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30.00
Description
역사에서 사라진 해방공간의 법조인들을 소환한다!
우리 헌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현대적 의미로 되살려낸 《헌법의 풍경》, 법조계를 둘러싼 모순과 병폐를 정면으로 제기했던 《불멸의 신성가족》 등 전공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나라 법조계를 날카롭게 분석해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가 3년 넘는 치밀한 조사 끝에 우리 법조계의 초창기 풍경임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해방 전후 법조계의 형성 과정을 치밀하게 복원한 『법률가들』.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사람 이야기로 풀어가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해방 직후 법조계에 자리 잡은 이들을 고등시험 사법과, 조선변호사시험, 서기 경력을 통해 특별 임용된 사례로 구분해 소개하며 개개인의 이력에 숨은 맥락을 고찰한다. 총 7부로 구성되어 있고 초창기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묶어 설명한다.

제1법률가군은 해방 후 한국 법조계의 최상층부를 형성한 사람들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를 합격하고 일제시대 판검사를 지낸 이들이다. 제2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시험 출신, 제3법률가군은 일제시대 서기 겸 통역생 출신으로 해방직후 판검사에 임용된 사람들이다. 해방직후 잠시 존속했던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등 해방 후 법률가자격을 갖춘 이들은 제4법률가군으로 분류된다. 1부부터 3부까지는 법률가군들의 기원과 태생에 대해 설명한다.

4부와 5부에서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권력을 휘두르며 활동했는지를 대표적인 사건을 통해 살펴본다. 이어서 6부에서는 한국전쟁이 우리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7부에서는 해방 당일 시험에 응시했던 기록만으로 법조계에 몸담게 되었고 이후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이법회’의 행적을 추적한다. 이처럼 당시 법조계의 풍경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법부의 구조와 현상 등을 상당 부분 설명해주는 길이 될 뿐 아니라, 친일문제를 비롯해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역사적 사실의 분석과 법조계의 제도에 초점을 맞춘 학술서이기보다는 사람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라는 저자는 역사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소재와 인물이 무수하게 등장하지만 모두에게 고른 각광을 비추며 공과를 일방적으로 단언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복잡한 역사적 흐름과 수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특유의 탄탄한 글솜씨를 바탕으로 대하 역사 소설에 버금가는 흡인력 있는 전개와 자상하고 친절한 해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독자들의 독서 경험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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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두식

지은이:김두식
서울에서태어나고려대법대를졸업하고군법무관,서울지검서부지청검사,변호사로일했다.코넬대로스쿨에서석사학위(LL.M.)를취득한후한동대법학부교수를거쳐2006년부터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에서형법,형사소송법,형사정책을가르치고있다.한국출판문화상을받은『헌법의풍경』을비롯해『평화의얼굴』『불멸의신성가족』『교회속의세상,세상속의교회』『불편해도괜찮아』『욕망해도괜찮아』『공부논쟁』(공저)등몇권의책을썼다.  

목차

프롤로그

1부모든것을가진사람들-고등시험사법과합격자들
1장독립운동가집안의아들,친일검사가되다
2장친일과반일사이에서-1937년의다른합격자강중인,조평재,오승근,양원일

2부이류에서일류로편입된사람들-변호사시험출신들
1장허헌,순수한변호사출신의뿌리를찾아서
2장독학자의등용문,조선변호사시험출신들

3부벼락처럼찾아온해방,새로운기회의시대
1장한민당과통역관의시대-해방과조선인‘자격자’의판검사임용
2장저절로굴러들어온별을잡은사람들,그별을놓친사람들

4부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
1장서막-김계조와법조계의마지막봄
2장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의전개
3장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에관여한판검사들
4장본정경찰서의고문기술자들과극우청년단체

5부‘법조프락치’사건
1장‘법조프락치’사건의서막-여순반란,국회프락치,그리고적색사법관
2장1차‘법조프락치’사건과김영재
3장2차‘법조프락치’사건과이정남,이홍규

6부한국전쟁이라는쓰나미
1장우왕좌왕각자도생,우익법률가들
2장이리죽으나저리죽으나,좌익으로몰린법률가들

7부1980년대까지이어지는‘이법회’의문제
1장법조계역사의유령,이법회를찾아서
2장유태흥과홍남순,같은뿌리다른인생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치열하고집요하게복원한한국법조계최초의풍경들
일제시대부터한국전쟁까지,법조계의기원을추적하다!


우리헌법에담긴근본정신을현대적의미로되살려낸『헌법의풍경』,법조계를둘러싼모순과병폐를정면으로제기했던『불멸의신성가족』,그리고영화를통해인권의여러측면을알기쉽게풀이한『불편해도괜찮아』,개인의욕망과사회적규범에대한솔직한고백을담은『욕망해도괜찮아』등,전공분야를넘나들며우리사회에던지는굵직하고건강한메시지로많은독자들의사랑을받았던김두식교수(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가오랜자료조사와연구끝에『법률가들:선출되지않은권력의탄생』을펴냈다.이번책은우리법조계의초창기풍경임에도주목받지못했던해방전후법조계의형성과정을치밀하게복원하면서역사에서사라진해방공간의법조인들을소환해빈구멍을채웠다.
김두식표글쓰기의특장은전작에서도이미증명된바,이책도복잡한역사적흐름과수많은인물이등장함에도특유의탄탄한글솜씨를바탕으로흡사대하역사소설에버금가는흡인력있는전개와자상하고친절한해설,균형잡힌시각이빛을발한다.역사적으로민감할수있는소재와인물이무수하게등장하지만모두에게고른각광을비추며공과功過를일방적으로단언하고평가하지않는저자의배려와숙고가행간에많은여운을남기며독자들의독서경험을풍성하게해줄것이다.
당시법조계의풍경을이해하는것은오늘날사법부의구조와현상등을상당부분설명해주는길이될뿐아니라,친일문제를비롯해제대로청산하지못한과거사를고스란히이어받고있는우리사회의전반을되돌아보게하는계기가될것이다.

‘불멸의신성가족’그뿌리는누구인가

『법률가들:선출되지않은권력의탄생』은‘불멸의신성가족’,즉우리법조계가어떻게해서현재와같은모습을갖추게되었는지그뿌리를집요하게탐구한치열한시도다.해방전후부터한국전쟁까지우리나라법조직역의형성과정을‘사람’이야기로풀어가는이책은총7부로구성되어있고초창기대한민국법률가들을네가지유형으로묶어설명한다.제1법률가군은해방후한국법조계의최상층부를형성한사람들로,일본고등시험사법과를합격하고일제시대판검사를지낸이들이다.제2법률가군은조선변호사시험출신,제3법률가군은일제시대서기겸통역생출신으로해방직후판검사에임용된사람들이다.해방직후잠시존속했던사법요원양성소출신등해방후법률가자격을갖춘이들은제4법률가군으로분류된다.1부부터3부까지는그런법률가군들의기원과태생에대해설명한다.
‘1부모든것을가진사람들:고등시험사법과합격자들’은1937년합격자들을중심으로일본고등시험사법과제도를탐구했다.바로제1법률가군(群)이야기다.일제의법률가선발시스템은판검사임용시험과변호사시험으로분리시행되다1923년고등시험사법과로통합되었다.고등시험은예비시험,필기시험,구술시험의3단계로진행되었으며,학력제한이존재했다.예비시험에응시라도하려면중학교를졸업하거나그와동등한학력을갖추어야했고,예비시험을면제받으려면고등학교,대학예과또는문부대신이이와동등이상이라고인정하는학교를졸업해야했다.경성제대와전문학교중에서는관립경성법전졸업자만이고등시험시행초창기부터예비시험을면제받았고,보성전문졸업생은1929년,연희전문졸업생은1932년에이르러서야예비시험을면제받았다.진입장벽이그만큼높았다.예비시험은논문과외국어두과목으로실시되었고,한번만합격하면이후에다시응시할필요가없었다.
제1법률가군의대표적인물이자당대최고의엘리트김영재는안동지역유수의독립운동가가문출신으로경성제대재학시절급진적사상의언저리를맴돌았으나,고등시험사법과합격이후에는시대의변화에따라개인의영달을추구했다.친일검사로일하며누릴것은다누렸다.해방후반성의의미로좌익진영에가담했던‘성찰가’강중인,조선법학과동맹(법맹)을결성한‘호걸쾌남’조평재,반공판사로유명했던‘외골수’양원일,해방직후첫번째‘사법파동’의주인공인오승근,법조계의모든요직을두루거치며영광을누린민복기등1937년고등시험사법과합격자들의일제시대인생행로도김영재와크게다르지않았다.
‘2부이류에서일류로편입된사람들:변호사시험출신들’은일제시대‘이류’법률가로취급받았으나해방이후고등시험사법과출신과함께법조계의가장중요한뼈대를형성한조선변호사시험출신들의삶을다뤘다.제2법률가군이야기다.일제시대시행된조선변호사시험은이름그대로변호사가되기위한시험이었다.판검사가될수없었던대신응시자격에아무런제한이없었다.독학자라도이시험만붙으면변호사가될수있었다.공부에자신이있는청년들은누구나한번쯤‘독학자들의등용문’조선변호사시험을꿈꾸었다.이조선변호사시험출신중대표적인인물이허헌이었는데,판검사를거치지않은순수변호사의아버지격이던허헌은해방후좌익과중도진영의지도자로변신해북한최고인민회의의장,김일성종합대총장등을지냈다.그가왼쪽으로기울게된뿌리를탐구하는것은해방공간좌익진영의형성과정을이해하는데큰도움이된다.이념보다는사람들과의관계가중요했음을보여주기때문이다.이책에서는주로허헌의함경도인맥,이종만의대동콘체른과맺은인연,해방이후남한지역의과도한‘좌익사냥’에서그이유를찾는다.
‘3부벼락처럼찾아온해방,새로운기회의시대’는해방으로조선인법률가들에게벼락처럼찾아온새로운기회에대해이야기한다.남한을점령한미군정은일본인판검사를재판에서배제하고조선인법률가로그자리를채웠다.1945년10월11일해방후첫번째판검사임용이실행되었다.고등시험사법과와조선변호사시험출신들이이른바‘자격자’로서가장먼저유리한고지를점했다.미래가보장되었던이들의임용과정에서친일경력은걸림돌이되지않았다.중요한것은인맥과운이었다.삼팔선이북지역에서해방을맞이한판검사들은월남시기에따라서엄청난불이익을감수했다.이과정에서한민당출신이요직을독점했다.
출신지역과좌우대립에따른내부갈등도적지않아임용을받고도출근하지않는판검사들이많았다.미군정과법조인력정책담당자들은빈자리를채울특단의조치를마련해야했다.일제시대서기겸통역생으로일하며일본인판검사들을보조했던사람들이판검사들로임용되었다.바로제3법률가군이다.일제시대서기경력을바탕으로해방후검사에임용된오제도와같은제3법률가군출신은해방당시를기준으로판검사?변호사자격을갖추지못했던‘미자격자’로분류된다.이들은해방공간에서수적으로는판검사의다수를점했으면서도실제로는한번도주류가되지못했다.기득권을인정받은‘자격자’들과달리제3법률가군이권력의상층부에진입하려면어떤형태로든자기실력을보여줘야했다.미자격자는판사보다검사들중에더많았다.뭔가를보여줘야한다는이들의강박은해방공간의무리한검찰사건조작을이해하는중요한열쇠이기도하다.
또한해방후군법무관으로법조계에처음발을들여놓은사람들은자격자인지가분명치않은경우가대부분이었다.아예어떤종류의자격시험도거치지않은사람도많았다.군법무관들은한국전쟁이끝난후대거전역하여변호사를개업했다.대한변호사협회나서울변호사회에도적극적으로참여했다.1960년을기준으로할때서울지역변호사는300여명에불과했다.100명에육박하는군법무관출신들은결코작은세력이아니었다.1960년10월고등시험사법과,조선변호사시험등이른바‘정통고시’출신들은“서울변호사회가군법무관출신변호사들에게좌우되고있으며이로인해변호사들의질적저하가초래되고있다”면서새로운변호사회인서울제일변호사회를창립했다.1980년통합되어서울통합변호사회를결성할때까지20년동안서울지역의변호사회는두개로나뉘어존재했다.서울통합변호사회는1983년서울지방변호사회로명칭을변경했다.

그들은권력을어떻게휘둘렀나

3부까지에걸쳐설명한우리초창기법조계의풍경을바탕으로4부와5부에서는이들이본격적으로역사적인사건에어떤영향을끼쳤고어떤권력을휘두르며활동했는지를대표적인사건을통해살펴본다.이어서6부는한국전쟁이우리법조계에끼친영향을,7부에서는해방당일시험에응시했던기록만으로법조계에몸담게되었고이후그권력을유지하기위해애썼던‘이법회’의행적을추적한다.
‘4부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해방공간에서합법적으로활동하던조선공산당등좌익세력을일거에불법화시킨1946년5월의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을이야기한다.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하늘에서뚝떨어진단일사건이아니었다.조선정판사사건에앞서우리법조계는‘김계조사건’으로떠들썩했다.김용무대법원장,이인대법관등한민당세력이장악한법원과검찰은첫판검사임용때부터정치적중립성을의심받았다.오승근판사,백석황검사로대표되는좌익또는중도성향의법률가들은‘김계조사건’을계기로이상황을바로잡고자했다.정치적성향과상관없이재경지역에근무하던판검사80퍼센트가김용무대법원장퇴진운동에동조했다.우리법조역사상첫번째사법파동이었다.일시적으로성공한것처럼보이던이시도는역풍을불러왔다.그역풍으로오승근,백석황등의저항세력은퇴출되었고한민당의김병로가사법부장으로전면에등장해법원과검찰을장악했다.
바로이시기에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이터졌다.조작여부가지금까지도논란이되는이사건에는조재천과김홍섭이검사로,조평재?윤학기?강중인?김용암?한영욱?이경용?강혁선?오승근?백석황이변호사로관여했다.재판장을맡은양원일은편파적인공판진행으로물의를빚었다.재판장개인의외골수성격이그대로반영된재판이었다.이책은당시변호인들이제출한상고이유서를중심으로사건전체가조작또는과장되었을가능성에무게를싣는다.사건수사가진행된본정경찰서소속경찰관들의습성화된고문과조작행태도이런추정을유력하게뒷받침한다.
‘5부‘법조프락치’사건’은1948년정부수립을전후해법조계에서벌어진각종좌익관련사건을다룬다.1947년12월‘사법기관내의남로당프락치’로구속된남상문?홍승기?서범석등이른바‘적색사법관’사건,1948년10월여순반란사건진압의한복판에서군경에학살된순천지청박찬길검사사건,1949년7월의서울지방검찰청김영재차장검사사건,그해12월의2차‘법조프락치’사건,1950년3월의이홍규검사사건등은좌익을박멸해야한다는극우세력의편집증적집착과권력욕구가만들어낸‘관제빨갱이’의대향연이었다.이책은남쪽출신과북쪽출신의지역적갈등도이사건들의조작과과장에상당한영향을끼쳤다고추정한다.이런추정에힘을보태는것은흥미롭게도이회창전총리의아버지인이홍규검사다.
1차‘법조프락치’사건공판이거의마무리되던1949년12월부터는젊은세대법률가들에게불똥이튀기시작했는데사법요원양성소출신들이주된목표였고,서기출신중에서는비교적강직하다는이홍규검사가연루되었다는기록이남아있다.
‘6부한국전쟁이라는쓰나미’는한국전쟁이법조계에끼친영향을분석한다.한국전쟁이터지자김병로대법원장,김갑수내무부차관같은극소수의고위직법조인들은비교적빨리피난길에올랐다.유병진판사,오제도?선우종원검사같은월남민출신들도본능적으로위기를감지하고한강을넘었다.피난중에김갑수,오제도는‘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과그‘처리요령’을만들어부역자처벌을준비했다.서울환도후에유병진은그명령에의해양산되는억울한피해자를막기위해피땀을쏟았다.같은피난경험이었지만결과는그만큼달랐다.서울에숨어지낸김홍섭판사,홍진기법무국장,민복기대통령법률비서관,정희택검사,방순원변호사등은각자도생으로살길을찾아야했다.
김용무전대법원장을비롯한수많은법조인들은북한에납북되어역사에서사라졌다.전남지역에서는이덕우,염세열변호사가후퇴하는군경에학살되었다.오제도,선우종원등이만든국민보도연맹의광범위한희생자중의하나였다.이홍규,이정남검사처럼‘관제빨갱이’로몰렸던사람들은막상인민군에게과거남로당활동내용을제출하려해도적어낼것이전혀없는황당한처지에놓였다.김영재차장검사나홍승기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