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북한과 마주한 40년 | 박인규 대담 | 양장본 Hardcover)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북한과 마주한 40년 | 박인규 대담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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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학자의 머리, 행정가의 눈, 시민의 가슴으로
북한을 바라본 평생의 기록
“대북 전문가는 많지만 전문성과 리더십을 겸비한 사람은 그 하나뿐이다”라는 평을 들으며 지난 40여년간 남북관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정세현의 회고록『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후 풍찬노숙하며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와 반항기 넘치는 청소년기를 거쳐 촉망받는 국제정치학도로 자라난 이야기부터, 연구자와 공무원 사이에서 갈등하던 청년기에 특별한 계기와 분투를 통해 남북문제의 한복판에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협상가로 자리매김하는 과정까지가 여러 굵직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특히 1990년대 북핵 위기 당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거쳐 2000년대 6자 회담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당대 한반도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헤쳐온 여정은 이 책의 백미다. 여전히 현역으로 남북 문제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분단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지침을 제시한다. ‘회고록’이라 하여 흘러간 이야기를 되짚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과거의 경험으로 얻은 지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로 보며 앞으로를 생각하게 하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이때에, 평생 북한을 마주한 ‘현인’의 지혜가 우리에게 더욱 무겁고도 값지게 다가온다.
북미관계가 교착되었다면 남북관계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하며, 특히 남북이 무람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직접 그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촉구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회고록을 넘어 대북관계사의 한 시대를 오롯이 증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저자

정세현

서울대학교외교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에서정치학박사학위를받았다.국토통일원공산권연구관,남북대화운영부장,청와대통일비서관,민족통일연구원장,제11대통일부차관,국가정보원장통일특별보좌역,제29·30대통일부장관을지내며남북관계의최전선에서일했다.이화여자대학교석좌교수,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원광대학교총장,한반도평화포럼이사장을지냈다.현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으로일하며여전히한반도의평화와통일을위해힘쓰고있다.저서로『모택동의국제정치사상』『정세현의정세토크』『정세현의통일토크』『정세현의외교토크』,공저로『오늘의남북한』『담대한여정』『한반도특강』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정세현

프롤로그평양의추억유년시절
1장고교시절최초의저항과그후유증
2장학자의길과관료의길사이좌절된교수의꿈
3장통일부공무원시절1대북정책의일선에서
4장통일부공무원시절2아웅산테러사건과남북관계
5장일해연구소와통일연구원시절
6장통일비서관시절1김일성주석과의불발된만남
7장통일비서관시절2대북쌀지원과퍼주기논란
8장통일부차관시절김대중정부의햇볕정책
9장통일부장관시절1부시의‘악의축’발언
10장통일부장관시절2북핵문제와6자회담
11장천안함사건과김정일위원장의죽음이명박정부
12장‘통일은대박’의시대박근혜정부
13장문재인정부의출범과남북관계의급진전
14장평화와통일의길

나가는말-박인규

출판사 서평

한시골청년이깨우친비주류로서의삶
:1960년대후반부터1980년대초반까지어느마이너리티리포트

정세현은8·15해방을불과두달앞둔1945년6월,당시생계유지를위해북만주에이주한부모슬하에서태어났다.해방직후가족을따라고향전북장수로돌아왔고,어린시절학업성적이뛰어났던덕분에경기고등학교에진학한다.그의삶은묘하게‘비주류’로흘러왔는데,중학교시절엔산골오지출신이라고,고등학교때엔‘경기중’출신이아니어서또래집단에서배제되는일이잦았다.그러던어느날,유신정권하에서당시학교장이비상식적인과정을거쳐발령받자그는반대시위를조직했는데,이것이내부밀고로발각되어무기정학에처해진다.이사건은정세현의세계관에큰영향을미쳤다.“그때저는동급생들이지만머리좋다고하는사람들,도시에서자란사람들이갖고있는기회주의적인태도에굉장히실망했어요.그때받았던충격때문에,사회생활을하는동안에도‘그반대편에서는것이정의다’라는생각을계속품고살았어요.”(44면)
재수시절에는‘이것이민족적민주주의이드냐’라는플래카드로회자되는한일협정반대시위를주도했고,사수끝에입학한대학에서는신입생사전교육때어느교수의말을듣고자신의미래를어렴풋이정하게된다.“여기는외교관시험공부를시켜주는곳이아니다.(…)분단국에서국제정치학을배우고가르치는이유는하나다.통일문제때문이다.(…)국제정치학을공부하며항상통일문제와연계하여생각하는습관을가질필요가있다.”(65~66면)
국제정치학으로진로를확정한뒤그는은사들의대외활동을통해남북문제를현장감있게접하게된다.일례로,당시서울대외교학과박준규교수는분단이후최초의남북적십자회담(1971년)에남측인사로참석했고그로부터북한의실상을생생하게들을수있었다.석사학위논문지도교수였던이용희교수가통일원장관으로서부임하면서정세현또한1977년통일원보좌관으로공직생활의첫발을내디뎠다.그러나그가애초부터공무원을꿈꾼것은아니었다.본래대학교수가되고자했던정세현은당시공산권연구자양성기관격으로세워진자유아카데미에서논문1위의성적을내며전임강사로선발되는등뛰어난성취를보였다.‘낮에는통일원,밤에는대학원’의주경야독생활에돌입한정세현은결국1982년중국공산주의연구로박사학위를받으면서중국연구자로단연주목받게된다.
1980년대들어남북간의경제적격차가커지고남한이전분야에걸쳐확실한우위에서면서한반도통일에대한구체적인방안이논의되기시작한다.정세현은1980년북한이공표한‘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에대응할남한최초의통일방안인‘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작성하면서정책관료로서탁월한역량을선보이며두각을드러낸다.

갈등이있는곳에협상이있다
:1980년대후반부터1990년대후반까지협상가로서의삶

정세현이통일정책관료로일하던1980년대초반은남북간체제경쟁이시시각각사건사고를만들어내던때였다.1983년9월미국발대한항공007편격추,10월버마아웅산테러라는비극적사건이연이어발생했고,이같은상황에서정세현은1984년LA올림픽단일팀구성을위한남북체육회담을총괄하여준비하게된다.대화와교류를위해추진되었던단일팀은남북간의냉랭한분위기에서무산되는데,그과정에서펼쳐지는활극이흥미진진하면서도한편으로는가슴아프게다가온다.
1984년8월,남한에기록적인폭우가쏟아져한강일대의도심이모두물에잠기는대형재난이일어났다.당시정세현은북측의이례적인구호물자전달의사를거절했던청와대의마음을돌려놓았다.전격적인수용덕택에당시북한의수해물자전달은후대에도길이남는큰사건이되었고,바로다음해에남북이이산가족고향방문,예술단교환방문프로그램을치르는성과로도이어진다.협상가로서정세현의자질이다시한번빛을발한순간이었다.
1986년그는통일원을떠나일해연구소(현세종연구소)수석연구위원으로자리를옮긴다.이시기에는1987년민주화이후시민사회의통일운동이무척활발해졌다.정세현이증언하는당시의후일담은통일에대한관점이남과북사이에서뿐아니라정부와민간사이에서도,또한민간의여러시민운동세력내에서도큰차이가있었음을보여준다.그당시한반도를뒤흔든통일운동에대해정부실무자로서시민사회가좀더넓은시야를갖길바란대목은경청할만하다.“노태우정부의북방정책자체가북한과공존하려는쪽으로가고있었거든요.(…)북미/북일수교는안됐지만한중수교부터끌어내고남북교류협력정도를활성화해야겠다고보고있었어요.그런데(…)민간이성급하게대북접촉에나섰으니정부가오히려부담을가졌을거예요.”(202면)
1993년문민정부가들어서면서정세현은청와대통일비서관으로일하게된다.같은해북한이NPT를탈퇴하겠다고선언하면서제1차북핵위기가발발하기도했다.이에당시미국클린턴정부는북한과적극적으로대화에나섰고이를1994년제네바합의로마무리짓는다.정세현은이와같은상황을마주하면서,대통령한사람의대북관이남북관계에미치는영향이얼마나큰지를절감한다.당시김영삼대통령은본인의취임사에서“어느동맹국도민족보다나을수는없다”라고호언했지만,실제로는북한의붕괴를확신하며임기내내북한에적대적인정책을펼쳤다.정세현은이때대통령자신이취임사에서밝힌대로남북간의공조를우선시했다면어땠을까아쉬움을토로한다.1994년김일성조문파동,1995년대북쌀지원‘퍼주기’논란,1997년황장엽노동당국제비서탈북등문민정부내내대통령의대북관이낳은안타까운외교실패사례가반복되었다.

북에대한지원은퍼주기가아니라‘도리’아닌가
:2000년대초반부터현재까지

1990년대말은북한경제가최악의상황으로치닫고있었기때문에북한붕괴론이하나의정설로여겨지기까지했다.전세계적으로북한에대한인도적지원이늘어나면서남한또한식량등의지원에나선다.다만분단체제아래에서70여년간적대해온터라남한내부의반대의견이만만찮았다.이에대해정세현은통일정책이갖는현실적인한계를냉정하게인식해야한다며다음과같이역설한다.“대북정책이국민들90퍼센트,100퍼센트동의를구하기는어려워요.51대49만되어도대북정책에서추진력이생길수있어요.(…)남북문제에관한한100퍼센트초당적협력은기대할수없고,다만햇볕정책이나남북화해협력정책으로성과를냄으로써평화가피부에와닿게인식시켜주면서,이게나쁘지않다고느끼는사람을늘리는수밖에없어요.”(547~48면)
정세현의이같은현실주의자로서의면모는김대중정부에서통일부차관으로발탁되면서빛을발한다.전임정부의통일부차관이었던정세현을그대로차기정부의동일직책으로발령한것은대단히이례적인일이었다.이같은전례없는인사조치는김대중사후공개된메모를통해이해된다.“대북전문가는많지만전문성과리더십을겸비한사람은그하나뿐이다.”(313면)
햇볕정책으로대표되는김대중정부의대북정책은취임직후터진금창리지하동굴(핵실험)사건으로일촉즉발의미궁속으로빠져든다.여러난관에도불구하고정세현은김대중정부의통일정책을주도하며민간인들의북한방문조건을대폭완화하고민간기업의대북투자상한선을철폐하는등적극적으로선민후관(先民後官)정책을펼친다.
2002년1월29일은정세현이김대중정부의통일부장관으로취임한날이자부시미대통령이의회연설을통해북한을‘악의축’으로규정한날이기도하다.북한또한연이어미사일발사실험을강행하는등대외적으로악조건만형성되는때였다.이러한척박한상황에서정세현은금강산관광사업,개성공단유치등에매진한다.대다수의여론이남과북이독자적으로경제협력을이뤄가기보다는국제자본,즉미국과일본이먼저들어간뒤에남한이개입해야한다고주장하던때에정세현은당시남과북이할수있는선에서이를해결해낸다.정세현의일관된입장은북한당국자들까지도움직여,결국에는김대중-노무현정부하에서금강산관광사업과개성공단이안정적으로유지되는데크게이바지한다.

‘통일의미로’에서서

창비가정세현의회고록을처음기획한것은2018년가을무렵이었다.당시는4·27판문점남북정상회담,6·12싱가포르북미정상회담,9·19평양남북정상회담이이어지면서한반도의평화가금방이라도도래할것같던때였다.그리하여당시의기대와희망을반영하여이책을2020년6월,즉한국전쟁발발70년이자최초의남북정상회담20주년에맞춰출간하는것으로의견을모았다.
안타깝게도2019년2월하노이북미정상회담이어떤성과도없이결렬되면서,또한이어진10월스톡홀름북미실무협상이아무런합의도도출해내지못하면서한반도정세는급격히냉랭해졌다.이에2020년초북한은자력갱생이라는‘새로운길’을선언했고북미간의교착과대치는1년이상이어지고있다.대담자박인규의말처럼“미국대선이있는2020년안에북미협상의돌파구가열릴가능성은거의없다고봐야”(651면)할것이다.
이같은암중모색의시기에우리는무엇을할수있을까.『판문점의협상가』가담아낸정세현의삶에서우리는해법의실마리를찾을수있다.북미관계가교착되었다면남북관계에서그돌파구를찾아야하며,특히남북이무람없이할수있는일이있다면이를적극적으로밀어붙일수있어야한다.저자는자신의삶을통해한반도문제에서는다른누구도아닌우리가직접그방향키를쥐고있다는사실을잊지말것을촉구한다.이책은한사람의회고록을넘어대북관계사의한시대를오롯이증언하는작업이기도하다.독자들은이책을통해난맥상의통일문제를직시할수있는뚜렷한관점과함께새로운평화의시대를준비하는지혜를얻을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