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행사들이 많지만,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에서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홍성강좌는 교회사의 발전 과정을 장기적 맥락에서 되짚어 보고,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던 개혁의 성과들뿐 아니라 개혁의 운동들이 길을 잃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홍성강좌는 세속사를 전공하는 역사가와 교회사가가 협력하여, 교회사와 세속사를 분리시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적극 통합하려는 시도다.”
- 기획위원 박흥식(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홍성강좌 두 번째 책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7년부터 시작된 ‘홍성강좌’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통합해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체사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행했다. 이번에 펴낸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가 진행한 강의 내용을 토대로 재집필했으며,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 시리즈 두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책이다.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로마와 그리스도교》, 《중세와 그리스도교》,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이렇게 네 권이 출간되었으며, 마지막 권이자 시리즈 세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종교개혁과 그리스도교》(가제)는 곧 출간 예정이다.
암흑시대? 신앙의 지배기?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14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이 사용한 ‘암흑시대’라는 용어는 지금까지 중세에 대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런 평가를 지지하지 않지만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암흑시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은 현대인들의 이러한 판타지를 충족시키지만 중세에 대한 바른 이미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암흑시대 이미지는 중세의 첫 몇 세기에만 해당하며, 오히려 마녀사냥과 노예제도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근대이고,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일어난 시기가 20세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세는 신앙이 지배한 시대도 아니었다. 할레 대학 역사학 교수로 초빙된 크리스토퍼 켈러(1638-1707)는 중세를 그리스도교 시대로 바라본 선구자였으나 이러한 주장은 전체 유럽 대륙에 해당하지 않으며, 서유럽만으로 한정하더라도 민중들이 그리스도교를 생활 가운데 얼마나 깊이 받아들였는지는 회의적이다. “중세는 결코 그리스도교화한 적이 없었다”는 말은 이러한 회의적 시각을 대변한다. 중세는 교회가 신앙을 철저히 통제하던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어린 시절
중세의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려면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왜곡을 각오해야 가능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중세는 한 사람의 육체 및 사고의 골격과 근육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한 인간에게 과거의 시간은 흘러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내부에 축적되며 다양한 특성으로 발현된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성장통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음을 회고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는 현대 문명의 기반이 구축되던 “뿌리이자 출처이며 어린 시절”이었다.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제1부에서 그리스도교 세계가 형성되는 300년에서 750년경 사이를 들여다본다. 이 시기는 고대적 요소와 중세적 요소가 중첩된 이행기로서 서양 라틴 문명의 유년기이다. 제2부는 1050년경까지이며 카롤링 왕국이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를 통합해 가고, 이슬람 세계가 급속히 성장하던 때이다. 봉건제가 성장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외연이 대략 확정되었다. 동서 그리스도교 세계는 1050년경 분열이 확정된 때이기도 하다. 제3부는 11세기에서 13세기로 중세 유럽의 전성기이다. 이민족의 침입 위협이 서유럽에서 사라졌고, 경제적으로 풍요했으며, 교황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수장이자 세속에 대해서까지 권위를 행사하던 때이다. 십자군 원정이 당시의 모순을 노출시킨 때이기도 하다. 제4부는 14, 15세기에 해당하며, 지속되던 성장이 정체된 시기이다. 환경적 요인과 아울러 앞 시기의 모순이 분출하면서 대전환을 맞은 시기로 요약된다.
- 기획위원 박흥식(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홍성강좌 두 번째 책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7년부터 시작된 ‘홍성강좌’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통합해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체사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행했다. 이번에 펴낸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가 진행한 강의 내용을 토대로 재집필했으며,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 시리즈 두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책이다.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로마와 그리스도교》, 《중세와 그리스도교》,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이렇게 네 권이 출간되었으며, 마지막 권이자 시리즈 세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종교개혁과 그리스도교》(가제)는 곧 출간 예정이다.
암흑시대? 신앙의 지배기?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14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이 사용한 ‘암흑시대’라는 용어는 지금까지 중세에 대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런 평가를 지지하지 않지만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암흑시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은 현대인들의 이러한 판타지를 충족시키지만 중세에 대한 바른 이미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암흑시대 이미지는 중세의 첫 몇 세기에만 해당하며, 오히려 마녀사냥과 노예제도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근대이고,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일어난 시기가 20세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세는 신앙이 지배한 시대도 아니었다. 할레 대학 역사학 교수로 초빙된 크리스토퍼 켈러(1638-1707)는 중세를 그리스도교 시대로 바라본 선구자였으나 이러한 주장은 전체 유럽 대륙에 해당하지 않으며, 서유럽만으로 한정하더라도 민중들이 그리스도교를 생활 가운데 얼마나 깊이 받아들였는지는 회의적이다. “중세는 결코 그리스도교화한 적이 없었다”는 말은 이러한 회의적 시각을 대변한다. 중세는 교회가 신앙을 철저히 통제하던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어린 시절
중세의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려면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왜곡을 각오해야 가능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중세는 한 사람의 육체 및 사고의 골격과 근육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한 인간에게 과거의 시간은 흘러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내부에 축적되며 다양한 특성으로 발현된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성장통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음을 회고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는 현대 문명의 기반이 구축되던 “뿌리이자 출처이며 어린 시절”이었다.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제1부에서 그리스도교 세계가 형성되는 300년에서 750년경 사이를 들여다본다. 이 시기는 고대적 요소와 중세적 요소가 중첩된 이행기로서 서양 라틴 문명의 유년기이다. 제2부는 1050년경까지이며 카롤링 왕국이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를 통합해 가고, 이슬람 세계가 급속히 성장하던 때이다. 봉건제가 성장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외연이 대략 확정되었다. 동서 그리스도교 세계는 1050년경 분열이 확정된 때이기도 하다. 제3부는 11세기에서 13세기로 중세 유럽의 전성기이다. 이민족의 침입 위협이 서유럽에서 사라졌고, 경제적으로 풍요했으며, 교황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수장이자 세속에 대해서까지 권위를 행사하던 때이다. 십자군 원정이 당시의 모순을 노출시킨 때이기도 하다. 제4부는 14, 15세기에 해당하며, 지속되던 성장이 정체된 시기이다. 환경적 요인과 아울러 앞 시기의 모순이 분출하면서 대전환을 맞은 시기로 요약된다.
중세와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 세계의 안과 밖 - 믿음의 글들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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