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조선 영인본(색인 포함) (전 8권)

성서조선 영인본(색인 포함) (전 8권)

$259.00
Description
‘조선산 기독교’를 향한 일념을 오늘에 되새기다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
1927년 7월부터 약 15년간 간행된 동인지 형태의 신앙잡지 《성서조선》은 김교신 등 여섯 신앙 동지들이 조선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성서로 보고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기 위해 행한 성서 연구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조선의 혼을 가진 조선 사람 곧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가 성서적인 신앙으로 각성시키려 했던 《성서조선》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많은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등불 같은 역할을 하며 민족혼을 일깨우기도 했다.
《성서조선》은 대부분의 신·구약 성서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한편, 조선과 세계의 역사를 성서적 입장에서 관통하는 역사관을 소개했다. 또한 《성서조선》은 일상 속 모습들을 통해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가 하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신앙의 제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질타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조선산 기독교’를 염원했던 김교신을 비롯한 동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모아진 것이다.

피와 눈물과 한숨과 기도로 엮은 《성서조선》, 영인본으로 만나다
김교신 선생이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은 물론 온갖 허드렛일까지 맡으면서 삶의 전부를 바치다시피 하며 간행된 《성서조선》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들이 발간 당시 한국 교회의 상황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2017년부터 영인본 재간행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 교회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 신학 수립의 당위적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였다. 1982년 노평구(盧平久)가 복사·간행한 《성서조선》 1~158호 전권을 다시 스캔하고, 체제를 약간 바꾸어 연(年) 단위로 2년씩(1권은 3년) 묶었다. 간혹 원본에 페이지 숫자가 잘못 매겨진 곳, 조선총독부 검열에 의해 삭제된 곳 등을 다시 확인하고, 복사·간행한 《성서조선》에 빠져 있던 몇몇 부록 등을 모두 수록했다.

아날로그 방식의 색인집
《성서조선》 영인본과 함께 내는 색인집에는 4,400여 개의 표제어가 수록되어 있다. 《성서조선》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저서 및 그 외 작품명, 사건명 등을 망라하여 연구자나 관심 있는 독자들이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성경 관련 인명과 지명은 부득이 제외했다).
2017년 가을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이사 5명과 책임편집자가 함께 시작하여 1년 남짓 걸린 이 색인 작업은 일반적인 색인 작업과는 다른 과정을 거쳤다. 2년 단위로(1권은 3년) 나누어 분담한 《성서조선》 전권을 각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일일이 색인어를 추려내고, 매달 한 번씩 모여 점검 및 논의를 통해 색인어 선정 및 표기 방법 등에 관해 매뉴얼을 다듬어 가면서 작업했다. ‘외래어 표기법’이 없던 당시에는 서양 인명과 지명의 경우 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고, 오늘날 쓰지 않는 특이한 한자어[정말(丁抹; 덴마크), 사옹(沙翁: 셰익스피어) 등] 또는 훈민정음의 자음으로 표기된 것들도 있는데, 이들 색인어는 모두 현대식 표기와 함께 나타냈다. 아무리 검색해도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일부 표제어는 현대어에 가까운 발음만 표기하고 어쩔 수 없이 미제(未濟)로 남겨두기도 했다.
저자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김교신선생의정신과사상을계승하고이를기념하기위해2014년8월28일창립준비위원회모임을시작으로,그해11월28일창립총회를거쳐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가발족되었다.주요행사로는2015년4월25일개최된김교신선생서거70주년기념학술대회및강연회를시작으로매년4~5월추모강연회와11월기념학술대회를개최하고있다.또한《김교신,한국사회의길을묻다》등‘김교신알아가기시리즈’를간행하고있으며,2016년10월에는김교신선생의미공개일기인《김교신일보(日步)》를해역하여발행하였다.최근역점사업으로《김교신전집》을새롭게준비하고있다.2018년부터사단법인으로전환되었으며,이만열(전국사편찬위원장)이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으로섬기고있다.

출판사 서평

〈성서조선〉
1927년7월창간되어1942년3월통권158호까지발행되었다.무교회주의기독교의창시자우치무라간조內村鑑三의영향을받은김교신·함석헌·송두용·정상훈·류석동·양인성6명이“성서를조선에,조선을성서위에”라는표어로창간하였다.초대발행인과편집인은일본에있는류석동과정상훈이었으나,1930년5월호인제16호부터는동인들의사정으로김교신이편집을비롯한경비등모든책임을맡아펴냈다.일반적으로국판27면내외였고발행부수는가장많을때도300부를넘지못하였으나,고정독자들가운데이승훈등영향력있는인사들이많았다.
《성서조선》은성서중심의순수한기독교신앙을외치고,기성교회의문제점을비판하면서민중속에파고들어그들의영혼을신앙으로각성시키고자노력하였다.고정란으로애국신앙교육을다룬‘권두언’과여러인사들과의만남이나서신을기록한“성조통신”을두었는데,특히성조통신란은김교신의신앙생활을엿볼수있는중요한자료다.1942년3월호권두언에실린“조와(弔蛙)”의내용이조선인을혹한에살아남은개구리에비유하여조선민족의소생을노래하였다는이유로폐간당하였다.

김교신(金敎臣)
1901년4월18일함흥에서출생하였다.1919년함흥공립농업학교를졸업하고3·1운동에참여한후일본으로건너가도쿄고등사범학교에서박물학을전공하였다.1920년야라이정홀리네스교회에서세례받고기독교인이된후,우치무라간조를7년간사사했다.1927년귀국후동지들과《성서조선》을창간하여일제의탄압으로폐간될때까지발행하는한편,함흥영생여고보,양정중학교,경기중학교,송도중학교에서교편을잡으며기독교정신과민족의식을고취했다.1942년성서조선사건으로동인및독자들과함께검거되어함석헌,송두용등과1년간옥고를치렀다.출옥후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조선인노동자들을위해일하다가발진티푸스에감염되어1945년4월25일타계했다.2010년독립운동의공로를인정받아대한민국건국포장에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