싸워얻은흉터는명예고피하다얻은흉터는치욕이었다(92면).가족간에도경계심을풀지않아부자·형제도칼을차고만나며,공격당할까두려워잔치가있어도취하도록술을마시지않았다(41면).섬기는주군을위해목숨을바치는것이의(義)의근본이라는이런생각은한편생명을경시하는풍조로이어져잔혹한모습을보이기도했다.조선사절이가장혐오한것은할복과시검(試劍,시체를대상으로칼날을시험하는것)이었다.측은지심(惻隱之心)을사람다움의근본으로보는유교의관점에서이런일본의풍속은차마믿을수없을만큼비인간적인것이었다.

“천하에일본사람같은사람들은없을것이다”
200년간평화를유지해온막부사회의비결을배우다

이토록다른사회를조선사절들은어떻게받아들였을까?조선사절들은일본을부정적으로만인식하지않았다.일본이라는거대한이질적공간에서실제로살아가는사람들과얼굴을맞댄교류가이어지자자연스러운감정적유대가생겨난것이다.위화감과반감의한편에서싹튼이런정서적공감은일본사회에대한객관적이해의바탕이되었고,일본의발전상에비추어조선을성찰하게되면서조선개혁의흐름에영향을끼치기도했다.
임진왜란을거치며조선에게일본은기본적으로“같은하늘아래살수없는”존재(55면),집단적적개심의대상이었다.동성혼(同姓婚)과이성양자(異姓養子),신불숭배처럼미개한풍습에천리(天理)없는정치를펴는나라였다.극히일부승려와관료외에는장관도글을아는사람이없고,사대부의나라조선과달리무사우선,양병(養兵)이국가운영의기본인사회였다.관료는실력에따라선발하는것이아니라세습되었다.천황은이름뿐,실권은쇼오군이쥐고지방정치는쇼오군의위임을받은다이묘오들이장악하고있었다.사치하기를좋아해비천한사람도힘이있으면한도없이화려하게꾸미고,지기를싫어해늘남과경쟁했다(154면).그런데이런나라가어떻게200년가까이평화와안정을유지하면서날로부강해지는가?조선사절들은그원인을오랜세월다각도로탐색하면서조선의번영에도움이될점을찾고자했다.그과정에서이해와공감,배움이생겨났다.
우선제도적으로는군사와농민을분리운영함으로써항시군사동원이가능한점,주요관직은선발하여종신토록,심지어대를이어맡김으로써업무의안정성과효율성을높인점,실권을장악한쇼오군이참근교대(參勤交代)등을통해다이묘오를적절히관리하는점,신분제가깊이뿌리내려“비록세상을뒤덮는용기와만고에떨칠재주가있어도또한상업·공업·농업에뜻을굽히고”신분의고하를막론하고“조금도분수에넘치는일을바라는마음이없”는(122면)점등이이나라를안정적으로유지하는근간임을사절들은통찰했다.
또한분수를지켜생업에성실하고,절제하며살아가는일반백성들의모습을긍정적으로보았다.사찰과신사,다이묘오의저택등은화려하고사치스럽기이를데없지만그한편에서근면하고검소하게살아가는일반백성들이일본경제를떠받치는또다른축임을짚어냈던것이다.“일찍일어나서늦게자며,열심히자기의힘으로먹고산다.내가생각하기에아마도천하에일본사람같은사람들은없을것이다”(원중거,161면).한편,식습관과관련해서는조선사람이하루에먹는양이일본사람의3일치에해당한다거나(159면)일본의보통사람은하루에두끼를먹는데한끼에밥두어홉에반찬도두어가지에불과해(157면)조선사람보다식사가훨씬간소하고대체로소식한다는기록이여러군데보여흥미롭다.물자가풍부한데도생활을절제하는민중이국력을밑받침하고있다는사절들의인식을보여주는대목이다.

능숙한대외무역과탄탄한기술력,
조선의개혁론자들을자극한일본의경제발전

평화와안정을바탕으로전개된대외무역과이를통해축적된부,장인을존중하는사회분위기에힘입어발전을거듭한17,18세기일본의기술력은무엇보다사절들이주목한면이다.16세기부터일본은활발한대외무역을벌였고그중심에는무역항나가사끼가있었다.세계35개국과교역하던아란타(네덜란드)와의무역을통해일본이일찍이선진문물을수용한것은잘알려진사실이다.18세기초부터조선사절들은나가사끼무역에주목했고1763년의계미통신사는일본이중국과직접무역함으로써중개무역으로얻던조선의이익이급감했음을뚜렷이인식하게된다.국제경제의일원으로서조선의위치를자각하기시작한것이다.이런인식은조선후기유몽인,안정복,이덕무등을거쳐박제가의『북학의(北學議)』에서해외통상론으로이어진다.“일본이나라가부유하고군사가강해바다가운데에서세력을떨치는까닭은능히외국과교통하기때문”이며(170면)“우리나라는산천이좁고막혀있으며땅에서나오는산물이많지않은데다다른나라와재화를통하지않”아서(169면)경제발전을이루지못한다고인식했던것이다.아쉽게도이런논의가조선에서힘을얻어실질적조치로이어지지는못했다.
일본에서나라의부와함께정교하고탄탄한기술력은국민의일상생활을편리하고효율적으로만드는바탕이었다.일찍이조선기술자를데려가선진기술을배워야했던낙후한일본은17세기에이르면조선사절들의감탄을자아내는설비와기술을보유하게된다.조선사절들은일본의성곽·수차·사찰·민가등을상세히관찰하고기록했다.특히눈길을끈것은수차(水車)였다.17세기초이래강에서“물을끌어올려바로부엌으로”대주고성전체에물을공급하는수차의구조를자세히묘사하며그규모와효율성에감탄하는기록이거듭보인다(181~83면).전국적으로도량형이통일되어민가의집“칸의크기가한자한치도다르지않”고“길가의여러집들이먹줄을친듯이바르게늘어서있”으며“병풍과자리(다다미)를설사다른집에옮겨놓더라도조금도들어맞지않음이없”는점또한주목한부분이다(187면).
무엇보다괄목상대하게발전한것은조선술이었다.임진왜란의해전에서승리한이래조선은자국배의견고함을자랑하여조선술에자부심을갖고있었다.1655년까지조선에서는일본배가“정교하고화려하지만견고하기는우리나라배에훨씬미치지못한다”(193면)라는인식이주를이루었는데,이런인식은18세기에들어역전된다.1748년의사행원홍경해는일본배가“만약병기를싣는다면어느곳에나아가든대적할만한상대가없을것이다.우리나라전함의훈련은(…)이것과비교하면아이들장난에불과하다”(195면)라고기록했으며조선술에서네덜란드?중국?일본?조선순이라는평가를수용하고있다.100년이못되어기술력의순위가뒤바뀐것이다.조선사절들은자국방어차원에서이런상황에크게위기의식을느꼈다.원중거는『화국지(和國志)』「주즙(舟楫)」에서배의크기와구조부터국가가배를운용하는제도,설계의정밀함,기술인력에대한치밀한관리등을기록하며조선의기술을발전시키자고주장했고,조선후기이용후생론자들또한공통적으로조선술에관심을가졌다.일본의높은기술력이조선의개혁론자들에게자국을성찰도록자극했던것이다.

‘우리는같은문(文)을공유하고있다’
문화적유대와동아시아평화공존의꿈

일본의발전과부강이조선에자국을성찰하는계기로작동했다면일본을같은문화권의일원으로인정하고평화공존의꿈을꾸게한것은일본의유교화였다.1603년에들어선토꾸가와막부는유교를장려했고각지에학교를세워일본전역에서배움에힘쓰는분위기가지속되었다.“그나라의풍속이원래글을배우지않아위로천황부터아래로서민까지한사람도문자를아는자가없다”(강홍중,216면)라는것이17세기초까지의인식이었으나,1682년사행에서는“우리나라사람들은일본을야만으로여겨(…)거의마음을두지않는데,이는매우두려워할일이다”“우리가돌아갈때에우리의글에대해좋고나쁨과장단점을평론하고책으로엮어국중에유포한다.나같은못난이로서는(…)진땀이나지않을수없다”(홍세태,219면)라는토로가보인다.불과100년도안되어일본은4,5세어린아이가붓을잡고10여세아이가시를지으며여자들도당시(唐詩)를쓰는“해중문명의고을”(219면)이라는평을듣게까지되는것이다.
조선사절이왔다하면구름처럼몰려들어정성으로시문을구하고글씨한자,말한마디를얻으면소중하게간직하는일본인들의모습에사절들은감동했고,빠른속도로성장하는일본유학은기대감을품게했다.특히1763년의계미통신사일행은일본고문사학(古文辭學)을계승해사절들과‘성인의도’를둘러싸고논쟁을벌인타끼카꾸다이(瀧鶴臺)를높이평가했다.그의풍부한학식과온화하고겸손한사람됨에깊은인상을받은사절들은논쟁의내용과함께타끼카꾸다이의이름을조선에전했고,이를통해조선지식인들은일본에뛰어난문인들이등장했음을알게되었다.일본과‘문(文)을같이하고있다’는의식이형성된것이다.
이런의식은일본의학문을비웃고폄하하던자세를반성하는계기로작용했으며,나아가조선지식인들은“일본에문을같이하고마음을같이하고도를공유하는세계가실현되기를”(307면)꿈꾸게되었다.일본이‘인(仁)’을근본으로삼는유교국가가되었으면하는이런바람은양국의현실적이해관계를염두에둔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