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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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은숙

2002년부터국가인권위원회조사관으로일하고있다.조사관으로만난사람들의목소리에작은스피커하나연결하고싶었다.뭐재미난일없을까궁리하고,틈틈이읽고쓰고북한산에간다.사소해보일지라도누군가에게위안을주는이야기를길어올리고싶어글을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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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우린조금슬프고귀여운존재

1부|어떤호소의말들
그남자의새빨간거짓말
용주골그방의아이에게
그는어떻게장발장이되었나
누군가의제일좋은옷
신이아닌우리의책임이다
우리가진정응원하는것
절대그러지않을사람은없다
그리고아무도책임지지않았다
최저임금받으며참아낸말들
수인의하얀손
마지막거짓말
메일아이디가‘호소’인이유
굴비장수주제에

2부|고작이만큼의다정
일의기쁨과슬픔
조사국의탈곡기소리
프놈펜가는길
수취인사망
그놈의인권
무덤옆에텐트를치고
친절한조사관의아슬아슬줄타기
누가더악당인가
‘인권지킴이’와‘인권찍힘이’사이에서
청와대앞을쌩쌩
조사관의직업병
열사람이한숟가락씩밥을보태고
밤길의공포
아들의아르바이트를만류하며
저녁노을도다사정이있었겠지요
춤출수있어야인권이다
반려묘불이에게배운것

출판사 서평

“사건너머에존재하는삶의다양한무늬,
그것을헤아리는것이야말로인권의마음이아닐까”

“지푸라기라도잡는심정으로전화했습니다.도와주세요.억울합니다.”인권위에는매일같이억울함을호소하는목소리가울려퍼진다.그사연은저마다다르지만인권위에연락할만큼절박하다는사실은분명하다.저자는인권침해사건의통계나조사결과보고서같은서류에는잘드러나지않는사건너머‘사람들’의진짜이야기를꺼내놓는다.1부에는저자가만난다양한진정인의사연을담았다.일터에서부당한대우를받고도묵묵히참고견디는청년들,당국의잘못된수사와판단으로억울한누명을쓴피해자들을만났다.별것아닌일로먼길을오게했다며조사관에게미안해하는진정인이있는가하면,새빨간거짓말로조사에혼선을주는진정인도있다.

한번은교도소에수감된진정인이조사관을직접불러진정을신청하는‘면전진정’을요구했다.면전진정을악용하는경우도많아제도에의문을품고있던저자는진정인을직접만나고나서야그가글을읽고쓸줄몰라간단한민원도스스로제출할수없음을알게되었다.선입견에빠져자칫도움이필요한사람을외면할뻔했던것이다.어느날은하루가멀다하고민원을넣는‘악성민원인’을직접만났다.그는사소해보이는일로매일같이경찰서에민원을넣고경찰관들이시민의인권을침해하고있다고주장했다.진정인을만난날,그는하루벌이를포기하고가장좋은옷을입고나왔다며만나줘서고맙다고인사했다.진정인의말을들어보니그의행동에는나름의이유가있었다.유행이지난허름한옷을차려입은진정인을지레‘악성’으로단정짓고그의말에제대로귀기울이지않았던것을저자는오래도록후회했다고고백한다.

모든사건은자세히들여다보고당사자의사정을알수록복잡해졌다.저자는억울한일들을줄이려면인권에관한지식과정보도필요하지만,무엇보다중요한건타인의이야기에귀기울이는태도라고말한다.이책은우리주변에분명존재하지만보이지않았던이야기,법과제도의사각지대에놓인이들의절박한사연을소개하며인권을새로운각도에서바라보게한다.

선의와열정과용기를담은
어느조사관의솔직한고백

인권위라는국가기관이모든사건을해결할수없으며,조사관역시한명의개인이라는한계를지닐수밖에없다.저자는조사관으로일하며“때론기가막혔고,때론안타까웠고,때론외면하고싶”었지만,그럼에도열정과용기를잃지않고계속해나갈수있었던이유를2부에담았다.직장인이자한명의인간으로서겪은괴로움과즐거움,좌절과뿌듯함을솔직히밝힌다.조사관경력이차곡차곡쌓이는동안업무에지쳐진정인을사무적으로딱딱하게대하는경우도있었다.꼬치꼬치캐묻는일에익숙해져가족과친구들을괴롭게만들기도했고,법적강제력이없는인권위의한계를체감하고무기력함에눈물을흘리기도했다.그러나사건을마무리한후진정인이건넨감사의인사와따뜻한손길,그리고뜻을함께하며치열하게일하는동료조사관들을보며다시금마음을다잡게되었다고저자는고백한다.

다른이의복잡한사정을들어주는일은괴롭다.누군가의억울함을해소하기는커녕오히려상황이더나빠질까전전긍긍하며잠못이루는밤도많다.진정인의진정을여러번각하했다가악독하다는욕을먹고,다짜고짜‘인권팔이’라며고래고래소리를지르는전화를받고,하루종일바쁘게뛰어다니다일과가끝나고나서야신발을짝짝이로신고나왔음을알게된날도있다.때로는무력감에휩싸여모든걸외면하고싶을때도있지만,그럼에도저자는의욕을잃지않고마음을다잡아왔다.

캄보디아소재의한국단체에서성희롱사건이발생했을때의일이다.외국에서일어난사건을한국에서조사하며한계에부딪힌저자는국외현장조사를결심했다.선례가없는일이고예산도따로마련되지않았기에조사국장은난감해했지만,저자는출장을감행했다.돌이켜보면무모한시도였지만덕분에사건의진상을파악하고피해자들의억울함을풀어줄수있었다.선의와열정이없었다면불가능했을일이다.

저자는함께일하는동료조사관들에게서용기를얻은에피소드도들려준다.20년전의문사한피해자의억울함을밝히고자했으나관련자료가거의없는상황에서그의무덤을찾아간선배조사관이있다.그는혹시피해자의무덤에서밤을지새우면꿈에라도나타나주지않을까싶어무덤옆에텐트를치고며칠을지냈다고했다.동료조사관과함께태국에있는난민캠프의어린이들을위해모금활동을벌이고,현장에서발로뛰는인권활동가들을지원하는펀드를열었던경험도저자에게는뜻깊은기억으로남아있다.함께밥을먹고,산에가고,이야기를나누며서로를지지하는동료들이고단한일을버티게하는힘이되어준다.

인권위조사관이바라본
한국사회인권감수성의현주소

최은숙은누군가의억울함을밝히는일에는법률지식과행정적인기술도필요하지만,용기,선의,정직함같은신념이더욱중요하다는사실을매번깨닫는다고말한다.엇갈리는주장,상식에어긋나는조치,말장난같은억지가담긴서류뭉치를받게되어도그속사정을헤아리며차근히조사를시작하는어느조사관의마음가짐이억울한이들에게조심스럽게가닿는다.

어떤사건이누군가의권리를침해하는것은그자체로문제이지만,문제를해결하는과정에서불합리한법과제도의한계가드러나기도한다.저자는법과제도만으로인권을규정한다면제대로된보호를받지못하는이들이생길수밖에없음을지적하며,그한계를보완하는것이인권감수성이라고말한다.소수와약자를향하는마음,편견을버리고다양한관점에서생각하는방식이우리사회를조금더살만한곳으로만들수있다는것이다.법의한계를메우려면타인의목소리를귀기울여듣는태도가필요하다.그태도를몸소보여주는저자의모습을따라가다보면어느새독자들에게도‘인권의마음’이스며들것이다.

“우리가믿고의지하는법과제도는우리의기대보다훨씬더무능할때가많다.이미수천개의법률이있고,앞으로수천개의법률을더만든다고해도법의무능함을완전히해결하기는쉽지않아보인다.법이란고기잡이그물같아서아무리정교하게만든다고해도빠져나갈구멍이반드시생긴다.그래서더더욱마음이없는법의무능을메꿀수있는것은마음이아닐까싶다.모든일이법과제도를잘만드는것만큼이나누가어떤마음으로그일을해내느냐가중요하다.그리고인권을위한일이라면더욱이그래야한다고생각한다.그것을나는‘인권의마음’이라부르고싶다.그마음이야말로법의그물이구제하지못하는억울함이기댈곳인것같다.”(159~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