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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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간도에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한 ‘독립운동가 이상룡’
이상룡 선생님은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났어요. 선생님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과 학문이 높은 명문가였고, 선생님은 다른 유학자와 마찬가지로 성리 철학을 공부했어요.
나라가 점점 위태로워지자,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낀 선생님은 ‘의병 항쟁’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섰어요. 선생님의 목표는 오로지 국권 회복과 독립이었지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선생님은 거액의 자금을 들여 가야산에서 의병을 육성했어요. 의병장 신돌석, 김상태 등과 함께 힘을 모았지만 비밀이 드러나 수많은 자금을 들여 훈련시킨 의병들은 흩어지고 말았어요. 의병 항쟁의 한계를 깨달은 이상룡 선생님은 고민 끝에 ‘애국 계몽 운동’의 길을 선택했어요. 조선의 유학만을 고집하던 선생님이 서구의 사상과 학문을 수용한 것이지요. 이는 엄청난 변화였어요.
1909년 5월, 이상룡 선생님은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만들고, 지회장을 맡아 계몽 운동을 펼쳤어요. 국권 침탈의 원인은 ‘교육의 부족’ 때문이라며 신교육과 단체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셨지요. 선생님은 옛것과 새것을 조화롭게 한 교육을 통해 힘을 키워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어요.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강점되고 말았어요. 이상룡 선생님은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바른 길을 택하는 것’이 선비가 깊이 새길 뜻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백번 꺾여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더 바른 길’을 고민한 끝에 망명의 길을 선택했어요. 만주로 옮겨 가 독립운동을 펼치기로 했지요.
1911년 1월 5일, 선생님은 만주를 향해 떠났고, 이회영·이동녕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첫발을 내디뎠어요. 만주 정착 후 이상룡 선생님은 동포 사회의 안정,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될 동포들의 자치 기구를 조직(첫 번째 조직이 경학사였는데, 이후 부민단과 한족회로 계승), 독립전쟁을 수행할 인재를 양성(신흥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를 세우고 운영), 병영 설치(백서농장, 길남장 등 이는 1919년 서로군정서로 계승) 등 많은 활동을 했어요. 이렇게 활동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상룡 선생님은 초심을 잃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했어요. “모두가 나라 잃은 책임을 통감하며, 희망을 잃지 말고 굳센 의지로 독립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로 동포들을 일깨우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1920년대, 이상룡 선생님은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어요. 그런데 ‘간도참변’으로 동포 사회도, 독립군도 처참하게 무너졌죠. 그러나 선생님은 희망을 잃지 않고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에 힘을 쏟았고, 1924년 정의부 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어요.
선정 및 수상내역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 2021 행복한 아침독서 선정
저자

정종영

지역의숨은역사를발굴해동화,인형극등다양한분야의창작활동을하며,동화지망생과아이들에게글쓰기를가르칩니다.지은책으로『허도령과하회탈』,『모래소금』,『조선의마지막춤꾼』,『꼬마귀신의제사보고서』,『도시수달달수네아파트』등이있습니다.그외에글쓰기,독서법등다양한책을썼습니다.

목차

작가의말

서간도는고구려의옛땅
이상룡으로다시태어나다
축복의땅,합니하
만주의독립선언,만세운동을불지피다
독립전쟁
다시일어나는오뚝이처럼
꺾인줄기에서꽃을피우다
대한민국임시정부초대국무령이상룡
광복이되기전까지내유골을조국으로가져가지말라!

부록
서간도독립운동의개척자석주이상룡
석주이상룡의생애
임청각의독립운동가들

출판사 서평

대한민국임시정부초대국무령이상룡
“나라를되찾기전에는내유골을고국으로가져가지말라!”

선생님은대한민국임시정부초대국무령을지내셨어요.당시임시정부는매우혼란스러운시기였는데,이를극복하고자임시의정원은1925년대통령제를국무령제로바꾸고,첫국무령으로선생님을선출했어요.독립운동과정에서보여주었던선생님의통합과조정의리더십이빛을발한것이죠.선생님은깊이생각한끝에국무령직을수락했어요.
임시정부의혼란은생각보다심각했고,선생님은이상황을수습하려고노력했어요.하지만어렵다고판단되어1926년에국무령직을그만두고만주로돌아왔어요.그뒤만주의독립운동세력을하나로모으기위해노력했어요.
건강이좋지않았던상황에서도마지막까지청년들에게애국사상을심어주던선생님은1932년5월,74세로눈을감으셨어요.
“나라를되찾기전에는내유골을고국으로가져가지말라!”
선생님은돌아가시면서이렇게유언을남기셨어요.잃어버린나라를되찾지못하고떠나는선생님의안타까운심정을알수있어요.

‘역사앞에떳떳한인간의참다운의지’를실천한삶

이상룡선생님의삶은‘역사앞에떳떳한인간의참다운의지’가어떤것인가를잘보여줘요.공동체를위한선한의지와책임감이강한선생님은‘더바른길,더적절한길’을고민하며잃어버린나라를찾기위해일생을바치셨어요.
이상룡선생님이태어난안동임청각은독립운동의공로로서훈을받은사람만11명이에요.가족들이목숨바쳐일제가망하는그날까지독립의뜻을꺾지않고항일에매진했어요.
전재산을바쳐의병기지구축,애국계몽운동,무력투쟁등가능한모든독립운동의방법을실천한석주이상룡선생님은전세계식민지독립투쟁사상찾아볼수없는분이에요.
이책을통해알수있듯이석주이상룡선생님과가족은우리가꼭기억해야할독립운동가예요.그외에도잘알려지지는않았지만나라를되찾기위해애쓰신많은독립운동가들을잊지말아야겠어요.